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번호는 “119”이다. 사람들이 위급할 때 언제 어디든지 달려오는 119소방관 아저씨들은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슈퍼맨처럼 멋진 영웅이다. 하지만 그렇게 멋진 소방관 아저씨들은 응급상황에나 나타나니 만나서 좋을 것도 없고 실제로 만나기도 쉽지가 않다. “삐뽀삐뽀 119에 가 볼래?”는 이전의 리처드 스캐리의 다른 책들보다 작은 책은 사이즈지만 그의 책에서 봐오던 특유의 유머와 함께 친절한 정보가 들어 있다. 페인트공 드리피와 스티키가 북적북적 마을 소방서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은 웃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소방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장에 출동하지 않을 때의 소방관 아저씨들의 일상과 대조되게 기둥을 타고 내려와 장화를 신고 방화복과 헬멧을 쓰는 출동 모습은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또 사고 현장을 정리하고 불이 난 곳에 출동해 재빠르게 펌프 소방차의 호스를 소화전에 연결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려 불을 끄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 봤을 때는 정신없고 산만한 그림이지만 보면 볼수록 귀여운 작가의 그림은 굳이 소방관 아저씨가 하는 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전개되고 있다. 이제 막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궁금해 하는 아이에게 읽어준다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소방관 아저씨의 노고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친구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뜻한다. 내성적인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지만 얼추 세어 봐도 사전적의미의 친구는 꽤 여럿 된다. 하지만 내가 어려울 때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일처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는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또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전혀 다른 종인데다 사는 곳도 다른 청설모 스텀피와 래브라도 리트리버 코나는 첫눈에 단짝 친구가 된 사이다. 새로운 둥지를 짓고 자기가 모은 수집품을 정리하며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스텀피와 앨버트 교수의 집에서 코나는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추위가 몰려오면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은 깨지고 만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 구스베리 공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동물 친구들의 우정 이야기를 듣다보면 진정한 친구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나를 필두로 여러 동물들이 어쩌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는 순간에도 아기 청설모와 스템피를 구하기 위해 지혜를 짜는 모습은 우리에게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특히나 조금은 엉뚱하고 놀라운 식탐으로 코나의 가슴을 졸이게도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박쥐 머레이는 천방지축 우리 아이들 같아 더 사랑스럽다. 누구나 말로는 쉽게 이야기 하는 우정을 조건 없이 실천하는 코나를 보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를 단 한명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세상 참 잘 살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스베리 공원은 아니지만 어딘가에 이렇게 우정을 나누는 동물 친구들이 있을 것 같아 오늘처럼 추운 겨울밤의 추위가 괜히 야속하기만 하다.
지금 당장 연필 한 자루로 뭔가를 그리라고 한다면 어른보다는 아이가 훨씬 더 자유롭게 그려나갈 것이다. 오래전에 외롭게 혼자 살고 있던 연필 하나가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연필은 가장 먼저 소년을 그리고 ‘반조’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반조가 원하는 강아지와 그 강아지가 원하는 고양이를 차례로 그려준다. 하지만 “온통 검은색과 흰색뿐이잖아. 모두 흑백이라고!” 그림 친구들은 불평을 하고 연필은 친구들을 위해 ‘키티’라는 그림붓을 그려 색을 칠해 준다. 지우개로 지우면 당장 지워질 것 같은 연필로 그린 그림은 키티가 등장하면서 생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거기다 연필은 반조의 가족들까지 열심히 그리고 키티는 색을 칠해 나간다. 하지만 그림 속의 친구들은 투덜거리기 시작하고 자신의 모습을 불평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고민하던 연필은 지우개를 그리고 그림 속 사람들 마음에 쏙 들도록 다시 그려주기 시작한다. 모두들 행복해하고 있을 때 자기에 일에 너무 열중한 지우개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지우기 시작한다. 아이가 그린 듯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그림은 연필이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을 그대로 이야기로 옮겨 적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꾸민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아무렇게나 쭉쭉 긋던 줄들이 들쑥날쑥한 동그라미를 만들고 어느 순간 나름의 사물들을 그리고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꾸미기도 한다. 그림책은 이렇듯 아이가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저 누워 있기만 하던 연필이 움직여 삐뚤빼뚤 줄을 긋고 조금 자신이 붙어 자신을 닮은 아이를 그리고 동물들을 그리고 엄아 아빠를 그리고 거기에 색을 입히고. 평화롭기만 하던 그림 속에 등장한 무법자 지우개의 활약에 잔득 긴장하고 있다 연필이 내놓은 해결 방법에 딱 무릎을 치게 되는 그림책은 우리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 이야기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시대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걸 알고 있다. 우리 집 역시 남편 혼자 벌어 아이들은 물론 나까지 공부시키고 있다. 늦은 저녁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예전 같으면 바가지라도 긁었을 텐데 왠지 마음이 짠하고 힘이 되어주지 못함이 미안해진다. “우리 집 우렁이 각시”는 이렇듯 어려운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가장인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도 쉽게 손이 갈 수 있게 얇고 작은 사이즈의 부담 없는 동화책은 모두 세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작가인 이금이님의 작품으로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동화로 아이가 먼저 알아보며 반가워한다. 먼저 표제인 ‘우리 집 우렁이 각시’는 실직한 아빠가 가족 몰래 우렁이 각시가 되어 집안 일을 돕는다는 내용으로 요즘의 시대상과 맞물려 코끝이 찡해진다. 아들과 딸의 역할을 확실히 구분 짓던 시대에 살았던 할머니 세대라면 지금의 남녀평등의 시대는 뭔가 못마땅하고 불편하기만 한 시대일 일 것이다. ‘십자수’는 그런 할머니와 엄마의 갈등과 그 사이에 난감해 하는 아빠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할머니의 집’은 유년의 추억을 안고 있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아빠와 시골집이 불편하기만 한 엄마는 이사를 반대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빠와 단둘이 할머니 집에 가게 된 석이는 아빠의 추억과 만나게 되고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온 집안이 긴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이 시대를 사는 아버지는 훨씬 더 큰 짐을 짊어지고 있지만 큰소리한번 제대로 못치고 가족의 눈치를 보고 살고 있다. 세편의 동화를 읽다보면 다는 아니지만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특히나 마지막의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통해 단순히 읽고 끝내는 책읽기가 아닌 쉽게 독후활동을 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돼 준다. 책 읽기를 마치고 아이와 아빠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 본다면 아빠의 노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해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찾아봐야 하고 그 중 최고는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아닌가 싶다. 만약 아이에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은 아니지만 세세하고 쉬운 설명을 곁들여 보여주고 싶은 부모님이 계시다면 리차드 스캐리의 “허둥지둥 바쁜 하루가 좋아”를 권해주고 싶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의 모습들과 우리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숨은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또 번역물임에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이 사람들이 아닌 동물들이라 외국의 풍경에서 오는 낯설음이 없어 좋다. 북적북적 마을에 사는 농부 염소, 대장장이 여우, 식료품 장수 고양이, 귀여운 곰 뱃시 등 아이들에게 익숙한 동물 캐릭터들을 통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모두가 일을 해요’는 돈이 은행에 가면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는 것으로 아는 아이들에게 일을 하는 이유와 경제 흐름을 간단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림책은 3~5페이지를 할애해 집을 만드는 기술자들의 모습과 보낸 편지가 도착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병원과 즐거운 기차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까지 직접 만날 수 없는 분들의 고마움까지 느끼게 한다. 또 옥수수가 자라기까지와 나무를 어떻게 사용하는 지, 도로가 만들어지는 과정, 항해하는 모습,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모습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 들어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는 모습들은 만날 수 있는 그림책을 자세히 보자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다행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읽어주지 않아도 될 만큼 자라 심심하면 숨은그림찾기 하듯 읽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어리다면 한 챕터씩 끊어가며 읽어 주는 방법으로 읽어주는 어른도 읽어주는 고통(?)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