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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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나 미스터리를 기반하지 않은 번역된 단편 소설을 읽은 건 꽤 오랜만이다.
모두 11개의 단편이 실린 <우유,피,열>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이다.
예전 우리가 미국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인 ‘비버리 힐즈 아이들’을 보며 세상에 저런 고등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그 어떤 공상만화영화보다 괴리감을 느끼며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와 서양의 그들이 별차이없는 고민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에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시대가 돼 버렸다.

친구가 최고인 그 나이 대 두 소녀의 이야기인 표제작 ‘우유,피,열’은 단순한 십대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인가 싶었다.
나는 여전히 피를 나눠 마신 두 소녀 키라와 에바의 고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지금의 나도 분명 그 사간을 지나왔지만 무엇이 열 세살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알 수 없고
그들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아 끝없이 그를 그리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향연’은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들이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천국을 잃다’는 남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있을때 잘하라고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엄마라면 누구나 동의할 이야기 ‘적들의 심장’은 ‘내 자식은 내가 지킨다”며 이를 아득바득 갈았을 프랭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딸은 없지만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배의 바깥에서’을 읽으며 아홉 살의 아이의 선택은 전혀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니었다고 인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살기위해 누구라도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노우’는 결혼 생활의 권태기를 맞을 즈음에 읽으면 좋을 이야기이다.
살아보면 불 같은 사람도 좋지만 어두워서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늦게 들어오는 나를 위해 현관불을 켜두는 남자가 진짜라는 걸 느끼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 것을 실수하지 않고 깨달은 트리니티에게 박수를 보낸다.

11편의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그 것도 유색의 피부를 가진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야 대부분 같은 색의 피부를 갖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에 다른 피부색 사이에 섞인 유색의 여자들의 사는 세상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있고 생활 방식도 다르지만 비슷한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생활이 무료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뼈들의 연감’속 떠나는 엄마와 머무는 할머니를 보면 휠씬 선택이 쉬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치열하고 위험한 세상을 무사히 살아나가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본다.


🎁오드림 서포터즈 3기로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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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늑대가 사냥하는 방법
밤코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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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읽고 찔리지않을 어른이 몇이나 될까요?
저 역시 늑대가 등장하는 이 그림책을 보며 뜨끔했습니다.

그림책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손에 쥔 작은 네모”에 정신이 팔리면 늑대의 사냥감이 된다고요.

이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소리내 읽어주기에는 참 고약스럽습니다.
우리가 보통 보던 정형화된 글자 배열이 아닙니다.

유튜브 생방송의 댓글창같은 글과 빨간 모자와 할머니가 나눈 문자도 나옵니다.
엄마가 읽어줄때보다 아이가 자유롭게 읽으면 휠씬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밤코님 특유의 그림과 글이 잘 어울려 그림만으로도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손에 쥔 작은 네모”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앞 뒤 면지에 그려진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보며 스마트폰의 문제점을 실감하게 되네요.
그림책을 보며 최소한 스몸비족은 되지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책은 직설적인 충고를 건네지만 반발심이 일어나지 않은 그림책입니다.
아마도 주독자인 어린이도 뜨끔해져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할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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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
비벌리 엔젤 지음, 정영은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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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비벌리 엔젤은 심리치료사로 30년 넘게 임상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난 이력을 갖고 있으며 특히 분노와 정서적 학대, 여성,인간 관계 문제 등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고 한다.
사례자들과의 대화를 통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단순한 이론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장감과 사실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사람들은 신체적 학대를 당하는 이의 사정을 알게 되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따지고 도움을 주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쉽게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설사 안다고 해도 부부사이, 연인 사이에 그럴수도 있다고 넘겨버리기 십상이다.
정서적 학대는 피해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 지라도 개입할 수 없는 일이 돼 버린다.

모두 4장으로 된 저서의 1장에서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를 강조한다.
육체적 학대는 누구나 쉽게 정의할 수 있지만 정서적 학대는 때로는 사랑이나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도 쉽게 알아 차리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실제 내담자의 사례를 들어 우리가 지나칠 수 있는 정서적 학대의 유형을 알려주고 있다.
독자가 스스로 체크 해 볼 수 있는 체크 리스트가 있어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게 한다.

❌정서적 학대에는 언어적 폭력,지배,통제,고립,조롱,은밀한 정보를 이용한 협박 등이 포함된다. 정서적 학대는 피해자의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목표물로 삼아 공격하며, 물리적 학대의 전조증상이 되기도 한다.(p50)

2장에서는 학대를 당하고 있음이 확실해도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줄만한 말한 내용을 담고 있다.
3장에서는 관계를 끝내야 할 지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확실하게 끝내야 하는 신호들을 설명하고 있다.

*자녀들이 파트너에게 정서적.신체적.성적 학대를 받고 있는 경우
*정서적 학대가 자녀들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이 보이는 경우
*당신이 자녀들에게 정서적.신체적.성적 학대를 하고 있는 경우
*파트너가 당신을 신체적으로 학대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경우
*당신이 신체적 학대를 휘두르는 지경까지 간 경우
*파트너를 헤치거나 죽이는 상상을 하기 시작한 경우
*당신의 정신 상태에 심각한 의문이 드는 경우

또한 파트너 곁에 머물기로 결정했다면 실천해야 하는 내용들을 설명하며 늘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돌 볼 방법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4장에서는 파트너를 떠난 후에 해야 할 일들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쓸데없이 희망을 주거나 무작정 위로 하지 않고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가지않고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실천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 당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수없이 나는 혹시 가까운 가족에게 정서적 학대를 자행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의 시간을 가졌다.
가끔은 의도치않게 정서적 학대의 줄을 타는 언행은 했지만 다행이라면 옹심을 가지고 의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정서적 학대를 하지 않았다는 데 안심했다.
부지불식간에 인신공격을 하고 비판하고 내 의지대로 타인을 고치려했던 나를 반성한다.
내가 무심히 했던 어떤 행동들이 정서적 학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를 높이 사고 싶다.


🎁소미미디어 소미랑 2기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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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가위 안전가옥 쇼-트 10
범유진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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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쉽게 재미있다라고 말하기 망설여지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범유진 작가의 아홉수 가위 속 네 편의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 감히 재미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모두 4편의 이야기는 먼 우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더 암담하고 슬프다.

🚃1호선에서 빌런을 만났습니다.
K-장녀, 계약직,지방대를 나온 젊은 여자가 살아가는 세상은 녹록지 않다.
지랄 같은 직장 상사와 먼 출퇴근길,거지같은 가족까지 나라도 그녀에게 우주 씨앗을 전해주고 싶다.

🧚🏼‍♀️아주 작은 날갯짓을 너에게 줄게
등에 날개가 있는 쌍둥이 자매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졌고 날개를 숨기고 살아간다.
쌍둥이 동생에게 덮친 불행을 이겨내가는 두 자매의 연대가 눈물이 나도록 아프다.

✂️아홉수 가위
다니던 회사는 망하고 남자 친구는 배신을 한다.
살 희망이 없어진 여자는 방치된 할머니 집에서 죽을 결심을 하고 그 곳으로 떠난다.
어떤 경우는 사람보다 귀신이 더 다정할 수도 있다니 그 곳에서 귀신과의 우정(?)을 쌓아가며 동거가 시작된다.

👻어둑시니 이끄는 밤
부모 역할을 못하는 부모를 둔 아이는 형을 의지하고 산다.
어느 날 그 형이 살해당하고 현장에 있던 여섯 살 아이에게 범인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한다.
열 여섯 된 아이는 어둠을 마주 보며 어른이 되어간다.

130여 페이지의 작은 크기의 책은 그 크기보다 훨씬 더 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둑시니 이끄는 밤을 제외하고 모두 어리고 젊은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더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절대 쉽게 바뀌지 않을 세상이라 미안하고 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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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양조장집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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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하면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데릴사위를 들여서라도 가업으로 이어가는 오래된 노포다.
제163회 나오키상 후보작인 소설은 노포처럼 유서 깊은 간장 양조장에서 자란 어린 소녀 긴카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긴카가 양조장에 온 지 50년이 될 즈음 오래된 양조장 개보수 공사 중에 묻힌지 오래된 어린아이 유골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긴카는 유골을 보며 양조장에 전설처럼 내려오던 가문의 당주에게만 보인다는 좌부동자를 떠오르게 된다.

무명의 화가이지만 언제나 다정한 아빠와 예쁘고 어떤 요리도 만들어내는 엄마와 살던 긴카네는 어느날 존재도 모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업인 양조장을 이어가기 위해 아빠의 고향집으로 가게 된다.
에도 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있는 간장 양조장에는 할머니와 한 살 위인 고모가 살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움직여 남에 물건에 손을 대는 엄마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여전히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빠는 할머니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어느 날 아빠가 아닌 긴카의 눈에 좌부동자가 보이게 되고 집안은 걷잡을 수 없는 풍랑에 휩싸이게 되고 양조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소설은 1968년 긴카가 평화로운 오사카의 생활을 시작으로 2018년 안정된 양조장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긴카를 중심으로 한 50년의 세월은 많은 비밀과 그 비밀의 따른 결과로 꽤나 험난한 삶을 사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꽃처럼 예쁜 엄마는 사람들과 제대로 교류하지 못하고 도벽이 있는데다 현실감이 없는 사람이다.
긴카는 딸이지만 늘 그런 엄마를 지키고 엄마의 도벽때문에 왕따를 당하게 되지만 엄마의 비밀을 숨겨준다.
그리고 우연히 고모의 입을 통해 밝혀진 출생의 비밀은 온 집안을 흔들지만 긴카는 여전히 사랑으로 대하는 아빠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소설은 재미있다.
신파조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는 지난 시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소재들이 등장해 일본독자에게는 추억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이지만 늘 조마조마하며 엄마를 지켜야하는 긴카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 편으로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아프다.

핏줄을 엄격하게 따지며 가업으로 내려온 오래된 간장 양조장을 지켜나가는 이들은 핏줄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소설을 읽으며 진짜 가족이란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와 좋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집안의 중심인 할머니는 한 번도 긴카에게 할머니로 불리지않는다.
그러나 긴카의 마음 속에는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자리 잡고 그런 할머니 곁을 끝까지 지키고 양조장을 유지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가족의 정의를 다시 내려보게 된다.
가족이란 단순히 핏줄로 이어진 존재가 아닌 함께 의지하며 세상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양조장에 가면 한 편에선 대두를 삶아 누룩을 만들고 누룩방에 씨누룩을 넣은 뒤 간장 누룩을 만들고 러시아 사위는 가이모로 모로미를 휘저어주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긴카씨가 만든 간장 찐빵을 대접 받으며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경의의 표하고 대나무의 와삭와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건의 연속이지만 묵묵히 헤쳐나가는 여자들의 모습이 가슴에 와 닿는 소설이다.

🎁소미미디어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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