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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양조장집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일본하면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데릴사위를 들여서라도 가업으로 이어가는 오래된 노포다.
제163회 나오키상 후보작인 소설은 노포처럼 유서 깊은 간장 양조장에서 자란 어린 소녀 긴카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긴카가 양조장에 온 지 50년이 될 즈음 오래된 양조장 개보수 공사 중에 묻힌지 오래된 어린아이 유골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긴카는 유골을 보며 양조장에 전설처럼 내려오던 가문의 당주에게만 보인다는 좌부동자를 떠오르게 된다.
무명의 화가이지만 언제나 다정한 아빠와 예쁘고 어떤 요리도 만들어내는 엄마와 살던 긴카네는 어느날 존재도 모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업인 양조장을 이어가기 위해 아빠의 고향집으로 가게 된다.
에도 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있는 간장 양조장에는 할머니와 한 살 위인 고모가 살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움직여 남에 물건에 손을 대는 엄마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여전히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빠는 할머니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어느 날 아빠가 아닌 긴카의 눈에 좌부동자가 보이게 되고 집안은 걷잡을 수 없는 풍랑에 휩싸이게 되고 양조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소설은 1968년 긴카가 평화로운 오사카의 생활을 시작으로 2018년 안정된 양조장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긴카를 중심으로 한 50년의 세월은 많은 비밀과 그 비밀의 따른 결과로 꽤나 험난한 삶을 사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꽃처럼 예쁜 엄마는 사람들과 제대로 교류하지 못하고 도벽이 있는데다 현실감이 없는 사람이다.
긴카는 딸이지만 늘 그런 엄마를 지키고 엄마의 도벽때문에 왕따를 당하게 되지만 엄마의 비밀을 숨겨준다.
그리고 우연히 고모의 입을 통해 밝혀진 출생의 비밀은 온 집안을 흔들지만 긴카는 여전히 사랑으로 대하는 아빠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소설은 재미있다.
신파조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는 지난 시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소재들이 등장해 일본독자에게는 추억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이지만 늘 조마조마하며 엄마를 지켜야하는 긴카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 편으로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아프다.
핏줄을 엄격하게 따지며 가업으로 내려온 오래된 간장 양조장을 지켜나가는 이들은 핏줄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소설을 읽으며 진짜 가족이란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와 좋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집안의 중심인 할머니는 한 번도 긴카에게 할머니로 불리지않는다.
그러나 긴카의 마음 속에는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자리 잡고 그런 할머니 곁을 끝까지 지키고 양조장을 유지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가족의 정의를 다시 내려보게 된다.
가족이란 단순히 핏줄로 이어진 존재가 아닌 함께 의지하며 세상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양조장에 가면 한 편에선 대두를 삶아 누룩을 만들고 누룩방에 씨누룩을 넣은 뒤 간장 누룩을 만들고 러시아 사위는 가이모로 모로미를 휘저어주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긴카씨가 만든 간장 찐빵을 대접 받으며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경의의 표하고 대나무의 와삭와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건의 연속이지만 묵묵히 헤쳐나가는 여자들의 모습이 가슴에 와 닿는 소설이다.
🎁소미미디어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