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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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사람들의 무해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주란의 ‘수면 아래’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들은 삶은 치열하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고 그냥 살아간다.
나(해인)를 중심으로 느린 영화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는 악인도 없고 지나친 선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월요일 하루만 문을 닫는 해동중고에 다니는 나는 사십 분 가량 버스를 타고 출근해 “전화를 받고 들어온 물품들을 세척하고 전시된 물품들을 판다”(p12)
나의 일상은 해동중고와 해동중고에 오는 아이 환희와 우경,장미,유진,우재,성규를 만나고 이모 미용실에 해피를 보러가는 것이 전부다.

소설은 큰 사건도 없고 주인공의 일탈도 없다.
전 남편인 우경과도 친구처럼 지낸다.
그들의 결혼 생활이 베트남에서 아이를 잃고 끝났음을 알 수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선 한 마디 설명도 없다.

소설은 드라마의 장면을 이야기하듯 이어지고 이어진다.
한 마디로 심심하고 심심한 일상이 이어진다.
그러나 읽는내내 어떤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고 그것은 어떤 의도도 갖지않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때문이 아닌가 싶다.

치열하게 사는 삶이 지칠때 나(해인)의 이야기 속을 거닐다보면 세상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해롭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덮으며 이 마음을 다 적을 수 없어 안타깝다.
작가의 소설을 몇 권 더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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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김도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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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져가는 물건, 사람, 사건을 수집하는 사람,그리고 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지금은 프리랜서 글쟁이로 오만 가지 글을 쓰고 있다.

책 날개의 작가 소개글도 재밌다.
그의 유튜브 영화 채널 <무비건조>를 본 탓에 말솜씨,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식견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글까지 재미나게 쓰다니 스물 여덟명의 이야기를 읽었다는 느낌보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제목인 낯선 사람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익숙한 인물이 낯선 사람으로 소개됨을 염려하고 있지만 다행히 나는 소개된 스물 여덟명 대부분을 몰랐고 알고 있더라도 자세히는 모르고 있으니 맞춤한 제목이라 하겠다.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과 동년배로 고릴라를 연구했던 ‘다이앤 포시’의 이야기는 같은 시기에 영장류를 연구한 두 여성 중 한 명은 오랜 세월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또 다른 한 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나는 이 글을 읽기전까지 ‘다이앤 포시’라는 인물을 알지 못했다.

누구의 입에도 올리기 쉽지 않은 패션계의 볼드모트 ‘테리 리처드슨’에 대해 읽으며 실제 우리나라에도 유명인이 성범죄를 저질러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그의 과거의 업적까지 깡그리 무시되는 경우가 있으니 외국의 유명한 사진작가의 가십이 아닌 우리에게도 남겨진 고민이니 가볍게 읽고 지나칠 수 없었다.
저자가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미성년자 성폭행범이라고 확신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감흥을 느꼈다니 내가 우리나라 어느 시인의 시집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을 이해해 줄 것만 같다.

스물 여덟명이라는 인물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의 크기는 천차만별이지만 작가의 글 속의 그들은 모두 거기에서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인물들로 읽혀진다.
처음 읽은 저자의 글은 재미있다.
예를 들어 헤비메탈에 빠지는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

📚어렵쇼?그런데 그런게 좋아졌다. 전기 기타를 파괴하듯이 긁어대는 게 공사장 소음 같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 천사의 하프 소리처럼 영롱하게 들리기 시작했다.지구의 종말을 맞이한 다미선교회 신자들이 교회 바닥을 두드리듯이 때리는 드럼 소리는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베이스 소리는 좌심실 우심실의 흐름을 바꿨다.무엇보다도 보컬인 제임스 헷필드의 목소리가 좋았다.(p111)

책 속의 인물들은 몇 번의 검색으로 그들의 생은 물론 활동 모습까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나 역시 여러 곡의 음악을 검색해 들었고 세기의 모델이라는 스텔라 테넌트의 런웨이를 감상했다.
작가는 인물에 대한 사실과 함께 인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쓰고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느끼는 인물평을 독자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적었고 그 생각을 동조하느냐 마느냐는 독자의 몫일 뿐이다.

수록된 인물들은 이미 생을 마감했거나 한때의 영광을 위안 삼아살고 있거나 잊혀졌거나 여전히 왕성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살아왔던 궤적을 따라 걸으며 왜 무엇이 그들을 거기에 서 있게 했는지 생각하다보면 독자는 더 즐거운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각설하고 “김도훈”의 글을 재미있다.

🎁한겨레출판의 하니포터6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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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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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계의문학>신인상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작가의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린 <별일은 없고요?>는 근래에 읽은 소설 중 가장 마음을 울린 소설집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거의가 여자들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여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냥 화자가 여자일뿐 지금을 사는 보통의 사람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크고 작은 일을 겪고 때로는 엄마에게,어찌 알게 된 어른에게,친구에게 위로받고 공감하며 살아간다.
등장인물들이 경험한 일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읽다보니 어떤 일을 겪고 그 자리에 있는 지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엄마는 딸이 직장을 그만 두고 와도 타박하거나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함께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설명없이 찾아왔다 아무말없이 떠나기도 하고 아무말없이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모두의 일상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고 어느 누구도 탓하거나 닦달하지 않는다.
왜 떠나는 지 캐묻지도 않고 붙잡지도 않고 언제 돌아오냐고 묻지도 않는다.
돌아온 이에게는 잠깐 외출하고 돌아온 것처럼 맞이한다.

어떤 어른은 우연히 알게 된 이의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무조건없이 함께 한다.
할머니집에 머물고 있는 이를 위해 함께 먼 길을 걸어 두부를 사러가기도 하고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스르게 기다려준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평범하지만 비범하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와 무릇 어른이라면 어떠해야하는 지 생각하게 한다.

나는 책을 읽고 나면 덮고 바로 느낌을 적는데 이 소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떤 글을 써야 내 느낌을 그대로 적을 수 있을까 여러날을 고민했지만 마땅한 문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오윤 시인의 추천사가 가장 내 마음을 잘 들어내는 문장같아 빌려 써 본다.

📚 “이 무자비한 세상에 맞서 “무자비한 따뜻함”을 전하는 그의 소설에 또다시 큰 신세를 입었다.”


🎁 한겨레출판의 하니포터6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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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꼬리는 어디 있지? 맑은아이 20
유보배 지음, 주미영 그림 / 맑은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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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친구를 발견한 코기가
신나게 달려와 소리쳤어요.
“얘들아! 노올자!”

꼬리없는 강아지 코기와 동물들의 꼬리가 그려진 표지가 궁금증을 자극하네요.
꼬리를 잃어버린 코기가 제 꼬리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기일까요?

새 친구와 놀고 싶어 놀이터를 찾은 코기에게 꼬리가 없다는 이유로 동물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요.
풀이 죽은 코기는 가짜 꼬리를 붙여보기도 하지만 놀림감만 되죠.
그림책은 나와 다른 모습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입니다.

키가 큰 친구도 있고 작은 친구도 있고 뚱뚱한 친구도 있고 날씬한 친구도 있습니다.
눈이 큰 친구도, 눈이 작은 친구도, 피부색이 다른 친구도 있어요.
눈으로 볼 수 있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생각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친구입니다

그림책은 다름에서 오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과연 숲 속 친구들과는 다르게 모든 사람을 대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른이 돼서는 휠씬 많은 것을 따져가며 친구를 만나온 게 아닌 가하는 생각과 그 생각들을 표정이나 몸짓으로 은연 중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게 됩니다.

친구와 사이좋게 놀기를 강요하지 않은 그림책이라 좋습니다.
반복해서 읽으며 변화하는 코기를 만나게 될때 어떻게 친구를 대해야 할지 어린이 독자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덤으로 숲 속에 사는 친구 이름은 물론 동물들의 특징도 알 수 있어요.
작가님은 그림책의 면지도 허투루 쓰지 않았어요.
앞면지에는 동물 얼굴과 함께 윗부분에 꼬리를 그려 연결해 보는 수수께끼 놀이도 해 볼 수 있게 했어요.
꼬리가 없어도 코기가 숲 속 동물들과 친구가 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차별없이 친구가 되는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아이들이 이미 자라 신생 어린이출판사를 잘 모르는데 감사하게도 맑은물출판사에서 마음 따뜻한 도서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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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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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인 후지시로는 3년 동안 함께 산 약혼자인 야요이와 결혼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9년 전 헤어진 첫사랑 하루에게서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대학 시절 사진동아리에서 만난 후지시로와 하루는 함께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키워가다 동아리 선배와의 문제로 헤어지고 만다.
볼리비아의 유우니 사막의 천공의 거울,프라하의 거대한 시계,아이슬란드의 검은 모래사장 바다를 보고 보내는 하루의 편지는 첫사랑의 아련함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아무일없는 것처럼 결혼식을 준비하고 연인인 야요이와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낸다.

소설은 하루의 편지를 받은 4월에 시작해 그 다음에 3월에 일어나는 일로 끝을 맺는다.
우연히 날아온 첫사랑의 편지는 후지시로의 생활에 특별한 변화를 주지도 않고 결혼식 준비를 멈추지도 않는다.
소설은 후지시로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연인과 주변 인물들과 그리고 지금의 생활을 교차해서 담고 있다.
이야기는 큰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3년을 함께 지낸 연인과는 몇 십년을 산 부부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다 뜻밖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사랑은 감기와 비슷하다.
감기 바이러스는 어느새 몸속으로 침투하고, 알아챘을 때는 이미 열이 난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은 사라져간다.열이 났던 게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날이 온다.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이 그 순간이 찾아온다. (p58)

감기처럼 찾아온 사랑은 언제가는 감기가 낫듯 평온함을 찾게 되지만 우리는 그 평온함을 사랑이 식었다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서투른 첫사랑은 눈 앞에 그가 있어도 늘 불안하고 어찌할 줄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감기에 걸린 것처럼 아프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아닌 맑은 정신의 믿음과 편안함임을 이제를 알 것 같다.
만약 후지시로의 첫사랑이 최선을 다하다 자연스럽게 맞이한 이별이었다면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왜일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정을 연기할 수도 있었어요.그런데 그 무렵의 우리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언제까지고 이 사랑이 계속될 거라고 확신했어요.아무런 보증도 없는데.”(p180)

표지 그림과 제목을 보고 말랑말랑한 연애 소설을 기대하고 읽었지만 후지시로의 이야기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지금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특별한 어른들의 사랑이야기였다.
사랑은 상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소설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사랑을 미루지말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사랑은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는 것, 사랑은 우리를 기다려주지않는다.


🎁소미미디어 소미랑2기 활동 중 제공받는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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