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빛
강화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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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선물받았습니다.>

176센티미터에 50킬로그램의 지수는 서른두 살로 안정적인 직장은 물론 사랑하는 남자 친구도 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혼자 남은 엄마는 아버지가 계실 때 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고 경제적으로도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추석 연휴가 가까워지면서 몸의 이상을 느낀 지수는 고향인 안진으로 내려가 엄마와 명절을 보낸다.
은퇴 후 자연요리 연구회인 채수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엄마에게 중학교 시절 친구인 신아의 소식을 들은 지수는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던 지수는 열다섯 가을 갑자기 살이 찌고 키가 20센티미터 넘게 자라면서 평안하기만 한 일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맞지 않는 교복을 새로 맞췄고 부모는 거대해진 지수를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화를 낸다.
학교 친구들 역시 지수를 멀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은 해리아가 다가오고 둘은 같은 책을 함께 읽을 정도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해리아의 곁에는 조칠현 교회를 함께 다니는 신아가 늘 함께한다.

체육 수업으로 수영을 배우면서 해리아와 지수는 더욱 가까워지지만 어느 날 신아의 입을 통해 해리아가 절교를 통보하고 수영 시험이 있던 날 해리아는 큰 부상을 입는다.
사고 후 해리아는 학교를 그만두고 지수 역시 다른 지역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게 되면서 소식이 끊기게 된다.

멋진 외모를 유지하기 위한 지수는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으로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다이어트 약을 복용한 탓에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남자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섭식 장애를 앓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강화길 작가의 소설은 수많은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스릴러가 대부분이었다.
소설의 전반부는 사춘기를 지나는 여학생들의 은밀한 이야기인가 싶었고 지수가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병원을 전전할 때에는 대체의학이나 사이비 종교에 관한 이야기인가도 생각했다.

소설은 어디에 중심을 두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다.
지수가 겪는 고통은 고딕 소설의 유령만큼이나 두렵게 느껴지고 해리아를 찾아가는 길은 어떤 공포 소설보다 머리를 쭈뼛하게 한다.

“그래, 지수야. 이 모든 건 네가 스스로를 함부로 다루었기 때문이야. 네가 너를 망가뜨린 거란다.“

네가 네 몸에 죄를 지었어.
(p192)

지수의 부모는 때때로 싸우기도 했지만 영직동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들을 맡겼던 조칠현 교회에 지수를 보내지 않았고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딸을 위해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소설은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세상의 오직 하나뿐인 진리 바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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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우화소설 세트 - 전3권 - 연인 + 항아리 + 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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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는 동물이나 식물을 비롯 기타 사물이 인격화되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들의 행동에서 풍자와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등단 50년이 넘는 한국 서정시의 거장 ‘정호승’ 작가의 우화소설 3권이 비채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전남 화순 운주사 대웅전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의 물고기가 비어가 돼 세상을 경험하며 진짜 사랑을 깨닫게 되는 #연인 은 장편우화소설입니다.
항아리와 모닥불 같은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동도’에 얽힌 슬픈 이야기,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운 ‘상사화‘ 등 44편의 이야기가 담긴 #항아리 , 사랑 이야기가 가득한 #조약돌 에는 43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비어 이야기인 “연인”도 좋지만 언제든지 짬을 내 읽을 수 있는 “항아리”와 “조약돌”은 부담 없이 좋습니다.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와 각각 어울리는 색깔의 가름끈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간간히 등장하는 삽화는 이야기와 잘 어울려 이야기의 의미를 배가시킵니다.

이솝 우화만 알던 저에게 정호승 작가의 우화는 세상 모든 사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른 이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우화집은 곁에 두고 오래오래 보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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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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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정호승 우화소설 중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집 ‘조약돌‘ 에는 43편의 우화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작가는 살아있는 동식물은 물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긴 울림을 전합니다.

강가를 떠나는 게 꿈인 ‘조약돌’의 웃픈 사연을 읽고 나면 결혼을 한 기혼자라면 동의할 이야기 ’못자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빈 들판’이 애지중지 키운 소나무가 작은 새를 찾아 떠나는 모습이 장성해서 부모 곁을 떠나는 자식 같아 마음이 아려옵니다.

이번 우화집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어 읽다 보면 여러 형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을 바꾸면서 까지 다람쥐를 사랑한 ‘고슴도치의 첫사랑‘을 읽으며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깨닫음을 얻게 됩니다.
눈이 하나뿐인 ‘비목어‘가 전해 주는 ‘비목동행(比目同行)‘은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으로 남습니다.

하늘나라에 사는 눈이 우리나라에 와서 ‘녹지 않는 눈사람‘이 된 사연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눈도 휴전선에 막혀 봄이 와도 녹지 못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게 서럽기만 합니다.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이야기는 영욱이의 ‘썩지 않는 고무신‘으로 짧지만 5.18민주항쟁을 다룬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슬픕니다.

“소외되고 작고 모난 것들이 주인공이 되는 세계”의 이야기는 욕심 많은 우리 인간을 돌아보게 합니다.
‘해어견’의 충성스러움을 이용하려만 드는 인간의 마음이 나에게는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되고 작은 꽃게처럼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려 ’작은 꽃게의 슬픔’과 같은 행동을 자처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하드커버의 우화소설을 늘 곁에 두고 처음부터 꼭꼭 읽어도 좋고 아무 페이지나 두서없이 열어 읽어도 좋습니다.
우화 속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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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 버베나 위픽
단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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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작고 말라서, 겨울 외투를 입었다기보다는 옷 더미에 몸을 파묻고 걸어 다닌다는 인상을 주는 녀석’(p15)이 바로 소목이다.
어울리던 친구들과 아지트 삼으려 들어간 폐가에서 소목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노인의 비명에 친구들은 다 도망가고 소목은 벗어놓은 외투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친다.
그렇다고 집으로 갈 수는 없고 도시의 유명한 집안의 딸인 나울을 찾아가 자신이 본 장면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들은 나울은 학교 시험을 대체할 에세이를 쓸 예정이라면서 함께 폐가에 가 줄 것을 부탁한다.

소설은 시대 배경을 언제라고 정확하게 규정짓지 않고 다만 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기억학을 배울 만큼 기억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쉽게 잊지만 어떤 이들은 어떤 죽음도 잊지 못하게 되는 ”특이체질‘이 되기도 한다.

소목은 어린 시절 형의 죽음 뒤 자신만 기억하는 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믿지 않은 경험이 있기에 폐가에서 살인을 목격한 뒤 특이체질로 변한 자신의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소설은 소목이 경험한 형의 일과 엄마의 죽음 뒤 모든 것을 잊고 소목만을 기억하는 나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망각과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기억은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별 것 아닌 일처럼 기억되기도 하고 또 다른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기도 한다.
이기적으로 보이던 나울의 진심을 알게 된 순간 소설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변하고 풋풋한 소년소녀의 연애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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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둑 성장기 위픽
함윤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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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둑질
그것은 남의 몸속에서 이루어졌다.

신박한 제목의 소설의 첫 문장이다.
태어나면서 엄마의 뱃속에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뼛조각을 훔쳐 나온 ‘사미’는 그것이 자신의 첫 도둑질임을 안다.

엄마는 뼛조각을 옷장 가장 아래쪽 서랍에 보관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머리가 자란 내가 당신에게 모질게 혹은 비겁하게 굴려고 할 때마다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아……뼈가 아프다.”(p10)
이런 말을 할 때면 사미는 엄마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사미는 신이 주신 재능이 훔치는 것이라 믿으며 “극도의 의연함과 차분함 그리고 평화 속에서” (p18)물건들을 훔친다.
양손에 숨길 만한 사물이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훔칠 수 있는 재능을 갖은 사미는 ’필요해서‘, ’원해서‘ 가 아닌 한계를 넓히기 위해 훔친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초콜릿을 훔치다 난생처음 ’성준’에게 들키고 그 후 무언가를 훔치려 하는 순간 매번 제지당한다.
성준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사미 앞에 소중히 간직한 엄마의 의안을 보여주며 자신이 사미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 소설을 썼을까 소설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사미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물건을 훔치기 시작하고 성준의 형 성구는 엄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사미의 재능을 빌린다.
사미가 필요 없는 물건을 훔칠 때마다 특별히 착한 사람이 아닌 나도 그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만약 엄마가 뼛조각 이야기를 하지 않고 결핍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면 사미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가 성구를 성준이 살펴야 할 형으로 대우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혹시 사미가 진짜 훔치고 싶은 건 엄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엄마인 나는 소설 속에서 못난 엄마를 찾아내 들여다보며 나를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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