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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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이 없었을때도 새로 이사한 집 어딘가에 전단지가 있어 어렵지 않게 그 동네 중국집 전화번호를 알게 되고 식사 시간이 되면 의례히 짜장면에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이사하던 중간이라 신문지를 깔고 불편하게 먹는 음식이었지만 새로운 집에서 먹는 첫끼는 행복했었다.

언제나 쉽게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중국집의 주방을 들여다 보기는 쉽지 않다.
배달이 아닌 직접 가서 먹을때조차 주방안을 살펴볼 기회는 드물다.
요리 프로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커다란 웍과 센불, 커다랗고 무거운 중식도로 대표되는 중국집 주방 안에서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는 싑게 접할 수 없는 직업의 세계와 함께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전통과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80년대 중반 명동 최고의 청요리집 건담의 현재는 이름마저 잊혀져가는 동네 중국집이 돼 버린다.
그 곳에는 고희를 훌쩍 넘기고도 아직 주방을 지키는 두위광 요리사가 있다.
괴팍한 성격과 제자를 두지않은 그의 건강에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결국은 미슐랭 별을 받고도 식당은 폐업하고 만다.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분자요리를 공부한 본경과 건담의 튀김과 후식을 담당했던 나희, 그리고 매니저인 고창모만이 두위광 곁을 지킨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전담이라는 식당을 열게 되고 건담 폐업 후 종업원이었던 이들은 건담의 이름을 차용해 식당을 개업하고 그들은 중화냉면의 원조를 가리기 위한 시합을 시작한다.

음식이 나오는 영화를 볼때면 입에 군침이 흐르곤 한다.
음식 관련 소설 역시 음식에 대한 설명이 나올때면 젓가락을 들고 달려들고 싶어지게 한다.

📚짜장면은 향으로 먹고, 색으로 먹고, 맛으로 먹고, 후루룩 소리맛에 깜장을 묻히고 그 깜장 묻은 상대를 보는 재미로 먹는다. 양파향과 춘장향이 오르는 짜장면을 촥촥 비벼서 후루룩, 소리가 나게 한 입 먹는다. 면에 착 달라붙은 고기와 채소가 후루룩, 목구멍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잘게 갈린 고기에서 빠져나온 풍부한 기름맛, 느끼한 게 아니라 따뜻하고 고소한 기름맛이 가슴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p147)

아는 맛이 무섭다고 어찌 이 대목을 읽으며 입맛을 다시지 않을수 있겠는가?

고집불통 싸부 두위광이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손님에게 진심인지 느껴져 저절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두위광의 모습은 음식을 한 그릇이라도 더 팔려는 장사치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맛있을 때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다.

📚”식기 전이 들어요.뜨거우면 삼선요리라고, 따뜻할 때 얼른 먹어야 맛나요. 맛은 냄새와 온기에요. 뜨거워야 향이 나고, 향이 나야 맛있어요. 다 식어서 영혼이 빠져나간 음식을 뭔 맛으로 먹어요?”(p236)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번 선택을 해야하고 그것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일이라면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어떤 한 가지 일에 대가를 이뤘지만 젊은이들과 함께 변화를 해나가는 두위광이야 말로 진짜 어른이자 진정한 싸부가 아닌가 싶다.

마트에 가기전에 배를 든든히 채우지 않으면 장보기에 집중할 수 없고 이것저것 필요없는 것을 카트에 담게 된다.
건담 싸부를 읽기전에도 마트에 가기 전처럼 든든히 배를 채우지 않는다면 꼬르륵 거리를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던지 읽던 책을 던지고 가까운 중국집에 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을 먹어야만 할 것이다.


🥢“천러얼츠!”

*출판사에서 선물 받아 있는 책입니다.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내용과 음식이야기에 흠뻑 빠져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책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겁고 맛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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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트, 묘지지기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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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비올레트,묘지지기”는 한 여자의 인생 이야기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지독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부모를 모르는 비올레트는 위탁가정을 전전하다 필리프 투생과 결혼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을 어느 연인처럼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지만 시부모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이가 생기게 되고 건널목지기라는 직업을 얻게 된다.
레오닌이 태어나지만 여전히 필리프는 가정은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돌고 그러던 중 비올레트의 전부였던 레오닌을 사고로 잃게 되면서 그들의 인생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딸을 잃은 슬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던 비올레트는 유골없는 딸의 무덤을 찾게 되고 그 곳에서 사샤를 만나게 된다.
치료사이지 원예가이자 묘지지기인 사샤는 그녀를 돕고 묘지지기 일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이 저편으로 건너가는 걸 막’던 건널목지기였던 비올레트는 “사람들이 저편으로 건너가는 걸 돕는” 묘지지기가 된다.
묘지에서 평안함을 얻은 비올레트와는 달리 어느 날 필리프는 아무말없이 사라져버린다.

이야기는 묘지지기인 비올레트의 이야기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무덤에 함께 묻히고 싶은 이렌 파욜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비밀을 알기위해 찾아온 이렌의 아들 쥘리엥과 비올레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묘비명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기구한 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사랑이야기로 그리고 세상의 전부인 아이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가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죽음 가장 가까이에 살면서도 죽음을 이겨낸 여자를 보며 인생의 굽이굽이에 만났던 ‘그녀를 살게 해 주었던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쁜 남편이었지만 처음 시작은 비올레트를 구원해 준 남자였고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인 것만으로 충분한 필리프를 이해하고 그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내면을 보며 그도 누군가에게 구원받아야 했고 기회가 주어졌지만 스스로 박차고 나간 것이라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혼자인 비올레트를 다시 살게 해 준 사샤 역시 큰 아픔을 겪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면서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누어주고 살아야할 이유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느껴져 가슴 뭉클하게 해 준다.
묘지지기로 이별에 누구보다 익숙할 것 같은 그가 매일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은 사랑이라는 게 어떤 모습으로도 지상에 내려올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 잘 지내.비올레트, 건강 돌보고,사랑한다.(p531)

94개의 묘비명을 읽어나가는 것만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남아서 인생을 살아갈 이에게 큰 힘을 준다.
브랑시오엉살롱 묘지에 가보면 안에는 여름빛의 옷을 겉에는 겨울빛의 옷을 입고 자신의 묘지를 둘러보고 텃밭을 가꾸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는 비올레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편안해져 오직 사랑으로만 채워진 그녀를 만나 떠난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 오직 한 사람이 사라졌고,
이제 세상에 아무도 없다.

🪦 우리가 너를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단 하루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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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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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거짓말처럼 날씨가 서늘해 졌다.
다행히 여름이 다 가기전에 여름과 어울리는 제목의 소설집을 읽었다.
작가의 전작인 ‘칵테일,러브,좀비’를 재미있게 읽은터라 큰 망설임없이 고른 책이다.

소설집 속의 8편의 이야기는 시대도 다르고 인물의 나이, 성격도 다 다르지만 모두 외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못하고 혼자 외롭게 지내던 아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할로우 키즈’는 초단편이지만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고기와 석류’는 고독사로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해 부패해 가기보다는 차라리 먹히기는 바라는 옥주씨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한편 건사해야 할 석류를 위해 마지막 힘을 내는 그를 응원하게 된다.

‘릴리의 손’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겨진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새해엔 쿠스쿠스’는 아이들에게 했던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자매가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 박수를 보낸다.

‘가장 작은 신’은 암울하고 죽고 싶기까지한 어느 날 날 이해하고 믿어주는 진짜 친구가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은 살만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우쳐 준다.
‘나쁜 꿈과 함께’는 악몽을 가져오는 존재마저도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순간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은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보내야 할때도 있는 법 고양이 집사님들이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는 사랑을 위해서 스스로 살인마가 돼 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문목하 작가님의 ‘돌이킬수 있는’ 이 생각난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돌이킬수 있는’을 읽었을때처럼 마음이 저릿하다.

나는 책을 고를 때 가장 우선 순위는 작가, 그다음 출판사다.
거기다 책의 외형이 맘에 들면 고르기가 휠씬 수월해진다.
이 책의 표지는 예쁘다.
소설을 읽기전엔 석류와 말랑말랑한 젤리만 보였는데 다 읽고 난 후엔 더 많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눈에 들어왔다.
로봇손과 블루를 생각나게 하는 파도,고양이,곰인형 등이 보인다.

소설속 인물들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그대로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해 한발한발 세상에 나아가기도 한다.
사라져버린 아이와 어른이지만 진정한 어른이 아닌 두 자매의 이야기는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있어 두렵기까지 했다.

괴담집이라는 문구에 피가 낭자하고 무시무시한 공포물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뒷표지의 글을 다시 읽는다.

📚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총천연색 마음으로 쓰인
한여름 밤의 젤리소다 맛 괴담집”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읽고 새 책이 나오면 또 냉큼 읽어보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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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 - 생의 마지막 순간, 영혼에 새겨진 가장 찬란한 사랑 이야기 서사원 일본 소설 1
하세가와 카오리 지음, 김진환 옮김 / 서사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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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임사 체험을 했다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후세계에 대한 그 어떤 증거도 대지는 못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때문인지 고대로부터 종교를 비롯 여러 문학작품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도 사후세계는 물론 임종을 맞은 이가 만나게 되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전해진다.
먼저 죽음을 맞은 가족과의 재회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저승으로 이끄는 저승사자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예전의 저승사자라고 하면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전설의 고향 속 남자의 모습이라면 요즘 드라마 속의 저승사자는 멋진 남자배우가 배역을 맡아 열연한 탓인지 멋지고 젊은 남자의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 속의 사신은 붉은 눈동자의 영국 출신의 남자로 등장한다.
자신이 저승으로 안내하는 이에게 얻은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 조각을 받아 그 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는 고양이 모습의 사역마이자 파트너인 찰스와 함께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한다.

고독사한 노인, 왕따를 당하다 자살한 학생. 사고로 목숨을 읽은 청년,사고사를 당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남자와 앞이 보이지 않은 소녀의 급작스러운 병사까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망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다 혼을 저승으로 이끈다.

읽는 내내 몇 년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속 저승사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젊고 멋진 남자,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신(저승사자)이 되기 전 인간일 때 큰 과오를 저지른 비밀이 있다는 것과 인간의 마음은 잃어버렸지만 죽은이를 위해 마음을 쓰는 모습까지 여러 가지로 비슷하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고 난 뒤면 항상 느끼는 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열심히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주위 사람을 다하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게 진짜 잘 사는 것이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또 한 번하게 된다.
그나저나 사신의 과거가 조금 뜬금없기는 하지만 인터넷 소설 대상 작품인 만큼 술술 잘 익히는 소설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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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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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책 ‘과거로의여행’을 재밌게 읽고 고른 책이다.
역시 재미있다.
여기서 재미는 즐거움이나 유쾌함과는 거리가 뭔 재미다.
읽은 즐거움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먼저 읽은 책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 책은 인간의 집착과 광기에 관한 이야기다.

한 가지 일에 집착해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집착은 보통의 집착을 넘어 광기가 되어 스스로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다.

‘체스이야기’는 게슈타포에 끌려가 구금됐던 B박사가 체스에 얽히게 된 사연은 인간이 자유를 빼앗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얼마만큼의 고통과 공포가 한 인간을 잠식할 수 있는 지 보여준다.

‘낯선 여인의 편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동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 느끼게 해 준다.
아침 드라마급 막장이다.
1922년 발표된 작품이라니 그 시대의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작가는 1942년 2월22일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자살한다.
체스 이야기는 그가 죽기 일년 전인 1941년에 완성된 이야기다.
마지막까지 자유 의지를 말하는 작가가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느꼈을 공포와 불안이 얼마나 컸을 지 체스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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