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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 ㅣ 보림문학선 5
채인선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깨비 이야기 한 두 개쯤은 알고 있다.
도깨비들은 혹부리 영감의 혹을 노래주머니로 알고 도깨비 방망이와 바꾸기도 하고, 빌린 돈을 날마다 갚으러 오기도 한다.
또한 호박범벅을 좋아해서 범벅장수를 찾아오기도 하고, 더 이상 범벅장사를 하지 않는 농부를 찾아가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거기다 밤새도록 놀고 싶어 하고 씨름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이야기 속 도깨비는 늘 사람들 속에 섞이고 싶어 한다.
어쩜 다른 귀신들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쓰던 생활도구인 빗자루나 방앗공이, 도리깨 등이 그 용도가 다 해 버려진 뒤 둔갑하여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깨비는 험상궂게 생기고 장난을 좋아하지만 절대로 착한 사람에게는 해를 입히지도 않을뿐더러 어수룩해서 사람들에게 잘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첩첩산 아래 산골 집에서 백 년 동안 잠자다 막 깨어난 도깨비라면?
<산골 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이런 궁금증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어느 날 마을 뒤 첩첩산에서 내려온 비렁뱅이 스님의 말을 듣고 산골 집을 찾아간 온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일곱 마리나 되는 도깨비를 깨우고 만다.
부엌 부뚜막 도깨비 따끈따끈, 빗자루 도깨비 쓱싹쓱싹, 마루 밑 도깨비 엉금엉금, 감나무에 매달린 대롱대롱, 창호지문에 붙어사는 중얼중얼, 솜이불의 푹신푹신, 다락 도깨비 달그락달그락.......
이름만큼이나 엉뚱하고 천진한 도깨비들은 따끈따끈 덕분에 고슬고슬 맛있는 밥을 먹기도 하고, 푹신한 것을 좋아하는 푹신푹신 때문에 새털이불을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그런데 이 도깨비들이 다 자란 도깨비들이 아닌지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헝겊쪼가리들이 도깨비감투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아랫마을에 내려가서는 할아버지네 김장을 밤새도록 해주기도 하고, 온이와 눈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쓱싹쓱싹이 산귀신에 잡혀가고,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 위험한 모험을 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함께한 일곱 도깨비들은 모든 위험을 잘 헤쳐 나간다.
보통 도깨비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은 어린 시절을 건너뛴 어른 도깨비들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탐욕스럽기도 하고, 자기마음대로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사람들을 놀라게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도깨비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악스러운 도깨비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 가까운 천진난만한 도깨비들이다.
자신의 숨은 재주를 금방 알아채지 못한 따끈따끈의 모습도, 푹신푹신한 새털이불을 가질 욕심에 앞뒤 재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도 영락없는 우리 아이들 모습이다.
또 도깨비 방망이 때문에 위험에 뛰어 들면서도 한편으론 오지 않을 걸하고 후회하고, 남아있는 친구들 역시 친구걱정에 맘 편하지 못한 것도 순수하기만 한 아이들 모습 그대로이다.
거기다 온이 또한 어른들과 다르게 누구에게나 맘을 여는 열린 마음과 “방망이가 없어도 같이 놀아 줄게.”라고 말하여 친구 사이에는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약주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옛날이야기 속에는 믿거나 말거나 직접 경험한 도깨비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그때는 정말 아버지가 도깨비를 만났고, 비오는 날엔 도깨비불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탐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더 이상 실제로 존재하는 도깨비는 믿지도 않고, 그렇게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어른을 만나지도 못한다.
어른들은 점점 아이들에게서 정말 아이다운 모습을 빼앗아가고 있고, 순수한 꿈을 꿀 줄 아는 아이들의 능력을 빼앗아가고 있다.
서둘러 어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말썽부리지 않는 아이들을 원하고 있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도깨비도 우리 곁에 머무르지 않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산골 집 도깨비들처럼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의 천국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건지.......
휘청휘청 동글동글 자유롭게 뛰어노는 귀여운 도깨비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