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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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장기하의 첫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제목부터 엄청나다. 릿터와 일간 이슬아 인터뷰로 출간 소식을 접하고나서 생각했다. ‘이 책 분명히 재미있다.‘ 과거 장기하와 얼굴들 음악을 즐겨들었던 시기가 있었기에 그가 어떤 글을 썼을지 더 궁금했다. 가사와 산문은 조금 다르니까 더더욱. 게다가 10년 동안 해온 밴드를 접고 쉬는 동안 글을 쓰기로 했다니 그 자체만으로 예사롭지 않잖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내 촉이 맞았다. 이 책, 재미있다. 일단 글이 꾸밈없이 솔직하다. ‘싸구려 커피‘로 뜨게 된 이야기부터 완벽한 라면을 끓였던 날, 인공지능의 추천음악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다양한 일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빠르게 뜬 것은 운이 좋았다고. 이렇게도 말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글로 만나는 그의 삶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보인다. 그는 명확한 주관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인듯하다. 정말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별 거인 삶이고 그래서 감탄스러웠다.



단정하고 깔끔하지만 특유의 리듬감이 있는 문장. 소소하지만 솔직한 생각의 흐름. 책을 읽고 나서 생각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 이 정도면 이 책 추천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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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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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있었지만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던 환경 문제가 유독 쓰리게 다가오는 2020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근시일내에 다같이 망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호프 자런은 이번 책에서 지구의 환경 변화와 그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개인적인 기억과 함께 풀어놓는다.



지구는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너지와 자원의 낭비, 기후 변화 등의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책을 읽을수록 나는 회의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미 이토록 많은 자원이 고갈된 상황에서, 이미 지구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 과연 의미가 있나?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한가? 그러나 저자는 거듭 말한다.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그러니 머나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우리를 위해서 행동하자고.



나에게는 지구의 환경을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권고가 아닌 의무로 느껴진다.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고, 지금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야한다. ‘더 많이(more)’가 아닌 ‘더 낫게(better)’를 지향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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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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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개인의 삶. 발견되지 않을지라도 분명히 나름대로 반짝거리고 있는 하나하나의 삶. 문제가 생기면 아무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읽고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돕고 용서하는 사회에 대해 한참 생각해보았다.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사회학자인 저자가 학문적 방법론이 아닌 가만히 보고 듣는 방식으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어떠한 편견도 권위의식도 없이 개개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저자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구조화하여 설명할 수 없는, 부스러기에 가까운 조각조각난 이야기들이 이토록 마음에 와닿는 것은 결국 인간은 전부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많은 사람과 함께한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설명되어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앞만 보고 달릴 것이 강제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중 누구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훗날 아쉽지 않은 삶이었다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역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인과 기쁨을 나누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것만은 알겠다. 문득 이런 다짐도 해본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일이 두렵고 마음을 전하는 일이 어렵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 연결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단순히 정리될 수 없는,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개개인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소중히해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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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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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소설이나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창작물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요즘 말처럼 마음이 웅장해지고 싶다면 마루야마 겐지의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가 도움이 되겠다. 저자가 말하는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가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뿌듯함에 그렇지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마 가지 않아 경악하고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이 정도까지 했는데 소설가 안 되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 싶어질 것이다. 혹여 소설가(창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라면 저자의 확신있는 문장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는 조건이 있다. ‘문학 따위는 유치해서 얘깃거리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술가 유형의 성격 파탄자다. ‘폭탄같은 성격을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작품을 완성‘(27p) 할 수 있는 사람들. 여기까지만 읽어도 본인이 과연 그런 사람일지 의문이 들겠지만 더 읽어보자. 사실 이 책은 작법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소설가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루에 몇 시간만 소설을 쓸 것,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고독을 견딜 것, 오직 집필로만 생계를 유지할 것 등등. 요약하자면 작품만을 생각하고 작품으로 말하고 다시금 작품에 몰두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했는데도 잘 안풀린다면? 그런 흔들림까지도 의연하게 헤쳐나가야 비로소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처음 이 책을 다 읽었을 때는 황당했다. 아니 정말 이렇게 할 수가 있나? 그리고 곧이어 휘몰아치는 다음 생각. 이렇게까지 했는데 소설가 안 되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 저자의 말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결국 끝까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원점이다. ‘소설가가 소설 집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 최소한의 상식이 이상적이거나 금욕적으로 보인다면, 당신이 진짜 노리는 것은 소설이 아닌 것에 있으므로 펜을 들기 전에 이렇게 자문하십시오.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하고.‘(9p) 결국 답은 전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소설이든 그 무엇이든 시작하기에 앞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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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 과도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지적 여정
나탈리 크납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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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내내 곁에 두고 있었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불확실한 날들이란 과도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날들이다. 책 속에는 탄생과 죽음, 상실과 애도, 생명력과 자연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사사로움에서 자연의 자연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자연에서 개인으로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많은 부분을 오래도록 필사하며 읽었다. 대출 기간을 연장하고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한 달 중 대부분의 시간에 이 책은 책상 위에 그냥 놓여있었다. 이 책은 아주 가끔 나에게 어떤 깨달음 - 불확실한 날들에게 지지 말라는, 받아들이라는, 변화의 때를 기다리라는 - 던지면서 그냥 놓여있었다. 책 표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펼쳐들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지만(정곡을 찔릴 거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한 장 한 장을 공들여 찬찬히 보았다.(그리고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아 계속 필사.)



삶은 속도전이 아니다.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급함과 불안으로 몸과 마음이 꽉 막힌 것 같았던 지난달, 불확실한 날들이라는 말조차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끝내는 기어이 와닿고야 말았던 책.



애도와 죽음, 무한한 순간에 대한 챕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시간의 수평적 흐름과 수직적 흐름에 관한 문장을 읽고 나는 다시 순간을 긍정하게 됐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이 나의 것이고 나의 시간을 경험하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며 결정적으로 나는 나의 시간을 어떻게 느낄지 선택할 수 있다. 연휴가 끝난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이미 매 순간이 기적이니까.



깊은 사유와 지혜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책이다. 각자의 과도기를 겪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시대적 과도기임이 확실한 작금의 시기를 어떻게 지나야 할지 막막할 때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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