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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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져 더욱 등골이 서늘했던 소설 <베이비 팜>. 최상류층을 위한 비밀 대리모 시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로 계층, 성별, 인종 문제가 첨예하게 녹아있다. 여성의 신체와 태아의 생명을 사고 파는 일의 윤리성은 물론, 대리모 시설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들과 빈부격차 및 이민자 문제까지 제대로 짚어낸 작품이다. 저자 본인이 필리핀 이민자이자 성공한 엘리트 여성으로서 직접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에 영감을 받아 쓴 첫 소설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소설 속에서는 네 여성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무척 생동감 있다. 젊은 필리핀 미혼모 여성 제인, 제인의 사촌이자 베테랑 신생아 보모인 아테, 명문대를 졸업한 백인 여성이지만 강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레이건, 중국인 이민자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베이비 팜‘을 확장시킬 야망에 부푼 메이까지. 네 명 모두 여성이다보니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차이를 보다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무서운 점은 이들 모두 자신의 환경 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각기 시작도 끝도 다른 곳이지만 모두 최선을 다해서.



이 이야기의 수많은 실타래 중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돈이다. 이층 침대로 가득 찬 이민 여성 합숙소와 입주 유모를 고용하는 최고급 대저택 사이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누군가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대리모를 자처하고 누군가는 모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대리모를 고용한다. 왜, 어째서? ‘미국에서는 부자가 아니라면 튼튼하거나 젊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230p)’는 문장이 아리게 다가온다. 결코 소설 뿐만이 아닌 이 이야기는 무자비하고 냉정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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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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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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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고 또렷한 문장이 돋보이는 책이다.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아 읽을 때마다 자세를 바로하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의 독서 에세이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부제도 강렬하다.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 책은 저자가 분노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읽고 쓴 독서 기록이다.



책 속에는 스물 한 명의 작가들이 등장한다. 미국 중부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로 대부분 여성이다. 애니 프루, 에이드리언 리치, 조라 닐 허스턴, 토니 모리슨, 옥타비아 버틀러 등등. 모두 여성, 흑인, 동성애자, 이주민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개된 작가들 중에서는 생경한 작가들도 많아서 눈을 크게 뜨고 읽었다. 독서 에세이를 읽는 가장 큰 기쁨은 아무래도 멋진 작가와 멋진 책들을 새롭게 발견하는데 있을테다. 특히 백인 남성의 저작 위주의 독서에서 벗어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나로서는 책을 읽는 내내 금광을 캐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짜릿했던 것은 저자의 분노서린, 치열하고도 솔직한 사유였다. 분노와 우울이라는 두 단어 없이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이 사회를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의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읽기와 쓰기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권력‘에 대항하는 일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저자의 문장은 거침없고, 통쾌하고, 짜릿하다. 이를테면 ‘여자를 과일로 만들거나 고기로 만들어 식탁 위에 올리지 말고, 여자의 말을 먹어보길. 기존의 언어가 전복될 것이다.‘(202P) 라는 문장! 차별과 혐오에 짓눌려 분노하는 이들이라면 꼭 저자의 문장을 만나보기를. 또, 저자가 소개하는 스물 한 명의 멋진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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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의 조건 - 관심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한 사람들의 법칙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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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의 시대다. 관심이 필수 자원이 된 시대, 개인도 조직도 사회도 관심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고 ‘관종‘이라는 말을 책 제목에서 볼 줄은 몰랐지.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의 신간 <관종의 조건>은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 관심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사회 차원에서 관심 자원을 어떻게 조절하고 배분할 수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익히 잘 알려진 사회적 현상과 일화들을 ‘관심’이라는 테마로 묶어낸 것이 흥미롭다. 어려운 부분이 전혀 없어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2020년 최근의 사례들도 풍부하게 들어가있어 공감의 여지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관심 자원이 어떻게 흐르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니까 인플루언서가 범람하고 하나의 직업으로는 부족한 n잡러가 속출하는 시대에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다만 관심이라는 단어가 첨예하지 않아서인지 두루뭉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트렌드 흐름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으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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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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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는 배울 점이 정말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부러운 것은 과거와 미래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할 줄 아는 능력이다. 어린이들이 하루종일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들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로지 현재만 있는 것 같다. 진정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어린이들은 고민 상담도 멋지게 해준다. 고백하자면, 그동안 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리석은 질문들을 자주 하곤했다. (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잘 하는 일을 해야 할까? 어린이: 고민할 시간에 둘 다 해!)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책 편집자를 거쳐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그동안 어린이들을 만나며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적은 에세이다. 어린이를 훈육의 대상이 아닌 어른과 대등한 존재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독서교실에서 생긴 어린이들과의 일화들이 풍부하게 실려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걸어가는 어린이를 만난 저자가 어린이에게 도움을 주어도 되는지 정중하게 물어본 뒤 우산을 씌워준 일화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른은 어린이를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어린이의 품위에 대한 글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 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린이를 존중해주는 마음이라니. 어른에게 정중한 대접을 받은 어린이는 높은 확률로 훌륭한 어른이 될 테다.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유년 시절의 모습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고는 ‘나도 어린이였던 때가 있었으니까 어린이들의 세계 쯤이야 쉽게 알 수 있다‘며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어른이 예전에 어린이였다고 해서, 또 단순히 몸을 낮춰 눈높이를 맞춘다고해서 어린이의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른에게는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인 어린이들을 기다려주고, 헤아려주고, 이해해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책을 읽고 나니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혹시 어린이들과 만날 일이 생기면 꼭 존댓말을 쓰고 정중하게 대해주어야지. 어른이니 다 안다고 으스대지 말고.

+ <부지런한 사랑>과 같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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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일 - 동물권 에세이
박소영 지음 / 무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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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가? 여기 우리를 도와줄 책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이의, 그 말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제목은 <살리는 일>. 10년차 기자이자 5년차 ‘캣맘‘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가 직접 겪은 일들을 풀어낸 동물권 에세이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내가 몰랐던 세계를 마주하는 일이 당혹스러웠다. 열다섯 군데가 넘는 길고양이 급식소를 관리하고, 이사도 여행도 포기한 채 수시로 위기에 놓인 고양이들을 구조하는 저자의 모습이 유별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나갈수록 그는 앞서 걷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면 저자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고통과 아픔을 감수하고서도 ‘비인간 동물‘을 살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동물에 대한 관심은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연결된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에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반대하고, 장애인의 기본권에 대해 고민하는 일까지. ‘내 안보다 내 밖을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106p)에게 세상은 더 이상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시선을 자꾸 밖으로, 더 멀리 보내야 하는 이유다.



쓰는 일이 살리는 일보다 우선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가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수놓은 책이기에 읽을수록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책과 영화 이야기는 ‘예술 역시 누군가를 살리는 일‘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다시, 기억해두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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