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대학생이 되면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회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교회가 진저리치게 싫었지만 부모님의 강제하에 어쩔 수 없이 다녀야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힘도, 감정적으로 설득할 능력도 없었던 나는 그저 그렇게 후일을 기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작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교회" 아니 "신"을 버리지 못했다. 타의긴 해도 십 년 이상 교회를 다니다보니 교회를 떠난 삶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신의 실체를 좀더 명확히 아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 선교 단체에 소속되었지만, 역시나 그 삶 역시 순탄치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단체를 쉬이 떠날 수 없었던 건 그 곳에서 그들이 강조하던 "인격적인 신"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 경험이 삶 전체를 바꾸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3년, 내가 그 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다. 내 이성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 그로 인한 마찰들, 다른 리더들의 헌신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성의한 나의 참여도, 또 그로 인한 마찰들... 힘들었었다. 하지만 그때만큼 즐거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가 대학엘 다니게 되어도 역시 똑같은 선택을 하리라 대답할 수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곳으로 돌아가겠다고 묻는다면 "Never"라고 대답하겠다.
지금의 난 과거에 내가 신앙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창조론을 믿지 않으며,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내가 믿는 신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으며, 더더군다나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는 사실도 믿지 않는다. 더 나아가 성경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허구성을 띤 문학 텍스트이며, 기록된 예수의 삶의 상당 부분도 단군신화처럼 신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한국 교회의 많은 근본주의자와 복음주의자들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스무살 이후 단 한 번도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정체성이라고까지 확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내 삶의 목표는 기독교인답게 사는 것, 그리고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다. 한국 교회 복음주의자들이 믿는 거의 대부분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난 그 해답을 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서 찾았다.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 연구>와 존 쉘비 스퐁의 <성서를 해방시켜라>와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등의 책에서 말이다.
이들 중 누구도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이들 중 누구도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다고 하지 않는다.
이들 중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 중 누구도 불신자는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 중 누구도 동성애자를 경멸하지 않는다. 그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장 기독교인이고 싶은 나는, 근본주의나 복음주의권의 교회엘 다니다가 신이 없다고 말하게 된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근본주의나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이성을 마비시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얘기들을 믿을 수 없어 떠나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은 신을 버린 게 아니라 교회를 버린 것일 뿐이다.
그들에게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아직 당신의 탐구심이 매말라버리지 않았다면, 아직 당신이 신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위의 책들을 읽어보라고.
더 이상 비이성적인 이야기를 믿지 않아도, 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