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나서는 출퇴근 방법을 버스로 바꿨다. 지하철은, 한 번만 갈아타는 코스는 멀리 돌아가고, 비교적 가까운 코스는 두 번을 갈아타야 한다. 반면 버스는 집 앞에서 회사 앞까지 2개의 노선이 있고 25분 정도 걸리니까 좀 기다리더라도 이 편이 낫겠다 싶었다.
전에 살던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는 “이제 버스로도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습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라는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Hi Seoul My Bus”라고, 시장님 보시기에 좋은 국제화용 문구도 적혀 있었더랬다.
물론 믿지는 않았다. 믿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그래도 너무하잖아? 보통 정류장에 도착해 내가 탈 버스(노선 2개 가운데 하나)가 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5~20분. 조금 빠른 날은 12~13분. 버스가 올 때마다 긴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고, 혹시 뒤쪽에 서지 않나 앞뒤로 뛰어다녀야 한다. (물론 나는 그렇게까지 하느니 다음 버스를 타고 만다. 귀찮으니까.) 거기다 만원 버스. 운이 좋아 앞에 앉은 사람이 일어서지 않는 한 거의 회사 앞까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꼭 쥔 채 팔을 부르르 떤다. 그러니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책을 읽는다는 건 불감생심이다. 지난 주부터 책 한 권 읽지 못한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왜들 버스 정류장에 서서 침을 뱉는 걸까. 오늘 아침엔 교복을 입은 여자애들 둘이 나란히 서서 번갈아가며 침을 뱉는데, 걔들 주위가 온통 하얬다. 말은 어찌나 험하게 하는지. 지들끼리 얘기하는데 욕이 말끝마다 따라붙는다. 물론 그 애들만이 아니다. 그 옆의 남학생들도 마찬가지. 지하철에서 보이는 중고생들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거기도 일종의 폐쇄 공간이라 나름 주의를 하는 걸까. 아니면 역시 동네의 문제인 걸까.
학원 강사와 과외를 하는 친구 말에 의하면 강남이나 일산 같은 좀 사는 동네에 가면 아이들이 반듯하고 예의 바르고 착하단다. 반면 말하자면 서민 동네의 아이들은 험하고 예의나 배려 같은 걸 잘 모른단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잘 사는 아이들이 착하기까지 하다고, 아니, 어렵게 사는 아이들은 착하거나 바르게 살 수 있는 방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친구가 한탄했더랬다. 이것도 일종의 양극화다.
어쨌거나, 나는 다시 지하철을 이용하는 걸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책 읽을 환경이 전혀 안 되고, 온통 침으로 얼룩진 보도 블록을 걷는 것도, 15분씩 밖에서 바람 맞으며 서 있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