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내내 별로 책이랑 안 친하게 지내서, 3월에는 비교적 쉽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걸로 고르자 했다. 쌓아놓은 책 중에 눈에 띈 것은 <소년의 눈물>.

 소년의 눈물

 과연 이 책은 쉽고 재미있고 귀여우면서도 한없이 가벼웁지만은 않다. 비교적 분량이 짧아 제 값 주고 샀으면 본전 생각이 나서 입맛을 다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디아스포라 기행>에 사은품으로 따라 온 것이니 대만족.
 키득키득 웃으며 금세 읽어버리고 나니 서경식의 다음 책을 손에 잡지 않을 수 없다.

 

 디아스포라 기행

 이 책에서 보이는 서경식은 소년의 눈물에서와는 또 다르다.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독서 이력을 소개하는 것과 디아스포라로서의 고민을 말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한 결과일 터. 
 조국과 모국과 고국이 일치하지 않고, 사는 곳에서는 핏줄이 다르고, 같은 핏줄과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데서 오는 심각한 분열,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은 확실히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그의 눈을 따라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잘 사는데,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60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나이에,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 아닌가. 물론 그만한 감수성이 아니라면 이런 글을 쓰지도 못했겠지만. 난 삐딱한 독자인가보다.   

하여튼 하루만에 이 책을 끝내고 나니, 다음으로 눈이 가는 것은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구입한지 벌써 한참인데 이래저래 미루고만 있었다. 디아스포라 기행에 어제의 세계가 언급된 것이 결정적 원인.


 어제의 세계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세계 대전 이전의 유럽에 관한 보고서랄까. 츠바이크의 진술 방식 때문일까, 뭐랄까, 초반에는 상당히 아련한 느낌이 든다. 지나간 청춘, 지나간 좋았던 세계에 대한 회상.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놀란 점 두 가지는, 실은 정말 중요한 건 아니지만, 첫째, 브라질에서 이 책을 집필하면서 참고자료가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해서 이 두꺼운 책을 써냈다는 것인데, 츠바이크의 말에 의하면 기억이란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을 한번 걸러낸 것이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기억력은 정말 굉장하달 수 밖에.
 두번째, 이 많은 내용 중에 '아내'라는 언급은 딱 두 번, 사소하게만 등장한다. 계속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 사람 도대체 언제 결혼을 한 거야, 아주 늦게까지 혼자 살았나, 하고 있었는데 문득 '아내'라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세계'에 관한 회고라고는 하나 자신의 이야기도 제법 구체적으로 등장하는데 사랑해서 함께 산 사람은 어쩜 그리 쏙 빼먹을 수 있는지. 쳇. (왜 쳇,이나 흥,이라고 하고 싶은 걸까. -_-;)
 츠바이크가 말한 유럽의 정신, 삶, 분위기에 쏙 빠져 있다가, 후반에 히틀러로 인해 '망가진 유럽'을 보고 있으니 자연 다음에 읽을 책이 떠오른다. 팩스턴의 <파시즘>.


 파시즘

 어제부터 시작. 앞부분에서도 이미, 츠바이크가 말한 어제의 세계와 파시즘의 등장을 비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말이야, 3월에는 쉽고 재미있고 가벼운 책을 읽겠다고 시작한건데, 어째서 이렇게 이어지는 거냐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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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3-1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의 세계는 저도 읽었어요. 전 좀 삐뚤어진 심성으로 책을 읽어서 그런지, 뭐랄까, 유럽의 교양 있고 돈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고급 교육을 받은 도련님은 생각하는 것도 이렇게 교양이 철철 넘치는구나 하는.. 츠바이크에 대한 잘못된 편견만 남았었는데. 크크.

urblue 2006-03-1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좀 눈에 거슬리죠. 저도 그랬습니다. ㅎㅎ 그치만 재미도 있잖아요?

sudan 2006-03-1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블루님도 그랬을 줄이야. ^^ 그치만,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blowup 2006-03-1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의 눈물을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말이죠. 에세이 관련 상을 받았다는데, 문장이 묘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요. 번역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플레져 2006-03-1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년의 눈물이 군데군데 거슬러서 재미나게 읽지는 못했어요.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좀 있건만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죠.

urblue 2006-03-1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제가 원체 문장이나 이런 데 둔감한 편이라 그런 건 잘 못 느꼈군요. 다만 이렇게 예민한 감수성이라니, 했을 뿐이죠. ^^; 문장이라면 역시 번역의 문제가 아닐까요.

플레져님, 님은 어떤 부분이 거슬리셨을까요? 소년의 눈물이나 디아스포라나, 제 기준으로 보면 별 넷 정도입니다. 이래저래 에세이는 익숙하지가 않아요.

바람구두님, 그러니까요. 부인이랑 동반자살까지 했는데 (여긴 두 번째 부인이긴 하지만) 어째서 언급이 안되는거냐구요.

urblue 2006-03-1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해도 되죠. 그러니까 '쳇'이라는 거지.

로드무비 2006-03-1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한편으로, '아내'의 입장에서 글을 읽기 시작하셨군요.ㅎㅎㅎ

urblue 2006-03-1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아내의 입장이라니, 너무 웃겨요.

urblue 2006-03-14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근데 왜 얘기가 일루 흐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