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인가?
국민 정체성의 일상적 표현인 '우리 나라 사람'은 과연 뭘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실체인가? 그것은 남한 인구 전부의 공통적 이익을 발견할 수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허구적 인식이다. 그러한 허구가 '우리'라고 하는 내면화된 집단적 상징에 의해 가려지고, 사람들은 실제로 관념적인 '우리'를 통하여 자기 이익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우리' 혹은 '국민'과 무매개적으로 동일시된다. 그것은 따라서 매우 이데올로기적 개념이다. 물론 남한에서만 통용되는 화폐가 있고 남한의 국가가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세금, 징병, 여권 발급과 법 집행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은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 동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라는 개념은 주변부 혹은 반주변부의 불평등한 체제하에서 혜택을 받는 계층이 중심부와 이해관계를 같이할 가능성, 동일 국적자 혹은 동일 민족적 주체 간의 비동질성의 현실(즉 '같은' 국민이라도 '지옥과 천당'의 차이를 안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예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권력과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강제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항상 소수의 특권적 이익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이거나 아니면 다수의 자의적 판단과 횡포를 정당화하는 도구다. '우리 국민' 문화 속에서 기만당한 다수는 소수에 저항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박탈당하거나, 혹은 다수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의 권리와 존엄성을 짓밟아버리게 된다.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를 연이어 읽고 있다. 요즘 같은 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이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속보'라며 뜨고 있는, 진달래와 무궁화를 뿌리는 웃고 있는 얼굴들과 병상에 누운 초췌한 얼굴이 실린 사진, 각종 미담 퍼뜨리기 내지 홍보 · 격려 차원의 글들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할 말이 없다.
김동춘 교수가 자신의 책 <전쟁과 사회>를 50만명에게 읽히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던데, <전쟁과 사회>나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같은 책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방법은 없을까.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는 올해 6월쯤인가 구입했는데, 2004년 2월 초판 1쇄다. 한 1,000부는 팔렸으려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