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니 보일 하면 떠오르는 건 무조건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 스포팅>이다. 두 영화에서 보여준 재기 발랄함과 시니컬한 유머가 그를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인질>, <비치> 등의 후속작들은 생뚱맞다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인질> 이후의 작품들은 보지 않았으므로 ‘느낌’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 어쨌거나 처음 두 편의 인상이 워낙 강렬하다는 말이다.
한달 전쯤 극장에서 <밀리언즈 Millions>의 예고편을 보았다. 푸르디 푸른 하늘과 귀여운 두 꼬마가 인상적이었는데, 게다가 이것이 저 ‘대니 보일’의 신작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개봉하면 무조건 볼 영화 1순위로 꼽아두었다.
주인공은 엄청 귀엽게 생긴 7살 꼬마 데미안(알렉스 에텔). 사실 이 녀석,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래의 아이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공놀이에 열중할 때, 성인(聖人)들을 줄줄이 읊어대거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데미안의 아지트를 부수며 커다란 돈가방이 날아들고, 데미안은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는다. 보는 사람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Are you poor?”라고 물으며 도와 줄 가난한 사람을 찾는다. 동네의 몰몬 교도 집에 가방 가득 돈을 넣어주고, 노숙자들을 피자 가게로 몰고 가 배불리 먹여주고, 잔돈을 요구하는 커다란 자선 쓰레기통에 뭉칫돈을 집어 넣는다. 그렇지만 단순히 마음 착한 꼬마라고 보기엔 영 이상하다.
데미안의 형 안소니(루이스 맥거본)도 데미안과 막상막하의 엉뚱한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다. 슬픈 표정으로 ‘엄마가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먹을 걸 공짜로 얻거나 잘못을 덮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며 실제로 쉽게 써 먹는다. “거짓말은 아니잖아.” 그렇지, 거짓말은 아니지. 그런데 다른 애들도 그러냐? 게다가 이재(理財)에 엄청나게 밝다. 하늘에서 떨어진 돈으로 친구들을 보디가드로 고용하고, 부동산에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그가 9살이라 걸 감안하면 부동산 투자 계획이 성공할 리 없다.), 파운드를 유로가 아닌 달러로 환전하는 기막힌 감각을 선보인다.
하늘에서 떨어진 돈은 강도들이 현금 수송 열차에서 탈취한 것으로 밝혀진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돈을 찾기 위해 이들 앞에 나타나고, 한술 더 떠서 파운드화는 며칠 뒤면 휴지 조각으로 변한다. 경찰은 거액을 환전하는 사람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사건은 점점 버라이어티 해지지만 꼬마들이 주인공임을 생각한다면, 험악하게 생긴 열차 강도조차 별 짓을 못할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해봐야 <나 홀로 집에> 수준 아니겠어. 그런데, 이 영화, 방향을 엉뚱하게 잡는다. 어차피 초반에도 현실감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판타지가 되어 버린다. 하긴 뭐 그렇게가 아니라면 해결이 안 될 것도 같다. 용두사미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킹덤 오브 헤븐 보다 재밌다.)
내내 이게 대니 보일의 영화가 맞나 생각했다.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유쾌한 판타지인 것도 그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요소요소에 박혀 있는 재치와 발랄한 상상력은 여전하다. 어쩌면 누구처럼, 가볍고 명랑 쾌활한 가족 영화를 하나쯤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헐리우드 식의 ‘따뜻한’ 가족 영화는 안 나오지만 말이다.
팁 하나. 맑고 깨끗하고 파아란 영국의 하늘이 나온다. 영국은 늘 흐리고 우중충하다는 인상이 확 바뀐다.
팁 둘. 700대 1의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서 발탁되었다는 데미안 역의 알렉스 에텔은 실제로는 11살이다. 그런데 너무 앙증맞다. 얼굴 가득한 주근깨와 영국식 발음마저도 귀여워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