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 ‘KBS 프리미어’란 문구에 이 영화 <하와이, 오슬로>를 보게 되었다. 6편의 미개봉작을 TV와 극장(단성사)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일종의 작은 영화제. 신선한 기획이라고 생각만 했지, 정작 보고 싶었던 <신부와 편견>도 <머시니스트>도 놓쳐버렸다. 마지막 상영작인 <하와이, 오슬로>를 보게 되어 다행.
노르웨이 영화를 언제 본 적이 있었던가. (오슬로라니, 어째 박노자 교수만 생각난다. -_-;)
영화는 교통사고 장면에서 시작한다. 파란 셔츠를 입고 거리를 달리고 달리던 남자가 구급차에 치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피범벅이 된 사내가 죽는 모습을 지켜본다. 시간은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모이게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가끔 예지몽을 꾸는 비다는 레온이 구급차에 치이는 장면을 꿈에서 보고, 어떻게든 사고를 막아보려 한다. 레온을 찾아 하루종일 거리를 누비면서 여러 사람과 만나고 그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레온은 당황하면 무작정 달리는 버릇이 있다. 레온의 25번째 생일, 어릴 적 결혼을 약속했던 오사가 찾아오기로 한 날이다. 오사가 오지 않을까 불안하고 정작 오사를 만나면 당황할까 또 불안하다.
무장강도죄로 교도소에 갇혀 있던 레온의 형 트리그베는 그간의 착실한 수감 생활로 동생의 생일에 외출 허가를 받는다. 그러나 트리그베의 목적은 탈출. 그는 하와이를 꿈꾼다. 동생과 와이키키 해변에서 편히 살고 싶다.
프로데와 밀라는 비고가 운전하는 구급차 안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기쁨도 잠시, 아이가 희귀병에 걸려 사나흘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개인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 어마어마한 수술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애태우고 분노하는 프로데 앞에 뜻밖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를 방황하는 형제 미켈과 마그네. 창가에 기대어 있던 아버지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다가 현기증이 나서 떨어져 죽었다. 그들은 자책하고, 반항한다. 그들 앞에 나타난 신문 배달 소녀 티나는 천사 같다.
자살을 기도했다가 비고에 의해 구조된 보비, 레온을 만나기 위해 오슬로로 찾아온 오사 등 모든 인물들이 각기 만나고 이런 저런 관계를 맺고 헤어진다.
영화는 그 모든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여러 개의 이야기가 동시 다발로 진행되지만 산만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사람들간의 관계 만으로 영화가 진행이 되는데도 딱히 지루하지 않다. 광고, 뮤직비디오로 명성을 떨쳤다는 에리크 포페 감독의 연출력은 믿을 만해 보인다.
트리그베는 하와이를 꿈꾸지만 레온은 오사가 기다리고 있는 까페 하와이에만 가고 싶다. <하와이, 오슬로>라는 제목은 트리그베가 그리는 미지의 하와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슬로라는 도시,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의 공간에서 따 온 것이다. 행복은 손을 뻗치면, 혹은 몇 걸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바로 그 곳에 있다. 이 영화는 오슬로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언제 다른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기억해? 나 없는 넌 별 없는 하늘이고, 왕국 없는 공주이고, 줄 없는 기타라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었어. 너 없는 내가 그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