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을 하면서도 인권이라는 말이 신물이 나도록 싫어질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라는 인권운동가의 거짓말을 믿고 연세대학교에 들어간 한총련 여학생들은 전경의 성적 노리개가 되고도 모자라 온 세상으로부터 빨갱이라고 매도당하면서 법정에 서 있다.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지존파가 사형선고를 받을 때는 가만히 있던 기자들이 인간의 존엄을 금과옥조로 삼는 인권운동가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고약한 질문을 던져 댄다.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이스라엘의 인권탄압에는 돌처럼 입 다물고 있는 미국은 이라크의 인권탄압에 융단폭격으로써 제재를 가하는 인권의 수호신이 되고, 부자 나라 인도네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동티모르 문제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우리 김영삼 대통령도 미얀마의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점잖게 한마디하고 미국에서 무슨 인권상인가를 받았다. 이럴 때 나는 정말 밥맛 떨어지게 인권이라는 말이 싫어진다.

인권이란 누구나 인간으로서 태어난 이상 가지게 되는 빼앗길 수 없는 권리라고 설명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고 인권운동가도) 입만 열면 천부인권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권이라는 것은 전혀 하늘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신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랜 역사 속에서 인권은 언제나 사실상 특권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권의 기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의 관념에 익숙하지 않았던 중세사회 속에서는 당연이 인권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될 수 없었다. 15~16세기 특유의 경제발전과 그에 따르는 정치상황의 변화 속에서 봉건적 특권계급의 압박에 시달려 온 민중과 신흥 시민계급들은 자유를 주장하고 평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커다란 역사의 진보였다.

봉건세력을 타도한 근대 시민혁명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민계급은 혁명 후에 이 자유평등을 법규범으로 확립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시민계급의 이익을 대변한 시민권일 수밖에 없었다. 즉 그것은 재산소유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 계약의 자유 등을 중심으로 한 자유권과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형식적인 평등(이른바 법 앞의 평등)을 내용으로 한 인권이었다.

농노나 도시빈민들은 그 때까지 그들을 결박하고 있던 봉건적 제도나 인습으로부터 해방되기는 했지만 그 해방은 단지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산업노동자로의 해방에 지나지 않았다. 재산이 없는 그들에게는 선거권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시민권이란 엄밀하게 보자면 보편적인 인권이라기보다는 시민계급의 특권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현대세계에서 보편적 인권은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큰 흐름으로 볼 때 이 보편적 인권은 여전히 그대 시민혁명 직후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합법화시키고 신성화시킨 시민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조건 즉 여러 생산관계 또는 한 생산관계 내에서의 계급간 긴장의 변화에 따라 인권의 내용은 변해 왔다. 인권의 역사가 다시 한번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형성된 거대한 산업노동자들의 눈물겨운 계급투쟁의 결과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사회권)라는 인권의 새로운 범주가 생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권리는 19세기 초반에 유럽을 휩쓴 사회주의사상과 1871년의 파리코뮨을 거쳐 서서히 현대 자본주의국가들의 복지이념으로 채택되어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복지이념이라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는 격화하는 계급투쟁을 체제내화시키면서 최대이윤을 확보함으로써 살아남으려는 자본주의의 생존전략이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사회권이라는 인권은 끈질기게도 지배계급에 의하여 단지 나라가 부유해지면서 점진적으로 실현되어 가야 할 목표 같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현실적으로는 부유한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살아가는 빈민, 노동자, 여성, 장애인들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되어 있다. 인권보장의 모범국이라는 서유럽 선진국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국내 노동자에 대한 몸서리쳐지는 원생적 착취와 제3세계 나라들에 대한 대규모 자원수탈이라는 과정을 거쳐 그들의 번영을 쌓아 올렸다는 사실을 (그들은 까마득히 잊었겠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장된다.

우리는 세계시민이다.

이런 아름다운 말들을 듣고 제발 환상을 갖지 말자. 이 말은 마치 인간이 경제적 강자이거나 약자이거나에 관계없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자유롭고 평등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속임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유로울 수도 평등할 수도 없다. 경제적으로 어떤 계급이 주도권을 가지고 여타 계급을 지배하고 있는 한은 말이다. 그러기에 계급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인권이 구현되는 세상으로의 초월이나 변혁을 꿈꾸지도 않고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주인인 통일조국에의 소망을 갖지 않고서 어떻게 보편적으로 인권을 구현시키기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권은 특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몹시 우울해질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인권이라는 말에 내포된 거짓말이 가끔 신물나게 싫어질 때가 없는 사람은 제대로 된 인권운동가가 아니다. 그러나 결국 인권이라는 말이 아니면 우리를 진정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들어 줄 수가 없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 또한 제대로 된 인권운동가가 아니다.

 

서준식, <대중불교> 1996년 12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5-02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5-05-0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엣....사실 블루님 글인줄 알고 무릎을 치면서....^^;;; 저 책 꽤나 오래 제 보관함에서 못 나오고 있네요. 누군가 선물해준다고 하길래 기둘린 탓인가...음.

urblue 2005-05-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설마~ ^^;
저도 빌려 읽고 있는 중인데요, 이 책은 사 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람돌이 2005-05-0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히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 사봐야 될 책이 또 한권 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