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세계 거장 판화 대전>을 보러 갔다. 전시회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는데, 나오면서 영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건 서울 올림픽 관련 작품들 때문이었다. 올림픽 전에 우리나라에서 세계의 거장 26명에게 서울에 관한 자료를 주고 서울 올림픽에 관한 작품을 부탁했단다. 그 중 몇 점이 이번 전시회에 포함되어 있다. 꽹과리를 형상화한 작품도 있고, 우리나라의 자연(제목이 물, 불, 땅 이었나)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 서울시와 정부는 빈민촌을 대거 철거했다고 들었다. 보기 싫은 것, 내놓기 부끄러운 것은 모조리 뒤로 감춰놓는 것으로 해결을 대신하면서, 전쟁의 상처를 딛고 빠르게 성장한 대도시로서의 서울의 모습만 강조했을 것이다. 군부독재, 광주 학살, 경제적 불평등 따위는 전혀 얘기거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작가들에게도 그런 자료는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올림픽 정신이니 한국의 전통이니 하는 주제로 제작된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게 다 뭐냐 싶은 생각에 좀 기운이 빠져버렸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 <제국의 지배자들>을 읽으며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호주의 토착민에 관한 얘기다. 혹시 호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버금가는 인종차별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호주에 처음으로 영국인들이 발을 디뎠을 때, 그 곳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토착민은 약 75만명이었다고 한다. (호주 정부는 25만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그 다음해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15만 이하였다. 식민지를 유지하면서 영국 정부는 미흡하지만 토착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런 정책들은 호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오히려 유명무실해지거나 폐지되었다. 호주 정부는 토착민을 말살하기 위해 토착민의 아이들을 부모들에게서 빼앗아 수용소에 가두었다. 그 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백인 '주인'들을 위한 하인이나 하녀로 키워졌다. 이것이, 19세기가 아니라 20세기에 벌어진 일이다.
오페라 하우스와 각종 문화, 체육 시설이 즐비한 호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토착민들이 설 곳은 아무데도 없다. 호주 정부는 몇 명의 특출한 흑인 운동선수와 원주민 문화를 내세우며 조화와 화합을 말하지만, 실상은 토착민을 가두고 억압하면서, 아예 눈에 띄지 않게 감춰버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유치하고 치뤄내는 과정에서도 원주민 사회는 철저하게 가려졌다. 현재에도 토착민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가지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백인 주민들은 단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토착민들의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다.
시드니올림픽 유치 당시 원주민 운동가들이 올림픽 정신의 허구성을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전혀 들리지 못했다. 어디서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약하다. 화려한 겉모습, 커다란 목청에만 주목하는 올림픽을 치뤄냈다는 사실이, 과연 우리가 자랑할 만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