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으면 그때그때 정리해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우다보니 지난 주에 읽은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각주를 뒷편에 몰아놓아 보는데 심히 불편하고 책에 손때가 잔뜩 묻어버렸지만, 꽤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올라간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찬다.
미국, 영국 등 현재의 선진국들은 자유무역을 부르짖지만, 불과 100년 전, 그들이 아직 개발도상국이었던 시절, 철저한 보호주의와 정부지원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음을 조목조목 보여준다. 또한 현재 선진국들이 갖추고 있는 각종 경제 및 사회 제도들이 경제 성장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경제 발전에 따른 결과물임을 지적한다. 따라서 현재의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과 ‘올바른’ 제도를 권고하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
스스로 성장론자임을 밝히고 있는 저자는, 모두가 잘 살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보호주의와 올바르지 못한 제도를 당분간 참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발도상국들이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결국 선진국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의문 몇 가지.
1. 선진국들이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이 ‘사다리 걷어차기’라면, 즉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의미인데, 후발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선진국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2. 현재의 세계 경제 정책은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는데, 더더군다나 후진국의 경제 발전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3.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현재 선진국 15~16개 국과 약 20여 개발도상국들이다. 그러나 세계에는 그 외에도 150여 국가가 더 존재한다. 그 모든 국가들이 사다리를 올라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이런 내 의문과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타이타닉호’와 같다. 눈 앞에 거대한 빙산이 보이는데도 엔진을 멈출 생각은커녕 더욱 빨리 달려서 파멸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주장하는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구가 몇 개 있어도 모자란다. 전 세계의 모든 가정이 차를 한 대씩 가지게 되면 지구에 매장된 석유는 불과 수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하고, 모든 인류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사람들만큼 에너지를 소모하기 위해서는 5개의 지구가 필요하단다.
환경적인 문제 뿐 아니라 경제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경제 성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것, 풍요로움이 소비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와서의 일이고, 그것은 식민주의-제국주의-세계화로 연결된 ‘착취’의 메커니즘을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는 주장이다.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저자의 말처럼 더 늦기 전에 엔진을 멈출 수 있을까. 저자는 그 문제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으로 돌린다.
나의 몫. 내가 할 일. 풍요로움과 잘 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