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교류전 <새로운 과거>를 보고 오다.
발칸 지역은, 최근 읽은 <전쟁이 끝난 후>를 통해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궁금함에 다녀오긴 했는데, 여전히 낯설다. 작품만 봐서는 뭘 의미하는지 짐작하기도 힘들어서 설명이 필요하겠다 생각했다. 잠시 둘러보고 있는데 안내인이 설명을 한다길래 따라다녔는데, 열심히 설명해 준 그 젊은 여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나만큼이나 발칸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했고, 겨우 한두시간 공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품에 대해서도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제 1 전시실

제 2 전시실
제 1 전시실을 들어가면, 흰 란제리 차림의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커다란 화면이 제일 먼저 관객을 맞는다. 뭔가 제대로 보기도 전에 놀란다. 여자는 세르비아&몬테니그로 출신의 밀리카 토미취라는 작가 본인이다. 64개국어로 <나는 밀리카 토미취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의 몸에 나 있는 무수한 상처와 핏자국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의식하기 이전부터 만들어진 혹은 생겨난 근원적인 상처를 의미한다고 한다. 발칸 지역의 분쟁의 역사가 개인의 삶과 정신에 남겨놓은 피폐함일까.

벨그레이드는 기억한다
밀리카 토미취의 다른 작품. 1945년 5월 소비에트 병사와 미국 병사들 간에 이루어진 역사적 만남을 기리는 청동상 사이에 빠르티잔 복장을 한 작가 자신이 서 있다. 45년 당시에 파시즘에 대항해 한 목소리를 냈던 '만남'을 기념하는 작품에 작가가 개입함으로써 '대립'을 보여준다고 한다.
토미취의 인상적인 다른 작품은 작가 자신이 벨그레이드의 한 거리에서 목을 매단 일련의 사진들이다. 그녀가 실제로 목을 맸는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누구도 그녀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단다. 섬뜩하다.

세르비아&몬테니그로에서 열린 비엔날레에 출품한 코소보 출신 알버르트 헤타의 사진 작업. 이 건물은 예전에 세르비아 대사관으로 쓰였던 건물인데, 작가는 이 건물에 코소보 국기를 내걸었다. 그러나 세르비아 정당과 그리스 정교회 측은 세르비아를 대표하던 건물에 코소보의 국기가 걸린 것을 참지 못하고 작품을 훼손했다고 한다.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의 분쟁은 여전히 진행중인가보다.

혁명의 재발명
크로아티아 출신 이고르 그루비취의 작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혼합한 재미있는 발상. 이 작품 앞에 주크 박스가 있었는데 혁명을 소재로 한 Rock의 명곡들을 관객이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룹 슈카르트가 전쟁미망인들이 만든 편모협회와 협업한 <양파와 함께 한 10년>은 세르비아의 부엌에서 쓰이던 자수 타월을 활용하여, 편모협회의 회원들이 직접 도안하고 수를 놓아 만든 작품들의 모음이다. 각 자수의 제목에 재미있거나 뜨끔하거나 한 것들이 많았는데 적어놓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 하나. 램프에서 기도하듯 맞잡은 손이 나오는 타월의 제목은 <나는 나의 꿈을 팔았다. 그건 사실이다. 겨우 새로운 후추를 사기 위해서>이다.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볼 것으로 예상했으나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어쩌고 하다 보니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5시부터 전시회의 부대행사로 진행하는 <발칸 영화 상상하기>를 보러 가기 위해 전시장을 그냥 나와야했다.
영화 상영은 매주 토요일인데, 29일이 마지막이었다. 상영작은 아톰 에고얀 감독의 <아라라트> 터키의 아르메니안 학살에 관한 영화로 엄밀히 따지면 발칸 지역의 작품은 아니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어 함께 상영한다고 관계자가 설명했다. 거기까지면 좋았을텐데, "주제가 무겁고 영화가 지루해서 재미없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은 왜 하는건지. 본인이 지루했던게지. 그치만 나도 친구도 꽤나 몰입해서 재미있게 봤다.
좀 더 일찍 이 행사를 기억해내서, 토요일마다 영화를 보러 갔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 역시 사람은 부지런하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