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2월, <전쟁과 사회>라는 책의 집필차 대구 근처의 경산 코발트 광산을 방문해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골이 쌓여 있는 현장을 직접 답사한 적이 있다. 물이 꽤 깊은 입구를 지나 들어간 동굴 끝자락에 큰 돌무덤 하나가 어슴푸레하게 나타났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돌무덤이 아니라 해골 무덤이었다. 50년 동안 방치돼 있던 유골들을 직접 확인하고 또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본 그 심정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50년 8월 초순 굴비처럼 엮은 인간 짐짝을 실은 수십 대, 아니 수백 대의 트럭이 쉴새없이 이 폐광 언덕을 올라왔을 것이고, 부역자로 낙인찍혀 끌려온 젊은이들이 ─ 그 중에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도 있었고 부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 피울음을 토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 쓰던 말 중에 "골로 갔다"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 쓰인 말인지도 모른 채 그냥 "너 죽었다"라는 의미로 별 생각없이 쓰곤 했는데, 경산의 현장을 보고는 이 말이 한국전 당시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된 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골', 즉 골짜기로 끌려가서 총살당하는 일을 무수히 목격했던 당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 말을 사용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알지도 못한 채 무심코 써왔고, 그 말을 많이 써온 오늘의 기성세대 대다수도 아마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진 못할 것이다. 이 말에 바로 우리 현대사의 비밀이 담겨져 있으며, 그 비밀은 단지 과거의 사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사회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외면할 수 없었던 '학살'의 상처들

경산의 골짜기를 시작으로 해서 나는 문경, 거창, 남원, 대전 골령골, 고양 금정굴 등 많은 골짜기들을 답사했다. 그 골짜기들은 오랜 세월 주변사람들에게 '귀신 나오는 곳'으로 알려져 인적조차 드물었고, 한국전 당시 민둥산이던 지역이 이제 수풀이 울창하게 자라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할 수 없게 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이 숨겨진 골짜기들 곳곳에 그 끔찍한 학살의 역사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골짜기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연구자로서의 본업을 일정 부분 뒤로 젖혀놓고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니게 만들었고, 그 사이에 나는 이 숨겨진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문제를 푸는 일을 새로운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 책상머리에 가만히 앉아서 글이나 쓰고 강의실에서 알량한 지식이나 늘어놓고 있기에는 곳곳의 현장에서 느낀 충격과 책임감과 의무감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나는 또 깨달았다. 골짜기만이 아니라 반도 곳곳의 강가와 바닷가, 아니 한반도 전체가 학살의 무덤이라는 것을! 한반도 전체가 씻지 못한 한과 멈출 수 없는 통곡의 덩어리였던 것이다. 2000년에 활동을 시작한 전쟁학살규명 범국민위는 최근에 와서 그 중심 사업 하나로 계획한 학살지도의 제작을 사실상 포기했다. 지도상에 학살지를 표시할 점을 찍을 여백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은 우리 사회를 바로세우는 일

더욱 놀라운 일은 한반도 전역에서 이토록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그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자료정리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몇몇 '사건'의 경우 조금씩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 진실의 본줄기에는 접근도 하지 못한 채 '정치'에만 의존하여 문제를 미봉하고 있는 감이 짙다. 정부도, 국회도, 법원도, 언론도, 학자들도, 아니 온 사회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나로 하여금 우리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모래 위에 세워진 엉터리 국가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피해 당사자나 유족들조차도 진실을 파헤치려는 의지를 갖지 못했다. 그들 중 그나마 용기있는 일부가 지금까지 한 일은 '힘있는' 정치가나 정치세력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한과 울분을 푸는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이 신화가 광주특별법과 이후의 보상을 파행으로 치닫게 만들었고, 부산 민주공원 사업도 파행을 걷게했으며,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 역시 거기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진상규명 없는 명예회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진실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무슨 용서와 사과와 화해란 말인가? 진실을 확인하려는 마음가짐과 용기가 없는데 학술연구가 어디 있고, 정책과 이념과 노선이 어디 있다 말하겠는가?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모든 문제를 확인하고 공론화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연로한 유족들을 많이 만나고 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돌아다니면서 그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측면을 알게 되었고 또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각지의 피학살자 유족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이 겪은 일보다 더 기막힌 것은 엄청난 학살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우리 사회의 집단망각증이 아닌가 한다.

나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그저 피해자들의 한을 푸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권력의 잘못된 행사로 국민들이 입은 피해를 밝혀내고 학교와 언론이 과거의 진실을 제대로 가르쳐줄 수있을 때 건강한 시민의식이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우리 나라를 바로 세우고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믿는다.

(자세한 정보는 http://genocide.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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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12-2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만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에요.. 현실은 아니지만 옛날에 소설에서 읽었던 학살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소설을 보면서도 몸이 떨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실의 끔찍함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요...

2004-12-21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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