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계획은, 오전에 미술관에 갔다가 오후에 대부도로 놀러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침 잠 많은 내 친구 일어나지를 못했고, 하여 미술관행은 포기했다. 12시 쯤 홍대 앞에서 만나 맛있는 닭곰탕으로 아침 겸 점심 먹고 1시에 출발했다.
친구는 이제 운전 경력 두 달째인 쌩초보 운전자다. 친구 차는 아직 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지만 불안할 수 밖에 없는 나로서는 내가 운전하겠다 했는데, 이제 막 운전에 재미와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친구가 허락할 리가 없다. 결국 조수석에 앉았는데, 출발하고 얼마 안되어 지나가는 차들이 쳐다보면서 경적을 울린다. 뭐가 문제냐 했더니, 이 자식, 운전석 문을 제대로 안 닫았다. 내 참. 문을 제대로 닫기 위해 차를 세우는데, 내 말 안 듣고 엉뚱한 데다 세워서는 다시 출발할 때 지나는 차들로부터 또 경적 세례. 내가 못산다니까.
그리고는, 도로에 널부러진 동물 시체를 보고 제가 놀라서 갑자기 핸들을 확 꺽고,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꽉 안 쥐어 차가 흔들리게 하고, 앞에서 깜빡이 제대로 켜고 차선 바꾸려고 하는 차 안 끼워주고, 갈림길을 잘못 지나쳐놓고는 (살짝이지만) 기어이 다른 길로 들어서고, 갓길이 전혀 없는 편도 1차선 시골길에서 자꾸 오른쪽으로 붙고, 도로에 붙은 공터만 보면 괜히 들어가려고 하고, 속도방지턱에서 속력를 줄이지 않아 차가 깨지는 줄 알게 만들고 ─ 하는 것 외에는 별 탈 없이 운전을 잘 했다. 다행히(?) 차가 많아 속력을 낼 수 없었다.
비봉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제부도로 향하는데 표지판이 제대로 없다. 길가에 서 계신 아주머니께 여쭸더니 그 쪽으로 가신다면서 태워 달라신다. 아주머니를 태우고 가는데 이런 저런 말씀을 해 주신다. 그쪽은 포도가 유명한데 지금은 포도철이 아니라거나, 길가에서 파는 사과나 배는 다른 지방에서 온 것이라거나, 제부도는 시간에 따라 길이 물에 잠긴다거나 하는 것들. 제부도 길이 끊긴다는 걸 우리들은 몰랐다.
아주머니를 내려드리고 제부도 앞에 도착한 때가 2시 50분이었는데 길이 끊기는 시각이 3시 20분이란다. 제부도로 들어가 입구에 있는 방파제에서 잠깐 바람 맞고 있으니 3시가 넘었다. 차들이 슬슬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하릴없이 우리들도 다시 나왔다. 들어갈 때는 길 양쪽이 모두 갯벌이었는데, 나올 때 보니 왼편은 이미 물이 차 있다.
대부도엘 갔는데 이 녀석 차를 제때 돌리지 못해 시화 신도시로 가는 다리로 들어섰다. 뭐 운전은 녀석이 하니까 나로서는 바다바람 맞으며 '좋다' 고만 했다. 운전하느라 다른데 신경쓸 여유가 없는 친구는 '뭐야, 나도 바다 보고 싶다고.' 했지만 어쩌겠는가. 흐흐.
왕새우소금구이를 실컷 먹고 나와서 커피 한잔씩 들고 그 앞의 바닷가로 내려갔다. 물도 자갈이 많은 모래사장도 더럽다. 파랗고 깨끗한 동해바다를 보고 자란 우리들에게 그런 바다가 좋아 보일 리 없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친구도 나더러 운전하라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종일 조수석에만 앉아있었는데, 어째 내가 계속 운전을 한 것 마냥 눈이 시리고 머리가 욱씬거렸다. 친구는 넌 왜 그래, 라고 했지만 내가 직접 운전할 때보다 훨씬 강도높게 긴장하고 있었을걸. 그걸 알아야지.
돌아오는 길은 엄청 밀렸다. 고속도로까지는 괜찮았는데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는 속력이 10km가 안나온다. 놀러갔다오는 사람들 많구나. 그럼 우리만 갔다 왔겠냐, 사람들 다 비슷하지. 집에 도착하니 9시가 거의 다 되었다. 친구랑 커피 한 잔 씩 마시고, 집에서 가져온 현미와 총각김치를 덜어서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우리집에만 오면 뭔가 가져가려고 하는 친구는, 동생방에 걸려있던 모자를 찾아내서는 써 보고 '예쁘지? 나 이거 가져간다.' 한다. 그래, 가져가라. 그 모자 누구건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줬다. 친구가 출발하고서 빨래돌리고 잠시 앉았는데 전화왔다. 길을 잘못 들어섰단다. 거기서부터 가는 길을 또 알려줬다. 한 30분쯤 후 이번에는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그런데 내가 알려준 길이 아니라 지가 멋대로 헤매고서 찾아갔단다. 그래, 어디든 길은 통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지.
아마 친구는 어제 그대로 뻗어버렸을 것이다. 초보 주제에 무리했지. 오늘 어제 못 간 미술관에 가자고 했는데, 일어나기는 할까. 틀림없이 오후 1시는 넘어야 겨우 잠에서 깰거다.
혼자라도 미술관에 다녀올까 어쩔까 생각중이다. 아, 그보다 우선 밥부터 먹어야겠다. 그래도 제법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의욕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