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어릴 때의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람에 따라서는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내 경우엔, 지금껏 자주 만나고 가깝게 생각하는 것은 중학교 때의 친구들이다. 이제, 서로 알고 지낸 날이 몰랐던 날들 보다 더 길어진, 질기고 오래된 우정.
어떤 친구는 취향이 비슷해 좋아했고, 어떤 친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기에 부러워했고, 또 어떤 친구는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살짝 무시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한때는 그를 원망했다. 다른 누군가를 싫어하기도 했다. 끔찍할 정도로 정나미 떨어진 일도 있었고, 다시는 얼굴 볼 자신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도 내 친구들이다. 결혼을 하고, 유학을 가고, 이제 거의 만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친구라고 하면 그들이 떠오른다. 우리들이 부대낀 십 수년의 시간, 서로 좋아하고, 미워하고, 다가서고, 밀쳐내고, 상처주고, 위로하면서 보낸 그 시간이 우리들을 묶어 놓고 있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금의 내가 생겨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걸 프렌즈>는 제목답게 친구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어린 날의 우리들처럼 서로 싸우고, 상처를 입히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자극을 받고,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닮아가는, 성장을 위한 쓰디쓴 영양제가 되는 친구들.
<하얀 꽃, 빨간 꽃>의 미카와 유리코, <실크빛 달>의 카호리와 나나코, <마블 프렌즈>의 마코와 야요이 모두 그런 친구들이다. 나머지 단편들에서도 변형된 형태이긴 하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친구라고 할 만한 관계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재미있는 건, 그리고 마음에 드는 건, 작가가 흔히 말하는 ‘우정’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려울 때 도와주고, 좋은 일을 함께 기뻐해주고, 슬픔을 나누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보다 자신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사람을 친구라고 하는 것이다. 설사 그 상대가 싫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야요이는 날… 머리 속에서 몇 번이나 죽였을까…?
상관없어. 죽여도…
그러면…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워 실망할 테고
그러면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지.
그리하여 우리들은… 또 한 발짝 하늘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 그게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