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나는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침묵의 품에 안겨 빈둥대다가

고요한 가운데 한가롭게

믿음직한 리라를 타며

아득한 태고의 전설을 노래하였다.

나는 눈먼 행복과 적들의 모욕과

경박한 양치는 여인들의 변심과

어리석은 자들의 시끄러운 헛소리를

노래부르며 모두 잊어버렸다.

나의 지성은 상상의 날개를 타고

땅 끝까지 날아갔지만,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천둥 번개의 먹구름이

몰래 내 머리 위로 모여들었다!

나는 죽어 가고 있었다.

그 옛날, 열정에 들떴던 시절의

성스러운 수호자여! 오, 우정이여!

내 병든 영혼을 감미로이 위로하는 그대여!

당신은 사나운 비바람이 지나가기를 희망했고

내 가슴에 평화를 되돌려 주었다.

그대는 나를 위해 피 끓는

청춘의 우상인 자유를 간직해 주었다!

나는 사교계의 풍설에 잊혀진 지 오래다.

네바 강 기슭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내가 이제 눈앞에 있는

카프카스의 당당한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둥그런 산꼭대기에 올라가

바위로 덮인 험준한 산비탈에서

조용히 감정을 다스린다.

거칠고 우울한 자연의 황홀한 절경을

마음껏 호흡한다.

내 영혼은 전처럼 순간순간

우울한 생각으로 가득 찼으나

시의 불꽃은 시들었다.

감동을 찾아보지만 소용없다.

시는 죽었다.

운문을 즐기던 시절도,

사랑과 즐거운 꿈을 꾸던 시절도,

진실한 영감의 시절도 모두 가 버렸다!

환희의 짧은 시간은 흘러가 버렸고

조용한 노래의 여신은 영원히 숨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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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와서 읽는데요, 러시아 영화 오모로모브(?)의 생애가 생각나네요.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이 주인공인데...
항상 침대에 누워 빈둥대는 데다가 시니컬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죠.
그런데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니까 달려들어 나무를 뿌리째 뽑더라니까요.^^

urblue 2004-08-0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오블로모프> 아닌가요? 곤차로프의 소설인데, 아마 영화화되기도 했다는 것 같네요. 저두 소설 읽지는 않았는데, 러시아에서 오블로모프기질 이라 하면 무위도식의 대명사지요. 룸펜이랄까, 뭐 그런거.
푸슈킨이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쓴 게 스무살 무렵인데, 우울하고 비관적으로 느껴져요. 천재적 시인의 감수성은 뭐가 달라도 다른건지... 뭐 그렇습니다. ^^
좋은 아침이네요. 오늘도 즐겁게 보내세요. (__)

어디에도 2004-08-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안그래도 님이 적립금으로 이 책 샀다는 글 보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저도 사고 싶었더랬는데, 확 질러야 되려나; 사실 전 푸슈킨을 몰라요. 러시아 작가는 도아저씨하고 톨아저씨 밖에 몰라요. 그것도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안 나요. 흑흑 그러고보면 님은 은근히 아니 대놓고 방대하게 책을 섭취하시잖아요! 이번 기회에 러시아 문학 좀 추천해주세요!
(근데 로드무비 님이 말씀하신 저 주인공, 제 스타일이군요. 누워서 빈둥빈둥시니컬, 웃기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흐흐)

urblue 2004-08-0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문학을 꽤, 많이 좋아한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아저씨가 일등이고, 푸슈낀, 고골, 체홉, 레르몬또프, 불가꼬프 등등... 톨 아저씨는 별로 안 좋아해요. 너무 도덕적이라... 추천작은 마이리스트 중 <러시아 작가>를 봐 주세요. ^^ 하나하나 읽다 보면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지요. 그리고 러시아 소설엔 빈둥빈둥, 시니컬인 주인공들 많이 나와요. ^^
생각난 김에 <오블로모프>도 주문해야겠네요.

로드무비 2004-08-0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블로모브(프)의 생애>를 오보로모브라고 기억하다니!
아아,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탄식이 나옵니다.
뭘 아는척하기가 겁나네요.^^
아무튼 영화 무지 재밌었어요.

urblue 2004-08-0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싶네요. 먼저 책 사서 보고, 그 담에 영화 찾아 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