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서평단으로 받은 책인데 서평은 쓰지 못했다. 재미가 없거나 리뷰를 쓸 만한 책이 아니어서는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리뷰를 쓴다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다만 이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뿐.
'사회파 추리소설' 어쩌고 하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미야베 미유키인만큼 부동산 문제와 가족 해체라는 비교적 명확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우리나라 작가들과 비교하자면야 놀랄만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별 다섯개를 주저없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680쪽이나 되는 이 두툼한 책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가족사가 꼼꼼하게 드러난다. 틀림없이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정형화되었으나 개성을 잃지 않은 여러 가족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일본의 모습이며, 또는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우리의 모습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어째서 일본 사회가 그렇게 굴러갈 수 밖에 없는지,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정통으로 대면한 기분이랄까.
이만큼 진지하고 섬세하게, 성심성의껏 사회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작가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스텝 파더 스텝
연작이고, 각 단편마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사건 해결 과정이나 설명의 방식은 다소 어설프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경쾌하게 읽힌다.
각기 집 나간 엄마와 아빠 대신 도둑과 그 아버지가 쌍둥이를 돌보면서 다른 형태의 가족을 이루어가는 모습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일본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다. 앞서 <이유>에서처럼 일본에서의 가족 해체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이 되었다면, 이제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꿈꾸고 있는가보다. 그게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우리에게도 필요한 꿈이 아닌가 싶다.
마술은 속삭인다
비교적 초기작이고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소재라는 한계는 있지만, 재미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장점은 역시 섬세함인가보다. 각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누구에게도 소홀하지 않다. 작위적이기도 하고 뻔한 결말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작가라면, 어느 지점에선가는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글을 굉장히 잘 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
세 편 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웠으니 이제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할텐데, 양에도 불구하고 <모방범>을 먼저 볼까나, <화차>나 <용은 잠들다>를 먼저 볼까나. 이런 건, 말 그대로 즐거운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