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붐 -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
훙호펑 지음, 하남석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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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의 추억

 

영화 광해에서 가짜 광해군이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보내면서 백성만을 위한 마음으로 여의치 않으면 후금에 항복하라며, 명에 대한 사대의 명분보다 백성의 목숨이라는 실리를 우선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실리적인 태도를 내세우기 위해 호출되는 단골 메뉴인데, 그가 파견한 원정군이 사르후 전투에서 궤멸되었고, 특히 어렵게 양성한 조총부대를 잃어 조선의 국방력에 큰 구멍을 냈다는 게 반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가 큰 흥행을 하고, 현재도 여전히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회자되는 건 한반도를 둘러싼 어지러운 국제정세를 헤치고 나갈 실마리를 찾고 싶은 희망 때문일 것이다.

영화 광해가 개봉했던 2012년은 2008년 금융위기와 2012년 재정위기로 서방이 휘청이는 동안 중국은 큰 타격 없이 경제성장을 이어나가며, 2010년에는 일본을 추월하면서 G2로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해였다. 중국이 미국을 언제쯤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며,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줄을 서야하는 지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 교체를 예상하며 이를 명청 교체기와 비교하곤 했다. 미국에게는 안보를 의지하고, 중국에게는 경제를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둘 다 내 꺼 하자는 실리외교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서 정당화되었다.

2012년 이후로 십여 년이 지난 현재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졌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과 뒤이은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반중감정이 고양되고, 무역갈등을 시작으로 미중간의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미국이 가로 막으려 하면서부터는,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라는 피크 차이나론도 나오고 있다. 2022년에 시진핑이 집단지도체제를 허물고 1인 통치를 공고화하면서 정치이념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위신을 잃어가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가 새로운 악의 축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반대편의 자유민주진영에게서는 과거 소련에 그랬던 것처럼 냉전적 열정을 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냉전적 열정에 한국도 달구어지고 있다. 반중정서는 더 심해진 것 같고, 정부는 중국을 조준하는 나토와 협력에 나서고, 반중 반도체 동맹 가입 여론이 높다. 멀리서는 중립과 실리를 외치다가 막상 갈등이 본격화되니까 몸과 마음이 전부 한 쪽으로 쏠리는 것 같다. 회색은 흑과 백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해서일까?

 

미국인가, 중국인가?

 

현재 국제정세와 한국 경제의 미래에서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여러 책들을 검색하다가 찾은 게 훙호펑이라는 저자였다. 훙호펑은 홍콩에서 태어났으며,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같은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교집합 같은 존재이다. 한국에는 그의 저서 두 권이 번역되어 있다.

202210월에 번역돼 나온 제국의 충돌은 근래 미중 무역갈등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다루고 있다. 미중갈등은 정치이념적 측면에서는 예외가 아니고 정상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사회주의 헌법을 가진 국가이다. 같은 정치체제를 가졌던 소련은 미국과의 냉전 끝에 해체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어째서 중국을 자신이 주도하는 세계경제로 깊숙이 들여놓았을까? 8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본격화된 중국의 경제성장에서 분수령은 90년대였다. 중국은 외국인 직접투자와 수출 중심의 경제로 도약하고자 했지만, 1989년의 천안문사건, 그리고 미국에서 인권을 내세우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이 발목을 잡았다. 소련을 잡기 위해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공화당 정부와 달리 새로운 민주당 정부에는 냉전과 지정학적 고려라는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1993518일 클린턴은 중국의 인권 향상 없이는 무역에서 최혜국 지위가 자동으로 갱신되지 않을 거라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만약 미중갈등이 시작되었더라면 중국과 세계경제의 모습은 지금과는 현저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중정책을 뒤집은 건 월가와 초국적 기업들의 로비였다. 중국 당국은 초국적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의 개방을 통한 막대한 이익을 약속했고, 새로운 먹거리를 발견한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로비는 성공했다. 중국의 최혜국 지위는 갱신되었고, 2001년에는 WTO에 가입하며 자유무역과 수출에 힘입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글로벌 탑 투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무시무시하게 성장한 중국의 수출산업이 미국의 제조 기반 기업들을 위협하는데 반해, 중국 시장으로 침투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미국이 강세인 금융시장은 거의 열리지도 않았다. 또한 서방의 지적 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는 많은 기업들의 분노와 줄 잇는 소송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과거 중국과의 자유무역을 위해 로비에 나섰던 기업들이 이제는 반대로 돌아서며 백악관을 중국과의 투쟁으로 움직인다. 이처럼 제국의 충돌은 미중갈등을 자본 간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다. 실제 정책결정을 변화시킨 구체적인 과정(로비), 중국이 자원 공급망을 조직하고 잉여 자본 수출을 위해 세력권을 형성하며 기존 미국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양상들을 뚜렷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정세는 저자가 보기에 1차 세계대전 전야 제국주의 경쟁, 특히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독일의 부상과 닮았다. 이는 사실 매우 두려운 역사적 유비이다. 영국과 독일의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치달았으니까.

 

적대적 공생관계의 균열

 

제국의 충돌보다 먼저 출간된 차이나 붐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보는데 다음과 같다. 1650~1850년의 자본주의 없는 시장. 1850~1980년의 시초 축적. 1980~2008년의 자본주의적 호황. 경제적인 메커니즘만으로도 자본축적이 가능한 안정기에 앞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이 이뤄지며 축적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시기를 시초 축적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마오쩌둥 통치시기를 농촌을 희생시키며 자본주의적 호황의 여건을 조성한 기간으로 파악하는 건 흥미로운 시각이다.

또한 저자는 중국의 자본주의적 호황을 분석하며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수출 및 투자에 과다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은 미국의 무역적자에 의존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중국의 미재무부 채권 구입에 의존하고, 덕분에 미연방정부의 재정적자와 군사력도 유지된다. 근래의 미중갈등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관계이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이 유지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 당국은 수출기업이 벌어든 달러를 거의 일정한 환율로 환전해주기 때문에, 무역흑자만큼 자동으로 통화 공급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다. 이른바 양적 완화의 일상화인데 덕분에 돈은 넘치고 수익성을 따지지 않는 과잉투자(설비)와 부동산 상승이 구조화되었다. 이에 힘입어 당장은 경제가 성장해왔지만, 누구나 알든 거품은 붕괴하기 마련이다. 이 책이 쓰인 게 2015년인데 이후의 정세변화(중국의 성장률 하락, 부채위기 등)를 생각하면 신뢰가 가는 분석이다.

이제까지의 성장 모델이 중국과 세계에 불안을 더하는 불균형을 심화시켜왔기 때문에 훙호펑은 수출과 투자 대신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내부의 불평등 문제는 극심하다. 수 억 명의 농민공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권리 없는 노동을 참아내고 있다. 훙호펑은 불평등을 완화해가는 방향 선회가 위로부터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노동운동의 성장과 민주화가 진전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의 대외팽창적 성장 모델이 방향을 튼다면 미국과의 관계도 갈등과 충돌이 아닌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중국 관련 기사가 뉴스창을 채운다. 90년대 이후 미국이 독주하는 시기에 배우고 일하기 시작한 나에게는 중국의 부상은 무언가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정치체제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부감도 든다. 그런데 미중갈등을 둘러싼 선택은 이제는 개인적 선호 이상의 문제이다.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은 더해지고 있고, 앞으로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외교노선이 가장 주요한 이슈가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냉정한 시각의 책들로 성급한 감정들을 식히는 것도 유익하겠다. 거대기업의 이익을 국가와 민족의 이익으로 포장하며 적대를 불러일으키는 선전과 근거 없는 예측과 처방에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 자신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중국의 빼앗긴 자들이 자신들의 몫과 권리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연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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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중산층 - 한국 중간계층의 분열과 불안
구해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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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속적인 의미로서 남 못지않게 산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기준을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강남, 명품, SKY.

  강남은 서울특별시의 한 지역이기도 하고, 부유층이 모여 사는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들이 위치하는 지역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런 곳들에 산다는 표시만으로도 그 사람의 소득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주거지는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면서도 반대로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기도 한다. 강남 아파트는 부동산을 통한 자산 축적이라는 한국사회 부의 공식의 상징으로서 소유자들을 부자로,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이름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은 열망이 지난 몇 해 동안 얼마나 강했는지는 영끌”, “벼락거지같은 신조어들이 말해준다.

  성공의 상징으로서의 자동차에 관한 신조어로는 하차감”, “카푸어가 있다. 몇 해 전까지는 보기 쉽지 않았던 수입차 브랜드들이 이제는 상당히 흔해져서, 이 정도는 타주지 않으면 중간도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소는 바꾸기 어려워서인지 차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급을 높여 타려고 한다. 브랜드들을 여러 층의 수직으로 배열해놓은 계급도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시계, 패션 등 명품이 있는 모든 상품에 존재한다. 무엇을 소비하는 지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건 소비사회의 변함없는 본질이지만, 소수의 부유층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까지 수입 사치재를 향유하며 구분짓기를 하는 건 2000년대 한국의 새로운 풍속인 것 같다.

  남들 못지않게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중 아마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게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의미하는 SKY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도 자식 학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했으니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한 번씩 자녀들 교육 이야기를 들으면 이만저만 놀란다. 학원은 기본이고 예체능 활동 등을 시키는 데 어느 노동자 연봉을 쓴다. 돈만 써서는 안 되고 부모는 자녀의 인생 컨설턴트가 돼주어야 한다. 남들 자식 못지않은 다양한 이력들을 설계해주고, 입시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전략도 짜주어야 한다. 같은 나이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인맥의 형성과 유지를 도와주는 게 좋은 학군과 아파트이다. 강남아파트, 강남스타일, SKY와 남 못지않은 삶은 삼위일체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신 상류(부유) 중산층의 등장

 

  남 못지않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우니 그 기준이 너무 높은 건 아닐까? 바로 이 점에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주요한 변동과 모순이 담겨져 있다. 미국 하와이대학 사회학과의 구해근 명예교수의 신간(2022.11) 특권 중산층이 주목하는 현상이기도 한다.

  그저 그런 중산층이 무슨 특권을 갖고 있다는 건지 책 제목이 이상하다. 먼저 중산층의 의미에 대해 말해보면, 중산층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나는 계급구조 내에서의 정의이다. 노동력을 팔아 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계급과 임금노동을 사용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가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계급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며 기업조직이 커가고 판매·서비스 직종이 다양해지면서 관리직과 전문직, 기술직, 판매·서비스 자영업자 등이 포함된 중간계급이 성장해왔다. 공무원, 군인, 교사와 같은 구중간계급과 함께 이들이 상류층인 자본가계급과 하류층인 노동자계급과 구분되는 중류층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처럼 사회를 계급구조로 바라보는 건 체제전복적이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여 순전히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소득자들을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게 주류의 방식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간주되는 게 경제적 양극화와 이로 인한 중산층의 감소이다. 중위소득 기준으로 중산층은 1980년대에는 75% 정도였지만 2010년대에는 60% 중반으로 떨어졌다. 스스로 중산층에 속하는지 답하는 비율로 따지는 체감 중산층은 40%대로 더 떨어졌다. 경제적 양극화의 주요 원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소득격차 증가이다. 고용형태보다 회사규모에 따른 소득격차가 더 크다고 한다.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세계화의 성과가 임금소득자들 가운데서는 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에게 분배되었고,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와 같이 소외된 계층의 소득은 별로 늘지 않거나 감소하면서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다.

  그런데 특권 중산층의 저자는 중산층 전체가 감소하는 것보다 중산층 내부의 분화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최상류층만 이익을 본 게 아니라 중산층 상부에서도 이익을 향유했으며, 199가 아니라 1090의 구도로 사회갈등을 이해하는 게 현재의 사회동학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관점이다. 실제로 1999년부터 2016년 사이에 상위 1%가 차지한 소득은 전체 소득의 8.5%에서 14.4%로 늘어났지만,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도 32.8%에서 49.2%로 상승했다. 글로벌기업으로 변신한 재벌 대기업과 급속하게 성장한 IT산업과 금융업 등 가운데서 새로운 고소득자 집단이 나왔으며, 몇 차례의 부동산 급등으로부터 자산을 불린 이들도 많았다.

 

구분짓기와 재생산

 

  경제적 양극화와 신 상류 중산층의 등장에 따른 한국사회의 사회, 문화적 변화에 대해 구분짓기재생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구분짓기는 말 그대로 상류 중산층이 자신들을 다른 사회계층, 특히 일반 중산층과 구분 지으려는 집단적 행위이다. 값비싼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지역에 모여 살고 명품을 소비하며,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상당한 교육비와 노력을 쏟는다. 이러한 부유 중산층의 구분짓기는 강남스타일이라는 말처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중산층에 대한 훨씬 높아진 기준을 만들어냈다. 소득기준에 따른 중산층 비율보다 체감 중산층 비율이 더 크게 떨어진 이유이다.

  대주주, 건물주 같은 자산소유자들이 많은 상위 0.1~1%에는 아예 올라갈 수 없지만, 그 이하의 고소득 직업군으로 이루어진 상위 10%는 아파트를 통한 자산증식이든, 교육을 통한 지위획득이든 진입 가능한 열려 있는 계층이다. 따라서 그 이하의 계층에게 상류 중산층은 준거집단으로 기능하며 따라잡기와 모방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중산층 내에서도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에 의해 계층상승과 따라잡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일반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류 중산층으로의 사다리가 열려 있다는 건 내부적으로는 사다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낳는다. 이들의 지위가 자산 소유보다는 고소득 직업 또는 입시나 취업, 승진에서의 경쟁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자녀로의 지위 승계에 있어 교육이 중요시된다. 자녀가 학벌과 전문자격증을 얻고, 영어실력과 해외경험, 인턴쉽 같은 문화자본 축적을 쌓을 수 있도록 많은 교육비와 노력을 쏟는다. 그런데 구해근 교수가 주목하는 건 상류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육 기회가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부유 중산층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가면서 계층 재생산에 있어 폐쇄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회를 독점하면서 계층 재생산이 공고화되는 과정에는 재력과 문화자본 소유뿐만 아니라 최순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그들끼리의 내부거래와 편법 동원, 제도 악용도 역할하고 있다. 상류 중산층의 폐쇄적 재생산은 상속이 아니라 능력으로 획득한 지위라는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며 불공정과 정의라는 문제를 사회에 던지고 있다. 상류라는 위치가 우월한 기회, 즉 특권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다수가 좇는 평범한 삶, 그래서 그렇게 살지 못하면 좌절감이 더 깊어지는 생활양식은 사실 평범하지 않다. 90년대 이후 계속된 불평등 증가로 경제성장의 과실이 상위 10%에게 집중된 결과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몰고 온 기회를 잡은 상류 중산층은 자신들의 부를 그들만의 주거공간과 명품, 학벌 만들기로 체현했고, 이것들은 계층 상승을 좇는 이들의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새로운 삼위일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듯하지만 모두에게 닿을 수는 없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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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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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마일 적 로마인 이야기를 끊을 수 없이 읽고 나서,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았다. 그녀는 젊어서 이탈리아로 이민을 가 지중해의 역사에 관한 여러 책을 썼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책도 썼는데, 마키아벨리도 사용했을 법한 당대 피렌체의 골동품 탁자를 사와서 원고를 집필하고 있다는 구절에서는 무척 부러운 마음이 일었다. 일본인이 머나먼 이국에서 그곳의 역사를 쓰고 한국인이 읽고 있다는 게 기묘하기도 했다.

  시오노 나나미와 같이 브래디 미카코도 유럽에 사는 일본인 여성 작가이다. 영국인과 결혼하여 영국에 살면서 에세이를 쓴다. 시오노 나나미가 휩쓸리는 민중보다는 군림하는 엘리트가 낫다고 믿는 파시스트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반해, 브래디 미카코에게서는 왼편의 삶이 묻어 나온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백인 노동자 아저씨들

 

  브래디 미카코는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여자들의 테러,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등의 여러 책을 썼다. 이중에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는 브렉시트로 인해 오명을 뒤집어 쓴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계급을 위한 글이다.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연합(EU)를 탈퇴한 사건인데, 20166월에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단일 유럽시장이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국민투표 결과가 실제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대부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설마 하던 게 실제로 일어나자, 영국에서는 이게 다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들이 탈퇴표를 던져서라는 원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전후 1946년부터 1964년까지 20여 년간 폭발적인 인구증가 시대에 태어난 세대를 말하는데, 2016년이면 5, 60대의 나이이다. 이 나이 때의 아저씨들 중 특히 노동계급이 브렉시트의 열렬한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건 이들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제조업 공동화에 일자리를 잃어왔고, 유럽연합 협정 때문에 활짝 열린 국경을 넘어 몰려드는 이민자들을 싫어하며, ‘정치적 올바름다양성같은 가치에는 인색하다는 게 그들의 초상이다.

  중장년 백인 노동자들이 정치적 퇴행의 진원지로 전락했다는 사고방식은 브렉시트 투표와 같은 해에 일어난 트럼프 당선에서도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이민자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려나 내세울 건 백인이라는 점밖에 없는 저학력 노동자들이 반세계화와 인종주의 구호에 쉽게 선동되어 EU 탈퇴나 트럼프 당선 같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이 아닌 현재 2022년에서 바라보면 브렉시트 결정은 시류를 거스른 게 아니라 선도한 셈이 됐다. 코로나 유행과 미중 무역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화는 역전되고 글로벌 경제는 패권국의 지정학적 이익에 따라 쪼개지고 있다.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보다 더 센 강도로 무역전쟁을 이끌고 있다. 반세계화가 백인 노동자들의 불만 때문에 벌어진 일시적 이탈이 아니며,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라는 증거인데, 불행히도 노동자 아저씨들이 욕을 다 먹은 셈이다.

 

노동계급 아저씨들의 사랑과 긍지

 

  책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는 저자와 같은 동네에 사는 아저씨들에 대한, 직접 겪고 들은 일화들을 엮은 책이다. 1디스 이즈 잉글랜드 2018~2019”2현대 영국의 세대, 계급, 술에 관하여로 구성돼 있다.

  한국에서 계급이라는 단어는 사회학 관련 책이나 집회, 시위에서의 유인물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이지만, 산업혁명이 태어난 영국에서는 사회구성원 누구나 스스로를 규정하는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단어라고 한다. 오랫동안 노동계급과 중류계급, 상류계급으로 나누어왔는데, 2011년에 BBC는 이러한 구분이 현재의 영국 사회에 맞지 않으므로 대신에 일곱 가지 계급(엘리트, 기성 중산층, 전문직 중산층, 새로운 부유층 노동자, 전통적 노동계급, 신흥 서비스 노동자, 프리케리아트)으로 나누는 걸 제안했다고 한다. 직업과 문화소비에서의 차이에 따라 더 세분화한 것인데, 이러한 차이가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자신을 중산층 혹은 노동계급으로 여기며, 노동계급이라고 답하는 비중은 60퍼센트라고 한다.

  EU 탈퇴 국민투표 이후로 노동계급의 이미지가 악마화 되었고, 노동계급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노동계급은 모두 탈퇴파라든가, “노동계급은 문신을 잔뜩 새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식의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이 노동계급을 단일한 문화적, 이념적 정체성을 지니는 집단으로 잘못 묘사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며, 실제로 노동계급 안에는 상당한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인종과 세대가, 자산과 소득 수준이 상이한 계층들이 섞여 있다. 이를 증명하듯, 1부의 21개의 에피소드는 노동계급 안의 저마다의 개성과 사회적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미용실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성의 동거인이 되어 은퇴하고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레이, 공영주택지에 사는 중국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폭력을 막기 위해 스스로 야간 순찰대를 조직한 스티브, 여행 중에 만난 태국 여성과 결혼하여 낳은 아이와 그 여성이 태국에서 데려온 아이의 육아에 정신없는 제프, 블랙캡(택시) 운전기사로 돈을 모아 고급 주택가에 살며 매년 생일 파티를 열어 노동계급과 중산층 친구들을 모두 부르는 테리, 파업을 준비하는 조카와 함께 플래카드를 만들며 신나 하는 사이먼 등 저자의 여러 노동계급 친구들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브렉시트나 이민자, 노동운동, NHS(영국의 공공의료서비스), 일자리, 주거 등에 가지는 생각과 태도들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서로 다른 이야기들 속의 그들을 노동계급으로 묶어 부를 수 있는 건, 노동자로서 겪은 공통의 경험이 이들을 같은 계급으로 만들고 있어서이다. “이들이 겪은 같은 경험이란 보수당의 긴축 재정으로 공공서비스와 복지가 삭감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노동조합의 약화로 기업의 힘이 비대해진 현 상황에서 악화된 고용 조건과 임금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점 등일 것이다.”(269) EU로의 통합 과정에서 겪은 생활수준의 하락이라는 경제적 압력이, EU라는 구조 내에서는 현재 상황을 개선해낼 수 없다는 정치적 소외가 노동계급을 EU 탈퇴라는 선택지로 내몬 것일 수 있겠다.

  불행한 건 이러한 노동계급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며 생각과 문화가 다르다는 서사가 세대 갈등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하지 못한 채로 늙은 아저씨들의 마지막 남은 똥고집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엉망(EU 탈퇴)으로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건전한 문제 해결을 가로 막는 편견과 갈등만 더할 뿐이며 슬프기도 하다. 저 멀리의 아저씨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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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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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519일에 TV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보았는데, 광주 민주화운동 특집이었고 다음과 같은 글귀로 마쳤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소설가 한강이 쓴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이었다. 그해 5.18에 시작한 민주화운동 또는 민중항쟁은 527일 새벽에 계엄군이 광주도청을 진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항쟁의 마지막에서 도청을 떠나지 않고 남은 시민군의 선택은 역사적 의의를 획득했다. 어떤 압도적인 무력과 폭력으로도 잠재우고 타협할 수 없는 무언가의 실존을 시민군은 저항과 죽음으로 증명하였다. 이후 우리의 역사는 광주에서의 숭고한 저항과 비통한 죽음에 공명하여 마침내 군사정권을 이겨 내는 전진을 이뤄냈다.

  예전에 19세기 유럽에서의 절대왕정과 싸운 시민혁명의 역사를 배우면서, 혁명의 상징이었던 바리게이트에 쓰여 있었다는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싸우다 죽겠다는 낙서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프랑스 혁명의 삼색기가 상징했던 자유, 평등, 우애를 향한 열망과 투쟁이 죽음을 넘어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광주에서의 희생은 시대의 전환과 진보에 바쳐진 여러 역사적 장면과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저 멀리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사진 안의 피해자들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 죽기보다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적인 패배, 죽음의 가능성, 살아도 이어질 투옥과 고난이 시시각각 조여 오는데도 왜 끝의 끝까지 스스로 자리를 지켰을까? 저 멀리의 사건에 대해서는 역사와 이념에 관한 추상적인 설명도 설득력을 갖지만, 지금 여기의 일에 대해서는 쉬운 답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꼬꼬무마지막 글귀에 이어지는 소년이 온다의 구절이다.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일부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를 읽어가는 건 고통스럽다.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자원하며 만난 중학생 동호, 고등학생 은숙, 미싱사 선주, 대학생 진수가 등장한다. 동호는 한 집에 살던 친구인 정대와 거리에 나왔다가, 계엄군이 쏜 총에 친구를 잃는다. 계엄군이 쓰러진 정대를 끌고 갔고, 동호는 정대를 찾기 위해 상무관에 왔다가 떠나지 못하고, 마지막 날에 동호 역시 비극을 맞는다. 그리고 동호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헤아릴 길 없는 심정이 그려진다.

 

또 다른 광주

 

  소설가 한강은 에필로그에서 광주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009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20091월에 난 용산의 망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미FTA 반대로 광화문이 들끓었던 다음 해였다. 그렇지만 철거민의 죽음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같지 않았다.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농성 현장에서 밤새 뒤척이며 노숙하다가 아침 출근길 사람들의 바쁜 걸음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각이 들었다. 이곳의 시간은 멈추어 있는데, 불과 몇 발자국 밖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는 현실이 현실적이지 않았다. 불쑥 생겨버린 경계의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현실을 마주하는 우리는 여전히 우리일까? 세상의 대부분은 여전히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던 그 거리감이 한강의 글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

  온 통신과 길을 막아 계엄군이 만든 공간적 고립보다 광주 시민의 희생이 무엇 하나 바꿔내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이 두려움에 공동체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래서 광주는 공동체의 위기, 어딘가의 일상이 고립되어 산산조각 나는 것의 이름이기도 하다. 오월 광주가 겪었던 고립과 말살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치유라는 시각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은 공감과 연대, 공동체의 복구에서 나올 수 있다. 또 다른 광주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당한 억압 앞에서는 서로에게 팔을 걸어야 하며, 어떤 왜곡과 비방에도 맞잡은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정당한 폭력은 없다. 힘없는 자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 굳건함이 사회의 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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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이 바꾼 세계사 - 대량해고, 불황, 빈곤은 세상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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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역사책은 피지배계급이 겪는 빈곤실업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동서양의 역사에서 국가와 영토가 바뀌고 전쟁과 혁명이 발발하는 결정적인 14가지 장면을 포착한다.


현대 문명에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제2차 세계대전은 1929년 미국발 대공황에서 비롯했다. 경제 대공황이 시작된 지 4년 후인 1933년 미국의 실업률은 공식 집계로만 25%에 달했다. 일본과 독일에서의 실업난은 더욱 심각했고, 불행히도 내부에 팽배한 불만을 타국에 대한 침략으로 돌려 세우려는 세력이 득세하고 말았다. 선거로 집권한 나치는 민주 공화국을 무너뜨리며 민주주의를 조롱하더니, 추축국과 더불어 평화를 깨트리며 수많은 생명을 욕보였다. 최악의 실업난이 불러온 이러한 끔찍한 전개에 질린 나머지 종전 이후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 개입이 당연시되었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기기 위한 국가의 책임도 자리 잡게 되었다.


오직 더 많은 부를 좇는 데만 몰두하는 탐욕의 과잉이 빚어낸 1929년 대공황은 자본주의의 부작용과 병폐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탐욕이 만들어내는 실업이라는 (한편에서는 부가, 다른 한편에서는 가난이 쌓이는) 모순은 자본주의가 태어나고 성장한 비결이기도 한데, 15세기 이후 영국의 역사가 보여주는 바이다. 부모에 이어 자손이 대대로 귀족에게 땅을 빌려, 한 귀퉁이마다 한 집이 먹고 사는 오랜 관습이 깨진 건 양털을 깎아 수출하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면서였다. 소작농을 전부 내쫓고 울타리를 쳐 양을 키우면 매일 돈이 자라나는데, 어느 귀족이 관습을 존중하고 농부들의 사정을 돌보겠는가.


이렇게 15세기 중엽부터 극심해진 인클로저 운동으로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영국에 쏟아졌는데, 이 실업자들이 이민자 또는 군인이 되어 영국의 해외 식민지를 넓히고 이권을 지키는 총알받이가 되었다. 한 역사가는 1660년대에서 1950년까지 무려 2000만 명의 영국인들이 북미와 호주, 뉴질랜드 등의 해외로 이주를 했다고 추정한다. 이렇게 보면 근현대 세계지도를 그려낸 게 이들 쫓겨난 영국인들인 것이다. 한편 도시로 흘러간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악마의 소굴로 부르는 공장으로 들어가 세계 최초의 노동자계급이 되어 노동법과 노동조합, 노동당을 탄생시켰다.

 

직업을 잃고 난을 일으킨 사람들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이민자와 군인이 되어 한 민족의 활동 무대를 쫙 넓힌 (다른 민족은 지배에 놓이는) 경우는 고대에도 있었다. 그리스는 산이 많아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농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일찍이 지중해 서쪽으로 퍼져 나가 시칠리아, 마르세유 등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동쪽의 페르시아 제국에서 용병이 되기도 했다. 그리스인 13000여 명이 용병으로서 페르시아 왕위 쟁탈전에 참전했다가, 바그다드 인근에서 고용주를 잃고 다시 그리스로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용병들의 지도자였던 크세노폰이 책으로 엮은 게 아나바시스이다. 이 책이 그리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페르시아가 실제로는 허약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한다. 그리고 아나바시스로부터 65년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로 향하고, 헬레니즘 세계가 탄생한다.


실업자가 된 민중이 역사를 뒤흔드는 장면은 중국과 한국에서도 여럿 나온다. 양나라를 무너트려 수당 시대로 이어지는 후경의 난, 당나라를 쓰러트려 510국 시대로 이어지는 황소의 난, 고려를 약화시켜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삼별초의 난, 명나라를 멸망시켜 청나라로 이어지는 이자성의 난, 다시 청나라의 조종을 울린 의화단의 난. 왕조 교체 시마다 직업을 잃은 사람들에 의한 난이 있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난세가 모두 끝나고 태평성대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멕시코에서는 NAFTA로 인한 실업자들이 마약사업에 뛰어들고 있고, 한국에서는 IMF위기 대량실업이 남긴 비정규직과 무한경쟁으로 삶이 팍팍하다 못해 고통스럽고, 소말리아 앞 바다의 어부들은 해적이 되었다.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일곱 개의 문을 가진 테베는 누가 지었을까?

책들에는 왕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왕들이 돌덩이를 날랐을까?”

 

독일의 극작가,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던진 질문에 대해 20세기 역사가들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로 답했다. 역사를 기록해온 이들은 오랫동안 왕과 장군 같은 권력자들의 의도와 결정이 역사를 만드는 것처럼 써왔다. 이와 달리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권력자들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자들에 주목한다. 이름 없는 자들의 소리 없는 (기록되지 않은) 외침이 실제로 역사를 움직여온 힘이라는 아이러니의 발견은 역사학의 위대한 성과 중 하나이다.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지배받는 이들이 역사를 만든다는 건 설계도만으로는 도시를 지을 수 없다는, 손과 발의 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지배자는 구상하고, 피지배자는 실현하는 분업이 유지되는 한 역사는 멈추어 있다. 역사가 나아갈 때는 구상과 실현의 분리를 거부하면서 피지배자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아나서는 순간이다. 그럭저럭 생활을 보장해온 삶의 방식이 무너지는 순간 민중은 전혀 다른 삶을 모색하고, 이로부터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새 시대를 여는 에너지가 쌓인다. 우리는 빈곤과 실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빈곤과 실업이 사라지는 날까지 역사는 틀림없이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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