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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5월 19일에 TV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보았는데, 광주 민주화운동 특집이었고 다음과 같은 글귀로 마쳤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소설가 한강이 쓴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이었다. 그해 5.18에 시작한 민주화운동 또는 민중항쟁은 5월 27일 새벽에 계엄군이 광주도청을 진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항쟁의 마지막에서 도청을 떠나지 않고 남은 시민군의 선택은 역사적 의의를 획득했다. 어떤 압도적인 무력과 폭력으로도 잠재우고 타협할 수 없는 ‘무언가’의 실존을 시민군은 저항과 죽음으로 증명하였다. 이후 우리의 역사는 광주에서의 숭고한 저항과 비통한 죽음에 공명하여 마침내 군사정권을 이겨 내는 전진을 이뤄냈다.
예전에 19세기 유럽에서의 절대왕정과 싸운 시민혁명의 역사를 배우면서, 혁명의 상징이었던 바리게이트에 쓰여 있었다는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싸우다 죽겠다”는 낙서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프랑스 혁명의 삼색기가 상징했던 자유, 평등, 우애를 향한 열망과 투쟁이 죽음을 넘어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광주에서의 희생은 시대의 전환과 진보에 바쳐진 여러 역사적 장면과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저 멀리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사진 안의 피해자들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 죽기보다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적인 패배, 죽음의 가능성, 살아도 이어질 투옥과 고난이 시시각각 조여 오는데도 왜 끝의 끝까지 스스로 자리를 지켰을까? 저 멀리의 사건에 대해서는 역사와 이념에 관한 추상적인 설명도 설득력을 갖지만, 지금 여기의 일에 대해서는 쉬운 답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꼬꼬무’ 마지막 글귀에 이어지는 『소년이 온다』의 구절이다.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일부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를 읽어가는 건 고통스럽다.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자원하며 만난 중학생 동호, 고등학생 은숙, 미싱사 선주, 대학생 진수가 등장한다. 동호는 한 집에 살던 친구인 정대와 거리에 나왔다가, 계엄군이 쏜 총에 친구를 잃는다. 계엄군이 쓰러진 정대를 끌고 갔고, 동호는 정대를 찾기 위해 상무관에 왔다가 떠나지 못하고, 마지막 날에 동호 역시 비극을 맞는다. 그리고 동호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헤아릴 길 없는 심정이 그려진다.
또 다른 광주
소설가 한강은 에필로그에서 광주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2009년 1월에 난 용산의 망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미FTA 반대로 광화문이 들끓었던 다음 해였다. 그렇지만 철거민의 죽음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같지 않았다.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농성 현장에서 밤새 뒤척이며 노숙하다가 아침 출근길 사람들의 바쁜 걸음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각이 들었다. 이곳의 시간은 멈추어 있는데, 불과 몇 발자국 밖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는 현실이 현실적이지 않았다. 불쑥 생겨버린 경계의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현실을 마주하는 우리는 여전히 우리일까? 세상의 대부분은 여전히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던 그 거리감이 한강의 글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
온 통신과 길을 막아 계엄군이 만든 공간적 고립보다 광주 시민의 희생이 무엇 하나 바꿔내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이 두려움에 공동체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래서 ‘광주’는 공동체의 위기, 어딘가의 일상이 고립되어 산산조각 나는 것의 이름이기도 하다. 오월 광주가 겪었던 고립과 말살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치유라는 시각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은 공감과 연대, 공동체의 복구에서 나올 수 있다. 또 다른 광주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당한 억압 앞에서는 서로에게 팔을 걸어야 하며, 어떤 왜곡과 비방에도 맞잡은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정당한 폭력은 없다. 힘없는 자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 굳건함이 사회의 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