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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중산층 - 한국 중간계층의 분열과 불안
구해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통속적인 의미로서 남 못지않게 산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기준을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강남, 명품, SKY.
강남은 서울특별시의 한 지역이기도 하고, 부유층이 모여 사는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들이 위치하는 지역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런 곳들에 산다는 표시만으로도 그 사람의 소득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주거지는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면서도 반대로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기도 한다. 강남 아파트는 부동산을 통한 자산 축적이라는 한국사회 부의 공식의 상징으로서 소유자들을 부자로,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이름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은 열망이 지난 몇 해 동안 얼마나 강했는지는 “영끌”, “벼락거지” 같은 신조어들이 말해준다.
성공의 상징으로서의 자동차에 관한 신조어로는 “하차감”, “카푸어”가 있다. 몇 해 전까지는 보기 쉽지 않았던 수입차 브랜드들이 이제는 상당히 흔해져서, 이 정도는 타주지 않으면 중간도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소는 바꾸기 어려워서인지 차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급을 높여 타려고 한다. 브랜드들을 여러 층의 수직으로 배열해놓은 계급도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시계, 패션 등 명품이 있는 모든 상품에 존재한다. 무엇을 소비하는 지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건 소비사회의 변함없는 본질이지만, 소수의 부유층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까지 수입 사치재를 향유하며 구분짓기를 하는 건 2000년대 한국의 새로운 풍속인 것 같다.
남들 못지않게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중 아마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게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의미하는 SKY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도 자식 학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했으니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한 번씩 자녀들 교육 이야기를 들으면 이만저만 놀란다. 학원은 기본이고 예체능 활동 등을 시키는 데 어느 노동자 연봉을 쓴다. 돈만 써서는 안 되고 부모는 자녀의 인생 컨설턴트가 돼주어야 한다. 남들 자식 못지않은 다양한 이력들을 설계해주고, 입시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전략도 짜주어야 한다. 같은 나이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인맥의 형성과 유지를 도와주는 게 좋은 학군과 아파트이다. 강남아파트, 강남스타일, SKY와 남 못지않은 삶은 삼위일체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신 상류(부유) 중산층의 등장
남 못지않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우니 그 기준이 너무 높은 건 아닐까? 바로 이 점에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주요한 변동과 모순이 담겨져 있다. 미국 하와이대학 사회학과의 구해근 명예교수의 신간(2022.11월) 「특권 중산층」이 주목하는 현상이기도 한다.
그저 그런 중산층이 무슨 특권을 갖고 있다는 건지 책 제목이 이상하다. 먼저 중산층의 의미에 대해 말해보면, 중산층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나는 계급구조 내에서의 정의이다. 노동력을 팔아 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계급과 임금노동을 사용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가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계급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며 기업조직이 커가고 판매·서비스 직종이 다양해지면서 관리직과 전문직, 기술직, 판매·서비스 자영업자 등이 포함된 중간계급이 성장해왔다. 공무원, 군인, 교사와 같은 구중간계급과 함께 이들이 상류층인 자본가계급과 하류층인 노동자계급과 구분되는 중류층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처럼 사회를 계급구조로 바라보는 건 체제전복적이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여 순전히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소득자들을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게 주류의 방식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간주되는 게 경제적 양극화와 이로 인한 중산층의 감소이다. 중위소득 기준으로 중산층은 1980년대에는 75% 정도였지만 2010년대에는 60% 중반으로 떨어졌다. 스스로 중산층에 속하는지 답하는 비율로 따지는 체감 중산층은 40%대로 더 떨어졌다. 경제적 양극화의 주요 원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소득격차 증가이다. 고용형태보다 회사규모에 따른 소득격차가 더 크다고 한다. 즉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세계화의 성과가 임금소득자들 가운데서는 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에게 분배되었고,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와 같이 소외된 계층의 소득은 별로 늘지 않거나 감소하면서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다.
그런데 「특권 중산층」의 저자는 중산층 전체가 감소하는 것보다 중산층 내부의 분화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최상류층만 이익을 본 게 아니라 중산층 상부에서도 이익을 향유했으며, 1대 99가 아니라 10대 90의 구도로 사회갈등을 이해하는 게 현재의 사회동학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관점이다. 실제로 1999년부터 2016년 사이에 상위 1%가 차지한 소득은 전체 소득의 8.5%에서 14.4%로 늘어났지만,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도 32.8%에서 49.2%로 상승했다. 글로벌기업으로 변신한 재벌 대기업과 급속하게 성장한 IT산업과 금융업 등 가운데서 새로운 고소득자 집단이 나왔으며, 몇 차례의 부동산 급등으로부터 자산을 불린 이들도 많았다.
구분짓기와 재생산
경제적 양극화와 신 상류 중산층의 등장에 따른 한국사회의 사회, 문화적 변화에 대해 ‘구분짓기’와 ‘재생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구분짓기는 말 그대로 상류 중산층이 자신들을 다른 사회계층, 특히 일반 중산층과 구분 지으려는 집단적 행위이다. 값비싼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지역에 모여 살고 명품을 소비하며,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상당한 교육비와 노력을 쏟는다. 이러한 부유 중산층의 구분짓기는 강남스타일이라는 말처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중산층에 대한 훨씬 높아진 기준을 만들어냈다. 소득기준에 따른 중산층 비율보다 체감 중산층 비율이 더 크게 떨어진 이유이다.
대주주, 건물주 같은 자산소유자들이 많은 상위 0.1~1%에는 아예 올라갈 수 없지만, 그 이하의 고소득 직업군으로 이루어진 상위 10%는 아파트를 통한 자산증식이든, 교육을 통한 지위획득이든 진입 가능한 열려 있는 계층이다. 따라서 그 이하의 계층에게 상류 중산층은 준거집단으로 기능하며 따라잡기와 모방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중산층 내에서도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에 의해 계층상승과 따라잡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일반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류 중산층으로의 사다리가 열려 있다는 건 내부적으로는 사다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낳는다. 이들의 지위가 자산 소유보다는 고소득 직업 또는 입시나 취업, 승진에서의 경쟁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자녀로의 지위 승계에 있어 교육이 중요시된다. 자녀가 학벌과 전문자격증을 얻고, 영어실력과 해외경험, 인턴쉽 같은 문화자본 축적을 쌓을 수 있도록 많은 교육비와 노력을 쏟는다. 그런데 구해근 교수가 주목하는 건 상류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육 기회가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부유 중산층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가면서 계층 재생산에 있어 폐쇄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회를 독점하면서 계층 재생산이 공고화되는 과정에는 재력과 문화자본 소유뿐만 아니라 최순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그들끼리의 내부거래와 편법 동원, 제도 악용도 역할하고 있다. 상류 중산층의 폐쇄적 재생산은 상속이 아니라 능력으로 획득한 지위라는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며 불공정과 정의라는 문제를 사회에 던지고 있다. 상류라는 위치가 우월한 기회, 즉 특권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다수가 좇는 평범한 삶, 그래서 그렇게 살지 못하면 좌절감이 더 깊어지는 생활양식은 사실 평범하지 않다. 90년대 이후 계속된 불평등 증가로 경제성장의 과실이 상위 10%에게 집중된 결과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몰고 온 기회를 잡은 상류 중산층은 자신들의 부를 그들만의 주거공간과 명품, 학벌 만들기로 체현했고, 이것들은 계층 상승을 좇는 이들의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새로운 삼위일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듯하지만 모두에게 닿을 수는 없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