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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붐 -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
훙호펑 지음, 하남석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4월
평점 :
영화 「광해」의 추억
영화 「광해」에서 가짜 광해군이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보내면서 백성만을 위한 마음으로 여의치 않으면 후금에 항복하라며, 명에 대한 사대의 명분보다 백성의 목숨이라는 실리를 우선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실리적인 태도를 내세우기 위해 호출되는 단골 메뉴인데, 그가 파견한 원정군이 사르후 전투에서 궤멸되었고, 특히 어렵게 양성한 조총부대를 잃어 조선의 국방력에 큰 구멍을 냈다는 게 반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가 큰 흥행을 하고, 현재도 여전히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회자되는 건 한반도를 둘러싼 어지러운 국제정세를 헤치고 나갈 실마리를 찾고 싶은 희망 때문일 것이다.
영화 광해가 개봉했던 2012년은 2008년 금융위기와 2012년 재정위기로 서방이 휘청이는 동안 중국은 큰 타격 없이 경제성장을 이어나가며, 2010년에는 일본을 추월하면서 G2로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해였다. 중국이 미국을 언제쯤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며,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줄을 서야하는 지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 교체를 예상하며 이를 명청 교체기와 비교하곤 했다. 미국에게는 안보를 의지하고, 중국에게는 경제를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둘 다 내 꺼 하자는 실리외교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서 정당화되었다.
2012년 이후로 십여 년이 지난 현재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졌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과 뒤이은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반중감정이 고양되고, 무역갈등을 시작으로 미중간의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미국이 가로 막으려 하면서부터는,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라는 ‘피크 차이나’론도 나오고 있다. 2022년에 시진핑이 집단지도체제를 허물고 1인 통치를 공고화하면서 정치이념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위신을 잃어가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가 새로운 악의 축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반대편의 ‘자유민주’ 진영에게서는 과거 소련에 그랬던 것처럼 냉전적 열정을 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냉전적 열정에 한국도 달구어지고 있다. 반중정서는 더 심해진 것 같고, 정부는 중국을 조준하는 나토와 협력에 나서고, 반중 반도체 동맹 가입 여론이 높다. 멀리서는 중립과 실리를 외치다가 막상 갈등이 본격화되니까 몸과 마음이 전부 한 쪽으로 쏠리는 것 같다. 회색은 흑과 백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해서일까?
미국인가, 중국인가?
현재 국제정세와 한국 경제의 미래에서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여러 책들을 검색하다가 찾은 게 ‘훙호펑’이라는 저자였다. 훙호펑은 홍콩에서 태어났으며,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같은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교집합 같은 존재이다. 한국에는 그의 저서 두 권이 번역되어 있다.
2022년 10월에 번역돼 나온 「제국의 충돌」은 근래 미중 무역갈등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다루고 있다. 미중갈등은 정치이념적 측면에서는 예외가 아니고 정상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사회주의 헌법을 가진 국가이다. 같은 정치체제를 가졌던 소련은 미국과의 냉전 끝에 해체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어째서 중국을 자신이 주도하는 세계경제로 깊숙이 들여놓았을까? 8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본격화된 중국의 경제성장에서 분수령은 90년대였다. 중국은 외국인 직접투자와 수출 중심의 경제로 도약하고자 했지만, 1989년의 천안문사건, 그리고 미국에서 인권을 내세우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이 발목을 잡았다. 소련을 잡기 위해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공화당 정부와 달리 새로운 민주당 정부에는 냉전과 지정학적 고려라는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1993년 5월 18일 클린턴은 중국의 인권 향상 없이는 무역에서 최혜국 지위가 자동으로 갱신되지 않을 거라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만약 미중갈등이 시작되었더라면 중국과 세계경제의 모습은 지금과는 현저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중정책을 뒤집은 건 월가와 초국적 기업들의 로비였다. 중국 당국은 초국적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의 개방을 통한 막대한 이익을 약속했고, 새로운 먹거리를 발견한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로비는 성공했다. 중국의 최혜국 지위는 갱신되었고, 2001년에는 WTO에 가입하며 자유무역과 수출에 힘입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글로벌 탑 투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무시무시하게 성장한 중국의 수출산업이 미국의 제조 기반 기업들을 위협하는데 반해, 중국 시장으로 침투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미국이 강세인 금융시장은 거의 열리지도 않았다. 또한 서방의 지적 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는 많은 기업들의 분노와 줄 잇는 소송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과거 중국과의 자유무역을 위해 로비에 나섰던 기업들이 이제는 반대로 돌아서며 백악관을 중국과의 투쟁으로 움직인다. 이처럼 「제국의 충돌」 은 미중갈등을 자본 간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다. 실제 정책결정을 변화시킨 구체적인 과정(로비), 중국이 자원 공급망을 조직하고 잉여 자본 수출을 위해 세력권을 형성하며 기존 미국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양상들을 뚜렷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정세는 저자가 보기에 1차 세계대전 전야 제국주의 경쟁, 특히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독일의 부상과 닮았다. 이는 사실 매우 두려운 역사적 유비이다. 영국과 독일의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치달았으니까.
적대적 공생관계의 균열
「제국의 충돌」보다 먼저 출간된 「차이나 붐」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보는데 다음과 같다. 1650~1850년의 자본주의 없는 시장. 1850~1980년의 시초 축적. 1980~2008년의 자본주의적 호황. 경제적인 메커니즘만으로도 자본축적이 가능한 안정기에 앞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이 이뤄지며 축적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시기를 시초 축적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마오쩌둥 통치시기를 농촌을 희생시키며 자본주의적 호황의 여건을 조성한 기간으로 파악하는 건 흥미로운 시각이다.
또한 저자는 중국의 자본주의적 호황을 분석하며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수출 및 투자에 과다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은 미국의 무역적자에 의존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중국의 미재무부 채권 구입에 의존하고, 덕분에 미연방정부의 재정적자와 군사력도 유지된다. 근래의 미중갈등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관계이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이 유지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 당국은 수출기업이 벌어든 달러를 거의 일정한 환율로 환전해주기 때문에, 무역흑자만큼 자동으로 통화 공급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다. 이른바 양적 완화의 일상화인데 덕분에 돈은 넘치고 수익성을 따지지 않는 과잉투자(설비)와 부동산 상승이 구조화되었다. 이에 힘입어 당장은 경제가 성장해왔지만, 누구나 알든 거품은 붕괴하기 마련이다. 이 책이 쓰인 게 2015년인데 이후의 정세변화(중국의 성장률 하락, 부채위기 등)를 생각하면 신뢰가 가는 분석이다.
이제까지의 성장 모델이 중국과 세계에 불안을 더하는 불균형을 심화시켜왔기 때문에 훙호펑은 수출과 투자 대신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내부의 불평등 문제는 극심하다. 수 억 명의 농민공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권리 없는 노동을 참아내고 있다. 훙호펑은 불평등을 완화해가는 방향 선회가 위로부터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노동운동의 성장과 민주화가 진전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의 대외팽창적 성장 모델이 방향을 튼다면 미국과의 관계도 갈등과 충돌이 아닌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중국 관련 기사가 뉴스창을 채운다. 90년대 이후 미국이 독주하는 시기에 배우고 일하기 시작한 나에게는 중국의 부상은 무언가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정치체제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부감도 든다. 그런데 미중갈등을 둘러싼 선택은 이제는 개인적 선호 이상의 문제이다.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은 더해지고 있고, 앞으로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외교노선이 가장 주요한 이슈가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냉정한 시각의 책들로 성급한 감정들을 식히는 것도 유익하겠다. 거대기업의 이익을 국가와 민족의 이익으로 포장하며 적대를 불러일으키는 선전과 근거 없는 예측과 처방에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 자신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중국의 빼앗긴 자들이 자신들의 몫과 권리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연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