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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1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의문과 경이, 호모 사피엔스의 고민

                      -'소피의 세계'를 읽고-


   철학을 배워서 익힐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아마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소피의 세계'중에서


  필리아와 소피아. 서양 여배우의 이름과도 같은 이 두 단어를 결합하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학'이라는 단어가 생성된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래서 어디에서 어떻게 알아 나가야 할지 막막한 철학에 대해 가장 친절한 길라잡이를 발견했다.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라는 세 권 짜리 책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후 문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는 슈피겔지의 극찬이나 한 번 잡으면 결코 놓을 수 없을 거라는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서평에 대해 의심 반 믿음 반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책은 소피 아문젠이라는 열다섯 살에 접어드는 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나누는 대화로 시작된다. '소피'는 말할 나위도 없이 철학을 상징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문젠이라는 이름은 유명한 탐험가에서 슬쩍 따온 것이 아닐까. 철학에의 탐험이라는 길 안내자의 이름으로는 참으로 그럴듯하다.
  소피는 계속해서 엽서를 받는다. 가장 먼저 소피에게 주어진 의문은 "너는 누구니?"라는 것이고, 그 다음은 "세계는 어디로부터 생겨났을까?"라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똑같이 물어보았다. 나는 누구일까? 나의 나이와, 학력, 습관과 생김생김을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흡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첫 번 질문을 잠시 밀쳐두고, 두 번째 질문인 "세계는 어디로부터 생겨났을까?"를 화두로 삼아보기로 했다. 나는 가톨릭 모태신앙 신자이므로, 하느님의 천지창조를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물론 나는 아직도 신을 믿고 있으며 가톨릭 신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빅뱅 이론과 같은 우주 생성에 관한 이론을 깡그리 무시하지도 않는다. 두 번째 질문 역시 즉각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두 질문들은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명료한 답변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불쑥불쑥 "힐데"라는 이름의 아이에게 보내지는 엽서가 등장한다. 엽서는 계속해서 "힐데야, 생일을 축하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엽서는 길에 떨어져 있기도 하고, 헤르메스(그리스 신화에서 전령의 임무를 맡은 신에게서 따온 것이란다. 신의 이름을 철학자가 아닌 개의 이름으로 차용한 데는 철학이 인간의 학문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강아지의 주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선생님의 목도리나 군중의 깃발에서도 발견된다. 힐데의 생일축하에 대한 비밀은 2권이 끝나갈 무렵에 비예켈리라는 철학자의 편에서 밝혀진다. 

   대답을 제시하는 것 보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훨씬 쉽다는 철학. 그 철학에 소피가 첫 강좌를 신청할 때, 나도 머리를 맑게 하고 함께 참여했다. 세계 자체에 길들여지지 말 것. 세상에 대해 놀라워 하는 능력을 잃지 말 것. 이 두 가지를 명심하고 -그래도 세계에 길들여진 부분이 많기 때문에 걱정도 되었지만-초기 철학자인 탈레스를 만났다.
 
  우리의 관심사는 초기 철학자들이 어떤 해답을 발견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제기했고, 어떤 해답방식을 추구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무엇을 정확히 생각해 냈는가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생각했는가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다.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다. 그 후 아낙시만드로스는 다소 어정쩡한 '무한한 어떤 것'이라고 했다. 아마, 그는 꼭 들어맞는 단어를 찾고자 머리를 여러 번 쥐어뜯었을 것이다. 아낙시메네스는 대기와 공기를 들었다. 참으로 놀랍다. 기원전 570년 경에 이런 생각을 해 내다니! 그 후 헤라클라이토스는 오늘날의 이성을 의미하는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은 변하며 감각적 인식은 믿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며 감각적 인식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데카르트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 후 엠페도클레스라는 철학자가 오늘날의 4원소 설에 해당하는 물, 불, 공기, 흙에 관한 이론을 내었다. 이 이론은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의 '제 오원소'라는 영화에도 잘 나온다. 오늘날까지 이 이론은 유효한 것이다.
  내가 자연철학자 가운데 가장 경이롭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낙사고라스였다. 그는 소립자와 원자의 개념을 이야기했으며, 태양은 불덩어리라고 주장했다. 또 달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낙사고라스가 가장 흥미롭다. 기회가 닿으면 이 사람에 관한 책을 더 구해 읽어 볼 생각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는 나는 '가장'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현명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까?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상세히 알기 전, 나는 꽤 소크라테스를 싫어했다. 오히려 소피스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마저 했고, 프로타고라스를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영혼의 산파술이라는 것도, 다만 상대의 말에 대해 딴지를 거는 방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마 동료들과 권력자들에게 성가신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의 사람들에게 '의문'이라는 것을 품게 했고, '생각'이라는 것에 눈을 돌리게 했으며, 현재의 삶에 대해 돌이켜보게 했다. 소피스트들이 재치있는 말을 몇마디 해 주고 돈을 받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러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행동을 했다.  확신도 없고, 무지하지도 않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구도자였다.
   플라톤은 훌륭한 이론가이지만, 그의 철인정치이론이 독재자들에게 자주 이용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치리만큼 조직적이고 정확한 개념정리가였지만, 노예를 사람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꽤나 편협하다고? 선악은 가치의 문제지만,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취향의 문제이니 나도 어쩔 수 없다.
 아타락시아를 주장하던 쾌락주의 에피쿠로스 학파가 전혀 내가 생각하는 "쾌락"이 아니라서 실망했다. 나는 오히려 키레네 학파를 참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가아더는 키레네 학파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 하다. 아쉽다. 그러나 이 시기에 오늘날의 환경론자들의 모태가 될 듯한 견유학파의 기행을 보고, '시니컬'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은 기뻤다. 비록 그 의미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이라는 다소 잔인한 의미이긴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의 위대한 철학자이다. 그리고 중세는 알려진 대로 암흑의 시기가 아닌 오늘날의 나라들을 만들어내는 길고 긴 심연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때 여성은 불완전한 남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시기에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라는 여자 철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아직 과학이 철학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기술 혁명을 가능케 했다. 더 이상 인간은 자연의 부분이 아니었고, 오히려 자연을 지배하려 들게 되었다. 그 후 삼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야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이기보다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긴 했지만. 어설픈 지식은 늘 위험한가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 운행에 관한 6경'에서 인류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다. 지구는 중심이 아니었고, 태양이 중심이 되었다. 빛을 먼저 만들고 나흘째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들었다는 천지창조는 의심스러워졌다.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에서 만유인력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7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사람은 데카르트다. 수학적 원리를 차용했다고도 하는데, 그는 끊임없는 의심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산파술을 떠올린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신의 존재를 믿었기에 완전한 존재는 신뿐이라는 결론을 만들고, 동물은 자동기계로, 공간적 존재는 유물론적으로 보았다.
  흄은 오히려 감각적으로 경험한 진리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 열어두었다. 그는 한 사건이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우리 의식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버클리는 주교였기에 존재하는 만물의 원인을 신으로 보았다. 그는 시간, 공간, 독립적 존재에 모두 의심을 품었다. 그리고 버클리를 만나면서 소피는 자신이 힐데를 위한 생일선물 속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에 날아오른다.' 라는 문장밖에는 모르지만 저 문장이 쓰여진 '법철학서문'의 지은이라서 헤겔은 낯선 철학자가 아니다. 정립, 반정립 그리고 종합의 삼 단계는 변증법으로 배운 적이 있고, 개인보다는 세계 정신을 우월하게 보았다는 점에서 전체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마르크스는 불운한 철학자였다. 평생 굶주렸고, 자본주의에 대해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종교를 아편으로 연명해 가는 비참한 민중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부인이 귀족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공산주의 이론이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후진 농업국 러시아에서 시도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 이후, 숱한 철학자 가운데 프로이트는 다소 익숙한 내용이라 쉽게 넘어갔다. 이드, 에고, 욕망에 관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도 드문드문 접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르트르는 내게 숙제와도 같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욕망에 관해 기말고사가 끝나면 '구토'를 구해 읽어보려고 한다.
 
  소피는 생일파티를 기점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힐데는 소피를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힐데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은.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한가지는 놀라워 할 줄 아는 능력이다. 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경이"라고 한다. 놀라워 할 줄 아는 능력.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일하고, 잠드는 생활이 아니라 주변의 삼라만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며, 놀라워하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라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피가 만난 모든 철학자들은 끊임없는 의문과 고민을 품고 살았다.
  현생 인류의 조상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두 배나 머리가 더 좋은 '슬기슬기 사람'이라는 의미다. 슬기로운 사람이란 생각을 많이 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 새로운 의문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과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학명에 걸맞게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새로운 의문을 가지게 해 준 소피와 가아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힐데의 열 다섯 번 째 생일에 대한 축하의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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