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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 2015 오픈키드 좋은어린이책 목록 추천도서 ㅣ 바람그림책 19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4년 2월
평점 :
오늘 하늘은 얼마나 나에게 가까웠는지 묻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 기억이 없습니다. 비가 내리는지, 해가 나왔는지를 알 만큼만 힐끗 보고 말았네요. 다시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하늘은, 구름은, 바람은 내가 보고, 듣고, 숨쉬고, 느끼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기처럼 맑은 마음으로 호흡을 해 봅니다. 그러고 나니 나를 감싸는 대기에게 새삼 “고마워!”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좋은 하루가 시작될 것 같아요.
이 책은 그렇게 내 머리와 마음속의 먼지를 털고, 잠시 쉬어가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철학책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책의 제목은 [첫 번째 질문]이지만, 책의 본문은 한편의 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서른 번째까지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질문들이지요.
자극적이고 희화화된 그림책이 넘쳐나고, 그림은 글의 여백을 채우는 역할을 할 뿐인 그림책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그림들은 글만큼 아니, 어쩌면 더 큰 역할을 합니다. ‘읽는’ 책이 아니라 ‘사유하게 만드는’ 놀라운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욕심이 나요. 빌려주기 싫어집니다. 아주 어린아이들에게는 보여주기도 망설여져요.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이 그림들을 아이들은 참 좋아하겠지만 찢거나 구겨버릴까봐 걱정이 되거든요. 그만큼 아름답습니다.
작은 아이같이 파릇한 봄에서 아름다운 일곱 가지의 꽃향기가 짙은 여름으로, 해가 지는 서쪽하늘을 향해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경건한 가을을 지나, 같은 흰색 안에서도 다양한 모양이 공존하는 겨울로 전개되는 그림은 장면과 장면이 참 아름다워서 한 장씩 따로 액자에 걸어놓고 싶습니다. 소장용을 따로 구입하는 분들이 계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책의 질문을 받고서 나 자신을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몇 살 때의 자신을 가장 좋아하고 있을까요? 장화를 신고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는 것이 세상 행복이던 시절에는 빗방울이 맺힌 나뭇가지를 싫증내지 않고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지요. 천진난만했던 아이시절도 좋았습니다. 또 상처받은 마음을 말없이 받아주는 아름드리나무에 의지하기도 했던 때도 있었어요.그 시절은 힘들었지만, 몸과 마음이 불쑥 크는 소중한 때였거든요. 보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보이는 세상 너머의 것들에의 의문과 후회, 기대와 포기와 또다른 희망으로 뒤죽박죽이 되는 나날들도 있어요.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간들과 세상과 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순간도 꼽아야겠습니다. 질문과 대답,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궁리해봐야겠습니다. 그 후에 어떤 질문과 대답이 나올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지요.
아이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싶은데, 어른인 엄마의 머릿속에는 사물에 대한 경외감과 경이가 쉽게 생기지 않지요. 무뎌진 마음과 머릿속을 잘 정리해서 아이와 대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이에게 묻기 좋은 질문들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열두 살 이후부터, 이년에 한 번씩 꺼내어 본다면 더욱 가치가 있을 책입니다. 혼자있고 싶을 때, 마음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무거울 때, 머릿속에 숙변이 가득할 때 이 책의 질문에 대한 답을 천천히 정리해서 잘 갈무리하고, 이년 전의 나, 오년 전의 나, 십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견주어 보도록 해주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그렇게 인생을 함께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존재로 이 책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