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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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짐작이 가는데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더디게 읽고 싶은 책이 가끔 있다. 작가가 힘들여 쓴 공이 보이는 -나는 그런 글을 작가의 박음선이 곱게 느껴지는 글이라고 생각하는데-긴 글을 읽을 때 특히 그렇다. 작년 1월에 [올해의 미숙]을 보며, 올해 [천진 시절]을 보며 나는 좋은 책에 감사했다. 작가와 출판사에. 포기하지 않고 완성한 작가와 그 작가를 선별한 안목을 가진 출판사가 모두 좋았다.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정리는 잘 안되었다.

 

나에게는 못된 버릇이 제법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책에서 처음 꽂히는 인물에게 무한애정을 쏟아 붇는 것이다. 대부분은 주인공에 심히 공감하지만, 가끔은 주변인물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어 그 인물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대단히 몰입해서 읽곤 한다. 이 책의 경우,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이 그러했다. 나의 마음은 무군에게 온통 가버렸다. 잘생기지도 않고, 큰 재주도 없지만, 잘 웃고 나에 대한 사랑은 의심할 여지없는 성실한 사람. 가엾게도. 그저 그뿐인 사람. 무군에 대한 뒷이야기를 상아는 하지 않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자전적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대부분 작중 주인공인 자신의 분신을 좀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그다지 눈에 띄는 미모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다른 인물의 대사를 통해 은근히 예쁘다고 하거나 호감을 표하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게 약간 웃기고 귀여웠다. 원로 소설가부터 신인에 가까운 작가들도 조금씩은 그런다.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오는 상아는 웃기지도 귀엽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이 무척 쓰였다. 상아가 고향을 떠나고, 취직을 하고, 무군과 함께 살고, 고향 선배와 친구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덤덤해진 오늘날의 모습에서도 나는 조금씩의 나를 발견하고 좀 당황하고, 걱정되고, 지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공들여서 쓴 글에 진심을 담았기 때문이리라. 상아가 고향을 떠나기 전에 느낀 그 혼란함과 서러움을 우리는 감히 헤아리기 어렵겠지. 자본주의 세상에서 태어나 평생 아파트와 수세식 변기를 당연히 살아온 나도 스무 살과 서른 살의 삶이 당황스럽고 두려웠는데, 공산주의 세상에서 자본주의로, 농촌에서 도시로 건너온 그녀는 오죽했으랴. 날마다 새로운 빌딩이 더 높이 솟는 세상에서 한결같은 사람이 잘 살아내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 상아도 변해야 했고, 상아의 선택이 최선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불가피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천진 시절이 조금은 있다. 상아와 무군이 살던 그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진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속을 다 주기도 하고, 내 감정에 불순물이 섞였을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나의 삶에 대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순수하기에 더 잔인한 시절.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의 내가 참 애틋하고 손 내밀어 토닥이고 싶은 시절. 그래서 상아는 그 시절을 더 묻어버리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천진하던 시절은 스스로 장을 끝맺었으므로. 만약 소설의 상아가 금성이 결혼하던 날 즈음의 자기 모습을 천진 시절의 상아에게 알려주었다면 상아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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