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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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밝히지 않고 낸 책.짧은 길이지만 끊어지지 않는 흡인력.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로맨스따위는 장보고와 개 대하듯 하고
초창기 성석제 소설에서 발견한 '읽기의 즐거움'이 되살려지는 기분.

마치 고전소설을 현대어로 번역한 듯 의도한 문체와 과장된 설정에
낄낄거리며 또 키득거리며 통쾌하게 맛보는 풍자소설.
혹세무민하는 무리와 탐관오리가 박멸되지 않는 한,
현실주의자 모사꾼과 우직한 이상주의자 콤비는 난세의 영웅이리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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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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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아남은 후에, 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원래부터 관심과 수군거림을 즐길 수 있는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일생의 어깨에 놓인 짐이 너무 무거울 것 같다. 예전에 일하던 곳 근처에 맛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회식을 간 첫날, 직장 상사는 목소리를 낮추고 이 집 아저씨가 처제랑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고, 아줌마는 가게를 하며 신랑을 기다린다고 말을 해주었다. 놀라운 그 이야기는 직장에 신입이 들어오고 회식이 거듭되어도 자꾸 되풀이되어서 오래오래 전해졌다.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치욕이었을지. 서른해를 넘기고도 나는 몰랐다.

자기를 살린 언니에게 전적으로 고마워할 수만은 없는 유원과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의 뒤통수를 가격해야 하는 신수현의 삶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끊임없이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절대로 저 사람과는 다른 인성임을 드러내야 할 것 같은 절박함은 두 아이의 질풍노도 시기를 더욱 가파르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래서 둘은 더 빨리 가까워진 걸까? 서로에게 속을 드러내어 보이면서 상처와 흉터를 관리하는 방법도 찾아가는 기특한 아이들.

이 책을 읽는 내내, 유원의 말대로 유원이 보기 드문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 명 정도는 나쁜 마음먹고 훼방을 제대로 놓는 캐릭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신애 언니나, 목사님이나, 하다못해 정현이라도. 다 읽고 나니 유원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저런저런 하며 동정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내가 제일 모질고 나쁜 참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다들 그만그만하고 못 모진 사람들이어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는데, 다들 힘들어도 자기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건만. 유원이 가장 경계했던 부류가 나처럼 불행을 기다리는 것 같은 주변인들일 텐데.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뻔하지 않게 전개하는 솜씨 덕분에 재미있게 잘 읽었다. 주인공이 생각을 오랫동안 놓지 않고 행동도 병행하는데다 정떨어지는 인물이 딱히 없어서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정현과 유원이 가까워지거나 함께하는 장면들이 조금 비현실적인 것 같아서 아쉬웠다. 개연성을 찾기가 힘들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작가가 요긴하게 써먹기는 좋은 설정인 듯.

내가 아는 창비의 청소년 소설 주인공은 도완득과 제누와 아몬드의 주인공인데, 다들 유복하지 못한 상황의 위태로운 가정 소속이다. 완득이는 장돌뱅이 아버지와 집 나간 결혼이민자의 아들이고, 페인트의 제누는 부모가 공식적으로 없다. 아몬드의 주인공도 키워주시던 할머니와 엄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지. 그런데 그들에게는 멘토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내미는 어른의 손이 있었다. 완득이네 똥주와 제누의 사감 선생님, 아몬드의 엄마 친구를 자처하는 아저씨. 이 소년들의 이야기가 내심 부러우면서도 또래 소녀의 이야기도 읽고 싶었던 내게 유원은 참 귀한 소녀다.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고, 이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원은 어른의 도움보다는 또래인 수현과 함께, 물론 수현도 사건에서 먼 인물은 아니지만, 길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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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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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목받아야 할 두 가지. 자연과 여성. 우리는 어떻게 수탈되어왔는가. 우리는 어떻게 견디어내는가. 우라는 어떻게 변화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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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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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짐작이 가는데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더디게 읽고 싶은 책이 가끔 있다. 작가가 힘들여 쓴 공이 보이는 -나는 그런 글을 작가의 박음선이 곱게 느껴지는 글이라고 생각하는데-긴 글을 읽을 때 특히 그렇다. 작년 1월에 [올해의 미숙]을 보며, 올해 [천진 시절]을 보며 나는 좋은 책에 감사했다. 작가와 출판사에. 포기하지 않고 완성한 작가와 그 작가를 선별한 안목을 가진 출판사가 모두 좋았다.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정리는 잘 안되었다.

 

나에게는 못된 버릇이 제법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책에서 처음 꽂히는 인물에게 무한애정을 쏟아 붇는 것이다. 대부분은 주인공에 심히 공감하지만, 가끔은 주변인물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어 그 인물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대단히 몰입해서 읽곤 한다. 이 책의 경우,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이 그러했다. 나의 마음은 무군에게 온통 가버렸다. 잘생기지도 않고, 큰 재주도 없지만, 잘 웃고 나에 대한 사랑은 의심할 여지없는 성실한 사람. 가엾게도. 그저 그뿐인 사람. 무군에 대한 뒷이야기를 상아는 하지 않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자전적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대부분 작중 주인공인 자신의 분신을 좀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그다지 눈에 띄는 미모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다른 인물의 대사를 통해 은근히 예쁘다고 하거나 호감을 표하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게 약간 웃기고 귀여웠다. 원로 소설가부터 신인에 가까운 작가들도 조금씩은 그런다.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오는 상아는 웃기지도 귀엽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이 무척 쓰였다. 상아가 고향을 떠나고, 취직을 하고, 무군과 함께 살고, 고향 선배와 친구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덤덤해진 오늘날의 모습에서도 나는 조금씩의 나를 발견하고 좀 당황하고, 걱정되고, 지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공들여서 쓴 글에 진심을 담았기 때문이리라. 상아가 고향을 떠나기 전에 느낀 그 혼란함과 서러움을 우리는 감히 헤아리기 어렵겠지. 자본주의 세상에서 태어나 평생 아파트와 수세식 변기를 당연히 살아온 나도 스무 살과 서른 살의 삶이 당황스럽고 두려웠는데, 공산주의 세상에서 자본주의로, 농촌에서 도시로 건너온 그녀는 오죽했으랴. 날마다 새로운 빌딩이 더 높이 솟는 세상에서 한결같은 사람이 잘 살아내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 상아도 변해야 했고, 상아의 선택이 최선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불가피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천진 시절이 조금은 있다. 상아와 무군이 살던 그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진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속을 다 주기도 하고, 내 감정에 불순물이 섞였을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나의 삶에 대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순수하기에 더 잔인한 시절.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의 내가 참 애틋하고 손 내밀어 토닥이고 싶은 시절. 그래서 상아는 그 시절을 더 묻어버리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천진하던 시절은 스스로 장을 끝맺었으므로. 만약 소설의 상아가 금성이 결혼하던 날 즈음의 자기 모습을 천진 시절의 상아에게 알려주었다면 상아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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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 -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선동열 지음 / 민음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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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이라니. 이 얼마나 도발적인가. 피겨는 김연아, 배구는 김연경이라는데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야구는 김시진이고, 누군가에게는 야구는 장명부나 이승엽, 혹은 박정태나 양준혁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선동열은 훌륭한 야구선수이고 저 말이 틀리지 않지만 수긍하면서도 부루퉁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야구가 최동원이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의 7차전 중에서 4경기에 등판해서 모조리 승리를 안겨준 영웅. 그와 같은 도시에 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자부심이었던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선동열을 대하는 호남 지역 사람들에게도 그는 손기정이나 서윤복에 버금가는 영웅이었으리라. 어린 시절에는 그가 속한 팀이 그다지도 악착같이 열심히 경기해서 승수를 쌓아가는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얄미웠는데, 자라고 난 뒤 80년대의 광주를 알고 나서는 그전처럼 악다구니를 써가며 야유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서럽고 분하고 억울한 누군가에게는 그가 기도이자 의지였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자신을 공인이라고 지칭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공인이 가지는 무게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정치적인 압력에 설자리가 정해지는 아픔도 적지 않았나 보다. 담담한 어조로 풀어놓았지만, 꿈과 나의 거리가 손닿을 듯 가까이 느껴는 스무 살 언저리에 꿈을 접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광의 날도 있었지만 오욕의 날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또 출신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감독을 맡았다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고향 사람들의 응원이 비난으로 바뀌어 폭주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일(이때 나는 그가 계속 그 팀을 맡아주었으면 했다. 우리도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서), 관행에 따라 일처리를 했을 텐데 국회에 가서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에게 들어야 했던 모욕적인 표현(나는 전문가도, 국민의 대표나 심부름꾼도 아닌데 같이 그를 비난했다. 우리 팀에도 병역을 면제받아 마땅한 훌륭한 인재가 있다고 믿었거든. 그 멍청한 모모 선수 대신!). 그리고 가족을 향한 도 넘은 비난(야구팬들이 국회의원 팬들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쪽으로 건 간에 보다 급진적인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까지 영광과 오욕이 함께한 날을 돌아보는 선동열의 곁에 서서 우리도 그의 야구 인생과 삶을 함께 들여다본다, 이 책으로.

그 모든 날들을 지나 이제 한걸음 뒤에 물러서 자신을 담담히 돌아보는 글이 한 권어치나 된다는 것이 부럽다. 그리고 그 글들이 심지어 재미있고 알차다는 것이 샘난다. 느물느물하고 요령까지 갖춘 천재가 다른 편인 것만큼 분통터지는  일이 또 있을까. 건강히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고, 감사할 사람에게는 감사하고, 사과할 사람에게는 사과할 수 있는  마인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말대로 유인구나 변화구가 아닌, 우직한 직구로 인생을 승부해 살아온 것이 잘 드러나는 글을 읽고 나니 아주 오래된 질투와 샘이 조금은 옅어진다.

야구는 열 번 공을 만나도 세 번만 치면 수위타자다. 그리고 희생이 공식 용어로 인정되는 경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상대방이 이기고 있어도 9회 말까지 나의 기회는 주어지고, 스포츠 경기 중 유일하게 감독이 정장 대신 유니폼을 입는 경기이기도 하다. 비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재미있고, 인간적이고, 간단하지만 복잡한 경기. 자신만의 공이나 폼을 견지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게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혹사당해서 은퇴했고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못해서 내리막을 걸었지만 선동열은 달랐다. 그래서 남아있는 투수 가운데 국보급이 되었고, 명성은 전설이 된  것일까. 인간 선동열이 자기 입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래 건강해서 영향력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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