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새우범생 > 춘추좌전에서 배우자

L에게...

네 무사 전역과 복학을 축하한다. 새학기 준비하는 네 모습을 보며 나도 좀 더 신발끈 질끈 묶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전공을 침범(?)하며 외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네가 사학과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래도 청일전쟁 관련한 과제물을 작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네 모습을 기억하면 역시 네 둘레에 흔치 않는 사학도라는 걸 실감한다. 내가 너를 위해 골라본 책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이다.


네게 <춘추>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게 좀 우습지만 나도 중국사에는 적잖은 관심을 두고 있으니 좀 썰(?)을 풀어볼게. 후한시대 역사가 반고(班固)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 춘추의 경우 그 전(傳)이 총 23가(家) 948편에 달한다고 정리했지. 23개의 학파에서 춘추 해석서를 948편이나 내놓았다니 춘추의 인기를 대단했던 모양이야. 사실 여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우리가 춘추 본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1만 6천여 자로 분량이 매우 적고, 그 내용도 소략하다. “So what?”이라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법하지. 결국 너도나도 춘추 해설서를 써냈어.


이 수많은 해설서들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열한 다툼 끝에 세 종류가 명맥을 유지했어. 그 영광의 얼굴들이 바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이야. 세 경전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가 삼국시대 이후에 춘추좌씨전(이하 좌전)이 춘추학을 제패했지. 너도 잘 알다시피 삼국지에서 촉한의 관우가 좌전을 좋아해 전장에서도 좌전을 끼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고사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로지 좌전이 독점적 지위를 누렸어. 우리나라에서 춘추학의 발달이 더뎠던 것은 이러한 독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좌전을 넘어서는 해설서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러한 무관심은 광복 이후에도 다를 바 없어 2005년 자유문고에서 곡양전과 곡량전의 역주본을 내놓은 것이 유일하다. 좌전 편향의 우리 풍토를 투덜거리더라도 좌전이 역사적 사실 해설과 실증적 탐구에 열중해서 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음은 인정해야지. 좌전이 가장 읽을 거리가 풍부한 건 분량 면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여하간 춘추를 놓고 벌어진 현란한 논쟁을 바라보며 춘추시대 여러 나라의 역사서 가운데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노나라의 역사를 경전으로 승격시켜 아낄 줄 알았던 중국인들의 문화의식을 배워야할 듯싶어. 우리의 역사가 간략하다고 한탄하기 전에 유득공이 <발해고(渤海考)>를 엮는 심정으로 매달렸다면 어땠을까. 만약 춘추를 익히는 정성의 반의반만이라도 삼국사기를 위시한 우리 사서들에 대한 주해를 달았다면 어찌 동방에 경전 몇 개쯤 나오지 않았을까 멋대로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과거시험에서 좌전을 단골 시험 문제로 출제한 것은 익히 전해진 사실이잖아. 서로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주창하며 자신의 일을 합리화했고. 약체 중의 약체인 노나라의 역사를 배우려고 우리 선조들이 하얗게 지새운 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이황이 남긴 도서 가운데 주자의 저작과 경전 등 중국서적은 159종인데 조선의 역사, 지리 관련 서적은 1/3 수준인 55종이라고 해. 이이는 <기자실기(箕子實記)>를 지어 중국에서도 전설상 인물인 기자가 조선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을 정성껏(!) 서술하기도 했고. 이러한 모화사상이 17세기 이후 조선 중화주의를 낳는 기초가 되었다지만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지. 오늘날의 잣대로 선현들에게 험담을 늘어놓겠다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 역사에 해설을 붙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투정을 좀 부려보는 건 뒷사람의 특권일지도 모르지.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북방 유목민족들이 하나둘 중국화(中國化)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아름다운 예외였어. 거의 모든 지배계급이 중국화를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도 끝내 중국과는 별개의 주체성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이로워.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한 번 탐구해볼 만한 화두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지배층의 중국화 열망을 막아낸 것은 힘없는 백성의 보이지 않는 저항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자발적 복종의 시대는 지난 만큼 민초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이 땅에 켜켜이 쌓인 지혜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건 우리의 몫이겠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빼어난 기록문화가 조선 이전의 역사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워. 사기열전의 그 화려한 기록들을 보면서 군침을 흘렸듯이 춘추를 질리지도 않고 잘 우려먹는 중국인들의 은근함에 새삼 부끄럽다. 우리 춘추좌전을 함께 나눠 읽으며 우리가 배워야할 점을 찾아보자.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에 분개하기는 쉽지만, 청나라 건륭제 때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발간한 그 치열함을 배우기는 어렵지. 다가 올 한중일 역사 전쟁에 의연히 맞설 수 있는 방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 듯싶어.


좌전에 나오는 구절 중에 문공 3년조 기록인 제하분주(濟河焚舟)을 네게 건네고 싶다. 강을 건넌 다음 배를 불태워버렸다는 말로 배수진과 비슷한 뜻이지. 우리 수험 생활에 필요한 문구다. 잡설이 길었고 뭐든 열심히 읽고 궁리하자.

좌전의 주요 고사를 뽑아 만든 명구집이야. 맛보기로 읽거나 입가심으로 읽으면 좋겠어.

 

 

 

 

동양고전을 부지런히 번역하는 자유문고에서 펴낸 판본이야. 원문에 대한 역주가 비교적 풍부해서 원문에 관심이 많은 경우 추천할 만해.

 

 

 

 

편집디자인이 좋아서 가독성이 뛰어난 판본이야. 특히 권두 해제에는 춘추학에 대한 상세한 해석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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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퍼온글] ‘문학 속의 서울’

# 문학 속에서 본 서울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1960년부터~2000년까지 서울의 모습. 여러 문인들의 작품 속에는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시, 소설, 수필과 같은 작품과 가사와 대중문화로 묘사된 서울의 모습을 만나보자. 이 책 에 쓰여 진 한 구절을 보면 더욱 선명해 질 것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지난 600여 년간 한국 사회의 변동을 꼼꼼하게 기록한 역사 텍스트이기도 하다. 역사 텍스트에는 공식적인 기록과 일상적인 이야기가 공존하지만, 서울의 역사는 공식적인 기록물로서만 존재해왔다. 우리가 문학 텍스트에 형상화된 서울을 읽는 이유는, 마법에 걸린 문학을 통해서 공식성에 가려진 서울의 일상, 삭제된 서울의 구체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프롤로그)


‘문학 속의 서울’


(2007년 2월 23일 세계일보기사)

한국문학 통해 서울의 변천사 들여다보니…


  문학은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예술이다. 가짜인데 진짜 같고, 거짓말인데 현실보다 더 적나라하게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니 말이다. 허언(虛言)을 통해 진언(眞言)에 다다르려는 특성 때문에 문학은 종종 역사를 이해하는 2차 텍스트로 이용돼 왔다. 다양한 역사책들을 통해 1970년대 서울 빈민들의 삶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가짜 이야기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면서 그것을 들여다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문학작품의 내용을 현실과 단순 등치시킬 순 없다. 문학은 역사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사실’을 완벽하게 재현하진 않지만, 거기에 당대의 어떤 ‘진실’이 녹아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학 속의 서울’은 이와 같은 역사와 문학의 접합지점을 부각시켜 한국문학을 통해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기획된 책이다.
개화의 과정을 거친 후 한국문학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했던 시기의 문학작품들 중에서 서울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써내려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원재료의 힘에 있다.


이 책의 기본 에피소드들이 돼 준 문학작품들이 담고 있는 감동과 재미와 공감의 힘, 그것은 이 책 한 권을 엮어 나가는 데 필요한 소중하고도 값진 모자이크 조각들이었다. 거기에 살을 덧붙이는 작업은 물론 필자들의 몫이었다. 문학작품이 내뿜고 있는 진실을 훼손하지 않되 그와 관련된 사실들을 가이드해 주는 것은 단순히 원재료에 양념을 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재조직화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한국문학과 서울의 역사, 이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둘 다 포기하지 않되 이들 사이의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자도, 편집자도, 디자이너도 정신없이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책이 세상에 나와 있다. 모든 편집자들이 그러하겠지만, 책의 출간과 함께 기대도 부풀지만 두려움도 앞선다. 문학이 인간 삶의 밝은 부분보다는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측면이 강하기에 지나치게 무거운 느낌이 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독자들의 눈에 그것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면 그 어두움 속에서 느껴지는 ‘서울살이의 짠함’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한국문학 속에, 그리고 서울의 역사 속에 어려 있는 그것이 조금이라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2007년 2월 23일 경향신문기사)

서울 ‘밑바닥서 하늘까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시대적인 급변을 겪어왔고, 서울은 그 변화의 정중앙에 있던 도시다. 사진 왼쪽부터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홍대 앞, 개발되기 전 난곡, 새롭게 단장된 청계천의 모습.

 

▲문학 속의 서울…김재관·장두식


신기하게도, 혹은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작품은 철저한 허구이면서 한편으로 우리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문학을 통해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 낯선 세상을 만나지만 그곳은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이다. 문학작품은 ‘문학’ 그 자체인 동시에 훌륭한 ‘역사 텍스트’이다. 서울이라는 도시 역시 한국사에 있어서는 거대한 ‘역사 텍스트’다. 600여년간 수도로서 한국전쟁 이후 인구 1000만의 거대도시가 된 오늘날까지 급속도로 진행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말해주는 공간이 바로 서울이다. 저자는 문학과 서울이라는 두 거대한 역사 텍스트를 통해 지난 40여년 우리 시대의 생활상을 조명한다.


1960년대. 서울에는 부자들만의 동네인 성북동이 개발되기 시작한다. 콘크리트 옹벽으로 성을 쌓고 다른 이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동네가 생기면서 공간은 신분적 차이를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성북동에서 평창동, 한남동에서 강남으로. 이때부터 공간은 빈부 격차를 가시화하는 기호가 됐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는 개발에 의해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 애절한 서민들이다.


1970년대. 오직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영자. “배웠다는 사람들이 더 악마구리떼 같은” 식모생활을 견디다 못해 버스차장이라는 새 직업을 구하지만 만원버스에 매달려가다 그만 한쪽 팔을 잃고 만다. 풍요롭게 변화하는 서울과는 달리 영자의 삶은 밑바닥이다. 영자는 외팔이 창녀로 생활하다 어렵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만, 그와의 행복마저도 이룰 수 없게 되자 불을 지르고 죽음에 이른다.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는 당시 서울의 이농민들이 겪었던 최악의 상황을 나타내는 반어적 표현이다.


1980년대. 여동생 융이가 광화문에서 열린 개헌촉진대회에 참가했다 결국 경찰에 연행되고 만다. 어머니는 “서가에서 불온서적부터 치우자”며 나를 재촉한다. 우여곡절끝에 융이가 풀려나자 할아버지는 집안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이중간첩이었고 아버지는 이에 대한 반감으로 철저하게 소시민의 삶을 택했던 것이다. 김만옥의 ‘그리운 거인들’에 등장하는 이 가정은 뒤틀린 현대사의 축소판이요, 당시의 광화문은 민주세력이 집결해야 할 최종 목적지였다.


1990년대. ‘압구정동… 좋게 말하면 이 땅 신흥 자본 상류층의 집단 대명사요, 넘치는 부의 상징이지만 기분대로 부르면 이 땅 끝없는 욕망과 타락의 전시장, 아니 똥통 같이 왜곡된 한국 자본주의가 미덕(?)처럼 내세우는 환락의 별칭적 대명사이다.’ 압구정동 테러리스트는 성도착증 노인, 사치와 향락에 빠진 여대생을 연쇄살인한다. 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는 욕망과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이 밖에도 저자는 다양한 시와 소설, 대중음악의 가사 등을 통해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이면의 우리 모습을 차분하게 복원해낸다


(2007년 2월 24일 뉴시스기사)

서울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문학

 


<사진>은 영화 ‘아이스케키’의 한 장면이다.

 

‘문학 속의 서울’은 한국문학을 매개로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화를 꿰뚫어 보는 책이다. 문학으로 살피는 서울의 역사,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모습이다. 한국문학을 필터로 격변기를 거쳐 간 서울 시민들, 당대의 분위기, 그리고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본다.


‘간다/ 울지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김지하 ‘서울길’중


가난한 고향을 버리고 상경해 비 맞으며 동대문 거리를 걷는 소년, 달동네 약수터에서 삶의 애환을 나누는 여인들, 혹독한 노동 착취에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노동자, 영동 한복판에서 향락과 퇴폐에 찌든 중년 직장인, 그리고 그것들을 관찰하며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잠실은 모래로 만들어진 동네이다. 모래 땅에 모래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둑을 쌓고 그 위에 아스팔트를 깔아 도로를 내기 전에는 범람한 강물이 여름 잠실을 덮쳐누르곤 했었다. 모래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잠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시멘트와 철근이다. 시멘트와 철근을 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모래만 남아 흩날리게 될 것이다. 모래는 모래끼리 아무리 뭉치려고 해도 뭉치지 못한다. 슬픈 일이다.’-조세희 ‘민들레는 없다’ 중


60년 이후 ‘문학 속의 서울’은 우울하지만 매우 활기차다. 그 활기는 서울의 양적, 질적 성장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의 추상적인 정황보다도, 그 상황 속에서 직접 서울의 땅을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형상 덕이다. 다양한 인물 형상과 구체적인 배경들은 서울의 부분이면서 서울의 전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갈등을 견디고 헤쳐 가는 인물들의 악전고투는 세상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발전해야 할 지 암묵적으로 제시해준다.


‘사이렌이 불자 행인들이 걸음을 재촉했고, 완장을 찬 민방위 대원들이 곳곳에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수십 대로 밀려 정차한 버스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주위 행인들이 모두 지하도로 몰려갔으므로 텅 빈 거리로 막 백색의 사이카가 달렸다. 그 뒤로 통제 깃발을 단 군용 지프와 검은 승용차가 따라가고 있었고 민방위 보도 취재반의 방송 이동차가 그 옆으로 천천히 달려갔다.’-강석경 ‘맨발의 황제’중


‘그 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그 거리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것은 단순한 동네 이름이 아니다. 이 땅의 ‘압구정동’이나 ‘로데오 거리’ 또한 단순히 그런 지명을 가진 한 동네를 지칭하는 이름이거나 한 거리의 이름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좋게 말하면 이 땅 신흥 자본 상류층의 집단 대명사요 넘치는 부의 상징이지만, 체면 가릴 것 없이 기분대로 부르면 이 땅 졸부들의 끝없는 욕망과 타락의 전시장, 아니 똥통 같이 왜곡된 한국 자본주의가 미덕(?)처럼 내세우는 환락의 별칭적 대명사이다.’-이순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중


문학작품은 허구다. 하지만 사회의 전형을 묘파하려 한다는 점에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서브 텍스트로서 손색이 없다.


(2007년 2월 23일 한겨레기사)

서울아! 아, 서울아!

 

 

  문학작품 속에 그려진 서울의 모습을 다룬 선행 작업으로는 두 권짜리 단행본 <서울을 품은 사람들>(문학의집·서울 펴냄)이 있었다. 수필가 전숙희, 시인 황금찬, 소설가 김용성, 평론가 김우종씨 등 원로 및 중견 문인 156명이 필자로 참여한 이 책은 대체로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50, 60년대까지의 서울에 대한 문학적 증언이라 할 법했다. 새롭게 나온 <문학 속의 서울>이 그 책과 자매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모와 그에 대한 문학적 대응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김재관씨와 장두식씨가 공저한 이 책은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서울문화예술총서’의 두 번째 권으로 나왔다.


  인용한 대목에 담긴 취지는 두 가지. 하나는 서울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는 것, 또 하나는 공식 기록이 감추고 있는 구체적 진실을 문학 텍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의 서울(과 대한민국)의 변모를 관찰하는 눈에 가장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눈부신 개발과 발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불평등을 담보로 한 성취이기도 했다. 지은이들이 서울을 일러 “물적 유토피아이면서 질적 디스토피아”(프롤로그)라 규정하는 까닭이다.


“간다/울지 마라 간다/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간다/울지 마라 간다/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팍팍한 서울 길/몸 팔러 간다”(김지하 <서울 길> 부분)


시인 신동엽의 ‘서울 사랑’


서울의 개발과 발전은 농촌 출신 사람들의 쇄도를 수반했다. 서울이 발전하면서 그들을 끌어들였는가 하면 그들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서울의 발전이 가속화하기도 했다. 누대에 걸쳐 살아 온 고향과 터전을 버리고 서울로 향하는 이들의 심중에는 설레는 꿈과 함께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고난과 모욕에 대한 두려움과 체념 또한 엄연히 자리하고 있었음이다. 그렇지만 서울은 고향의 순수와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도시이기도 했으니, 시인의 서울에 대한 사랑 고백이 아예 생뚱맞지만은 않은 연유이다.


“그러나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지금쯤 어디에선가 고향을 잃은/누군가의 누나가 19세기적인 사랑을 생각하면서//그 포도송이 같은 눈동자로 고무신 공장에/다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신동엽 <서울> 부분)


사당동 산동네를 배경으로 한 정도상의 단편 <서울, 그 어느 쓸쓸한 사랑>에서도 일용직 건설 노동자, 파출부, 봉제공장 노동자, 버스 안내양 등 힘들고 보수 낮은 일에 종사하는 산동네 주민들(이들은 거개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찾아든 ‘실향민’들이다)은 마을 공동 수도 격인 약수터와 친목계를 매개 삼아 농촌 공동체의 노나메기 정신을 실천에 옮긴다. 그렇지만 대도시 서울의 본질은 역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단절과 비인간화에 있다고 해야 옳으리라. 최인호의 단편 <타인의 방>과 조세희의 <민들레는 없다>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인간 관계의 사막화를 음울하게 묘사한다.


“잠실은 모래로 만들어진 동네이다. 모래 땅에 모래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잠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시멘트와 철근이다. 시멘트와 철근을 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모래만 남아 흩날리게 될 것이다. 모래는 모래끼리 아무리 뭉치려고 해도 뭉치지 못한다. 슬픈 일이다.”(<민들레는 없다> 부분)


박영한·최수철은 ‘층간소음’ 소재로


박영한의 소설 <지상의 방 한 칸>최수철의 <소리에 대한 몽상>은 나란히 아파트 층간 소음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접근 방식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지상의 방 한 칸>에서 주인공인 소설가는 소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방 한 칸을 찾아 서울 변두리와 근교를 샅샅이 훑고 다닌다. 그러나 이런저런 까닭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얻은 김포 어름의 집조차 가구공장이 들어서면서 소음의 공격을 받을 참이다. 결국 그는 소음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소설이 인간의 소음을 담는 한, 소설가는 인간의 소음을 긍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리에 대한 몽상>에는 처음부터 층간 소음에 우호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위층에 사는 ‘칼귀’ 사내가 그인데, 결국은 그의 감화를 받은 주인공 역시 층간 소음의 긍정적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고독한 단독자가 아니라 아래위층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층간 소음을 고통스러워하거나 거꾸로 그것을 즐기는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펼쳐 든 스포츠 신문을 곁눈질하거나 민방위 훈련의 사이렌 소리에 쫓겨 걸음을 재촉하거나 한다(강석경 <맨발의 황제>). “허기지고 지친/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두며/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이리 기웃 저리 기웃/구경만 하다가/허탈하게 귀갓길로/발길을 돌”(박노해 <가리봉 시장>)리는 가리봉 시장과 “졸부들의 끝없는 욕망과 타락의 전시장, 아니 똥통 같이 왜곡된 한국 자본주의가 미덕(?)처럼 내세우는 환락의 별칭적 대명사”(이순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압구정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 또한 서울이다. 이처럼 카멜레온 같고 괴물 같은 서울에 대해 지은이들이 끝내 사랑을 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서울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1960년 이후의 ‘문학 속의 서울’은 우울하지만 매우 활기차다. 그 활기는 서울의 양적, 질적 성장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의 추상적인 정황보다도, 그 상황 속에서 직접 서울의 땅을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형상 때문이다.”(에필로그)

 

‘눈물의 영자’가 ‘바람난 사라’로 - 문학속의 ‘서울사람 변천사’

 



한국 문학사엔 서울 거리를 산책하며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구보씨가 3명 등장한다.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처음 등장했던 구보씨는 70년대에 최인훈씨의 동명 작품에서 부활했고, 90년대 주인석씨의 연작소설에 또 나타났다. 이들 3명의 구보씨는 서울이 공룡처럼 커짐과 동시에 여기에 깃든 사람들의 꿈이 날로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인 김재관·장두식씨가 펴낸 책 ‘문학 속의 서울’(생각의나무 발행)은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모를 시를 통해,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냈다.

 

  문학 속에서 서울의 현실은 대체로 어둡다.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희극의 쾌미보다 더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시, 소설이 절실하게 담고 있는 대도시 서민들의 애환은 독자를 우울하게 할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도감을 주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껴안아 온 서울 사람의 모습엔 한국인의 꿈이 녹아 있다. 문학작품 속에는 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90년대 ‘즐거운 사라’까지 서울의 시대상을 대표하는 여인들의 눈물과 웃음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 1960년대 ‘산업화의 꿈과 그늘’& 70년대의 ‘풍요 속 빈곤’ = 소설과 시에 나타난 60·70년대의 서울은 잘 살기 위한 꿈을 안고 시골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산업화의 상징적 공간이다.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휑하니 바람이 부는, 생존경쟁의 싸움터다.

 

  김승옥씨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65년작)이 산업도시로 진입한 서울 시민의 소통부재와 허무감을 담고 있다면, 신동엽의 시 ‘종로 오가’(1967년작)는 고향을 떠나온 소년이 서울에 와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을 그려냈다. 김광섭의 유명한 시 ‘성북동 비둘기’(68년작)는 요즘도 부촌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성북동이 개발되면서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사람들의 애절함을 ‘비둘기’에 비유하고 있다.

 

  70년대의 서울 풍경을 묘파한 수작으로 꼽히는 최인호씨의 소설 ‘타인의 방’(71년작)은 아파트 생활이 주는 편리함과 더불어 익명성으로 인한 이웃과의 단절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73년에 발표된 조선작씨의 ‘영자의 전성시대’는 시골에서 상경해 식모와 버스 차장을 하다가 왼쪽 팔을 잃어버리고 창녀가 된 영자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조세희씨의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년작)은 도시 하층민들의 삶을 가슴 서늘한 우화로 만들어 이후 200쇄를 찍는 스테디셀러 행진을 하고 있다.

 

◆ 1980년대 ‘시대의 우울’& 90년대의 ‘바람난 도시’ = ‘꽃이라고 하더라도 꽃 같지는 않게/신문 같은 신문 같지는 않게/한국 같은 한국 같지는 않게/시 같은 시 같지는 않게.’

 

  오규원 시인의 작품 ‘서울·1984·봄’은 신군부의 폭압에 바짝 엎드린 서울 시민의 모습을 이같이 표현했다. 오 시인이 이 작품을 90년대에야 발표한 것은 물론 정치상황의 변화를 반영한 것. 86년에 나온 강석경씨의 소설 ‘숲 속의 방’은 반독재 투쟁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대학생들의 휴식처가 종로 2가 선술집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양귀자씨의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86년작)은 서울에서 밀려나 교외에서 공동체를 이룬 변두리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장정일씨는 시‘중앙’과 ‘나’(88년작)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앙, 즉 서울 지향 의식을 통렬히 풍자했다. 

 

  90년대의 서울을 문학 작품은 ‘바람난 도시’로 묘사한다. 91년에 나온 마광수씨의 소설 ‘즐거운 사라’는 여대생의 남성 편력을 통해 신흥 상류 지역으로 부상한 강남권의 기묘한 성 풍속을 드러내고 있다. 이순원씨의 소설‘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92년작)는 압구정동의 세태를 통해 천박한 자본주의의 거품에 빠진 서울의 모습에 경고를 가한다. 97년에 나온 이남희씨의 소설 ‘플라스틱 섹스’는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배경으로 여주인공의 동성애 공표(커밍아웃)과정을 다룸으로써 변화하고 있는 서울의 내부를 들여다봤다.

 

  ◆ 2000년대 ‘희망의 빛을 찾아’ = 김훈씨의 단편소설 ‘배웅’은 2003년도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중년 남자 김장수가 주인공이다. 식품회사 대표였던 그는 외환위기 사태 이후 택시를 몰게 됐는데, 사납금 채우기에 언제나 급급해한다. 그에게 서울은 미래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도시다.  공지영씨의 베스트셀러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년작)에서 서울은 성폭력과 빈부갈등이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소돔과 고모라’다. 이 비열한 도시를 누가 구원할 수 있을까. 소설은 평생 감옥에 갇힌 죄인들을 위해 봉사한 모니카 수녀의 헌신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를 통해 서울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파멸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빛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2007년 2월24일 한국일보기사)

낭만과 우수 그리고 욕망이 버무려진… 문학 속의 서울

 
                             

지금은 이름만 남은 3ㆍ1 고가 도로.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한양과 경성, 그리고 서울. 지난 600여 년간 한국 사회의 격동이 가장 정치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텍스트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경기도 전체가 수도권으로 편입됐다고 할만큼 저 곳의 놀라운 포식성은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대적 성감대로서의 문학은 서울의 격변을 어떻게 징후적으로 포착해 왔을까. 문학이 윤리적 모색을 본질로 한다고 할 때, 우리 문학은 격변을 증언하는 최전선에 있다.

 

국문학자 김재관ㆍ장두식 씨는 신동엽의 <종로 오가>와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를 기점으로, 그 풍경과 서정을 기록해 왔다. 먼지만 날리는 고향 땅을 등지고 풀칠이나마 할 요량으로 온 서울 땅에서의 극빈과, 삶의 보금자리를 뺏긴 인간의 모습으로 문학은 서울을 증거했다. 최인호의 <미개인>이 1970년대 중산층의 속물성에 대한 슬픈 자화상이라면, 최인훈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했다.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 시대>에서 서울은 외팔이 창녀에게 비극을 안겨준 범인으로 그려졌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는 약자들을 잡아 먹는 비열한 포식자로 등장한다. 박완서의 <꽃을 찾아서>는 1980년대 ‘광주’라는 암운 아래서 광풍처럼 막 번지던 강남 개발의 모습을 증언한다. 본문의 친화력은 대중문화 속에 나타난 서울을 논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1970년대의 대중음악에 나타난 서울을 논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낭만적 유토피아와 우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1970~80년대의 유행가. 양병집의 <서울 하늘>,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혜은이의 <제3 한강교> 등 당대를 풍미했던 가요가 갖는 의미가 예술사적으로 분석돼 있다.

 

한편 시인들은 권력과 금력에 휘둘리는 서울의 격변을 바라보며 저항의 언어들을 쏘아 올렸다. 김지하의 <오적>이나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절망의 서울상을 포착했다. 장정일은 시 <서울에서 보낸 3주일>에서 ‘비에 젖은 서울의 쌍판은 마스카라 번진 창부 같구나’라고 읊었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는 포장된 행복 안에 불행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음을 문학은 증언했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천국인 서울(김주영의 <서울 구경>), 성 정체성의 극심한 혼란(이남희의 <플라스틱 섹스>), 거품처럼 끓어 나는 욕망 공간(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나이트클럽과 비밀 요정이 지배하는 곳(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등으로 1990년대 이후의 서울은 문학을 통해 변주된다.

 

우리 시대 문학은 현재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압구정동에 이르러 책은 이렇게 말한다. “빈부의 양극화가 한국의 주요한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오늘도 우리는 ‘욕망이 평등한 사회’에서 꿈을 꾼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강박 관념속에서….”

 

수록된 글은 단국대 교지에 실렸던 연재물이다. 군더더기 없는 서술과 대중적 친화력은 언론의 손길을 거쳤다는 점에도 기인한다. 두 저자는 이 대학 동양학연구소의 연구 교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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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기인 > [퍼온글] 문학과 철학-유종호, 박이문, 김우창

 

유종호(이하 유) : 오늘은 '문학과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두 분 선생님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왼편에 앉아 계신 분이 박이문 선생이십니다.(함께 박수) 우리나라에는 무주택자들이 많습니다. 웬만큼 살면 보통 집이 한 채씩 있는데, 그 이상으로 살면서 집이 서너 채씩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이문 선생은 학위가 서너 개가 됩니다. 그러니까 1가구2주택식으로 문학에도 학위가 있고 철학에도 학위가 있습니다. 그것도 문학은 프랑스에서 철학은 미국에서 수여를 해서 보통 사람들을 기죽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나오셔서, '문학과 철학'이라는 제목의 연사로서는 더 이상 적합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최적임의 인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저서를 가지고 계시고 또 미국에 시몬스여대라고 하는 보스턴 근처의 명문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셨습니다. 요즘은 연세대학에서 특별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고려대학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김우창 선생이 나와 계십니다. 이전에 한 번 나오셨는데, 오늘 이 자리에는 꼭 모셔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모셨습니다. 윌러스 스티븐즈라고 하는, 매우 철학적이고 어려운 미국 시인을 연구하셨고 문학 이외에도 철학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 방면에 조예가 깊으십니다.


철학과 문학은 상당히 근친성이 많은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이자 동시에 문학자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르트르도 그렇고, 또 어떻게 보면 니체 같은 사람도 시인이면서 동시에 철학자이고, 그래서 근친성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옛날부터 그리스에서도 철학과 시가 어떤 경쟁 관계에 있다고 해서 플라톤 같은 사람은 철학이 시보다 한층 더 우위에 속한다, 시는 철학에 비해서 조금 낮은 차원의 것이라는 얘기를 해서 철학과 시의 관계, 철학과 문학의 관계는 친연성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두 분 선생님께서 어떻게 철학과 문학을 같이 접하게 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박이문(이하 박) : 저는 제대로 문학도 못하고 철학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직업상으로 문학을 하고 철학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고 불편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은퇴하면서 상당히 자유롭게 해방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처음에 문과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문과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입학을 앞두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의 경우는 전연 주저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학교 1,2학년 때부터 시인이 된다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 시인만 된다면 죽어도 그만이다 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해방 직후에 서울에 와서 서점에서 시집을 보게 되면, 나는 시집을 언제쯤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도 친구들이, 네가 시집을 엮으면 내가 내주겠다고 했을 정도이지만 그 당시 시집 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시인(작가)이 되고 싶었냐 하면, 제가 어려서부터 주위의 삶의 모습을 둘러보면서 상당히 불편함을 느꼈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즐거움이라든가 놀라움보다도 어려운 일이고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비교적 지방에서는 고통 없이 지냈지만 관찰하는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삶에 있어서 부족한 무엇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시라는 하나의 형태에서 발견할 것 같고, 잘 모르지만 나도 그런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주저없이 문과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약간의 주저는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가 6년 졸업이었는데 3,4학년 때부터 알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된 철학적인 책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많이 뒤져보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는 문학을 통해서 채워지지 않는 여러 가지 정서(연애, 실연)가 문학적인 욕망으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시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당시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령, 나의 시는 내가 진심으로 고생하면서 쓴 시인데 좋다고 하는 사람이 없고 왜 김소월의 시는 뜨거운 말도 아닌데 좋다고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을 조금 분명하게 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당히 추상적이고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모든 것을 분명히 설명해보고 싶다는 철학적인 욕망이 일어나서, 맞지 않는 양면의 세상을 보는 두 가지 욕망이 양쪽으로 갈라진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세상을 분명히 보자, 끝까지 캐보자, 논리를 따져보자는 욕망, 가장 궁극적이면서 지적인 욕망이 철학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욕망이라면, 거꾸로 뜨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그런 시적인, 예술적인 욕망이 문학적인 욕망입니다. 그 두 가지 욕망을 보면 한편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인 냄새가 안 나는 문학작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 한 편을 쓰더라도 거기에는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담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철학적 사유는 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수업 시간에도 시를 쓸 정도로 문학에 도취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뭔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격동기에 우리가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찾고자 하던 저의 욕망이 철학적인 욕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불문학과를 졸업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불문학하는 것이 제일 화려하다고 생각하고 프랑스를 가장 멋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상놈 같고 구라파는 양반 같은 편견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으로 불문학을 하게 된 것은 저의 큰형이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법과대학을 나왔는데 많은 문학 서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시를 쓴다고 했는데 잘 안되었고, 억지로 문학의 학위를 끝냈고, 세상을 알아보자, 세계를 밝혀보자 라는 욕망에서 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을 하면서 교수가 되겠다는 직업적인 욕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없이 먹고살려니까 교수가 되고 그러다 보니까 평생 철학 교수로 있었습니다.


: 김우창 선생께서는 아주 방대한 양의 철학적인 책을 많이 읽으셨는데, 처음 철학책을 읽으신 얘기라든가 철학에 매료된 얘기를 조금 해주시지요.


김우창(이하 김) : 방대한 철학책을 읽은 것같은 인상을 주는 재주가 있어서 읽은 것같지, 실제로 읽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박이문 선생님께서 철학과 문학에 대한 깊은 생에 있어서의 신비적인 불이(不二)를 정열적으로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렇게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학을 하면서 일생을 보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후회스럽고 공연한 것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다닐 때,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 읽은 것인데, 한정된 돈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 하나를 사면 다른 것을 못 사기 때문에 주인공이 여러 가지 많은 것에 대해서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다 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뭘 했어도 후회는 했을 것 같지만 문학을 선택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박이문 선생님처럼 자전적인 얘기를 좀 하자면, 고등학교 때 문학책도 읽고 철학책도 읽고, 우리 세대가 일본말을 조금 할 줄 아는 마지막 세대니까 일본말로 된 책도 읽고 남이 못 읽는 것을 읽는 재미로 읽은 책도 있습니다. 제가 정치학과를 들어가서 1년을 다녔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해야겠다고 해서 철학과를 갈까 문학과를 갈까 궁리를 하다가, 철학하는 사람은 머리 기르고 이상하게 다니는 것이 너무 싫어 보여서 정상적인 복장을 하고 다니는 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철학하는 사람이 그런 경향이 좀 있었습니다. (박 : 저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함께 웃음) 그래서 결국 문학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외적인 것도 있었지만 사실 자기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 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왜 제가 문학하는 사람이 되었고 문학 선생이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때 그 외면적인 이유로 문학을 했는데, 또 달리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그 당시 철학도 그렇고 다른 책들을 읽어봐도 심금에 오는 글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 작품을 읽어도 쉽고, 제가 대학 다닐 때 실존주의가 유행했는데 실존주의는 철학이지만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면도 좀 있어서 철학보다 문학이 좀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철학이 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였는데 과학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것저것을 해봤기 때문에 논리적인 것이 더 많은 철학이 더 낫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또 그게 뭔가 실감이 안 난다는 느낌을 가졌고, 제가 박이문 선생님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지만 저희도 우리 역사가 복잡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해방 전에 초등학교 다니고 해방 후에 중학교 들어가서 다니다가 6.25 전쟁 일어나고 군사 독재가 있었고, 이러니까 모든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듣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반공을 국시로 하는 식의 철학 자체도 상당히 추상적인 것 같아서 언어로 하는 문학이 더 낫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 언어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보다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는 것이고, 또 달리 얘기하면 우리가 마음 속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밖에서도 정당한 소리가 되는 것이 문학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내면의 소리가 곧 외면의 소리가 되고, 거창하게 릴케 식으로 얘기하면, '세계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내면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고 자기 시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서 느끼는 것이 밖에서도 정당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학에는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구질구질한 얘기를 하면서, 남에게 내놓는 것은 구질구질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속에 느끼는 것이 당신에게도 올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하는 것일 겁니다. 내면적인 소리가 외면적인 소리와 일치하는 세계, 추상적인 것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는 세계가 문학 속에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고등학교 때 물리학, 수학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런 것보다는 철학, 철학보다는 문학, 이런 식으로 흘러흘러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 아까 불문과가 화려해 보인다고 하셨는데, 영문과 들어가기보다 쉽지 않았나요?(함께 웃음)


: 아니죠. 영문과는 싱거운 사람들이 하는 거지요.(함께 웃음) 프랑스 문예가 그림이나 미술에서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쉬르리얼리즘, 다다 등이 다 프랑스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다리도 런던보다는 예쁘고 그렇습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이렇다할 음악이 없지 않습니까?(박 : 예, 그렇긴 하죠.) 문학과 철학의 친연성이나 근친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 철학과 문학을 얘기할 때, 철학과 문학을 각각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전연 다른 얘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텍스트들, 가령 파스칼의 {팡세} 같은 작품은 문학사에도 나올 수 있고, 철학사 혹은 사상사에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령 성서라든가 불경 같은 경전도 어떤 면에서는 보기에 따라서 은유적인 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쓴 글을 분류하는 것이 엄청나게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학이다, 아니다 라고 하지만, 어떤 텍스트를 보면 문학으로 읽어야 할지,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비문학으로 읽어야 할지가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최근에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해체주의니 하는 말들이 많이 나와서 미국에서도 리차드 로티라는 철학자가 왔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요새 얘기하기를 문학과 철학은 구별이 안된다는 얘기가 아주 강하게 주장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철학적인 차원에서 주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주장의 근거가 상당히 막역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미술사에서 뒤샹의 변기가 있지 않습니까? 대리점에 쌓여 있는 변기와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변기는 전연 형태나 구조가 같은 복사물이니까 생산물로서는 같지만, 뒤샹이 갖다 놓은 변기는 굉장히 중요한 예술 작품이라고 하고 다른 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고 분류합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많은 경우에 어떤 것은 처음부터 예술 작품으로 봐야 된다는 기호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으로 봐서, 눈으로 읽어서 문학과 철학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기에는 어떤 텍스트인지 구별이 안 되고 실제 물체로서의 집합으로는 똑같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떤 변기는 예술 작품이 되지만 어떤 변기는 예술 작품이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문학과 철학은 분류상에서 구별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을 문학이다, 철학이다 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작품을 쓸 때, 자기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깊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느낌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철학적인 욕망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문학뿐 아니라 예술 작품은 일종의 철학적인 요소가 있고, 철학적인 욕망이나 필요에 의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평이라든가 미술평을 보면, 이것은 우주의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다, 현대의 부조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것이 전부 철학적인 언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떤 것이 철학인지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철학은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철학과 문학은 서로 뗄 수 없지만 반드시 떼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일반적인 진리라든가 가장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서 근본적인 명제를 언급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철학과 예술은 진리의 문제를 추구하는 점에 있어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 철학자가 예술가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가장 투명하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냥 느낌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밝히고자 하는 것이 철학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석적이고 조직적입니다. 수학적인 욕망, 물리학적인 욕망, 과학적인 욕망이 철학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을 분명히 설명하고 밝혀서 이론화하려는 욕망이 철학자의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흐릿하게 하면, 그것은 철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상당히 분석적이고 추상적입니다. 그런데 예술적인 표현의 토양은 분석적이 아니라 상당히 감성적이고, 종합적입니다. 일부러 흐리멍텅하게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처럼 해야 됩니다. 분명하게 한다면 시나 문학이 아닙니다. 가령 분명히 쓴 작품을 시라고 읽고, 분명한 관점에서 그 작품을 해석할 때에는 문학적인 해석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건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과 요청, 조건은 철학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욕망과 한편으로는 양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가면 학생들이 성경을 많이 공부하는데, 종교적인 교리로 공부하는 것보다 많은 경우에 문학으로서의 성경이라는 강의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문학책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문학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서뿐만 아니라 모든 신문 기사도 그렇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어떤 작품의 총체를, 하나의 통일된 무엇을 문학 작품으로 보느냐, 철학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그냥 눈으로 보아서 되는 게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의해서 구별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뒤샹의 변기는 물질로서는 똑같지만 그것을 어떤 관점이나 맥락에 의해서 쳐다보느냐에 따라서 문학적인가 아닌가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A라는 작품을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고,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달라지는 것이지, 구체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내용의 차원에서 구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이론입니다. 그 이론을 양상론이라고 하는데 어떠한 양상에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술이 무엇이고, 문학이 무엇이고,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철학적인 것입니다. 양상이라는 것은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가령 꽃은 빨갛다 라는 문장이 있다면, 그것의 현재적인 양상, 칸트가 얘기하는 것인데 꽃이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이 어떻다는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주장인 것입니다. 거꾸로 사실이 아니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꽃은 빨갛게 보일 수 있다 라고 할 때에는, 내 말이 맞다, 틀리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가령, 꽃은 빨갛게 보일 수도 있고 파랗게 보일 수도 있다고 할 때에는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건적인, 가상적인 관점에서 '볼 수가 있다'는 가능성은 세계를 보는 가능한 틀을 제공하는 것이지, 사실이라고 확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렇다고 하는 단정적인 명제와 '볼 수 있다' 라는 가설적인 명제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 것을 양상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정언적 양상, 개연적 양상, 필연적 양상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작품을 문학 작품이냐 철학적 서적이냐 라고 할 때, 그것을 그냥 봐서는 모릅니다. 철학적, 역사적인 배경, 어떤 관점에서 어떤 양상으로 그 저서가 제출(제안)되었느냐 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결정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문학적인 역사와 논리적인 관계 같은 것을 아는 틀에서만 둘의 관계가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 박이문 선생의 양상론을 비판하든가, 아니면 김우창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문학과 철학의 친연성 혹은 차이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 박이문 선생님은 철학을 하시니까 개념적으로 정리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고, 문학하는 사람은 대개 어물어물 불분명하게 얘기를 하니까, 철학하는 이는 논리적 명증성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이고, 문학하는 사람은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니게 얘기를 보통 합니다. 양상론과도 연결되는 게 있겠지만, 철학과 문학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가, 같은가 라는 것을 제 생각을 중심으로 보충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철학은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문학은 원리로부터 벗어나서 원리에서 떠난 잡다한 경험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하나에 관심이 있고, 문학은 많은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라는 것은 원리인데, 원리라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타당한 것을 얘기하는데 반해서, 잡다한 것은 결국 같은 원리에서 나오더라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리 주변의 사실, 잡다한 일상사에 대한 문제를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인 사건에 관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학의 기본적인 양식이라는 것은 서사, 즉 얘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갔더니 마침 누구를 만나서 라는 식으로 주로 사건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신이 그 사람을 여기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 인간의 우연적인 만남은 없는 것이고, 그것은 필연적인 인과 관계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는 식으로 원리적으로 사건을 떠나서 얘기하면 철학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이 잡다하게 일어난 일들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종합적인 원리가 무엇인가 라고 늘 생각합니다. 문학은 많은 데에서 하나로 가려고 얘기하는 것이고, 철학은 하나로부터 많은 것으로 내려와 보려고 한 원리를 가지고 많은 것을 설명해 보고자 하는 것인데, 즉 방향이 다른 것이지 근본적인 관심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윤리적인 문제,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이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얼마전까지 미국 철학은 매우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문학에서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아까 박이문 선생께서 파스칼을 예로 드셨는데, 파스칼의 {팡세}는 문학인 것 같기도 하고, 철학인 것 같기도 합니다. 좀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 같은 것도 철학적인 방법에 관한 얘기이지만, 내용에 보면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다가 겨울에 방에 앉아 있는데, 난로는 따뜻하고, 이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어떤 공부를 했는데, 다 별로 재미를 못 봤고, 결국 믿을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사실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 같은 철학적인 논설도 이야기 비슷합니다. 이것이 불문학의 특징(전통)인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 다닐 때 불문학이 상당히 부러웠는데, 영문학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저는 영문과를 다녔지만, 소설이면 소설, 시면 시와는 별로 관계없이 철학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같은 코스에서 취급하는 법도 없고, 같은 역사책에서 다루는 법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흄과 핸리 휠딩을 같이 다룬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 밑에는 이런 관계들이 있다고 들춰내는 것은 있지만, 영문학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문학에서 파스칼도 그렇고, 데카르트도 그렇고, 몽테뉴의 대표적인 {에세이}도 문학인지 철학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문학과 철학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프랑스가 가진 특별한 전통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또 유럽 전체에 있어서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내려오는 하나의 새로운 문학사적인 양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문학사적으로도 특별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유럽 사람들이 17세기 이후에, 어떻게 해서 경험적인 사실들이 하나의 철학적인 원리에 수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학이라는 학문도 생기고, 미학에 관한 서양 철학에서의 중요한 저서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 바움가르텐의 서적 등에서부터 미학을 철학에서의 문제로 삼은 것 같습니다. 철학에서 우리가 잡다하게 생각하는 감각적인, 경험적인 사실들이 어떻게 하나의 원리 속에 이해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유럽의 철학과 문학에서 어떻게 해서 경험적 사실이 하나의 통일된 원리 속에 수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철학사나 문학사에서 특별한 현상이기도 하고, 철학이나 문학의 중심점이 옮겨갔다는 얘기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철학이라는 것을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거룩한 말씀으로 인생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개념을 풀어주기도 하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만한 거창한 말들을 설명해주고, 논리적인 관계도 지키면서 설명해주는 것이 철학이 하는 일이었는데, 데카르트, 몽테뉴, 파스칼을 통해서 철학의 중심은 개념적 분석에서부터 의식의 통일성으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 같은 사람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하는 유명한 말은 의식이 굉장히 중요해졌다는 것이고, 몽테뉴에서도 수필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존재로서 파악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의 관심은 세상 만사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지만, 또 자아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냐 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몽테뉴는 굉장히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아라는 것, 자의식이라는 것을 하나의 원리로 해서 잡다한 것을 설명하려고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념이나 원리가 아니라 움직이는 자아(자의식)를 가지고 잡다한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철학이 훨씬 유연해집니다.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하면 문제가 많은데, 움직이는 의식이라는 것은 늘 대상 세계에 대해서 열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 세계의 잡다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나 파스칼도 그렇고, 이런 전통이 계속 되어서 문학에서 가령 프루스트 같은 사람의 작품은 굉장히 문학적인 얘기지만, 철학적, 심리학적인 반성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재미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느릿느릿 움직이니까 너무 관찰을 많이 하고 거기에다가 개념적인, 심리적인 자기 반성을 많이 하다 보니까 재미가 없어지긴 하지만, 그게 의식의 움직임이 많이 보입니다. 20세기 초에 서양 문학에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소설 테크닉으로도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의식으로 철학의 중심이 옮겨오면서 하나의 통일된 의식 속에 잡다한 경험을 통합할 수 있느냐 라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철학적인 소설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얼른 보기에는 철학적인 소설들이 아니지만 밑바닥에는 사실 철학적인 충동이 담겨 있는 소설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사에 있어서 특이한 현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잡다한 인생을 경험하면서 이것을 통합하는 하나의 원리가 무엇인가, 하나의 통일된 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 하나의 통일된 의식을 가지고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을 설명하려는 특히 현상학에서 그것이 많이 드러나는데, 일과 다를 합쳐서 그것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보려는 철학적인, 문학적인 충동은 서양사에서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문학과 철학이 그렇게 존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령, 이퇴계를 읽으면 아무 문학적인 재미가 없습니다. 퇴계의 성리학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얘기도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몸을 단정히 하라는 추상적인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이지, 이야기 차원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논어를 보면, 공자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내가 상가집 개 같다 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공자라는 사람도 이런 느낌을 가졌구나 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문학적으로 호소하는 것들이 있긴 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실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수라는 강에 가서 목욕하고, 비파나 뜯으면서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보면, 공자의 내면적, 감각적, 경험적인 사실이 논어에 나와 있지만, 다른 특히 신유교, 성리학, 주자학은 다릅니다. 퇴계나 율곡을 보면, 철학은 도학이니까, 도학 군자들이 하는 것이고, 허튼 얘기는 공부 심각하게 하는 사람이 읽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플라톤의 글을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플라톤은 시를 심각하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안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볼 때, 몽테뉴, 파스칼, 데카르트를 한 쪽으로 하면서, 프루스트나 영국의 제임스 조이스라든지 미국의 헨리 제임스 같은 사람들의 철학적인 소설은 매우 특이한 역사적인 현상이고, 문학과 철학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해왔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보태서 하나를 얘기하자면, 문학이라는 것은 이야기 재미인데, 무엇 때문에 이야기를 하느냐 라고 하면, 답변하기 곤란한 것이 많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하나의 원리를 내놓아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서양 근대소설에서는 그 원리로써 형식적인 정합성이라든지 의식의 단일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숨은 원리들이 나타나게 되고, 동양뿐만 아니라 비서양 세계에서는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인생을 단정하게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갖다 붙여서 {춘향전}은 외설스런 이야기도 있고, 잡담이나 농담도 많은데, 정조를 지키라는 것이라고 주제를 붙입니다. 이야기 재미로 한 것에다가 어떤 철학적, 윤리적인 의미를 가짜로 갖다 붙인 경우도 굉장히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세계적으로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지, 서양에서의 파스칼의 경우는 서양적인 특이성을 얘기하는 것이지, 철학과 문학은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옛날에 니체 전기를 읽어봤는데, 니체의 {비극의 탄생} 같은 것은 아포리즘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자기 딴에는 체계적으로 글을 썼는데, 나중에 아포리즘 같은 것이 굉장히 많고, 단편적인 것이 많이 나오는 책을 썼지요. 그것은 몽테뉴와 라 로쉬푸코의 글을 읽고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평전을 쓴 사람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프랑스 문학이나 철학을 말씀해주셔도 좋고, 체계적인 철학자와 비체계적인 철학자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 니체의 글이 문학성이 있다고 해서, 그의 저서를 문학서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가지고 있는 수사학적인 멋있는 말, 발랄한 표현이 내용과 동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니체의 글이 문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표현의 발랄함, 신선성, 참신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한, 종교에 대한, 신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철학적인 얘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붙잡는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철학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철학이 추구하는 목적과 문학이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하는 것은 문제를 가장 일반화해서 체계적으로 설득, 설명, 입증하려고 하는 담론이나 텍스트에 초점이 갈 때에 그것이 철학적인 것이고, 거꾸로 사람을 홀리거나 놀라게 하거나, 경이롭게 하거나 일상적인 생활과는 다른 것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잠깐 화제를 돌려서, 책을 굉장히 많이 내셨고 시집도 많이 내셨습니다. 그런데 대개 시집을 내는 철학자들이 분석철학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박이문 선생을 굳이 우리가 구별하자면 분석철학자이신데, 어떻게 시를 쓰는지가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시의 언어와 철학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조금 말씀해 주시지요.


: 언어의 표현 방법에 대해서 초점을 두는 텍스트가 문학적인 것이고, 일반적인 명제에 대해서 초점을 두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적, 문학적인 언어는 가능하면 새로운 것, 놀라운 것을 말하는 것이고, 즉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도 다른 말로 바꿔서 신선하게 표현을 하고자 하는 느낌과 생각이 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문학적인 언어의 호소는 언어의 의미를 감성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말이라도 추상적인 사랑이라는 말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사건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문학적인 언어이고, 철학적인 언어는 추상화된 이성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진리는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어야 되지, 감각적인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이 시인을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예술가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자꾸 헷갈리게 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이데아를 복사하기 때문에 예술적인 표현들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얘기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느낌이나 지각이 아니라 이성에 의한 직관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 자신의 관점에 의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플라톤이 예술을 잘못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문학적인 언어를 쓸 때에는 다원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불투명하게 쓰는 편입니다.


: 김우창 선생께서도 시의 언어와 철학적인 언어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유종호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로쉬코프처럼 단편적인 종류로 쓴 철학과 체계적인 철학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조금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사람이 쓰는 철학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글쓰기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이 우화인 것 같습니다. 농부에게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더 좋은 소냐 라고 물으니까, 귓속에다 대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물이라도 함부로 남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얘기하면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자상스럽게 생각하면서 느낌을 가지고 사물을 대해야 된다는 우화가 들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이야기들에도 그런 글들이 있습니다. 우화라는 게 상당히 원형적인 글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철학도 포함하고, 문학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얘기들도 우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딱 부러지게 좋은 우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할 때, 얘기이긴 하지만 얘기 안에 도덕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사실 이것이 상당히 원형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얘기를 하는 것은 얘기 재미로도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 있어서는 뭔가 사는 데 보탬이 될만 하니까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천적인 교훈을 가진 얘기를 전달해 주는 게 우화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화의 힘이라는 게 굉장히 큽니다. 이솝 우화를 지금도 읽고 있고, 성경을 가지고 신학도 만들어 내고, 신앙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성경에 들어 있는 여러 우화적인 것이 중요하고, 동양에 있어서도 사실 그렇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글이라는 것이 전부 우화는 아니지만, 아까 퇴계 이야기를 했지만, 퇴계 같은 사람이 쓴 글에도 중국 어디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했습니다 라는 식으로 사례를 들고 교훈을 끄집어냅니다. 그걸 계속 끌고 나가면서 철학 논의를 전개하고, 임금님께 간하는 상소도 합니다. 그래서 우화라는 것이 얘기이면서 도덕적 내용을 가진 중요한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어느 문화나 전통에서도 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우화는 도덕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철학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철학적이라고 할 때의 철학은 윤리학적인 관심을 가진 실천 철학입니다.


그러나 현대 철학의 관심은 실천적인 것보다는 진리의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에 참여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고,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은 이차적인 관심밖에 되지 않습니다. 니체의 경우에 잠언적인, 경구적인 것도 많이 있지만, 실천적인 내용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리에 관련된 발언이 간접적으로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는 없다, 진리는 다 거짓말이다, 진리는 다 권력의 편이다, 진리는 엉터리다 라는 얘기까지도 진리에 관한 발언입니다. 현대 철학이라는 것이 진리에 관한 관심을 증대시키면서 우화적인 전통으로 연결해서 생각하면 철학으로 바뀌게 되었고, 진리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강하지 않은 채로 실천적인 관심을 가진 것이 우화로 남았고, 또 거기에서 진리라든지 도덕이라든지와는 거리가 먼 감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 문학적인 언어로서 성립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학이라는 것은 대개 그러한 부분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니체도 그렇고, 로쉬코프도 그렇고, 잠언적인 것이 철학이냐 문학이냐 하는 것은 길고 짧은 것도 물론 관계가 있고, 논리적으로 하나를 가지고 계속 전개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에 대한 발언에 관계되어 있느냐, 실천적인 내용만을 가지고 있느냐, 또는 감각적인 경험에 관계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진리에 관계된 내용이 들어 있으면 그것은 철학적인 것이 되고, 주로 감각적인 것, 실천적인 것에 관계되어 있으면, 윤리학이나 문학의 도덕적인 영역에 대한 발언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또 우화를 다시 생각할 때, 우화에서는 어떤 교훈을 끄집어냅니다, 옛날에 어떤 유명한 점쟁이가 있었는데, 뭐든지 안 보이는 것을 척척 잘 맞춰서 쥐를 통에다 넣어서, 쥐가 몇 마리냐고 원님이 불러서 물었더니, 다섯 마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세 마리밖에 넣지 않았는데, 점쟁이가 다섯 마리라고 얘기하니까 '이놈 고약한 놈이다' 라고 해서 결국은 점쟁이에게 형벌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점쟁이를 죽이고 나서 문득 생각이 들어서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가 두 마리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급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면서 교훈을 만드는 것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냐 하면, 도덕적인 교훈도 있지만, 사람 머리의 재치에 대해서 상당히 감탄을 하게 됩니다. 잠언 같은 것을 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거기에 들어 있는 예지 때문에도 좋아하지만, 재치가 있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사람 마음의 반짝 빛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철학하는 사람은 거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재치가 번뜩이는 것, 사실이 맞든지 안 맞든지 간에 농담이라도 기발한 농담을 하면, 그런 마음의 번뜩임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줄여서 얘기하면, 진리에 관심을 많이 가져서 진리병에 걸린 사람들이 철학하는 사람들이고, 진리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학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저는 명료하게 논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시를 쓰는데, 시를 쓰면서는 억지로 말이 안되는 것을 쓰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한편 수상 같은 수필, 하이데거의 [숲속의 오솔길] 같은 것을 보면 그것이 문학인지 철학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한편으로는 투명하게 해서 세상을 알고 느끼는 것이 전제가 될 때, 그것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철학적인 요청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산다는 것, 경험한다는 것은 논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시를 쓰면, 철학에서 담지 못하는 개인적인 경험, 느낌, 생각 등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도 아니고, 시도 아닌 것이 있을 텐데, 그래서 다른 수필 같은 것, 가령 몽테뉴 식이나 하이데거 식의 수필을 써보려고 노력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명상의 공간} 같은 글을 썼습니다. 거기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한 경우가 있어서 칼럼 같은 것도 많이 쓰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 하는 것 같지만, 한 장르로는 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추상화된 텍스트 속에서 벗어나서 하고 싶은 얘기들이 시적인 언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 여기에 계신 분들이 대개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들인데, 문학을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철학책 같은 것이 있다면, 어떤 책을 권고해 주고 싶으신지요.


: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데리다가 대표적이고 적극적으로 차이가 없다, 다 똑같다고 얘기합니다. 마찬가지로 문학이냐 시냐 소설이냐 하는 구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데리다가 뒤죽박죽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이 틀린 것은 기혼자나 미혼자의 구별은 눈에 보이는 구별이 아니라, 제도적인, 관념적인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책을 도서관에 정리할 때, 문학 서고에 넣느냐, 철학 계통의 서고에 넣을 것인가 라고 할 때, 그때 그때의 판단에 따라서 구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뭘 읽어야 될지 얘기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문학적 감성으로 쓰는 게 좋고, 쓸데없는 관념을 가지고 조작을 하게 되면, 생경하게 되어서 작품 자체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관념을 없애버리고, 선입견을 없애버리고, 경험 자체에 충실하도록 해야 되기 때문에 문학하는 사람이 철학책에 관심을 가지면 오히려 해롭다 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늘 그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현대 문학 작품에 있어서는 철학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적인 감성에 호소할 수 있게 되려면, 철학적인 내용이 있어야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양 문학의 기준에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또는 세계 문학의 기준에서 얘기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노벨상이라도 받으려면, 철학적인 뭔가가 들어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철학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개념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성 자체가 철학적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헨리 제임스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철학적인 사람인데, 문장도 어렵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다 생각이 들어있는 문장입니다. 그 생각이라는 것이 아주 깐깐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제임스의 철학적인 관심을 두고, 엘리엇이 말하기를 '개념이 범할 수 없는 지성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개념에 의해서 뒤틀리지 않는 지성, 굉장히 지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인데, 또 동시에 개념에 의해서 뒤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숨은 철학적 관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작품도 숨은 철학적 관심이 있지만, 표면에는 그것이 안 나타나 있습니다. 프루스트라는 사람이 철학적이라고 하지만, 표면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깐깐하게 생각하고 꼼꼼하게 쓰는 기술로서 철학적인 의식이라는 것이 쿤데라 같은 가벼워 보이는 작가에게도 들어 있고, 프루스트 같이 더 심각해 보이는 작가에게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요즘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너무 깐깐하게 생각해서 쓴 작품이라는 것은 한물 갔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서 깐깐하게 쓰는 것보다 규칙을 어기면서 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마술적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원리가 없는 예술 작품을 얘기하기 위해서 나온 말인데, 그런 경우도 니체가 진리라는 것은 다 자기 기만이다 라고 하면서 진리에 대해서 얘기한 것처럼, 깐깐한 것은 다 엉터리다 라고 하면서 깐깐하지 않은 얘기를 해야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 요즘의 문학 작품의 실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서, 특히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에 대한 존중이 별로 없습니다. 시가 과학이 아니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사실을 존중하면서, 우리의 심금을 울려야 됩니다. 시는 감정을 얘기하되, 감정을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안됩니다. 과학적인 사실을 존중하면서, 사실적인 세계도 존중하면서, 거기에서 감정을 보이지 않게 짜내야지, 내놓고 눈물을 마구 짜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냥 사실적인 얘기를 했는데, 눈물이 나오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숨은 과학적 인식, 숨은 철학적 원리, 숨은 의식의 통일성 등에 대한 관심이 문학 속에 들어있어야 되고, 그것을 무시하는 작품도 그것을 무시한다는 의식이 있으면서 그것을 무시해야지, 그냥 순진한 상태에서 무시해서는 별로 먹혀들어가지 않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실 문학하는 사람들도 철학을 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철학적인 원리를 가진 책들, 그런 소설들도 읽어야 되지만, 철학책도 읽어야 합니다. 옛날 고전도 읽는 것이 좋겠지만, 요즘 박이문 선생님의 글 같은 것들도 읽고, 심지어는 분석철학도 읽으면서, 작품을 쓸 때에는 다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작품에다가 표현하면 안됩니다. 안 보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적인 관심이 있는 책들을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데리다도 읽는 게 좋고, 포스트모더니즘도 읽는 게 좋지만, 그것을 문학에다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숨은 것으로 남아 있어야 됩니다.


: 훌륭한 예술가(시인, 작가)들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셰린느도 깡패 같이 살았던 사람이고, 장 쥬네 라는 사람도 못된 짓은 다 하고, 감옥에서도 살고, 사생아였습니다. 장 쥬네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 사람의 작품이 이미 고전 속에 들어 있습니다. 아주 무식한 사람이고, 문장도 형편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꼭 체계적인 철학서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체험으로 얻는 것이 좋습니다. 아까 김우창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도 철학적인 생각,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가는 경험, 사물을 보고 느끼더라도 철저하게 하는 안테나를 달고 태어난 사람이면 철학적인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밤낮 상투적인 얘기, 달콤한 얘기, 구름 같은 얘기를 하면 안됩니다. 철학에서는 남의 것을 정리하는 것도 철학이라고 하지만, 예술에서는 새로워야 합니다. 생각이나 감성도 혁명적인 것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러한 감성의 세련도와 혁명성은 혼자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가에 대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거름을 얻기 위해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것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영 딴판으로 다루는 것이 좋습니다. 문과를 졸업해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 상투적인 작품을 쓰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문학 작품에 긍정적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이 찬란하다고 하는 작품이 많은데, 정말 찬란한가를 물은 다음에 찬란하다고 해야지, 그냥 찬란하다고 하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묻는다'는 것이 철학과 문학의 공통점일 것 같습니다. 단지 철학은 겉에 내놓고 묻는 것이고, 문학은 묻는 것을 속에다 감추어놓고 있는 것이 문학입니다. 그러나 물음으로써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문학이나 철학이 공통된다고 생각합니다.


 - 질의 응답 -


질문자 1 : 박이문 선생님의 [나의 길, 나의 삶] 같은 수필을 보면, '나는 새를 좋아한다' 라고 시작하는데, 지금도 좋아하시는지요.


박 : 제가 시골뜨기입니다. 벽촌에서 살았는데, 집에서 새장을 직접 만들어서 그 안에 새들을 기르곤 했습니다. 겨울이면 참새를 잡아서 사랑 부엌에서 구워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함께 웃음) 개를 좋아해서 개에게 프랑스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삐에르' 라고 붙였는데, 하루는 오후에 들어오니까 개를 잡으려고 하는데, 그것을 개가 알고서는 대청마루 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동네 앞 개천에 끌려가서 저녁 때 잡아 끓여서 멍석을 펴놓고, 보신탕을 해먹는데, 저는 맛있어서 더 달라고 했었습니다.(함께 웃음)


질문자 1 : 새와 개에 대한 호감 얘기가 나오고, 앎에 대한 지적 갈증 때문에 프랑스로 가서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하고, 보스턴에도 유학을 갔었다는 글을 봤습니다. 유종호 선생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에 그동안 많은 명사분들을 뵈면서 저서나 프로필을 보면 수상 경력이 많은데, 박이문 선생님의 약력에는 수상 경력이 안 나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 : 박이문 선생은 일찌감치 프랑스에 가셨습니다. 1957년에 만났는데, 이 분은 프랑스 간다고 의기양양해서 왔다갔다 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셔서 다시 이화여대에서 잠깐 가르치다가, 그야말로 지적 갈증을 느끼셔서 프랑스로 다시 갔다가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가셔서 오랫동안 계셨기 때문에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됩니다. 사실 미국 사람들이나 프랑스 사람들이 더 가까울 겁니다. 오랫동안 한국에 안 계셔서 상을 탈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박 : 저는 상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습니다.


유 : 박이문 선생께서 여기에 오래 계신 적이 없고, 여름 방학이면 두어 달 정도 부모님을 뵌다는 핑계를 대서 왔다가 갔기 때문에, 보통 철새라고 얘기했었습니다.(함께 웃음) 우리 사회에서는 정처가 없는 철새에게 사회적 명예나 보상을 안해 주는 것 같습니다. 보통 65세가 되면 명예퇴직을 하게 되는데, 이 분은 포항공대에서 70세까지 근무하시고, 요즘 연세대학에서 또 교수직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다 보상을 받는 거지요.


질문자 2 : 유종호 선생님 마지막 시간이어서 여쭙고 싶은데, 아까 두 분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어떻게 접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유종호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어떻게 접하시게 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 : 박이문 선생께서 아까 시골 분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박이문 선생보다 더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충북 증평에서 다녔는데, 증평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시골에 놀이감도 없고 그래서, 또 저희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의무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가보면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많았는데, 제가 학교를 들어가보니까 제일 꼬마였습니다. 자연히 동기생들과 나이가 한 서너 살 차이가 나니까 친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미를 붙인 것이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다양한 관심을 가져야 되는데, 제가 좀 미련해서 여러 가지 관심을 못 가지다 보니까 나중에 책을 좋아하게 되어서 문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어릴 때에는 책이 많지 않아서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다가 그냥 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고, 책을 읽자면 외국어 하나는 마스터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외국문학과를 선택해서 오늘에 이르른 셈입니다.


질문자 3 :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어떻게 문학적인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는지요.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텐데, 국어 사전 같은 것을 놓고 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는지요.


유 : 사전 같은 것에 아이들이 재미를 붙여서 찾아보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공부일 겁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대학생들도 사전을 안 찾습니다. 사전에 다 있는데, 안 찾습니다. 영어 사전도 안 찾고, 우리말 사전도 안 찾습니다. 그러니까 기회를 줘서 하면 좋겠지만, 과연 아이들이 사전 찾는 것을 즐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놀이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어릴 적에 모르는 말이 있어서 사전을 찾아보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옛날에 노천명의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대추 방울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돈 사야' 라는 말을 찾아 보면 안 나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전이 잘 되어 있어서 물건을 파는 것을 황해도 같은 곳에서 '돈 사다' 라고 한다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사전을 잘 안 찾아보는 것은 자습서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렇지요. 사전 찾아보는 풍습이 생긴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질문자 4 : 20년도 훨씬 넘게 두 분 선생님을 참으로 많이 존경하고 흠모해왔었는데, 특히나 박이문 선생님께서는 20년도 더 된 과거에 {노장 사상}이라는 책을 쓰셨었는데, 그때 제가 그 책을 보면서 이렇게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도록 필자가 자신의 논리를 아주 세밀하게 정리해가면서 쓸 수도 있구나 하면서 경이로움을 경험했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서 빚어진 철학이라든가 양상을 제 경우에 있어서는 소위 말하는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문학을 통해서 접했었습니다. 사실은 어렵고 딱딱한 철학책보다도 문학 속에 녹아 있는 철학의 정수를 접했는데, 그게 젊은 날에 서양 고전만을 섭렵하다 보니까, 저의 가치관이나 사고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 문학을 관심 갖고 많이 읽게 된 것은 참으로 늦은 시기였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번역된 서양 작품만 많이 읽었고, 철학의 줄거리 같은 것들은 주로 서양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문학과 관련해서 문학과 철학의 관계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고, 논의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한국 문학에서 논의할 수 있는 철학이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모르겠습니다. 유종호 선생님이나 김우창 선생님께서 한국 문학을 전공하셨으니까, 한국 문학 속에서 표현된 철학이라든가 끌어낼 수 있는 철학이 있는지, 전통이 있는지, 그리고 소위 현재 동시대에 한국 문학에 있어서의 철학의 부재라는 측면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김 : 그것은 철학을 뭐라고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한국에도 철학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미에서 개인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는 철학, 서양 철학의 경우에 아무리 무미건조한 것 같아도 개인적인 철학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서 그것이 조금 드문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철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용운 같으면 불교적인 명상이 많이 들어 있고, 다른 현대시를 쓰는 분들은 철학적인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시적 체험이라는 것이 세계에 대한 철학적인 인식을 갖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시라는 것은 세계, 또는 자연의 원초적인 체험에 접하는 하나의 통로로서 생각되었습니다. 가령 퇴계의 한시에도 맑은 호수를 그린 시가 있는데, 맑은 호수에 그림도 비치고, 새가 날아가는 것도 비치는데, 자신은 새가 물을 차고 올라가다가 수면이 깨질 것을 걱정한다 라는 종류의 간단한 4행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조용한 자연의 체험을 얘기한 것이지만, 또 동시에 늘 맑게 있어야 한다는 것, 움직이면서 혼란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움직임을 경계해야 된다는 것,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라는 것은 맑은 상태를 유지해야 된다는 것 등의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시는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한시에 그런 내용들을 가진 시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상투화되어서 사람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을 명경지수라고 표현해서 밝은 거울 같고, 움직이지 않는 물과 같이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식으로 자연에서 따온 체험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그게 도덕적인, 정신적인 교훈을 차지하는데, 많은 시들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한국 전통에서 한시라는 것은(물론 시조도 그렇지만) 정신적 경지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고, 정신적 경지에 이르는 데에는 자연적 체험이 상당히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은 앞으로 많이 밝혀지고, 또 다른 주제들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될 겁니다.


박 : 제 생각에는 동양적인 전통에서는 철학과 문학을 전통적으로 확실히 구별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노장이라고 하는 도덕경을 사상이라고 하지, 서양적인 관점에서 철학이나 문학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도 결국은 사상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전통에서는 철학적이고 분명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전통, 비판적인 언설 등이 희랍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특수한 의미에서의 철학적인 전통입니다. 철학을 세계관, 우주관, 가치관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사회에서나 어느 개인이나 누구나 조금의 철학은 갖고 있습니다. 한국 작품에도 중국과 다른 세계관이 있을 것이고, 얼마만큼 다르고, 얼마만큼 독창적이고 깊이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유 : 아까 김우창 선생께서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 대해서 T.S. 엘리엇이 개념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개념에 의해서 범해지지 않는 지성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시나 소설에도 찾아보면, 철학적인 요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개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요소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면이 드물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데, 그것은 과거의 지적인 전통에서 우리가 그런 쪽에 조금 취약하지 않았는가, 또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소설을 쓰고 시를 쓰는 분들이 대개 사춘기에 쓰다가 안 썼습니다. 그러니까 정신의 성숙에 발맞춰서 작품세계를 꾸려나간다는 면이 매우 드물어서 철학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겨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가령 최근에 미당 같은 시인이 있는데, 그 분이 많은 시편을 썼고, 거기에 그 분 나름대로의 깊이나 지성에 의한 면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함께 박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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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플라톤 전집에 관한 몇 가지 생각...

얼마 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동경대 강의록을 읽다가 떠오른 것이었나, "한 작가의 작품을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니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선 시바 료타로의 <탐라 기행>을 읽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현문숙 씨는 말이 없을 때는 생각에 잠겨 있다. 교토 대학에서 사회학을 배울 때는 특히 그리스 철학을 하던 다나카 미치타로 교수를 존경하여 <플라톤 전집>을 읽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몇 년 간이라는 기한을 정해놓고 매일 얼마씩을 일과로서 읽게끔 자신에게 의무를 과하였다. 매사에 그런 식이어서, 예를 들어 내가 <구카이 풍경>이라는 졸저를 주었더니 그것을 읽는 데 1년이 걸렸다고 부인 문순례 씨가 말해주었다. 인용이 있으면 일일이 그 원전을 찾아서 읽고 난 뒤에야 다음 대목을 읽어 나갔다는 것이다. (128쪽)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어디에선가 읽었는지 몰라도 서울대 철학과 교수였던 고 박홍규 선생의 일화가 떠올랐다.(이 글을 쓰기 위해 여기저기 뒤적여 보았는데도 출처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마도 이정우나 다른 제자들의 회고에 나온 이야기 같았는데.) 즉 박 선생이 학부 수업 시간에 슐라이어마허가 번역한 독어판 플라톤의 대화편을 학생들과 함께 강독했는데, 내용이 어렵고 학생들이 잘 따라오지 못해서 한 시간에 두어 줄도 나가지 못할 때가 많았고, 한 학기 내내 애를 써도 결국 서너 페이지밖에는 진도가 나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박 선생은 아랑곳 없이 방학이 끝나고 다음 학기가 되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지난 학기에 읽다 멈춘 부분부터 강독을 재개하곤 했고, 그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독어판 플라톤의 대화편 하나를 다 읽어치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고집과 여유 모두를 지닌 양반이 아닐까 싶다. 웬만큼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이라면 한 번 해보고 나서 귀찮아서라도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게다가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방학 때 나 혼자서라도 다 읽어치우면 읽어치우지 굳이 수년 간에 걸쳐 느릿느릿 거북이마냥 그 대화편 하나를 붙들고 있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대 학자로서의 놀라운 면모였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한동안 머릿속에 담아놓고만 있었던 이런 일화를 굳이 적어보는 까닭은, 어제 우연히 네이버에서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아마 "비트겐슈타인 전집"이란 제목으로 검색을 하다 그랬을 거다) 플라톤 전집의출간에 관한 최근 기사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작년 이맘때쯤 된 모양인데, 나로선 금시초문이어서 깜짝 놀랐다. 이야기에 따르면 이제이북스에서 약 30여 권 분량으로 된 플라톤 전집을 내달(3월)부터 시작해서 수년 내에 완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의 원전 번역을 내놓아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데, 내친 김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까지 내놓겠다며 상당히 큰 결심을 한 모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의아한 생각도 없지 않은 것이, 내가 알기로는 이미 서광사에서 성균관대 박종현 교수의 주도 하에 플라톤의 주요 작품이 번역 출간 중에 있고, 그와는 별도로 같은 출판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작품도 번역을 추진 중에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박종현 교수의 플라톤 역주 작업은 1997년에 <국가(정체)>가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해서 <티마이오스>, <에우티프론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필레보스>까지 모두 네 권이 출간되었고, 그 외에도 <연회(향연)>, <프로타고라스 / 메논>, <테아이테토스>,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테스>, <고르기아스>, <정치가>가 근간 목록에 올라 있었다. 문제는 이 번역 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박종현 교수의 경우에는 이미 단독, 또는 공동 작업의 결과물을 네 권이나 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의 다른 번역 내정자들은 아직까지도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 책을 번역하는 것보다는 훨씬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미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간 상황에서는 한편으로 아쉬움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회(향연)>의 경우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소피스테스>와 <정치가>는 한길사에서 다른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파르메니데스> 역시 <플라톤의 변증법>이라는 송영진의 저서에 부록으로 번역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출간이 예고되었던 책의 번역본이 "뜬금없이" 다른 번역자에 의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다는 것은 의도적인 중복 출판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독자로서는 약간의 혼란이랄까,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 속사정(추측컨대 어쩌면 가장 큰 것은 출판사의 이해관계, 그리고 번역자들이 소속된 학교라든지 계열 등의 이해관계가 아닐까)이 있겠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기존에 10년 넘게 번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플라톤 저작집에 대한 선망이 너무 컸던 까닭인지, 지금처럼 번역 작업이 사분오열 군웅할거의 추세로 접어드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물론 내지 말라는 법은 없고, 서광사 판본만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최근 들어서 그리스어 라틴어 원전 번역이 일종의 "추세"를 이루고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 단기간 내에 두어 종의 <플라톤 전집>을 갖게 된다는 것은 약간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물론 이제이북스라는 곳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집을 냄으로써 예상되는 한 가지 미덕은, 적어도 그 디자인 하나는 아주 "멋깔"스럽게 뽑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기서 나온 책을 몇 권 사 보았는데, 이건 표지는 물론이고 본문에 이르기까지 예전 이론과실천의 책에서 느껴지던 세련된 단순함이 물씬물씬 풍겨서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요즘 학술서 내는 곳 중에서 이 정도로 책의 외형에 신경 쓰고 감각이 뛰어난 곳은 못 본 것 같다.)

 

 

 

 

 

 

물론 영어권에만 해도 플라톤의 주요 저작집 번역은 여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솔직히 그 모두가 이처럼 단시일 내에 경쟁적으로 출간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가령 몇 년 전엔가는 이미 두어 종류의 번역본이 있던 프랑스에서 "새로운 번역"의 플라톤 전집이 완간되었다고 하는데, 기획과 번역 의뢰에서부터 완간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22년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프랑스의 사례를 반드시 본떠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책세상 판 <니체 전집>의 번역 때처럼 차라리 전공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일사분란한 공동 작업을 펼쳐 그 성과물을 내놓는 것도 나름대로는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박종현 교수의 고군분투야말로 놀라운 집념이고 존경해 마지않을 만한 일이지만, 개인의 힘으로서는 모두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라 추측되기 때문이다. 가령 서광사에서 준비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형이상학>, <범주론 / 명제론 / 분석론 후서>, <철학에 대한 권유>, <자연학> 등이 근간 목록에 올라 있었지만, <형이상학>을 담당했던 조요한 교수가 타계하는 등의 변동으로 인해 나중에는 <정치학>을 비롯해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 <수사학>이 추가된 반면 <형이상학>과 <범주론 (외)>는 근간 목록에서 빠져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니코마코스 윤리학>, <영혼에 관하여(데 아니마)> , <소피스트적 논박>, <변증론>, 그리고 부분 발췌역인 <형이상학> 등의 번역서가 다른 출판사에서 선보였고 말이다.

 

 

 

 

 

 

이번에 이제이북스의 전집 출간 계획이 보도되면서도 역시 "플라톤 전집 하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온 모양인데, 내 기억에 이런 말을 처음 한 사람 중 하나는 바로 도올이었던 것 같다.(<동양학>의 각주 가운데 하나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플라톤 전집"이란 것이 어디 옆집 멍멍이의 이름이 아니고, 게다가 돈이 있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걸 과연 개탄하고 자시고 할 만한 일인지 하는 의구심도 없지는 않다. 가령 우리나라에 서양철학이라는 학문이 상륙하고, 대학에서 정식 과목으로 가르쳐진 지는 겨우 100년이 될까말까 하지 않나 생각되는데, 물론 플라톤이 서양철학의 비조이자 최고봉인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간 그리스어 원전 독해력을 지닌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던 우리의 현실로 볼 때 그건 지나친 기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박종현 교수라든지 다른 선구적인 인물들의 기여로 인해, 이제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플라톤 전집이 (잘만 하면) 한 가지뿐만 아니라 두어 종이나 나올 기회가 생겼고, 아마 앞으로도 그 종수는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오히려 문제는 그동안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 원전 분야의 "업계"를 장악하고 있던 영어 및 일어 중역본에 비해서 일종의 비교우위를 장악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물론 박종현 교수의 역주서가 꾸준히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단순 판매량으로 볼 때에는 <국가>나 <대화편>의 영어 중역본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훨씬 더 잘 먹혀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전공자와 일반 독자의 차이, 즉 딱딱한 문장을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박종현 교수나 다른 플라톤 번역자들의 경우에는 해당 언어와 사상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전문가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뛰어난 "문장가"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인 천병희 교수의 역주서들이 생각만큼 "읽기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물론 원문에 정확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말 문장을 어떻게 맛깔스럽게 만들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보다 고전 역주 작업에 있어 훨씬 앞선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시대에 맞춰 여러 가지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나저나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 전에도 우리나라에 <플라톤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물건이 있긴 있었다. 숭실대 철학과 최민홍 교수란 양반이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는 여섯 권짜리인데 <국가>나 <향연> 같은 유명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온>, <소 히피아스>, <클레이토폰>, <에뤽크시아스> 같은 생소한 작품들까지 망라하고 있어서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처음에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헌책방에서는 다른 출판사의 지형을 인수해 일종의 덤핑용으로 대량 생산한 것으로 유명하던 모 출판사에서 펴낸 1980년대의 중판본이 종종 보이고 나 역시 이걸로 한 질 갖고 있은 지가 오래 되었다. 물론 전공자들은 "학술적 가치는 전무한 일어중역본"이라고 혹평하는 책이지만, 솔직히 그동안 굳이 <티마이오스>나 <필레보스>를, 또는 <카르미데스>와 <크라튀로스>를 읽어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만으로도 그럭저럭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솔직히 전공자들도 잘 들춰보지 않는 나중 대화편들의 경우, 아무리 원전 번역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들춰보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플라톤 전집이라는 것,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고 단기적으로는 출판사의 매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태클이 될 수도 있겠다. 적어도 이제이북스에서 다음 달에 첫 선을 보일 전집 1차 출간분만 해도 솔직히 나조차도 생소한 대화편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과연 일반 독자들이 읽기나 할까? 물론 책세상의 니체 전집에 대해서도 그 수많은 <유고>를 읽을 독자들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만 봐도 <죄와 벌>의 판매량과 그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의 판매량은 확연이 다를 것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전집은 대책없는 "낭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물론 있으면 좋고, 꽂아 두면 뽀다구도 팍팍 나지만, 만들기는 힘이 들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어느 기자는 "플라톤, 칸트, 헤겔 전집조차 없는 우리 현실"을 개탄하면서 아예 "번역청"을 설립하자는 황당한 주장(뭐든지 "관(官)"이 개입하면 잘 되던 것까지 망쳐 버린다는 절대진리를 기자는 망각해 버린 것일까?)까지 펼쳐놓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일본에서도 헤겔 저작집이 꾸준히 번역되기는 했어도 "전집"이란 이름으로 딱 완결된 산물을 내놓진 않은 것 같다.(그리고 솔직히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정도는 되어야 "전집"이지, 칸트나 헤겔의 경우에는 주요 작품을 망라한 "선집" 정도가 적절하다고 본다. 비교적 현대와 가까운 사람이니 작품 수도 좀 많겠는가.) 게다가 이와나미의 키케로 전집의 경우, 부실한 번역과 편집 때문에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 따끔하게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 "전집"이라고 해서 반드시 "품질"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왜 "전집"이 필요한 것일까? 일단은 "과시" 목적이 아닐까 싶다. 가령 니체 전집은 한국의 니체 연구의 역량을, 플라톤 전집은 한국의 플라톤 연구의 역량을 "보여주는" 작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물론 그 "질"은 논외로 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문득 떠오르는 말은 "낭만"이라는 한 마디뿐이다. 플라톤 전공자에게 있어서나, 또는 "독서가"에서 "수집가"로 전업한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나 "전집"이란 곧 "낭만"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먹지 않고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른 음식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전집이란 것 역시 들춰보지 않고 꽂아두기만 해도 뭔가 가슴이 뿌듯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독서가" 아닌 "수집가"의 주책에 불과하다면 물론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 그나저나, 왜 "이제이(EJ)북스"인가 했더니만 사장 이름인 "응주(EJ)"의 약자이기 때문인 모양이다.(내 추측이지만.) 지금까지 낸 책만 살펴보면 미안한 이야기지만 "안 망하고" 여전히 버티는 게 참으로 신기할 지경인데, 웬만하면 전집 완간할 때까지 좀 더 오래오래 잘 버티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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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78) : 도올과 허혁

저녁 약속이 있어서 집사람까지 해서 셋이 식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도올의 요한복음 강연" 이야기가 나왔다. 그 강연에서 도올이 뭐라뭐라 말한 것에 대해 보수 기독교 단체 쪽에서 이의를 제기했고, 또 거기에 대해 오늘자 신문에 한신대 김경재 교수가 일종의 중재인지 평가인지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집사람은 김용옥이 비록 신학자는 아니지만, 양식비평이라는 성서 해석학의 한 분야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웠을 사람이니, 웬만큼 허약한 논리로는 상대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요지로 이야기했다. 아닌 게 아니라, <논어>나 <노자>나 요한복음 강의로 인해 전국민적인 명사가 되기 이전의 도올, 그러니까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와 <절차탁마 대기만성>의 저자 도올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뒤의 책은 얼핏 보기에는 "동양학"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에 대한 도올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해 놓은 것이며, 그 책에서 도올이 내세우는 자신의 "한문해석학"이란 것이야말로 실제로는 불트만의 "성서해석학"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책의 제2부는 "독서법과 판본학의 입장에서 새롭게 본 기독교"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내게는 영지주의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놓았던 글로 더욱 인상적이었고, 이 글의 말미에 "예수는 무당이라"고 주장해서 보수 기독교 단체 측에서 일종의 "테러"(?) 시도까지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어쩌면 기독교에 관한 도올의 입장이랄까, 견해랄까 하는 것은 이 책을 참조하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이른바 보수 기독교 쪽에서는 아직까지도 "마귀 사탄"과 동일시되는 인물인데, 사실 기독교 신학사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인물이며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를 꼽는다면 아마 수위 다툼을 하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다. 그의 성서 해석학은 그 "과격함" 때문에 보수 신학자들이나 십일조 강요하는 무식한 목사들, 그리고 무지몽매한 일반 신도들(흔히 말해서 웬만한 젊은 목사나 전도사들을 "찜쪄먹는" 할머니 권사님들) 모두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미움을 받지만, 사실 신학도 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토록 "과격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한 그의 학문적 태도야말로 성서를 대하는 가장 "정직한" 태도일 수도 있다. 단적으로 말해 불트만은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가 과연 신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실성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적 성실성을 어떻게 조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무식한 기독교인들이 인정하는 방식으로는 성서의 권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성서란 축자영감도 절대권위도 아닌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소스로부터 "편집"된 텍스트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성서의 "일점일획"까지도 고스란히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는 무식한 기독교를 숭앙하는 사람들로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 학문적으로야 나무랄 데 없는 주장이고, 실제로도 우리나라에서 신학 하는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한 번씩은 들춰봐야 할 책의 저자이지만(하긴 그의 책은 좀 많이 번역되었던가!) 신학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신앙" 적인 측면에서는 독약과도 같은 인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천하의 "불트만"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졸지에 "마귀사탄"으로 여겨지는 셈인데, 여기서 가장 크게 손해를 본 사람은 아마도 그의 동포인 또 다른 신학자 "몰트만"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불트만과 몰트만의 생각이나 주장은 크게 달랐지만, 꽤 오래 전부터 단지 이름이 비슷한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불트만인지 몰트만인지"라는 식으로 나란히 매도당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불트만과 도올,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 일종의 "다리" 노릇을 한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혁이다. 허혁이란 사람은 아마 기독교인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신학에 대해 관심이 있고, 그중에서도 교회 권사님들이 무척 싫어하는 "자유주의 신학" 쪽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불트만인지 몰트만인지"로 대표되는 양식비평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야 그의 이름을 알듯 말듯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나온 불트만의 책은 거의 모두가 허혁의 번역이고, 우리에게는 "밀림의 성자"로만 알려졌지만 사실은 천재 신학자이기도 했던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대작 <예수의 생애 연구사> 역시 허혁의 번역이다. 생전에 이런저런 논문을 발표했는지 모르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없는 듯하고, 말년에 제자들이 일종의 기념문집이랄까 하는 것을 한 권 펴냈는데, 두껍긴 하지만 번역 말고 평생 쓴 것이 그 정도라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허혁이란 이름은 불트만, 슈바이처, 로핑크 등의 이름과 나란히 기억되고, 문장이 아주 유려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번역은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 내에서 가장 독보적인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불트만의 책을 통해 허혁과 만나게 되었는데, 정작 허혁이란 인물 자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거꾸로 도올 때문이었다. 도올의 큰형인 김용준의 글 모음인 <사람의 과학>이란 책을 보면 서문에 "나의 큰형, 김용준"이라는 도올의 발문이 붙어 있는데, 이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좀 길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화이기 때문에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

  • 내가 다녔던 보성중, 고등학교에는 서원출이라는 걸출한 교장의 리더십 때문에 당대 보기드문 석학들이 교사로 은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쯤인가? 우리 보성학교로 키가 껑충 크고 허우대가 멀쑥한 독일어 선생님 한 분이 새로 오셨다. 그는 상초가 심히 발달하여 몸무게의 중심이 몽땅 어깨로 이동하여 있는 느낌이었다. 키가 큰 반면 어깨는 앞으로 굽어 있었고, 두상은 백운대의 바위만큼이나 큰데 머리는 헝크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고난의 성상이 서린 좀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다. 귀밑에는 석학의 회색빈발이 고결한 품격을 나타내주었으나, 두 눈은 썩은 동태눈처럼 맥아리없이 저 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의 느낌은 한없이 착하게 보였고,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심오한 프로페조르의 느낌을 주었다. 그의 이름은 허혁이었다. 그가 독일의 뮌스터 대학에서 박사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박사까지 한 사람이 고등학교에 와서 독일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좀 이해가 가기 힘들었다. 허나 독일에서 온 독일어 선생이라는 신선한 충격은 당시 보성의 학우들에게는 커다란 화제였다. 허나 허혁은 매우 졸린 사람이었다.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퍽 씨알맹이 있는 얘기가 많은데, 그것을 매우 졸리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독일 얘기를 하거나 독일어 교과서에 나오는 일화에 얽힌 얘기를 할 때도 뭔가 고등학교 선생에게서는 들어보기 힘든 심오하고 매서운 언사가 툭툭 던져지곤 하는데, 매우 졸린 분위기를 깔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민주적인 사람이래서 통솔력이 없었다. 주변의 기를 압도하는 허세나 과장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독일어 시간은 아이들이 졸고 떠드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럴수록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가 순한 것 같아도, 그의 말 속에는 항상 단호함과 지적 날카로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그에게 매우 난처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고 1 2학기 때의 일이었다고 기억된다.
  • "선생님은 겨우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실려고 그 어려운 독일유학을 하셨습니까? 무언가 선생님이 공부하신 것에 비해 지금 하시고 계신 일이 너무 시시한 것이 아닙니까?"
  • 나는 지난 일이지만 이 나의 질문을 명료하게 한 자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허혁 선생은 이러한 나의 질문에 뚜렷한 대답을 회피했다. 그는 맨 앞줄에 앉어있는 (2번인가? 3번인가?) 나를 꿰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난처한 몸짓으로 빙그레 미소를 짓고 말아버렸다. 넌 아직 나를 알 수 없는데, 내가 무엇을 변명하리요? 하는 눈치였다. 나는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
  • 허혁 선생은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 교단에서 배척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 교계나 학계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공이 또 큰 문제였다. 허혁 선생은 불트만을 전공했는데, 불트만이야말로 당대 교단에서는 최대의 이단자였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신화적 허구 속에 안주하기를 희망했던 당대 교계의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의 존재의 근원을 허물어버리는 매우 무서운 이단의 칼날이었다. 그러저러한 연유로 허혁 선생은 교단이나 신학계로 복귀를 못하고 독일어 선생이라는 간판을 잠시 빌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완벽히 불트만의 해석에만 몰두하는 완벽한 학자였다. 학문의 전일성으로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허혁만한 인물을 만난 적이 없다. (4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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