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기인 > [퍼온글] 가라타니 고진의 코뮨주의

레디앙의 연재물 '세계의 사회주의자'에 뜻밖에도 가라타니 고진 편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단서조항이 없을 수 없는데, 편집자도 옮겨놓고 있는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가 사회주의자일 수 있다면,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 속에서일 것"이라는 게 '사회주의자 고진'의 근거이다. 알다시피 고진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은 NAM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책상에 올려놓은 지가 오래인데 바쁜 일들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아래의 연재는 고진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도 읽을 만하다.

레디앙(07. 03. 20)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잊고자 쓰는 사상가가 있다. 그는 개념으로 성을 쌓지 않는다. 남들이 자신의 착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할 때면 그 자리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형이상학을 극도로 경계하며,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내는 예언을 멀리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에게 ‘~주의ism’는 사상의 죽음을 뜻한다. 예수가 아닌 바울이 기독교(예수주의)를 만들었듯, 마르크스주의가 엥겔스의 산물이듯 ‘주의’는 사상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되며 시작된다. 그래서 이동을 감행하는 사상가에게 ‘~주의’는 사상이 멈춰선 자리,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전망이 상실된 90년대에, 그것도 쉰이 넘고 나서야 그는 코뮨주의자가 되었다. 바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이야기다.



비평은 위기적 상황으로 자기를 내모는 것

가라타니 고진은 1941년 일본의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문학 작품을 탐독했지만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다루는 데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결국 도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행방은 문학비평가로 시작되었다. 스물아홉에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론>으로 군조오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문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이 시기 그는 영문과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경제학과 출신의 문학비평가라는 다소 어색한 그의 이력을 두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이든 문학이든 그는 분과학문을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형이상학과의 싸움이 절실한 문제였다.

형이상학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이념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널리 읽힌 그의 초기 저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은 형이상학과의 대결이라는 문제설정을 경제학과 문학이라는 각기 다른 방면에서 펼쳐낸 것들이었다. 그는 이 저작들에서 자본주의와 근대문학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장치로 해명하여 근대인들을 속박하는 관념의 그물을 걷어내고자 했다.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첫 번째 평론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적 원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그 일절을 주목하자. “사상과 사상이 격투한다고 보일 때도, 실상은 각자의 사상적 절대성과 각자의 현실적 상대성이 모순되는 지점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상이 각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곳에서 결전이 이루어진 예는 한 번도 없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비평가’로서의 자기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그에게 비평은 다른 텍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전하거나 편을 짓는 작업이 아니었다. 비평이란 사상의 결전이 치러지는 장소 밑바닥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할극을 끝까지 주시하는 일이다. 대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입장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대치할 수 있는 조건, 그 무의식적 구조를 해명하는 일인 것이다. 그 조건과 구조를 밝힌다면 날이 선 온갖 사상적 입장들은 형이상학의 성채를 두르고 있던 부속물임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비평에는 으레 자신은 상처입지 않으면서 상황 밖에 서 있다는 푸념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고진은 홀로 옳은 곳에 서 있고자 비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비평(critique)이란 위기적인(critical) 상황으로 내몰리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평 대상만이 아니라 비평하는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가가 자신의 발화를 자명하다고 여겨 더 이상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면, 사상은 어느새 상업성을 띤 선교가 되고 만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비평이란 자신을 불명료함으로 내몰아 선교사의 입장을 피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개척해나가던 60년대 후반은 서구 지성계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시기이자 반체제 운동이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닌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다만 난무하는 여러 입장들을 곁눈으로 흘기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갔다. 당시 제기된 인간적 마르크스주의도 반체제 운동이 보여준 열정도 그에게는 ‘이념이 만들어낸 병’에 불과했다. 그 무렵의 학생들처럼 거리로 나섰으나 이내 회의를 느끼고는 이념을 걷어낸 자리를 끝까지 응시한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어떠한 ‘주의자’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입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태도 전환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 노정은 『탐구』에서 결실을 이룬다. 형이상학과 맞서 싸운다는 버거운 작업으로 삼십대에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그는 『탐구』를 통해 자신의 스스로 병을 치유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잡지 『군조우』에 『탐구』를 연재했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 할 것이다.”(『탐구Ⅰ』후기) 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타자의 문제’를 해명하여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해체주의 마냥 어려운 지적 수사에도 빠지지 않는 ‘삶의 비평’을 일궈냈다. 90년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온 이 책을 두고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라타니 고진은 90년대에 들어서자 『탐구Ⅲ』을 쓰겠다던 계획을 중단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90년대 이후 쓴 저작들을 보면 무언가 적극적인 발언을 하겠다는 충동이 가득 묻어난다. 하나의 선명한 입장을 갖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 전환이 응축되어 있는 저작이 바로 10년간 거듭해서 써낸 『트랜스크리틱』(2000)이다. 『트랜스크리틱』은 확신으로 씌어진 책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광명을 보기 시작했다”고까지 표현하는데, 사상의 구석진 자리를 응시하려던 과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1989년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경멸해 왔다. 그는 어떠한 입장에도 속하지 않고 비평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자신이 과거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유효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거대 서사’와 함께 종언했지만, 아울러 몇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주의의 종언이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서사’가 등장했으며, 민족주의와 원리주의라는 ‘서사’가 부활했다. 아울러 모든 이념을 조소하는 냉소주의도 만연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끝났을지언정 사상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인 기획에 몸을 담았다. 90년대의 상황이 학문적으로는 회의론적 상대주의가 범람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이 구가되었으나 그것들이 점차 파괴력을 잃어갔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이 시대의 변화와 아울러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했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구축된 실천의 방향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가다듬는다. 기억해야 할 대목은 그가 지극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폐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론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실천은 결코 변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정의감과 연민에 기반한 열정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토대로 삼는 논리구조를 해명할 때 그것을 극복할 단서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교환’에 내재된 근원적인 패러독스로 생겨났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지양할 코뮤니즘 역시 종교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닌 새로운 교환원리를 통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를 스테이트(state, 국가)와 네이션(nation, 공동체)과 겹쳐 사고한다. 89년 이후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자신의 정식을 설파하는 데에 경주했다. 그것들 각각은 등가교환, 상호부조, 강탈이라는 교환원리에 대응한다. 먼저 네이션 안에서는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 등가교환에 따르지 않고 공동의 감정에 기대 서로를 돕는다는 교환원리이다. 스테이트는 강탈을 자신의 교환원리로 삼는데, 그것이 교환인 까닭은 지속적으로 빼앗기 위해 수탈당하는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의 기원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는 시장원리에 따라 화폐를 통한 등가교환을 취한다.

이렇듯 상이한 교환원리가 합쳐져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자본주의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자본주의를 깨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가 뒤따르거나 네이션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래서 우리는 공황에 직면하면 국가기구가 전면화되고 민족주의가 활성화되는 현실을 목도한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던 것이 레닌주의이고,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을 꾀했던 것이 파시즘이다. 이들 모두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사슬을 끊지 못했기에 역사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세 가지 교환원리에 기반해 있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교환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또 한 가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인 단서는 자본의 자본화 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에 있다. 여기에는 두 차례 개입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M-C의 계기, 즉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C-M'의 계기, 즉 상품이 다시 잉여가치가 부가된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것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파는 일이 된다. 무산대중에게 이것은 노동자가 되고 소비자가 되는 일로 나타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M-C-M'의 과정을 끊자고 제안한다.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사상의 실패인가 새로운 사상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는데, 그것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운동이다. NAM 운동은 그가 제안한 최초의 현실운동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NAM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NAM 지부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꾸려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제안한 NAM 운동은 새로운 교환원리인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발상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화 운동은 원리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가 『가능한 코뮤니즘』이나 『NAM 원리』에서 제시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운동 역시 자본이 되지 않는 화폐를 매개로 삼는 지역통화 운동의 일종이다. 그리고 NAM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연대를 목표로 삼는다. 화폐 경제에서 판매와 구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분리, 나아가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의 분리를 낳는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을 해산시킨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현실에서 보여준 시도와 실패는 일본과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평가는 예순이 넘은 가라타니 고진의 나이를 상기시키며 “가라타니 고진도 이제 다했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정녕 사상의 실패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실패를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운동의 실패를 사상의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꾀했던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리라.

가라타니 고진은 이제껏 여러 사상적 입장에 가격을 매겨 왔다. 이제 자신의 사상적 궤적을 제작비이자 홍보비 삼아 하나의 입장을 상품으로 내놓았으니, 그것은 팔릴 것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의 사상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늘과 불쾌함을 더 이상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한 사상가를 진정 대면하려면 그 사상이 지닌 탄성을 제멋대로 줄여놓고 쉽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2007년 가라타니 고진은 재직 중이던 컬럼비아 대학과 긴키 대학에서 물러나 일본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또 한 번의 사상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자신의 명성에 사로잡히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기에 그는 건강하다. 그리고 이 말도 보탤 수 있겠다. 기꺼이 실패하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역할이다. 사회주의자는 하나의 입장에 관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는 타오를 것인가.(윤여일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0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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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오후 > 켄 윌버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여기 아주 재미있는 것이 있다. 어떤 병에 걸렸든지 환자는 다음의 2가지 상황과 대면하게 된다. 하나는 병 자체에 직면하는 것이다. 골절, 독감, 심장마비, 악성 종양 등등. 이런 것들을 ‘질환(Illness)’이라고 부르자. 예컨대 암은 일종의 질환이다. 의학적・과학적 차원에서 특수한 질병(Disease)인 것이다. 질환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즉 그것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것일 뿐이다. 마치 저기 있는 산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단지 산인 것처럼.

그렇다면 두 번째는 어떠한가? 환자는 질환을 다루는 사회와 직면하게 된다. 모든 판단, 두려움, 희망, 신화, 이야기, 가치, 그리고 그 사회가 질환에 부여하는 의미와 부딪히게 된다. 질병의 이러한 측면을 ‘병(Sickness)’이라고 부르자. 암은 과학적의학적으로 질환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병이기도 하다. 과학은 언제 어떻게 당신이 질환에 걸렸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당신이 속한 독특한 문화와 하위문화(Subculture)는 언제 어떻게 당신이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특별하게 나쁠 것은 없다. 만일 한 사회가 아무런 편견 없이 특정 질환을 다룬다면 병은 도전으로, 아니면 치료의 중대한 국면으로, 또는 기회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병’에 걸렸다는 것은 도덕적인 단죄나 유죄 선고가 아니라, 치료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행보가 된다. 병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 환자를 배려해준다면, 질환을 치료할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치료 과정을 거치며 환자의 인격이 더욱 성장하고 풍요로워지는 부수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남자건 여자건 인간은 모두 의미에 속박되어 있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과 판정을 내리는 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자신이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내가 ‘왜 질병에 걸렸는가’ 고민하며 그 이유도 알고자 한다. 왜 나인가? 이 일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어떻게 이것이 생겼는가? 즉, 자신의 질환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의지하는 곳은 사회다. 그러면 사회는 온갖 종류의 이야기와 가치, 의미로 우리들의 질병을 진단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는다.

(중략)

이렇게 인간은 과학적인 지식으로 자신의 질병을 설명(임질은 임질균에 의해 생긴 비뇨생식기의 병이다)하려는 동시에, 사회적인 판단을 통해서 그 병을 이해(임질은 도덕적인 결함이다)하려고 한다.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사회에서 만들어진 병의 의미는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동정이든 징벌이든, 지지든 비난이든, 우리 자신의 질병의 경과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병은 종종 질환보다도 더욱 파괴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경우는 사회적으로 어떤 병에 대해 ‘나쁘다’는 판정을 내릴 때다. 대부분 사람들은 두려움과 무지 때문에 그처럼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판단을 내린다. (74~76)


질환은 명백한 과학적 실체지만, 질병은 하나의 종교와 같다. (79)


행동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만들고, 성취하는 데 있다. 그것은 종종 공격적이며, 경쟁적이고, 계층을 만들어낸다. 그 가치들은 미래지향적이며, 규칙과 판단에 의존한다. 기본적으로 행동의 가치는 현 상태에 변화를 주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반면 존재의 가치는 현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존재의 가치는 곧 관계성, 포괄성, 포용성, 공감, 그리고 배려의 가치다. (92~93)


‘놓아버리는 일’과 ‘조절하는 일’(물론 이 2가지는 존재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다른 측면이고, 무수한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음과 양이라는 근원적 양극이다. 음양 중 어느 쪽이 옳다든가, 존재가 행동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균형, 일테면 고대 중국인이 말한 도道와 같은 음양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찾아내는 방법인 것이다), 행동가 존재, 저항하는 것과 열어놓는 것, 싸우는 것과 항복하는 것,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그들 간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암에 직면한 테리의 중심 과제가 되었다. (99)


신이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과

바꿔야 하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103)


테리와의 포옹만으로 전체 속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 느낌은 쉽게 사라졌다. 마치 두 영혼이 아직 선물을 받기에는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듯이. 나는 너무도 쉽고 빠르게 일상적인 세계로 돌아왔다. 시공에 얽매인 장소, 테리라는 부분이 죽을지도 모르는 장소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녀를 잃는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자원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자각을 지니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정확하게 그것이 무상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붙드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놓아버리는 것임을 나는 천천히 배우고 있었다. (105)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억압은 죽음에 대한 것이다. 결코 성(性)이나 그 외의 것이 아니다. (107)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듯이 시도하고 노력하고 집중하고 훈련하는 동시에 해방하고 용서하고 긴장을 풀고 그저 존재하는 일. 나는 이 둘 사이를 반복적으로 드나들었다. 그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노력 쪽에 집중했을 때가 아니면 게으름에 빠져버렸을 때였다.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균형이 깨졌다는 증거일지도 몰랐다. 삶에 너무 강하게 매달려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살려는 의지와 그저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그들 간의 균형을 잡기란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면 그 어느 때보다 훨씬 좋아진 기분을 맛볼 수 있다. (108~109)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체와 부분은 서로 배타적인 존재가 아니야. 신비주의에서도 역시 고통을 느끼고, 배도 고프고, 즐거워하기도 해. 보다 큰 전체의 부분이 된다는 것은 부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부분의 근원, 또는 그 의미를 발견하는 거야. 너 또한 개인인 동시에 가족이라는 보다 큰 전체의 일부잖아. 가족 역시 보다 큰 사회라는 전체의 일부고. 이처럼 너도 자신이 보다 큰 여러 전체의 일부라고 이미 자각하고 있어. 신비주의는 자신이 우주의 일부라는 느낌, 즉 한층 깊어진 자기 정체성을 갖고 보다 큰 의미나 가치를 찾아내려는 것이지.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어. 보다 깊은 자기 정체성을 체험하는 것이 어떻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걸 의미할 수 있지? (110)


나를 자신 안에서, 전체적인 존재 안에서 좀더 자유롭게 살게 할 수 있다면 내 자신의 아군이 되어 철저하게 자신을 지지할 수 있다면, 반드시 내 안에 낯선 땅이 나타날 것이다.

내 안에서 낯선 풍경이나 냄새, 사고가 소용돌이쳐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 땅은 스스로를 체험하고, 타인들과 함께하며, 그 깊은 욕구를 채우고, 자신에게 형태를 주도록 나에게 요구할 것이다. (115)


나는 명상이 영적인 것이지,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영적인 것은 실제의 체험에 의거하는 것으로, 단순한 믿음과는 관계가 없다. 영적인 것은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신과 관련된 것이지, 우주적인 아버지와는 관계가 없다. 진정한 자기를 깨닫는 일과 관련된 것이지, 작고 왜소한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지, 음주나 흡연, 섹스에 대한 설교나 교회의 도덕주의와는 상관없다. 모든 이에게 있는 정신과 관련된 것이지, 여기저기 특정 교회의 행사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마하트마 간디는 영적이고, 오럴 로버트는 종교적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알버트 슈바이처, 에머슨과 소로우, 아빌라의 성 테레사, 노리치의 줄리안 부인, 윌리엄 제임스는 영적이다. 빌리 그레이엄, 신 대주교, 로버트 슐러, 패트 로버트슨, 오코너 추기경은 종교적이다.

명상은 영적이고, 기도는 종교적이다. 즉 신에게 새로운 차를 주십사 요구하며, 승진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종교적이다. 종교적인 것은 왜소한 자아가 원하고 갈망하는 것에 대한 기도일 뿐이다. 반면 명상은 자아를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신에게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보다 큰 깨어 있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상은 특정 종교의 일부가 될 수 없다. 보편적이며 영적인 인류 문화의 일부이고, 일상에서 깨어 있기 위한 노력이다. 즉 영원의 철학, 그것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117)


테리 : 그렇다면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영적 존재에 대해 확신하는 신비주의자의 주장에는 어떤 근거가 있죠?

켄 : 직접적인 체험이 그 근거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한 신념이나 관념, 이론이나 도그마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적인 체험, 영적인 것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은 단순한 도그마적인 종교 신념과 구분됩니다. (121)


쿠마라스와미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죽지 않는 영원한 영성과 인간의 개별적인 영혼(자아)을 구별하는 것은 영원의 철학의 기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말한 ‘자기 자신의 영혼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기독교도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죽어야만 하는 영혼을 ‘미워하고, 내던지고, 넘어서야’만 만물과 하나이며 죽지 않는 자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25)


우리는 그처럼 원초적인 이원론에 근거해, 저 밖에 있는 ‘객체’의 세계에서 자신을 ‘주체’라고 한정하고는, 세계 전체를 상반되는 양극으로 분리합니다. 쾌락과 고통, 선과 악, 진실과 오류 등등. 그러나 영원의 철학에 의하면, 주체와 객체라는 이원론에 지배된 의식은 있는 그대로의 실재, 전체로서의 실재, 본성으로서의 실재를 볼 수 없습니다. 죄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에게 움츠러드는 것이고 분리된 자아 감각입니다. 죄는 자아의 ‘행위’와 관련된 무엇이 아니라 자아의 ‘존재’와 관련된 무엇인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에게 움츠러들고 ‘거기에’ 고립된 주체는 확실히 만물과 하나인 진정한 본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결핍감, 상실감 등을 느끼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분리된 자아는 고통 속에서 태어납니다. 이것은 ‘타락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고통은 분리된 자아에게 ‘셍기는’ 것이 아니라, 분리된 자신에게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죄’, ‘고통’, 그리고 ‘자아’는 움츠러드는 것, 또는 의식의 단편화에 붙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자아를 괴로움으로부터 구할 순 없습니다. 고타마 붓다가 말한 것처럼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자아를 끝내야만 됩니다. 고통과 자아는 함께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127)


악마를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의 자아를 보라. (128)


2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자아를 무한히 확장해나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를 무(無)로 축소해나가는 방법이다. 전자는 지식(지혜)에 의한 것이고, 후자는 헌신(신앙)에 의한 것이다. 쥬냐니(지혜를 가진 자)는 말한다. ‘나는 신이고, 보편적 진리다.’ 헌신하는 자는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여, 당신이 전부입니다.’ (129~130)


자아를 잊는 것이 신을 기억하는 것이다. (130)


의식이 확대되면 보다 현실적이고 더 생생한 것처럼 느껴지지요. 정확히 잠에서 깨어난 느낌, 바로 그것이에요. (143)


자아는 정신적 현상들, 마음속의 관념들, 상징과 이미지나 개념들의 묶음에 지나지 않아요. (145~146)


육체는 물질을 알아차리고, 마음은 육체를 알아차리지요. 영혼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영성은 영혼을 알아차린다오. 보다 높은 단계에 오를수록 알아차림은 더 많아질 수밖에. 즉, 보다 크고 넓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가장 높은 정체성과 보편적 알아차림, 이른바 ‘우주 의식’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오. 이렇게 말하면 약간 무미건조하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소만, 당신도 알다시피 실제로는, 즉 신비적 상태는 믿을 수 없는 정도로 단순하고 분명한 것이오. (149)


어떻게 보면 영혼, 혹은 지켜보는 자는 영성을 향한 최고의 존재면서, 동시에 영성 이전의 마지막 장벽이기도 하지. 지켜보는 자의 위치에서만 영성을 향해 도약할 수 있소. 그렇지만 지켜보는 자는 결국 죽어야 하오. 영성과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조차 희생해야 하오. (150)


부처의 길을 배우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며, 자기를 배우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자기를 잊는 것은 萬法(만물)과 하나가 되어 만법에 의해 깨닫는 것이다―도겐(道元). (151)


진정한 자아는 진정한 세계요. (151)


완전한 사람(至人)은 마음을 쓰는 것이 거울과 같다. 거울은 아무것도 붙들지 않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그것은 받아들이지만 감추어두지 않는다―장자. (181)


그리고 우리는 노이로제의 모습을 띤 우울증을 부수기 위해서는, 분노 속에 잠복해 있는 것들과 접촉해야만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215)


나는 진정한 자신을 기억해내는 방법으로, 용서를 중시하는 《기적수업》을 좋아한다. 이는 독특한 접근법을 보여준다. 특정한 의식 훈련이나 신앙적인 헌신을 강조하는 다른 위대한 지혜의 전통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말하는 ‘용서’의 이론적 원리는 매우 단순하다. 즉, 자아라고 불리는 분리된 자기 감각은 인식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것. 자아는 개념으로만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도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에 따르면, 자아의 주된 감정은 분노를 수반한 두려움이다. 《우파니샤드》에도 나오듯 ‘다른 것이 있는 곳에는 항상 두려움이 있다’는 의미다. (221)


시모어 박사는 내가 제시한 의식의 전체상에 흥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많은 사람들은 동서양 통합의 정초자로서 융을 내세운 반면, 나는 일찍이 융에게는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큰 오류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동서양 통합의 출발점(물론 종점은 아니다)으로서는 프로이드 쪽이 보다 적합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229)


신비주의의 관건은 의견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비교 혹은 신비주의는 스스로 실험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246)


나는 융이 저지른 커다란 잘못이 집합적인 것과 자아초월적(혹은 신비적) 요인을 혼동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집합적인 형태를 계승한다 해도, 그러한 형태가 신비적이라든지 자아초월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발가락 10개를 가진 채 태어납니다. 이것은 집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신비적인 체험이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융의 ‘원형’은 순수한 영적, 초월적, 신비적, 자아초월적 자각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삶, 죽음, 탄생, 어머니, 아버지, 그림자, 자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이며 실존적 조건에서 집합적으로 계승된 것입니다. 여기에 신비적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집합적이긴 하지만 자아초월적이지는 않습니다.

집합적 전(前)개인 요소, 집합적 개인 요소, 그리고 집합적이고 초개인적인 요소가 있지만, 융은 이런 구별을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단계에 대한 그의 이해가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물론 개인적 및 집합적인 신화의 무의식과 타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런 요소는 모두 진정한 신비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신비주의는 우선 형태를 넘은 빛을 발견한 후, 빛을 넘어 형태가 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251~252)


이미지는 있는 것을 보고, 그것과 닮은 모양으로 상을 만듭니다(표상). 정말로 단순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의 이미지는 나무와 닮아 있습니다. 반면 상징도 무엇을 표상하는 것은 같지만 실물과 닮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이미지에 비하면 고도의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파이도Fido’라는 말이 당신이 기르는 개를 나타낸다 해도 그 말은 실제 개와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마음에 붙들어두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말은 이미지가 발생한 후에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개념은 사물의 ‘집합Class’을 나타냅니다. ‘개’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개를 의미하는 것이지 ‘파이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의 습득은 한층 더 어려운 것입니다. 상징은 지시(Denote)하고, 개념은 암시(Connote)합니다. 우리는 이 상징과 개념을 포함해 전(前)조작적 혹은 표상심(Rep-Mind)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56)


신비적 합일은 존재의 ‘모든’ 단계와의 결합, 즉 물리적, 생물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단계 모두와의 결합입니다. (260)


켄 : 그래요. 다 프리 존이 한 것처럼, 나도 위대한 신비사상의 전통을 3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즉 요기, 성자, 현자입니다. 이 셋이 심혼, 정묘, 원인의 각 단계에 해당합니다. 요기는 자신이라는 개체의 심신에 있는 에너지를 이용해 그 심신을 초월합니다. 심신, 그리고 그것이 포함하는 무의식의 과정이 엄밀한 제어 아래 놓여짐에 따라, 주의력은 심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결국 자아초월적인 기반으로 돌아갑니다.

에디스 : 이 과정이 정묘(精妙) 단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해도 좋습니까?

켄 : 그렇습니다. 주의력이 외적 환경이나 외부 세계나, 심신이라는 내부 세계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면서, 의식은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을 초월하기 시작합니다. 이원론으로 이루어진 환상의 세계가 진정한 모습, 영 그 자신의 현현으로 보이게 됩니다. 외계나 내계도 모두 신성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의식이 빛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어, 신성 그 자체와 직접 접촉하고 결합해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성자의 길입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성자 머리 주위에는 빛의 고리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것은 직관을 얻은 정신의 상징입니다. 심혼 단계에서는 신성이나 영과 접하기 시작하지만, 정묘 단계에서는 영과의 결합, 신비적 합일을 체험합니다.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합일입니다.

에디스 : 그렇다면 원인 단계에서는 어떻습니까?

켄 : 모든 과정이 완성됩니다. 영혼, 즉 순수하게 보는 자는 그 근원에 용해되어, 신과의 ‘합일’이 신성 또는 만물의 현현되지 않은 기반과 ‘동일함’으로 변합니다. 이것은 수피들이 말하는 ‘지상(至上)의 동일함’입니다. 이 단계에서 자신이 기본적으로 모든 조건, 모든 본질, 모든 존재를 성립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깨닫습니다. 영은 만물의 조건 내지 진여(眞如, Suchness)이기 때문에 모든 것과 완전히 조화롭게 존재합니다. 또 그것은 특별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 나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고,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현인의 길, 즉 너무 현명해 그것을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 걷는 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적응하고 그 일을 완수합니다. 선의 십우도(十牛圖)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 마지막엔 저자거리에 있는 아주 평범한 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맨 손으로 저자거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70~271)


에디스 : 이제 알겠어요. 언제나 당신이, 종교를 매장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한 근대 합리주의가 실제로는 매우 영적인 움직임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를요.

켄 : 그래요. 그 점에서는 나도 종교사회학자들 안에 고립돼 있는 것 같군요. 내 생각에 그런 학자들에게는 의식의 스펙트럼에 대한 전체적인 상세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노하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근대 합리주의와 과학의 탄생을 한탄합니다. 왜냐하면 근대 합리주의나 과학(5단계)은 고대적, 마술적, 그리고 신화적 세계관을 초월하여, 결국엔 그것들을 해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 학자들은 과학이 ‘대체로’ 영성을 소멸시키는 것, 모든 종교를 말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신비 종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그러므로 그들은 과학 이전의 깨끗한 신화, 옛날의 깨끗한 전(前)합리적인 시대, 자신들에게 있어서의 ‘진정한’ 종교를 동경합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초합리적이며, 우리의 집단적 과거가 아닌 집단적 미래에 놓이는 것입니다. 오로빈도나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 말하듯이, 신비주의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것으로, 퇴화적이지도 퇴행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과학은 영성에 대한 미숙한 견해를 없애주어 전합리적인 세계관을 불식해줍니다. 이것은 보다 고도의 발달 단계에서, 순수하게 초합리적인 통찰을 획득하는 여유를 자기 안에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고도의 발달 단계가 순수하게 신비주의적, 혹은 명상적인 진화의 자아초월적 단계인 것입니다. 과학은 또 심혼적 단계나 정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 마술적, 신화적 세계관도 없애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 및 합리성은 진정한 영적 성숙으로 가기 위한, 진화의 위치에 따른, 빠뜨릴 수 없는 건전한 단계입니다. 영성으로 ‘향하는’ 영적 움직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만, 이것이 그토록 많은 위대한 과학자가 위대한 신비사상가이기도 한 근거입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합입니다. 외적 세계의 과학과 내적 세계의 과학의 만남이야말로 동서양의 진실한 만남인 것입니다. (277~ 278)


“무엇이 보입니까?” 머뭇거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나는 싸우지 않으려고 했다. 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수백만의 단서와 상징, 문장들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것들을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스스로를 보기 위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세계는 스스로를 보는 상태와 보이는 상태로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분리되고 단절된 상태에서 그것이 보는 것은 모두 부분적으로만 그 자신일 뿐이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보려고 노력함으로써 세계는 명백히 자신과 구별되고,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거짓인 듯이 행동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 세계는 항상 스스로를 부분적으로 감춘다.”

“계속 읽으시오.”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다른 구절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영겁으로부터 하늘과 땅에서 일어난 모든 것, 신의 삶, 시간의 모든 행위들은 단지 영이 스스로를 알고 발견하며,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고, 마침내는 자신과 결합하려는 노력이다. 영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되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만 소외되고 분리된다.”

“다시 한번만.”

“영은 지배하는 시저, 냉혹한 도덕주의자, 움직이지 않는 동인을 강조하지 않는다. 영은 세계 속의 부드러운 요소들, 서서히 또 고요한 가운데 사랑으로 움직이는 요소들에 거주한다. 영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왕국의 현재의 즉시성(The Present Immediacy)에서 목적을 발견한다. 사라져버리지만 영원히 살고 있는 우리의 즉각적 행동의 항존하는 중요성으로 인해, 존재가 새로이 신선해지기를 바라는 끈지긴 갈망이 이런 식으로 정당화된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존재 없는 목소리가 말했다. (322~323)


죄와 죄책감을 강조하는 유대 기독교에서는 질병을 잘못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현상을, 자비심을 키우고 타인에게 봉사할 기회로 삼는 불교적 입장을 선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게 일어난 ‘좋지 않은’ 일들을 지나간 행동에 대한 징벌이 아닌, 과거의 업을 해소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접근은 현재 상황을 다루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뉴에이지의 관점에서는 아픈 사람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요?”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적 관점에서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는 사람(그가 비록 내가 선택하지 않았을 방법을 택했다 하더라도)에게 “축하해요. 당신에게는 이 상황을 감수할 용기가 있군요. 정말 축하합니다”는 의미의 말을 전할 것이다.

그래서 요새 나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거나, 암이 재발했거나, 혹은 몇 년 동안의 투병으로 점차 지쳐가고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조언을 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그들에겐 도움이 된다. 듣는 것은 주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정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의 공포를 넘어 그들과 닿을 수 있도록, 인간적인 접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진실로 두려워할 수 있게 스스로 허용한다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 닥쳐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타인을 위한 명령, 즉 당신의 삶을 위해 싸우라거나, 당신 스스로를 변화시키라거나, 의식적으로 죽으라는 식의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선택하거나 혹은 선택했을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계속 접촉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질병이 실패라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것과 친숙해지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이다. 사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항상 노력하면서, 타인과 나 자신을 위해 내 자신의 좌절, 약점, 질병을 자비심을 계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우리의 자비심을 요구하는 매우 실제적인 아픔과 고통이 내 주변에 널려 있고, 그 속에 심리적영적 치유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341~342)


모든 질병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접근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올라가는 것이다. 첫째로 신체적인 원인을 살펴라. 능력이 닿는 데까지 샅샅이 살펴보라. 그런 다음에는 가능한 모든 정서적 원인으로 올라가서 샅샅이 조사하라. 그 다음은 정신적 원인, 그 다음에는 영적 원인의 순서로. (중략) 어떤 질병이든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은 중요하고도 심오한 변화를 겪기 때문에, 그들에게 변화가 부족해서 질병을 앓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350)


그렇다면 ‘마음만이 모든 신체적 질병을 야기하고 고칠 수 있다’는 뉴에이지의 발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뉴에이지는 그러한 발상이 세계의 위대한 신비적영적초월적 전통에 확고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주장이 매우 취약한 근거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치유에서의 심상Imagery in Healing》(필독을 권하는 책이다)의 저자인 진 액터버스는 그런 생각이 역사적으로 ‘신사상(New Thought)’ 혹은 ‘형이상학적 사상(Metaphysical Thought)’ 학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학파가 동양의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뉴잉글랜드 초월주의 작가 에머슨과 소로우를 왜곡했다고 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로 유명한 이 학파는 ‘신성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것을 ‘나는 신과 하나다. 고로 내가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였다.

나는 그들의 생각이 2가지 오류를 범했다고 믿는다(물론 에머슨과 소로우 역시 그들의 생각에 강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첫 번째, 신은 공정한 실재, 혹은 본질(Suchness)이나 조건이 아니라 우주를 위해 개입하는 부모라는 것이다. 두 번째, 당신의 자아는 부모와도 같은 신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주에 개입할 수 있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신비적 전통 어디에서도 그런 생각의 근거가 될 만한 것들을 결코 찾아낼 수 없었다.

뉴에이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업의 원리에 근거를 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원리에 따르면 현재의 삶은 이전 생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부분적인 사실이다. 그것이 전체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결정적인 요인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당신의 현재는 이전 생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며, 당신이 지금 하는 생각과 행동은 현재의 삶이 아닌 다음 생, 다음 번 윤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당신은 이전 삶에서 써놓은 책을 읽을 뿐이고, 현재 당신이 하는 것은 다음 생이 될 때까지는 결실을 맺지 않을 거라고 불교도들은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의 현재 생각은 현재의 실재를 창조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특정한 업의 관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다분히 원시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이것은 차원 높은 불교학파에 의해 더욱 정밀하게 다듬어졌다(대부분 폐기되었지만). 그들은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과거 행동의 결과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족첸불교(일반적으로 불교 가르침의 정점이라고 생각되는)의 스승인 남카이 노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업 때문에, 혹은 개인의 이전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 외부에서 온 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같이 환경의 일시적인 원인들로 야기되는 질병도 있고 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환경과 연관된 온갖 종류의 질병이 있는 셈입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원시적 형태든 진보적 가르침이든 간에 업에 관한 어떤 것도 뉴에이지 관점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여기서 나는 그들에 관한 내 나름의 이론을 만들어보겠다. 뉴에이지의 관점에서 야기하는 고통과 연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들이 매우 위험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정리하고 분류하여 이론화하려는 것이다. 아주 순수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해롭지 않게 이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 운동의 국내 지도자, 당신 자신의 실재를 창조하는 것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려 한다. 가령 그들은 워크숍을 열어 암이 오로지 적의 때문에 생긴다고 가르치고, 가난은 당신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자 스스로에 대한 학대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선의를 갖고 있음에도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는 진정한 부분, 예를 들어 신체적환경적법적도덕적경제적 수준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과 주의를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런 신념들, 특히 당신 스스로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는 신념은 두 번째 단계의 믿음이다. 그것들은 모두 과대망상, 전능을 포함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유아적이고 마술적인 세계관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고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2단계를 정의하는 자아 경계의 불완전한 분화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본다. 생각과 대상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조정하는 것이 곧 전능적이고 마술적으로 대상을 조정하는 일이 된다.

나는 ‘나만의 세대(Me Decade)’에서 지나치게 개인화된 미국 문화가 사람들을 마술적이고 자기애적인 수준으로 퇴행하게끔 조장한다고 믿는다. 또한 로버트 벨라나 딕 안소니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응집력 있는 구조가 붕괴되면서 개인을 자신의 기원으로 되돌려놓았고, 이는 자기애적 경향을 재활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임상심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자기애라는 표층 바로 아내 분노가 숨어 있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신념으로 표명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당신은 치명적인 병에 걸릴 겁니다. 나에게 동의하십시오. 당신 자신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세계의 위대한 신비 전통에 근거하지 않는 사유다. 자기애적, 경계선적 병리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

〈뉴에이지〉에 실은 나의 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했다. 하지만 강경파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트레야와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녀가 암에 걸린 것이 마땅하다는 식의 분노를 표출했다. 그녀는 암을 자초한 것이었다.

나는 뉴에이지 운동 전체에 대해 비난한 것이 아니었다. 뉴에이지 운동은 마치 얼룩덜룩한 큰 짐승 같다. 거기에는 진정한 신비주의, 트랜스퍼스널 원리(직관의 중요성, 우주 의식의 존재 등)에 바탕을 두는 측면도 있다. 진정한 트랜스퍼스널 운동은 항상 전개인적인 요소를 상당 부분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둘 다 비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과 ‘초’ 간의 혼동은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인 것 같다. (352~355)


이틀 전 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까지의 꿈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자아상을 보여주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몇몇 친구들은 내게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었으며, 내가 얼마나 근사한지 말해주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겸손을 떨지도 않았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다는 내면의 장애도 없었다. 나는 그들의 칭찬을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오게 했다. 내가 꾸었던 것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꿈이었다.

나는 간혹 내 주변이 사랑을 금빛으로 시각화하곤 한다. 한번은 내가 매우 진한 금빛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몸 가까이에서 엷은 푸른색이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 푸른빛이 켄과 내가 겪어야 했던 어려운 시절에 대한 슬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갑자기 두 빛이 섞이더니 아주 빛나고 힘차며,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연둣빛을 만들어냈다. 그 치유적인 빛에 잠겨 나는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사랑이 존재함을 느꼈다. 그리고 사랑이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임을 느꼈다.

나에겐 몇 가지 확신이 생겼다. 지금 확신하는 것은 ‘우주는 안전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통제와 신뢰는 항상 나의 주제였다. 따라서 이런 확신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영적 면역계(Immune System of Spirit)’라고 부른다. 이것의 T임파구, B임파구, 백혈구는 긍정적 사고이자 명상, 자기긍정, 승단(僧團, Sangha) 법(法, Dharma), 자비와 친절이다. 이런 요인들이 신체적 질병에서 20%의 가치만 있다면 나는 그 20%를 전부를 원한다. (359~360)


우리는 반 고흐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오르세 박물관에 줄을 섰다. 쇼펜하우어는 ‘형편없는 예술은 모방하고, 훌륭한 예술은 창조하며, 위대한 예술은 초월한다’는 예술론을 편 바 있다. 그가 말한 ‘초월한다’는 ‘주관과 객관의 이원성을 초월한다’는 말이다. 즉, 모든 위대한 예술은 감수성 있는 관람객을 완벽하게 예술로 끌어들인다. 따라서 적어도 그 작품을 대하는 순간만은 분리된 자아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비이원적이고 영원한 자각으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대한 예술은 그 내용이 어떻든 신비적이라는 뜻이 된다. 나는 반 고흐를 보기 전까지, 예술이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힘은 굉장히 놀라운 것이었다. 단번에 숨을 앗아가고 자아를 앗아가는 경험이었다. (389)


내가 느낌을 포착해서 개념으로 연결했다면, 트레야는 개념을 포착해서 느낌으로 연결했다. 내가 끊임없이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움직였다면, 트레야는 항상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움직였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트레야는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문화를,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다. 내가 바흐를 들으려고 창문을 닫았다면, 그녀는 새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바흐를 껐다.

전통에 따르면 영은 하늘이나 땅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심장에서 발견된다. 영혼의 심장은 하늘과 땅의 통합, 혹은 결합 지점, 즉 땅이 하늘의 바탕이 되고 하늘이 땅을 고양시키는 지점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하늘이나 땅만으로는 영을 포착할 수 없다. 영혼의 심장에서 발견되는 둘 사이의 균형만이 우리를 죽음, 필멸성, 고통을 넘어 비밀의 문으로 인도한다.

트레야는 그 영혼의 심장으로 가는 길을 내게 가리켜주었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해준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안을 때 하늘과 땅이 결합하고, 바흐와 새들이 함께 노래하기 시작하며, 볼 수 있는 만큼의 행복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만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런 차이가 때때로 성가셨다. 나는 항상 개념으로 도망치는, 가장 단순한 사건에서 복잡한 이론을 굴리는 멍청한 교수인 반면, 트레야는 항상 땅을 끌어안은 채 계획을 세우지 않고는 날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요점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아마도 수많은 남자와 여자가 그럴 것이라는 점을(캐롤 길리건에 의하면), 우리는 자체로서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는 하늘, 하나는 땅인 반쪽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런 차이들에 감사했다. 차이를 존중하는 것을 넘어 고맙게 느꼈다. 나는 개념 속에서, 트레야는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이며, 결국 영혼의 심장에서 함께 결합하여 전체가 된다. 우리는 하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원초적인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플라톤의 말처럼 말이다. “한때 남자와 여자는 전체였지만 둘로 갈라졌다. 그 전체를 추구하고 욕망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483)


연민이란 공포를 느끼며 고통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순간에 주어진 것들을 바꾸고 싶게끔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그대로 내버려두면서 공포와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쓰다듬을 때, 그것은 자비가 된다―스테판 레바인. (410)


나는 트레야에게서 야릇한 ‘평화’를 느꼈다. 진솔한 수용과 우울한 인내가 섞여 있는 평화. (411)


난 매일 시간을 내서 가슴의 거친 부분에 채널을 맞춰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무언가 올라오면 그것과 대화를 나누고 모든 지시에 따랐다. 소리를 지르라고 말하면, 문을 닫은 후 샤워기를 틀어놓고는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어쩌면 그것이 심리적 매듭을 풀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의 안내자인 성모 마리와 늙은 현자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들의 안내를 따른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을까?

누가 알겠는가? 확신을 가지고 ‘이것이 결정적 요인이다’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감기든 암이든 말이다. 나는 ‘진실’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했다. 내 ‘이론들’에 대해 유희적 태도를 가지며, 사태들을 항상 가볍게 여기고, 어떤 유형의 설명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이 모든 것에 대해 내가 만든 마음을 끄는 이야기들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진실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그 속에는 항상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었다. (413~414)


트레야와 나는 명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라도 비통함이나 적의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그렇게 2, 3시간이 지나면 간호하는 사람으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한 것 같다. 암을 비난하거나, 트레야를 비난하거나, 내 상황 때문에 삶을 비난하는 것은 그릇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명상 중에는 지켜보는 자가 서서히, 그러나 틀림없이 되돌아왔다. 좋든 싫든, 삶이든 죽음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간에 모든 드러남은 똑같이 ‘일미(一味)’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415)


라마나 마하리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당신은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나쁜 일에 대해서는 감사드리지 않는다. 거기에 잘못이 있다.” 이 말은 뉴에이지 운동의 잘못을 매우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요점은 이렇다. 신은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처벌하거나 보상해주는 신화적 부모가 아니라, 공평한 실재이자 드러난 모든 것의 본질이다. 매우 드문 경우긴 하지만, 이사야조차도 “나는 좋거나 나쁜 일에 똑같이 빛이 들게 한다. 주(主)이신 나는 이 모든 것을 행한다”라고 말했다. 선과 악, 쾌락과 고통, 건강과 질병, 삶과 죽음이라는 이중성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드러난 모든 것’과 ‘일미(One Taste)’인 우주 전체와의 비이원적인 일체감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라마나는 우리가 고통, 질병, 통증과 친해져야만 진정으로 전체, 즉 진아와의 더 크고 광범위한 일체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아는 삶의 희생자가 아니라 공정하게 지켜보는 자이며, 원천이라는 것이다. 특히 라마나는 궁극적인 스승인 죽음과 친해지라고 말한다. (417)


의지의 주요 활동은 노력이 아니라 승낙(Consent)이다. 의지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은 거짓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지가 내적 자유라는 사다리를 오를 때면 그것은 점점 더 신의 도래, 은총의 유입을 승낙하는 것이 된다―토머스 키팅 신부. (442)


시작이 있는 것은 진정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 체험이 아닌 것, 시작이 없는 것을 인식하면 다시 오세요. 당신이 이미 자각하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시작 없는 상태를 인식하면 다시 오십시오. (477)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사는 것은 어렵다. (477)


트레야가 눈을 감았다. 모든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다 프리 존의 구절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진정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완전히 취약하게 열어놓는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훨씬 넘어선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사랑이 당신을 산산조각 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둘 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했고 나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되돌아보면 그 단순하고 직접적인 순간에 우리는 둘 다 죽어버린 것 같다. (510~511)


내 무덤에 앉아서 울지 말아요.

나는 거기에 없어요. 잠자지 않아요.

나는 불어오는 천 개의 바람

나는 눈 위에 비친 다이아몬드 섬광

나는 잘 읽은 곡식 위로 쏟아지는 햇볕

나는 부드러운 가을비

아침의 고요 속에서 당신이 눈뜰 때

나는 둥글게 비상하는 조용한 새들의

재빠르게 위로 상승하는 활기

나는 밤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

내 무덤에 앉아서 울지 마요

나는 거기에 없어요 (522)


*


이 책은 특별히 인용, 필사해서 웹에 올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병이나 죽음과 같은 그림자 짙은 주제에 대해선 왈가왈부 떠들어대기보다는 심중에 깊이 묻어두는 편이 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앞으론 신(성)이나 영(성) 등의 주제에 관해서도 이런 태도를 취해가지 않을까 여겨지는데, 어쨌든 오후와 저녁나절을 꼬박 이 책을 재독하는 데 쏟은 것은 뜻밖에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후배는 두 차례의 위암 말기 수술에서 이제 막 회복중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장기에서는 더 이상의 암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되어 혈액 속을 흘러 다니는 중이라 하니, 가까운 시기에 재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단다. 후배는 예정대로라면 올봄에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다. 재능 있고 신실하며 인격도 갖춘 안팎으로 매력적인 드문 인재인데, 녀석의 거침없는 운명에 블레이크가 걸린 셈이다.


그러나 사태를 전하는 후배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그래서 후배가 남긴 마지막 말의 울림이 더 컸을까. “요즘 아버지 존재감이 너무 커요. 짓눌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존재감의 실체가 아버지가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일 거야, 라고 대꾸하려다 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이미 알고 바를, 이미 알고 있기에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무엇을, 자비롭지 못하게도 바늘로 찔러 터뜨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만 후배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면 이 책을 가만히 쥐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자와 간호하는 자, 죽은 자와 살아가는 자, 그 모두를 위한 이 책을.


1991년에 초판을 내고 2000년에 개정판을 낸 켄 윌버는 다시 쓴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트레야와 나는 5년 동안을 함께 지내왔다. 그 시간은 내 영혼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우아함 덕분이었다. 나는 믿는다. 정직하고 고결하고 두려움 없이 행동한다면, 우리들은 언제라도 트레야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트레야의 마음과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트레야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1989년 새해 첫날로부터 48시간 동안, 트레야는 우아하고 용기 있게 죽어갔다. 그리고 빛과 광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전 공간에 해체시키며 궁극의 고향으로 아름답게 귀가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해피엔딩이다. 우리의 생이 원래 그러하듯이. 원제는 Grace and G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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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83) : 삼국지와 자치통감

사마광의 <자치통감> 번역본이 새로 나온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진수의 <삼국지>도 번역본이 새로 나온 것을 알고 좀 놀랐다. 이젠 정말 "절판본"이라는 말 자체는 없어질 운명에 처한 것일까?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예전에 제1권, 제2-4권이 각각 다른 출판사(제1권은 "세화"라는 기술서적 전문 출판사, 제2-4권은 역사 전문인 "푸른역사"에서 나왔다)에서 출간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제5-8권은 아예 번역자(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가 "삼화"라는 출판사를 등록해서 펴낸 것이라고 신문기사에 나왔다. 정확히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전31권으로 예정된 책의 첫 8권이 벌써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하는 셈이 되니 참으로 딱하다. 이번에 나온 책에 수록된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이미 <자치통감> 번역은 2005년에 끝났고, 향후 6개월마다 4-5권씩의 분량으로 번역서를 출간해 2009년 12월에 제32권 "해설"편과 애초에 다른 곳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제1-4권을 재출간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할 예정인 듯하다. <자치통감>의 번역은 일본에서도 아직 완간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하여간 출간 그 자체만으로도 일단 의의는 적지 않을 듯하니 부디 무사히 완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자치통감>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번역서는 예전에도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1980년대에 삼성출판사의 세계사상전집 가운데 총3권으로 번역된 김충렬 고대 철학과 교수(와 그 제자들)의 번역본 <자치통감>이었고, 또 하나는 1990년대 들어 나온 홍신문화사의 동양고전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통감>이었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은 <자치통감> 원본이 아니라 <통감절요>라는 일종의 축약본을 대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본(가령 2009년에 완간될 해설 포함 32권본)에 비하자면 무척이나 분량이 짧고, 그중에서도 한 권짜리인 홍신문화사 판 <통감>은 완역이 아니라 <절요>의 전체 분량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을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출판사 판 <자치통감>은 본래 세계사상전집 가운데 제4회 배본에 해당하는 76-100권 가운데 한 권으로 예정되어 있었나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중에 무슨 이유에선지 전집이 완간되지 못한 채로 끝나 버린 것으로 알고 있다.(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지금도 간혹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세로쓰기 (작은 판형) 삼성 세계사상전집은 1-75권까지뿐이다.) 그러다가 이 책은 나중(90년대 들어)에 전50권짜리 가로쓰기 사상전집 시리즈가 나왔을 때 <자치통감 I, II, III>이라고 해서 총3권으로 나왔다가, 그 다음에 표지를 바꿔서 그중 꾸준히 팔리는 것으로 30권인지 33권인지짜리로 개정판이 나오면서부터는 또다시 쏙 빠져버려서 상당히 "희귀한" 책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50권짜리 가로쓰기 전집에 수록되기 전인 1987년에 에 삼성출판사에서 <자치통감> 상중하 권을 박스에 담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적도 있었는데, 나도 운 좋게 그 세트 가운데 하나(91년에 나온 3쇄본)를 구해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처음 판본은 상중하 대신 천(天), 지(地), 인(人)이라는 구분기호를 쓴 것으로 기억한다.

 



<삼국지>의 경우는 아마도 진수의 역사책 <삼국지>보다는 나관중의 소설책 <삼국지연의>가 더욱 유명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진수의 <삼국지>는 1994년에 처음 신원문화사에서 출간되면서 이름을 <정사 삼국지>라고 했다. 위서, 오서, 촉서 세 가지로 나누어 각각 4, 2, 1권으로 이루어져 총7권으로 완간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절판된 지 오래라 나도 여기저기 헌책방을 통해 겨우 위서 4권만 맞춰놓고 있었는데 이번에 민음사에서 같은 번역자의 책이 총4권(위서 2, 촉서 1, 오서 1)으로 재간행된 모양이다. 그래도 <삼국지>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소설이 얻은 큰 인기를 고려해 볼 때 다른 중국 역사책 원전(가령 <사기>나 <한서> 등)에 비하자면 그래도 꾸준히 수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에도 과연 민음사의 "불패" 신화(셜록 홈즈건 몬테 크리스토건 간에 딴 출판사 판본은 망해도 민음사 판본은 팔린다는 것! 이것 역시 paradoxa minumsa 가 아닐까.)가 이어질지 궁금하다.

 

 

 

 

 

 

 

 

 

 

중국의 역사서 가운데 보통 "정사"로 꼽는 것을 흔히 "이십오사"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사기>와 <한서>와 <삼국지>부터 시작해서 우리에게는 오히려 생소한 후대의 역사서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으로는 <사기>(완역)와 <한서>(부분역으로 "열전"이 세 종류, "예문지"가 한 종류 나와 있는 정도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삼국지>가 전부인데, 어쩌면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편년체 사서인 <자치통감>이 어느 정도 커버하고 있으니 도움이 되고, 또 그 이후의 이야기는 부족하나마 증선지의 <십팔사략>이 또 어느 정도까지 커버해주기 때문에, 다른 책은 몰라도 <자치통감>과 <십팔사략> 정도는 좋은 번역본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십팔사략>의 경우는 이름 그래도 중국 정사 가운데 처음부터 열여덟 권을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분량이 많지는 않아서 제법 읽기가 용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엉뚱하게도 <십팔사략>이라고 하면 고우영의 <만화 십팔사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솔직히 내 기억에 그건 고우영의 만화 중에서도 이상하게도 좀 "질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그의 초기작인 <임꺽정>이나 <일지매>에 나타난 정교하면서도 인상적인 그림과 배경, 그리고 먹 사용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잇을 것이다.) 내 기억에 <십팔사략>의 완역(?)은 예전에 박영사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세 권짜리가 아닐까 싶고, 나중에 미래사인가 어디에서 두어 권으로 다시 나온 <십팔사략>(완역은 아니고 재편집본)도 지금은 절판된 지 오래인 것으로 안다. 사실 이 정도면 지금쯤 다시 한 번 나와도 될 것 같은데 어째 소식이 없는 지 궁금하다. 벌써 나왔는데 내가 모르는 것일까? (쓰고 나서 찾아보니 탐구당에서 선집이 새로 하나 나왔고, 명문당에서 완역본 가운데 1권이 출간된 모양이니 머지않아 완역이 나오긴 나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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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반조 >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명
최준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내 고향의 천은사가 항상 맑고 청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는비가 흩뿌릴 때 천은사 일주문을 자주 들었던가 보다. 그러나 어쩌면 일주문 편액 탓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찰의 일주문 편액이 가람의 위세를 과시하듯 힘찬 필세의 글씨라면, 천은사 일주문 편액은 풀잎을 뒹구는 물방울처럼 작고 맑게 흐르는 필세의 글씨였다. 일주문 편액의 분위기가 곧 천은사 가람의 분위기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원교 이광사의 ‘유수체(流水體)’라 하던가.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인데, 작년부터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년간 서화를 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탁본첩이나 서첩을 빌려와 일견하면서 수많은 서예가들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서예가들을 꼽아보았다. 김생, 탄연, 영업, …. 그들 모두가 명필 중의 명필로 꼽히는 분들이었다. 나는 서첩들을 보기 이전에 서예관련 글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역시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따로이 설명이 필요없고 곧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인가? 능호관 이인상도 그렇게 만났다. 그에 관한 견문도 없었고 관련 글도 읽은 바 없었지만, 전시된 단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단번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나의 고미술 지식이 형편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다. 내 감각에 대한 확신이 내가 소유한 지식보다 월등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주류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국외자적 인물임을 자각하고 있다. 서양인문학에 심취하였다가 동양적 정신세계로 완전히 돌아서버린 인문학도. 정상적인 경로라면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하여 탄탄하고 끈질긴 준비를 해야 할 30대 중반에 나는 돌연히 방향을 틀었던 것이고, 대학초년생처럼 동양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은 감히 품지도 못한다.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는 훨씬 오래이고. 다만 ‘나’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뭔가를 배우며 변해가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유일하게 벗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분들은 옛 사람들이다.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승과 선비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예술세계. 그들은 내가 예전부터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분들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듯 발견되기 시작한 분들이다. 이것이 내게 중요하다. 그들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으나, 그들의 글이나 예술을 보는 순간 간명직절하게 읽히고 보인다는 것.
 

<원교창암유묵>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서첩(소위 ‘구풍첩’)에 창암 이삼만(1770~1847)의 글씨가 더해진 것이다. 즉, 후대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서첩을 합한 것이 아니라 창암 선생이 원교 선생의 서첩에다 원교 선생을 흠모하면서 자신의 글을 덧댄 것이다. 이 유묵을 아산 조방원 선생이 40여년 간 소장하고 있다가 “완상과 농첩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몇년 전에 100부 영인본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이 영인본의 수량 부족을 대신하기 위하여 최준호 선생이 «원교창암유묵»을 탈초하고 해제하여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한얼미디어, 2005)는 제목으로 단행본 책자를 출간하였다. 이 단행본 말미에는 <원교창암유묵>의 복사본이 실려 있어 나같은 학인 수준의 완상첩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성싶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서첩의 탈초와 해제, 그리고 서첩복사본으로 주요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해제자가 워낙 조심스런 마음을 가진 분이어서 원교와 창암의 무게를 겨우 겨우 감당해 내면서 두 명필이 썼던 글을 또박또박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관련 해제를 덧붙혔다. 탈초(脫草), 즉 초서체를 정자체로 옮기는 작업만 해도 7개월 가량 소요되었다고 하니 글의 출전을 일일이 밝히고 그 출전에 관한 주석과 해석을 찾아내는 수고는 또 얼마나 컸을까. 필자의 해제는 과잉해석을 철저히 금하고 대부분 전고로 일관하고 있지만,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 이들로서는 이것이 불만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학인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덕분에 원교의 «서결(書訣)»이나 창암의 «서결»이 해제의 자리를 빌어 갈피갈피 소개된다:

비록 자획은 마음가짐에 근원하고 담긴 품격은 식견과 도량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모든 것에 통달하여 지혜가 밝고 정직하며 널리 배워 학문을 갖춘 선비라야 서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20)

이것은 책에 소개된 원교서결의 한 대목이다. 원교서결은 내가 유일하게 의존하고 있는 예술론이기도 하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원교서결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으뜸가는 선비는 도를 들음에 부지런히 실행하고, 중간치의 선비는 도를 들음에 반신반의하고, 아랫등급의 선비는 들음에 크게 비웃나니 아랫등급 선비가 크게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도덕경 41장)라고 하였다. 서도는 비록 작은 도이기는 하나 그 지극한 측면을 말하면 또한 그러하다. 또 누가 아랫등급 선비의 마음을 사려고 하다가 도리어 으뜸가는 선비의 비웃음을 당하려 하겠는가? 한유가 말하기를 “글이 조금 부끄러우면 사람들이 조금 좋다고 하고, 크게 부끄러우면 매우 좋다고 한다”라고 하였고, 손과정이 말하기를 “매번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것에는 일찍이 눈길을 준 적이 없고, 혹 잘못이 있는 것은 도리어 감탄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 김남형 역, «서예비평»(한국서예협회 2002) 223~224면

으뜸가는 작품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 고결한 정신이 외면 당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그래서 대가들은 주위와 당대의 평가는 상관하지 않고, 백 년, 이백 년 뒤에 나타날 진정한 대가의 안목을 두려워했다. 먼 후대의 안목이 두려워 맑음과 고고함을 놓치지 않고 그 외로운 경지를 버텨낸 것이다. <원교창암유묵>은 그러한 경지에서 노닐었던 대가들의 서첩이다.


<원교창암유묵>의 구성을 보면, 원교의 글씨가 112자, 창암의 글씨가 발문을 포함하여 110자로서 각각 30면, 26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서체가 각 글귀마다 달라 완상하는 재미가 더하거니와, 특히 글귀의 뜻을 음미하며 완상하노라면 가히 옛 사람들의 완상하는 맛을 알 듯도 하다.

“입으로 외우는 사람은 소털 같이 많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기린뿔 같이 귀하다.”(口誦牛毛 心麟通角) <원교창암유묵>은 이 전서의 글씨와 함께 시작된다. 책에 실린 서첩복사본을 보면 붓의 속도, 필세, 먹의 농담, 결구의 흔적, 비백 처리 등등, 진품을 완상할 때 못지않게 세밀하게 완상할 수 있다. 얼핏 전서라면 강직하고 굳센 의기가 연상되지만 서첩을 완상하다보면 이처럼 맑고 한가로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의연하다. 해제자는 이 글씨를 두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담겨 있다. 맑은 하늘에 구름 지나가듯이 천천히 지나간 붓자국의 필로가 역력하다”(21)고 평한다.

위와 같은 식으로, 유묵의 각 글귀마다 번역, 출전, 해제 순으로 글들이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원교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요, 2부는 창암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다. 3부에서는 원교, 창암, 추사의 생애를 약술한 뒤, 세 명필 간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책 말미에 실어놓은 <원교창암유묵> 복사본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다. 연노란 한지의 질과 때묻은 흔적마저 자세히 보일 정도로 복사상태가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마치 <원교창암유묵>처럼 완상한다. 완상할 때마다 언제나 맑은 기운이 내 몸을 감돈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높은 암벽이 노을을 다투고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森壁爭霞 孤峯限日) 암벽들이 으리으리한 삼림처럼 뻗어올라 노을을 다투지만, 그러나 붉은 해는 외로운 봉우리로 저문다. 예술가는 모름지기 외로운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외로운 봉우리에, 천하를 삼키고 떨어지는 붉은 해 있으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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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반조 >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명
최준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내 고향의 천은사가 항상 맑고 청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는비가 흩뿌릴 때 천은사 일주문을 자주 들었던가 보다. 그러나 어쩌면 일주문 편액 탓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찰의 일주문 편액이 가람의 위세를 과시하듯 힘찬 필세의 글씨라면, 천은사 일주문 편액은 풀잎을 뒹구는 물방울처럼 작고 맑게 흐르는 필세의 글씨였다. 일주문 편액의 분위기가 곧 천은사 가람의 분위기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원교 이광사의 ‘유수체(流水體)’라 하던가.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인데, 작년부터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년간 서화를 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탁본첩이나 서첩을 빌려와 일견하면서 수많은 서예가들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서예가들을 꼽아보았다. 김생, 탄연, 영업, …. 그들 모두가 명필 중의 명필로 꼽히는 분들이었다. 나는 서첩들을 보기 이전에 서예관련 글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역시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따로이 설명이 필요없고 곧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인가? 능호관 이인상도 그렇게 만났다. 그에 관한 견문도 없었고 관련 글도 읽은 바 없었지만, 전시된 단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단번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나의 고미술 지식이 형편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다. 내 감각에 대한 확신이 내가 소유한 지식보다 월등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주류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국외자적 인물임을 자각하고 있다. 서양인문학에 심취하였다가 동양적 정신세계로 완전히 돌아서버린 인문학도. 정상적인 경로라면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하여 탄탄하고 끈질긴 준비를 해야 할 30대 중반에 나는 돌연히 방향을 틀었던 것이고, 대학초년생처럼 동양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은 감히 품지도 못한다.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는 훨씬 오래이고. 다만 ‘나’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뭔가를 배우며 변해가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유일하게 벗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분들은 옛 사람들이다.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승과 선비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예술세계. 그들은 내가 예전부터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분들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듯 발견되기 시작한 분들이다. 이것이 내게 중요하다. 그들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으나, 그들의 글이나 예술을 보는 순간 간명직절하게 읽히고 보인다는 것.
 

<원교창암유묵>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서첩(소위 ‘구풍첩’)에 창암 이삼만(1770~1847)의 글씨가 더해진 것이다. 즉, 후대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서첩을 합한 것이 아니라 창암 선생이 원교 선생의 서첩에다 원교 선생을 흠모하면서 자신의 글을 덧댄 것이다. 이 유묵을 아산 조방원 선생이 40여년 간 소장하고 있다가 “완상과 농첩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몇년 전에 100부 영인본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이 영인본의 수량 부족을 대신하기 위하여 최준호 선생이 «원교창암유묵»을 탈초하고 해제하여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한얼미디어, 2005)는 제목으로 단행본 책자를 출간하였다. 이 단행본 말미에는 <원교창암유묵>의 복사본이 실려 있어 나같은 학인 수준의 완상첩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성싶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서첩의 탈초와 해제, 그리고 서첩복사본으로 주요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해제자가 워낙 조심스런 마음을 가진 분이어서 원교와 창암의 무게를 겨우 겨우 감당해 내면서 두 명필이 썼던 글을 또박또박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관련 해제를 덧붙혔다. 탈초(脫草), 즉 초서체를 정자체로 옮기는 작업만 해도 7개월 가량 소요되었다고 하니 글의 출전을 일일이 밝히고 그 출전에 관한 주석과 해석을 찾아내는 수고는 또 얼마나 컸을까. 필자의 해제는 과잉해석을 철저히 금하고 대부분 전고로 일관하고 있지만,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 이들로서는 이것이 불만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학인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덕분에 원교의 «서결(書訣)»이나 창암의 «서결»이 해제의 자리를 빌어 갈피갈피 소개된다:

비록 자획은 마음가짐에 근원하고 담긴 품격은 식견과 도량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모든 것에 통달하여 지혜가 밝고 정직하며 널리 배워 학문을 갖춘 선비라야 서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20)

이것은 책에 소개된 원교서결의 한 대목이다. 원교서결은 내가 유일하게 의존하고 있는 예술론이기도 하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원교서결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으뜸가는 선비는 도를 들음에 부지런히 실행하고, 중간치의 선비는 도를 들음에 반신반의하고, 아랫등급의 선비는 들음에 크게 비웃나니 아랫등급 선비가 크게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도덕경 41장)라고 하였다. 서도는 비록 작은 도이기는 하나 그 지극한 측면을 말하면 또한 그러하다. 또 누가 아랫등급 선비의 마음을 사려고 하다가 도리어 으뜸가는 선비의 비웃음을 당하려 하겠는가? 한유가 말하기를 “글이 조금 부끄러우면 사람들이 조금 좋다고 하고, 크게 부끄러우면 매우 좋다고 한다”라고 하였고, 손과정이 말하기를 “매번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것에는 일찍이 눈길을 준 적이 없고, 혹 잘못이 있는 것은 도리어 감탄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 김남형 역, «서예비평»(한국서예협회 2002) 223~224면

으뜸가는 작품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 고결한 정신이 외면 당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그래서 대가들은 주위와 당대의 평가는 상관하지 않고, 백 년, 이백 년 뒤에 나타날 진정한 대가의 안목을 두려워했다. 먼 후대의 안목이 두려워 맑음과 고고함을 놓치지 않고 그 외로운 경지를 버텨낸 것이다. <원교창암유묵>은 그러한 경지에서 노닐었던 대가들의 서첩이다.


<원교창암유묵>의 구성을 보면, 원교의 글씨가 112자, 창암의 글씨가 발문을 포함하여 110자로서 각각 30면, 26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서체가 각 글귀마다 달라 완상하는 재미가 더하거니와, 특히 글귀의 뜻을 음미하며 완상하노라면 가히 옛 사람들의 완상하는 맛을 알 듯도 하다.

“입으로 외우는 사람은 소털 같이 많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기린뿔 같이 귀하다.”(口誦牛毛 心麟通角) <원교창암유묵>은 이 전서의 글씨와 함께 시작된다. 책에 실린 서첩복사본을 보면 붓의 속도, 필세, 먹의 농담, 결구의 흔적, 비백 처리 등등, 진품을 완상할 때 못지않게 세밀하게 완상할 수 있다. 얼핏 전서라면 강직하고 굳센 의기가 연상되지만 서첩을 완상하다보면 이처럼 맑고 한가로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의연하다. 해제자는 이 글씨를 두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담겨 있다. 맑은 하늘에 구름 지나가듯이 천천히 지나간 붓자국의 필로가 역력하다”(21)고 평한다.

위와 같은 식으로, 유묵의 각 글귀마다 번역, 출전, 해제 순으로 글들이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원교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요, 2부는 창암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다. 3부에서는 원교, 창암, 추사의 생애를 약술한 뒤, 세 명필 간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책 말미에 실어놓은 <원교창암유묵> 복사본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다. 연노란 한지의 질과 때묻은 흔적마저 자세히 보일 정도로 복사상태가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마치 <원교창암유묵>처럼 완상한다. 완상할 때마다 언제나 맑은 기운이 내 몸을 감돈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높은 암벽이 노을을 다투고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森壁爭霞 孤峯限日) 암벽들이 으리으리한 삼림처럼 뻗어올라 노을을 다투지만, 그러나 붉은 해는 외로운 봉우리로 저문다. 예술가는 모름지기 외로운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외로운 봉우리에, 천하를 삼키고 떨어지는 붉은 해 있으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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