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플라톤 전집에 관한 몇 가지 생각...

얼마 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동경대 강의록을 읽다가 떠오른 것이었나, "한 작가의 작품을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니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선 시바 료타로의 <탐라 기행>을 읽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현문숙 씨는 말이 없을 때는 생각에 잠겨 있다. 교토 대학에서 사회학을 배울 때는 특히 그리스 철학을 하던 다나카 미치타로 교수를 존경하여 <플라톤 전집>을 읽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몇 년 간이라는 기한을 정해놓고 매일 얼마씩을 일과로서 읽게끔 자신에게 의무를 과하였다. 매사에 그런 식이어서, 예를 들어 내가 <구카이 풍경>이라는 졸저를 주었더니 그것을 읽는 데 1년이 걸렸다고 부인 문순례 씨가 말해주었다. 인용이 있으면 일일이 그 원전을 찾아서 읽고 난 뒤에야 다음 대목을 읽어 나갔다는 것이다. (128쪽)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어디에선가 읽었는지 몰라도 서울대 철학과 교수였던 고 박홍규 선생의 일화가 떠올랐다.(이 글을 쓰기 위해 여기저기 뒤적여 보았는데도 출처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마도 이정우나 다른 제자들의 회고에 나온 이야기 같았는데.) 즉 박 선생이 학부 수업 시간에 슐라이어마허가 번역한 독어판 플라톤의 대화편을 학생들과 함께 강독했는데, 내용이 어렵고 학생들이 잘 따라오지 못해서 한 시간에 두어 줄도 나가지 못할 때가 많았고, 한 학기 내내 애를 써도 결국 서너 페이지밖에는 진도가 나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박 선생은 아랑곳 없이 방학이 끝나고 다음 학기가 되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지난 학기에 읽다 멈춘 부분부터 강독을 재개하곤 했고, 그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독어판 플라톤의 대화편 하나를 다 읽어치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고집과 여유 모두를 지닌 양반이 아닐까 싶다. 웬만큼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이라면 한 번 해보고 나서 귀찮아서라도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게다가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방학 때 나 혼자서라도 다 읽어치우면 읽어치우지 굳이 수년 간에 걸쳐 느릿느릿 거북이마냥 그 대화편 하나를 붙들고 있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대 학자로서의 놀라운 면모였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한동안 머릿속에 담아놓고만 있었던 이런 일화를 굳이 적어보는 까닭은, 어제 우연히 네이버에서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아마 "비트겐슈타인 전집"이란 제목으로 검색을 하다 그랬을 거다) 플라톤 전집의출간에 관한 최근 기사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작년 이맘때쯤 된 모양인데, 나로선 금시초문이어서 깜짝 놀랐다. 이야기에 따르면 이제이북스에서 약 30여 권 분량으로 된 플라톤 전집을 내달(3월)부터 시작해서 수년 내에 완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의 원전 번역을 내놓아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데, 내친 김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까지 내놓겠다며 상당히 큰 결심을 한 모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의아한 생각도 없지 않은 것이, 내가 알기로는 이미 서광사에서 성균관대 박종현 교수의 주도 하에 플라톤의 주요 작품이 번역 출간 중에 있고, 그와는 별도로 같은 출판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작품도 번역을 추진 중에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박종현 교수의 플라톤 역주 작업은 1997년에 <국가(정체)>가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해서 <티마이오스>, <에우티프론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필레보스>까지 모두 네 권이 출간되었고, 그 외에도 <연회(향연)>, <프로타고라스 / 메논>, <테아이테토스>,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테스>, <고르기아스>, <정치가>가 근간 목록에 올라 있었다. 문제는 이 번역 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박종현 교수의 경우에는 이미 단독, 또는 공동 작업의 결과물을 네 권이나 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의 다른 번역 내정자들은 아직까지도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 책을 번역하는 것보다는 훨씬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미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간 상황에서는 한편으로 아쉬움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회(향연)>의 경우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소피스테스>와 <정치가>는 한길사에서 다른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파르메니데스> 역시 <플라톤의 변증법>이라는 송영진의 저서에 부록으로 번역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출간이 예고되었던 책의 번역본이 "뜬금없이" 다른 번역자에 의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다는 것은 의도적인 중복 출판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독자로서는 약간의 혼란이랄까,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 속사정(추측컨대 어쩌면 가장 큰 것은 출판사의 이해관계, 그리고 번역자들이 소속된 학교라든지 계열 등의 이해관계가 아닐까)이 있겠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기존에 10년 넘게 번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플라톤 저작집에 대한 선망이 너무 컸던 까닭인지, 지금처럼 번역 작업이 사분오열 군웅할거의 추세로 접어드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물론 내지 말라는 법은 없고, 서광사 판본만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최근 들어서 그리스어 라틴어 원전 번역이 일종의 "추세"를 이루고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 단기간 내에 두어 종의 <플라톤 전집>을 갖게 된다는 것은 약간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물론 이제이북스라는 곳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집을 냄으로써 예상되는 한 가지 미덕은, 적어도 그 디자인 하나는 아주 "멋깔"스럽게 뽑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기서 나온 책을 몇 권 사 보았는데, 이건 표지는 물론이고 본문에 이르기까지 예전 이론과실천의 책에서 느껴지던 세련된 단순함이 물씬물씬 풍겨서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요즘 학술서 내는 곳 중에서 이 정도로 책의 외형에 신경 쓰고 감각이 뛰어난 곳은 못 본 것 같다.)

 

 

 

 

 

 

물론 영어권에만 해도 플라톤의 주요 저작집 번역은 여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솔직히 그 모두가 이처럼 단시일 내에 경쟁적으로 출간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가령 몇 년 전엔가는 이미 두어 종류의 번역본이 있던 프랑스에서 "새로운 번역"의 플라톤 전집이 완간되었다고 하는데, 기획과 번역 의뢰에서부터 완간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22년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프랑스의 사례를 반드시 본떠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책세상 판 <니체 전집>의 번역 때처럼 차라리 전공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일사분란한 공동 작업을 펼쳐 그 성과물을 내놓는 것도 나름대로는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박종현 교수의 고군분투야말로 놀라운 집념이고 존경해 마지않을 만한 일이지만, 개인의 힘으로서는 모두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라 추측되기 때문이다. 가령 서광사에서 준비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형이상학>, <범주론 / 명제론 / 분석론 후서>, <철학에 대한 권유>, <자연학> 등이 근간 목록에 올라 있었지만, <형이상학>을 담당했던 조요한 교수가 타계하는 등의 변동으로 인해 나중에는 <정치학>을 비롯해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 <수사학>이 추가된 반면 <형이상학>과 <범주론 (외)>는 근간 목록에서 빠져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니코마코스 윤리학>, <영혼에 관하여(데 아니마)> , <소피스트적 논박>, <변증론>, 그리고 부분 발췌역인 <형이상학> 등의 번역서가 다른 출판사에서 선보였고 말이다.

 

 

 

 

 

 

이번에 이제이북스의 전집 출간 계획이 보도되면서도 역시 "플라톤 전집 하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온 모양인데, 내 기억에 이런 말을 처음 한 사람 중 하나는 바로 도올이었던 것 같다.(<동양학>의 각주 가운데 하나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플라톤 전집"이란 것이 어디 옆집 멍멍이의 이름이 아니고, 게다가 돈이 있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걸 과연 개탄하고 자시고 할 만한 일인지 하는 의구심도 없지는 않다. 가령 우리나라에 서양철학이라는 학문이 상륙하고, 대학에서 정식 과목으로 가르쳐진 지는 겨우 100년이 될까말까 하지 않나 생각되는데, 물론 플라톤이 서양철학의 비조이자 최고봉인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간 그리스어 원전 독해력을 지닌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던 우리의 현실로 볼 때 그건 지나친 기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박종현 교수라든지 다른 선구적인 인물들의 기여로 인해, 이제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플라톤 전집이 (잘만 하면) 한 가지뿐만 아니라 두어 종이나 나올 기회가 생겼고, 아마 앞으로도 그 종수는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오히려 문제는 그동안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 원전 분야의 "업계"를 장악하고 있던 영어 및 일어 중역본에 비해서 일종의 비교우위를 장악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물론 박종현 교수의 역주서가 꾸준히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단순 판매량으로 볼 때에는 <국가>나 <대화편>의 영어 중역본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훨씬 더 잘 먹혀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전공자와 일반 독자의 차이, 즉 딱딱한 문장을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박종현 교수나 다른 플라톤 번역자들의 경우에는 해당 언어와 사상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전문가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뛰어난 "문장가"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인 천병희 교수의 역주서들이 생각만큼 "읽기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물론 원문에 정확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말 문장을 어떻게 맛깔스럽게 만들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보다 고전 역주 작업에 있어 훨씬 앞선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시대에 맞춰 여러 가지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나저나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 전에도 우리나라에 <플라톤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물건이 있긴 있었다. 숭실대 철학과 최민홍 교수란 양반이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는 여섯 권짜리인데 <국가>나 <향연> 같은 유명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온>, <소 히피아스>, <클레이토폰>, <에뤽크시아스> 같은 생소한 작품들까지 망라하고 있어서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처음에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헌책방에서는 다른 출판사의 지형을 인수해 일종의 덤핑용으로 대량 생산한 것으로 유명하던 모 출판사에서 펴낸 1980년대의 중판본이 종종 보이고 나 역시 이걸로 한 질 갖고 있은 지가 오래 되었다. 물론 전공자들은 "학술적 가치는 전무한 일어중역본"이라고 혹평하는 책이지만, 솔직히 그동안 굳이 <티마이오스>나 <필레보스>를, 또는 <카르미데스>와 <크라튀로스>를 읽어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만으로도 그럭저럭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솔직히 전공자들도 잘 들춰보지 않는 나중 대화편들의 경우, 아무리 원전 번역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들춰보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플라톤 전집이라는 것,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고 단기적으로는 출판사의 매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태클이 될 수도 있겠다. 적어도 이제이북스에서 다음 달에 첫 선을 보일 전집 1차 출간분만 해도 솔직히 나조차도 생소한 대화편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과연 일반 독자들이 읽기나 할까? 물론 책세상의 니체 전집에 대해서도 그 수많은 <유고>를 읽을 독자들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만 봐도 <죄와 벌>의 판매량과 그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의 판매량은 확연이 다를 것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전집은 대책없는 "낭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물론 있으면 좋고, 꽂아 두면 뽀다구도 팍팍 나지만, 만들기는 힘이 들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어느 기자는 "플라톤, 칸트, 헤겔 전집조차 없는 우리 현실"을 개탄하면서 아예 "번역청"을 설립하자는 황당한 주장(뭐든지 "관(官)"이 개입하면 잘 되던 것까지 망쳐 버린다는 절대진리를 기자는 망각해 버린 것일까?)까지 펼쳐놓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일본에서도 헤겔 저작집이 꾸준히 번역되기는 했어도 "전집"이란 이름으로 딱 완결된 산물을 내놓진 않은 것 같다.(그리고 솔직히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정도는 되어야 "전집"이지, 칸트나 헤겔의 경우에는 주요 작품을 망라한 "선집" 정도가 적절하다고 본다. 비교적 현대와 가까운 사람이니 작품 수도 좀 많겠는가.) 게다가 이와나미의 키케로 전집의 경우, 부실한 번역과 편집 때문에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 따끔하게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 "전집"이라고 해서 반드시 "품질"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왜 "전집"이 필요한 것일까? 일단은 "과시" 목적이 아닐까 싶다. 가령 니체 전집은 한국의 니체 연구의 역량을, 플라톤 전집은 한국의 플라톤 연구의 역량을 "보여주는" 작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물론 그 "질"은 논외로 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문득 떠오르는 말은 "낭만"이라는 한 마디뿐이다. 플라톤 전공자에게 있어서나, 또는 "독서가"에서 "수집가"로 전업한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나 "전집"이란 곧 "낭만"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먹지 않고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른 음식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전집이란 것 역시 들춰보지 않고 꽂아두기만 해도 뭔가 가슴이 뿌듯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독서가" 아닌 "수집가"의 주책에 불과하다면 물론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 그나저나, 왜 "이제이(EJ)북스"인가 했더니만 사장 이름인 "응주(EJ)"의 약자이기 때문인 모양이다.(내 추측이지만.) 지금까지 낸 책만 살펴보면 미안한 이야기지만 "안 망하고" 여전히 버티는 게 참으로 신기할 지경인데, 웬만하면 전집 완간할 때까지 좀 더 오래오래 잘 버티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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