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체감 기온은 아직 살짝 이르지만, 일단 춘분이 왔으니 봄이라고 (혹은 모퉁이만 돌면 봄이 와 있다고) 믿어도 좋을 듯 하다. 이제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햇살 아래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뒤굴거리는 주말 오후 같은 호사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을 책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The Lover's Dictionary
- 소설 / David Levithan / Farrar Straus & Giroux

첫 책은 아주 말랑말랑하지만은 않은 사랑 이야기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그건 과연 상대에게 사랑에 빠지는걸까, 아니면 사랑을 한다는 감정 자체에 빠지는걸까. 그걸 과연 구분할 수 있는가? 살짝 알랭 드 보통을 떠올리게 하는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익명의 화자는 사랑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단어들에 딸린 설명이라는 형식(그래서 제목이 Lover's Dictionary 다)으로 풀어나간다.


Cleaning Nabokov's House
- 소설 / Leslie Daniels / Touchstone

제목에 Nabokov 라는 이름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주인공은 이혼과 함께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잃고 홀로 남겨진 한 여인. 어느 시골마을로 흘러든 그녀는 우연히 나보코프가 말년에 집필 작업을 했던 집에 세들어 살게 되는데, 거기서 나보코프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원고를 발견하게 된다. 코믹한 스타일의 전개와, 부서진 중년 여성의 삶, 그리고 나보코프라는 거장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 기대가 되는 소설이다.


A Widow's Story
- 회고록 / Joyce Carol Oates / Ecco

루이스 캐롤 오츠의 신작이다. 소설이 아닌 회고록. 2008년 2월의 어느날 아침, 저자는 감기 증세를 보이는 남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남편은 뜻하지 않게 폐렴 판정을 받고, 불과 일주일만에 감염 증세로 세상을 떠나고만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고 졸지에 미망인이 된 그녀. 비탄과 혼란이 뒤섞인 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그녀는 고통스럽고도 외로운 나날들을 보내지만, 점차 그 속에서 어떤 의미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작가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한 미망인의 회고록이다.


Tiger, Tiger
- 회고록 / Margaux Fragoso / Farrar Straus & Giroux

Margaux 가 Peter Curran 을 만난건 그녀가 7살, Peter 가 51살일 때였다. Margaux 와 그녀의 어머니가 초대되어 간 Peter 의 집 뒷마당은 이국적인 동물들과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고, Margaux 는 금새 이 새로운 세계에 매혹당하고 만다. 그러나 아이와 가까워진 Peter 는 점점 그 관계를 이용하여 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한다. 정신병원에 들락거리는 어머니, 그리고 알콜 중독이 된 아버지는 Margaux 에게 아무런 보호도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15년간 이어진 학대는 Peter 의 자살로 비로서 그 끝을 맞게 된다. 피해자인 Margaux가 이 책을 쓴 것은 유아 성도착자들이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통제하는지, 그리고 부모로부터 적절히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어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겠다.


The Information
- 역사,과학 / James Gleick / Pantheon

분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난감했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보"에 대한 모든 역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부제로 A History, a Theory, a Flood 라고 붙어 있는데, 각각의 측면에서 "정보"라는 것을 분석하는데, 문자의 발명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네트웍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 그리고 인터넷으로 인해 촉발된 정보의 범람을 살펴본다. Information Technology(IT)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정보가 현대 사회 권력 구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유의깊게 살펴볼만한 책인 것 같다.


Reality is Broken
- 게임 / Jane McGonigal / Penguin Press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얼마 전 여성부가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게임업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논리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게임을 유해한 것, 혹은 최소한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러한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최소한 현실이 충족시켜주지 못한 어떤 욕구 혹은 필요를 게임이 충족시켜 주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으로의 몰입을 비난하기에 앞서, 왜 현실은 그러한 것들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게임이 어떻게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는지를 배워 현실에 적용해 볼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삶의 질, "행복"이다. 인간이 더 행복해 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게임은 그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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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3-2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들이 왜 게임밖에 세상에선 그만큼 흥미로운 것을 찾을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argaux Fragoso라는 사람은 참 대단하네요. 그런 고통스런 기억을 글로 쓸 수 있다는게. 저라면 정신이 망가져버렸을거 같아요..

turnleft 2011-03-23 08:00   좋아요 0 | URL
그쵸, 문제의 핵심은 "현실은 재미 없다"인데, 그 도피처(?)인 게임만 갖고 어떻게 해보려니 효과도 없고 반발만 사는거겠죠. 그렇다고 현실을 바꿀만한 힘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책임만 지워 놓으니 헛다리만 짚는 걸테구요.

Tiger, Tiger 의 저자도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것 같더군요. 책을 쓰는 것도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sslmo 2011-03-23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분이 지났지만, 꽃샘추위 때문에...아직 공원에서 책 읽는 건 무리에요.
전 오늘 가죽 자켓 입고 나갔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ㅠ.ㅠ

오늘은 한권도 거들 순 없네요.
게임이랑 관련하여...님의 의견도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얼마전 중3 아들이 말과 나의 이야기란 게임을 하는 걸 봤는데, 완전 제가 몰입했다니까요.
말을 달리는 것 뿐 아니라, 말을 키우고 돌보고 심지어 교배까지 하는데...
애완동물 하나 정도 키우고 싶지만 여의치 않는 아이들에게 간접 경험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평일 날 게임을 할 시간은 없지만, 저희 아들 가끔 말이름을 대며 잘 있을까? 심심하지 않을까? 운동 시켜야 하는데...따위의 말들을 해 엄마를 샘나게 하더군요~

turnleft 2011-03-23 08:03   좋아요 0 | URL
아이하고 게임이 "왜" 재밌을까를 같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재미를 일상에서 느끼려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는지도 같이 생각해 보구요.

저도 게임을 좋아하는 편인데, 내 일상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당할 것인가가 항상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그걸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훈련도 해보는게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