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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ㅣ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평점 :
그저, 시인의 문장이 읽고 싶었다.
울기 위한 변명이 필요할 때 그 변명이 되어준 시인의 이름을 보고 주저없이 주문.
한참 지난 얘기이긴 하지만, 예전의 나에게 '걷기'란 '울음'과 같을 때가 많았어서 울다가- 걷다가- 걸으면서 울다가- 울음이 멈출때면 무덤덤한 마음으로 걷기도 멈추곤 했었다. 그런데 제목이 '너없이 걸었다'라니. 아무리 평소에 여행기나 에세이는 읽지 않아 라고 말하는 주제라도 못 본 척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뮌스터라는 이름도 낯선 독일의 거리가 궁금하진 않았다. 낯선 도시의 이방인인 시인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고 무어라 말하는지 그저 그녀의 문장이 그리웠고 그런 면에서 충분히 만족스럽게, 근래 들어 읽은 책들 중 드물게 문장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강변과 골목과 건물과 길을 따라 과거의 이야기와 과거의 누군가의 이야기가 지금과 미래를 대하는 마음이 어때야 하는지 이끌어준다. 역사란 이런게 아닐까. 가장 기억이 남았던 뮌스터 길 바닥 곳곳에 박혀 있다는 걸림돌처럼. 여기에 살았다 - 이름 - 태어난 해 - 끌려간 장소가 새겨져 있는.
'..... 그러다 어느 날 보도로 눈을 줄 때 걸림돌은 보인다. 사람들은 잠깐 걷기를 멈추고 들여다본다. 아, 이곳에서 살던 어떤 이가 언제 어디로 끌려갔구나! 이 멀쩡한 도시에, 활기한 사람들 사이에, 명랑하게 달려가는 자전거들 사이에, 어울려 즐거운 술자리를 벌이는 술짚 앞 보도에, 그 돌들은 있다. 희생된 이들에게 잊히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잊음을 독촉하는 사회가 비인간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군가의 억울한 일을 잊어버리면서 인간은 짐승이 되어간다. 그 짐승은 인간을 다시 억울한 구석으로 몰고 가면서도 자신이 어떤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관철하려고 한다. 잊음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몸짓이다. " (92쪽)
왜 우리는 저렇게가 안될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들 중요한가.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요즘에 어떻게든 하루 한 차례 산책은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나의 걸음은 점점 더 너무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곳에서 태어날 나의 아이에게 어떤 얘길 건넬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예전 어느 영화에서처럼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