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vik František Šimon_Interior of my house in Paris_1909

 

 

 

How I love you! In this

evening air, now and then,

the spirit finds loopholes, translucences

in the world's finest texture.

 

       -      Vladimir Nabokov, "Kak ya liubliu tebya...."(1934) 중에서 

 

 

 

 

 

loophole과 translucence와 texture.

지극히 나보꼬프스러운 키워드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시이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이자 '빠져나갈 구멍'으로서의 loophole.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혹은 '다른 세계'가 슬쩍 , 간간이, 어렴풋이, 비칠 듯 말 듯 엿보이는 반투명성translucences. 

그리고 세계의 결. 그것도 섬세하고 정교한 극세사 같은 결. 

문제는 텍스트text가 아니라 텍스춰texture, 텍스트의 결/짜임.

세상의 결을 보고 읽어내는 눈이 바로 시인의 눈. 아니 사랑에 빠진 이의 눈.   

 

사랑의 상대란 곧, 후덥지근한 폐소의 세계에 틀어박혀 있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틈을 열어주는 loophole 같은 것.  

사랑에 흠뻑 빠진 나날,

하늘이 열리는 듯한, 천체의 공기를 난생처음 쐬는 것 같은 그 느낌을,

중력을 벗어난 듯한 그 기분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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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Roth, 1926

 

 

 

오랜만에 FT Weekend 보다가,

재밌는 기사 두 개 건짐.

 

1. 크로넨버그의 '슈필라인' 영화 "The Dangerous Method"에 대한 정보.

 FT 주말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칼럼인 Slow Lane에서 제법 자세히 다뤄짐.

 http://www.ft.com/intl/cms/s/2/b21f1b96-5f12-11e1-a04d-00144feabdc0.html#axzz1pDC37W5S

 

 덕분에 루이 말의 영화도 알게 되고, 프로이트-융 비교도 명쾌하고, 하여간 역시 좋은 칼럼.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키라 나이틀리가 슈필라인 역이라 해서  안 그래도 대실망이었는데,

 "러시아 정신분석학의 선구자"인 슈필라인이 이 영화에서는 지 분에 못 이겨 걸핏하면 웃통 벗어젖히는 여자로 나온다고 까는 센스는 덤..)

 

 

 

2.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 출신 유대인 작가 "요제프 로트"를 알게 됨. 

   

http://www.ft.com/intl/cms/s/2/d8f0ec4e-6201-11e1-807f-00144feabdc0.html#axzz1pDC37W5S

 

이 기사를 보고 급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두어 권 번역되어 있는 듯.

 

  기사에도 주로 언급된, 이 사람의 대표작 "The Radetzky March"가 제일 궁금했는데, 번역이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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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Bunin's love stories

 

# '깨끗한 월요일'

 

끄레믈린 뒤로 넘어가던 만월을 보며, '마치 반짝이는 두개골같아요'라고 말하던 여인,

눈 위에 찍힌 그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 따라가던 그녀.

 

그들의 걸음은 절뚝거렸다.
그는 워커 자국을 남기며 앞에 걸었고, 그녀는 숨을 몰아 쉬며 그 별 같은 자국을 그대로 따라 밟아갔다.

그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넌 .. 정말."

그는 이제 발자국 남기기를 더 하지 않았다. 낭떠러지를 만난 듯 그녀 또한 한 발자국도 단 한 발자국도 더 떼지 못했다.

그렇게 그 둘은 멀리 떨어져 얼어붙은 채로. 그냥 영원히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다.

그저 그 둘 뒤로 그들이 따로, 그러나 하나인 채로 걸었던 발자국들만이  조금씩 조금씩 지워져 가고 있었다.

조금 더 있으면 그들은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이따금 내뱉는 하얀 입김만이 가루가 되어 하얗게, 무겁게 어깨 위에 내려 앉고 있을 뿐. 모든 것이 어둡게, 그리고 힘들게 멈춰 있었다.

.

.

.

 

그녀는 어느 깨끗한 월요일, 교회 앞에서 종신서원을 앞둔 수녀가운을 입은 채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 사랑의 문법

'사랑의 문법'이 적혀있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이 대대로 한 집안에 내려온다면.

 

'네게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슴이 말해 줄 것이다.

"달콤한 전설 속에 살아라!"라고

그리고 손자들에게, 증손자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이 사랑의 문법을 '

 

사랑의 문법 책의 표지를 넘긴 순간,

사랑의 문법은 끝맺어진다.

 

 

# 일사병

사랑은 일사병과도 같은 것이라고.

사랑에 빠지면 눈에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고.

일사병같이 그 사람을 만나,

일사병같이 괴롭게 전율하다가,

그 태양이 없는 나라로 돌아가면 그 일사병의 징후를 잊을까.

 

 

'얼마 후 기선은 아침에 그녀를 싣고 떠났던 그 곳을 향해 출발했다.

어두운 석양은 앞쪽 먼 곳에서 사그라들었고, 졸리운 모습으로,

여러 가지 빛깔로 물가의 표면에 비춰져 잔물결의 일렁임과 함께 어딘가로 헤엄쳐 갔다.

중위는 갑판의 차양 아래 앉아 있었다.

 

일사병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이 10년은 늙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 파리에서

"좋은 수박과 정숙한 여자를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지요."

그렇게 농담하며 파리를 여행하는 그였다.

 

"마치 수레가 길을 망치고, 여자가 영혼을 망치듯 물은 포도주를 망치죠"

그렇게 농담하는 그에게

그녀는 정말 부드럽게 움직였고 걸음걸이에 맞춰 그녀의 검은 원피스 또한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는.. 멈춰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프게 중얼거린다.

 

' 그렇다. 매년 낮이고 밤이고 비밀스레 단 한 가지만을 기다린다.

행복한 사랑의 만남. 그리고 진정 이 만남의 기대 속에서 산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다...'

 

그는 파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부질없음을 이번엔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 단편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전철 안에서 돌연 생을 마감했다. 신문을 읽던 도중

갑자기 머리를 조석의 등받이로 떨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상복을 입고 묘지에서 돌아올 때는 따뜻한 봄날이었고,

부드러운 파리의 하늘에서는 여름 구름이 떠다니며

네 젊은 삶에 대해, 영원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의 끝난 삶에 대해.....'

 

 

 

 

# 차가운 가을

 

약혼자를 잠시 보내야 하는 그녀.

'놀랍도록 빠르고 차가운 가을' 그녀와 작별하던 그는 그녀의 손을 이끌고

새까맣고 굵은 나뭇가지들과 뿌려진 반짝이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멈춰서서 그녀를 안는다.

" 집의 창문들이 가을풍으로 반짝이는 게 얼마나 특별한지.

난 살 것이고, 이 저녁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만약 내가 죽으면 거기서 널 기다릴게.

넌 살아야지.

세상에서 즐겁게 지낸 다음에. 그 다음에 내게로 와'

 

 

그는 죽었다.

그녀는 도시로 떠나왔고

살았고, 기뻐했고, 이제 곧 갈 것이다.

 

'단지 그 차가웠던 가을 저녁엔....'

 

 

 

 

Pushkin's love poems 

 

 

차르스꼬셀로의 분수상(Tsarskosel' skaya Statuya)

 

소녀는 물동이를 놓쳤다.

떨어지자 돌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다.

소녀는 쓸모 없는 파편만 쥐고 망연자실.

 

 

 

너와 당신 (Ty i vy)

 

공허한 낱말 대신

그리고 내 마음 깊숙이 비밀스런 욕망이

사랑의 목마름으로 타오른다.

난 그녀 앞에 서서 생각에 잠긴다.

 

 

청년과 소녀 (Yunosha i deva)

 

한 질투 많은 소녀가 쓰라리게 흐느끼며,

청년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며.

청년은 갑자기 잠이 든다.

 

소녀가 잠잠해진다.

그의 얕은 선잠을 어르며.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미소 짓는다.

 

 

 

 

 

 

 

Cesar C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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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yborcza.pl/duzy_kadr/56,97904,11073884,_,,18.html

 

 

 

".......

삶은 초고원고일 뿐 ,

 가장 순탄했다는 경우도 예외 없이 ......."

 

 -마리나 쯔베따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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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Nordström_1855-1923_my wife 

  

아버지를 비극적인 사고로 잃고 약혼녀의 집안으로부터 파혼 선고까지 받은 나보꼬프는 돌연, 남유럽으로 떠나 과수원이나 농장의 노동자로 여름을 지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베를린의 한 자선 무도회에서 나보꼬프는 그의 아내가 될 베라 슬로님과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당시 나보꼬프는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시집을 여러 권 출판하고 번역서도 몇 권이나 낸 어엿한 '촉망받는 젊은 작가'였고,  베라는 나보꼬프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를 여러 번 낭송회에서 본 적이 있으며,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그의 시를 빠짐없이 스크랩해놓았던 나보꼬프의 '열성 팬' 중 하나였다.  

나보꼬프가 베라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늑대 모양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가 가면을 벗어보라 했지만, 그녀는 무도회 내내 가면을 벗지 않고 자신의 미모가 아닌 대화로 그를 매혹했다. 나보꼬프는 무도회장을 나서는 그녀를 따라 나왔고, 둘은 베를린의 밤거리를 함께 거닐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보꼬프는 남프랑스 어느 과수원의 일꾼 막사 안에서 그날 밤을 기념하는 시를 짓는다.  (에피그라프는 블록의 '니즈나꼼까(미지의 여인)'에서 따온 일절이다.)  

 

 

                                                        조우 

                                 "이토록 기이한 친밀함으로 묶여서...."   

 

                             사무친 그리움과 신비와 환희....  

                             느리게 움직이는 가면무도회의 

                              너울거리는 암흑 속에서 

                              어두침침한 다리를 건너 온 것 같던 그대. 

 

                             공단같이 반짝이던 개울 속으로  

                             그렇게 밤은 흘러들고, 정적 또한 감도는데, 

                              그대의 그 검은 늑대 가면과  

                               그 부드러운 입술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나를 유혹하면서  

                         그렇게 그대는 밤나무 아래로, 운하를 따라 걸어갔지. 

                         내 심장이 그대 안에서 대체 뭘 보았기에, 

                         어떻게 그대는 그토록 나를 움직였던가?   

 

                         언뜻언뜻 비치는 당신의  다정함에서,  

                         아니면 시시각각 변하는 당신의 어깨 윤곽에서  

                         나는 또다른ㅡ돌이킬 수 없는ㅡ조우의 어렴풋한 스케치를  

                         보았던 걸까?  

                  

                        어쩌면 김상적인 연민에서 

                         당신은 이해할지도 모르지.  

                          지금 내 시를 관통한 화살을 떨리게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기묘할 정도로  

                         내 시도, 그 안에 박힌 화살도 떨리고 있는데...  

                         어쩌면 그대가,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그대가 

                          바로 진짜 그 사람, 내가 기다리던 그 한 사람은 아닐까?  

 

                           하지만 아직은 떨쳐내지 못한 어떤 비애가 

                           별이 총총 떠 있던 우리의 시간을 혼란스럽게 했지.                    

                           그대 눈 속의 길게 갈라진 틈새는 밤으로 되돌아갔고,  

                            아직 그대의 두 눈엔 불이 켜지진 않았었지. 

  

                            오랫동안? 영원히? 어쩌면 아득히 먼 미래까지? 

                            나는 궁금해하고 있어, 그리고 애쓰고 있어. 

                            우리의 조우를 굽어보던 별들의 움직임을 들으려고.  

                             혹시 당신이 나의 운명은 아닐까 하고.... 

                             

                            사무친 그리움, 신비, 환희, 

                           그리고 마치 멀리 보내는 애원 같은... 

                             내 마음은 여정을 계속 가야 해.  

                              하지만 만약 당신이 내 운명이라면.....   

                                                                          (1923)

 

           

 

 나보꼬프가 베를린을 떠나 남프랑스에 있을 동안, 그의 시가 주로 게재되던 망명 잡지 <방향타>에는 새로운 번역자의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V.S라는 이니셜로 표기된 베라 슬로님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나보꼬프의 필명이 V. Sirin이었다.)  

 얼마 후, <방향타>에는 남프랑스에서 잡지사로 보내진 '조우' 라는 제목의 V. Sirin 신작 시가 게재된다. 적어도 한 명의 독자는 그 시에 내포된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시인과 그 한 명의 독자는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한 달 후, V.Sirin의 새로운 시가 또 한 편, <방향타>에 실리고, 그 시 바로 옆에는 'V.S'라는 이름의 번역자가 번역한 에드가 알렌 포의 단편 '침묵'이 게재된다.  

"그것은 어떤 교제의 시작을 알리는,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문학적 서두였다. 과묵하면서도 공적인, 우편과 신문에 의한, 시와 산문으로 쓰인." (Brian B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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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빠른비숍 2011-11-2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군자의 도는 부부간의 평범한 삶에서 발단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 지극함에 이르게 되면 하늘과 땅에 꽉 들어차 빛나는 것이다.)
- <中庸> 제 12장, 도올 해석.

비로그인 2011-12-0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아름다운 만남이었네요. . 함께 많이 여행하고 함게 많이 대화하고 나중에 스위스에서 말년을 같이 보냈던걸로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