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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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글쓰기는 종종 마스터베이션에 비유된다. 이 작품 내에서도 주인공 오산이의 강박적인 글쓰기가 종종 드러난다. 한 남자 작가의 글을 꼭꼭 강박적으로 베껴쓰는. 그녀의 글쓰기가 어떠냐고? 자신의 욕망을 결코 인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글쓰기이고, 자신의 글 (the body of writing)의 주체가 자신 임을 절대 알지못하고 영원히 이미저리로, 피사체로 남기를 원하는 수동적인고, 더 나아가 노예근성에 배인 글쓰기이다.

그녀는 남성들의 글에 이미저리화 되는 (그래봤자 타자화되는 거지만) 여성으로서밖에 자신을 알지못한다. 그렇기에 그 강박적인 글쓰기는 결코 오르가즘에 이르지 못하는 질기고 긴 마스터베이션 같을 뿐이다.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서 충족시키는 방법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잘 길들여진 객체답게 '적법'하게 강간당하는 것 밖에 없다. 실제 그리고 그렇게 오산이는 강간을 당하고 '소거' 되더군. 쳇.

난....이런 충족되지 못한 리비도 같은 글이 정말 싫다. 터져나와 폭발하는 균열을, 틈을 가진 텍스트 들이 좋다. 사비나가 공산치하 체코에서 사실주의 노동화만을 그리도록
강요받았을때 작업 중인 용광로 불길에 혼신을 쏟아 이글이글하는 자신의 예술혼을
언뜻 내비치는 '틈'을 만들듯이, 바이올렛 같은 자의식을 가진 여자라고? 그렇게 카메라에 피사체로 전락하고 싶은 가부지?

그렇게 글쓰기가 부여하는 일개 이미저리로 불멸화되고 싶은가부지?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나지 참. - 인간들이 - 사실은 남자들 개인들만이 - 개인으로서의 자각을 시작할 때에 라우라로, 베아트리체로 불멸화된, 살과 피가 없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말야...후후. 감성이 딱 그시대 수준이구만.참 내.)

난 살과 피가 있는 여자가 좋아. 살과 피가 있는 글이 좋아. 그 살과 피를 으드득 으드득 으깨어 온 몸을 치장하는 칼리여신같은 분노의 글쓰기일망정, 그 살과 피를 보듬어 매일밤마다 오시리스를 새로 빚어내는 이시스 여신의 눈물과 환희가 되든. 그런 글이 읽고 싶어.

남자들의 피사체가 되고싶은 욕망밖에 그리지못하는 자의식이라면 '여류'하고 폄하되도 할말이 없을거야. '정의'하는 폭력앞에 늘 그렇게 마조히스트적인 쾌락을 맛보며 살기를, 축,복,해.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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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바로우어즈 -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원작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3
메리 노튼 지음, 베스 크러시, 조 크러시 그림, 손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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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시절 셋방살이 요정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으로 읽었던 책이다. ^^ (다시 나왔네~) 물건이 없어지거나 어디선가 부스럭 대는 소리가 나면 셋방살이 요정이 울집에도?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던 어린시절의 꿈이었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바로우즈네가 들켜서 둑밑으로 이사가 버려야만 했을때, 샘 역시 (어른이 되기 위해?) 그 곳을 떠나야만했을때, 결국...꿈을 믿던 이린시절에서 등돌려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아픔을 생생히 지금도 얘기해주는 내 기억속의 동화이다. 난....어른이 된 몸이 부끄러운 웬디야..역시.tst tst t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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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 연대기 1 - 앰버의 아홉 왕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예문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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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는 내가 닿고자 하는 당신이며,
앰버의 왕족이 그림자를 걷듯
나, 젤라즈니의 메타포를 통해
당신을 향해, 내 속의 앰버를 향해 걸을 수 있음을 믿는다.

단테가 신곡의 최 상층에서
겹겹히 둘러쌓인 장미 속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듯,
패턴을 걷고 또 걸어
혼돈의 나의 뿌리임에도
각인하고 또 각인시키고
나의 앰버가 탄생하는 순간
나의 앰버가 나의 앰버가 아님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젤라즈니가 내민 비밀의 화원의 열쇠는
저토록 빛나는군...그래.
내 것이 이리도 초라해 보이게 만들정도로.

강하고 끈질기고 모질다가도
우연처럼(?) 관대하질 수 있는 '코윈'이야말로
정말 현실에 살아가는 '나' 같지 않은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또 한번,
난 그네들이 저토록 맘껏 가져다 쓸 수 있는
저 풍성한 상징의 켜(layer)들이 넘 부러워.

내 안엔...바리데기 공주 빼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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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아이들 1 - 엔더 위긴 시리즈 4 엔더 위긴 시리즈 4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장미란 옮김 / 시공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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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은 항상 부담을 안고 출발하기 마련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출발한 1편, 철학적 깊이를 가진 2편과 3편에 이어, 상상력이 덜하고, 철학적 깊이가 덜한 4편으로 역시나 종지부를 찍고야 마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인이 결국 신의 경지에 까지 비유되다 못해 엔더의 아이우아가 구현된 육체 중 하나인 어린 발렌타인의 몸으로 '성육신'하는 경지까지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참으로 인간 중심적인, 참으로 서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몸으로 끌여들여진 신이라니, 이질적인 존재라니 말이다.

버거여왕도, 피기도, 제인 조차도 변했건만 오로지 인류만은 틀에 갖혀 변하지 않음을 씁쓸히 보여준다. 헌드레드 월드에 퍼져사는 그 엄청난 수의 인류가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다. 변화하지 않고 틀에 갖힌 인류라니 말이다. 결국은 피터에서 시작해 피터로 끝나는군. 쳇.

동양문명과 서사모아 문명에 대한 저자의 사고 방식을 통해 서구와 동양의 깊은 차이를 절감한다. 그들이 동양을 피상적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한다면 크나큰 우주앞에 이토록 작은 별것도 아닌 차이를 앞에 두고 난 오리엔트를 스스로 오리엔탈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피기'라 불릴 지언정 (그렇게 왜곡되게 정의 당하는 폭력을 당할지언정) 의사소통을 향한 손을 거둘 수가 없어서 그들의 우주선에 편승하는 '피기'로 그저 살아가야 하는 걸까.
'타자'로 사는 삶은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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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별 1
야마다 요시히토 지음, 문준식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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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정말 괜찮은 에스에프다. 올슨 스콧의 제노사이드 이후 만화에서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나는구나 싶다. 서양의 에스에프들은 외계인들과의 조우때마다 역겨운 백인중심 주의적 시각을 드러내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더니...일본인이 쓴 에스에프는 그런부분이 없어 편하다.(음..그래 난 역시 유색인종이다...쩝.)

줄거리가 중간에서 끊기는게 아니라...더이상 쓸 수가 없지 않은가 싶다. 고차원존재에 대해 더이상 3차원존재인 작가가 어찌 묘사하랴..싶다. 이 작품은 고차원 존재와의 조우자체보다 화성에 가기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극한'의 노력이 주제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 거기에 바로 감동이 있다.

작품이 끝날때쯤 설명되는 고차원 존재의 개념 역시 흥미로웠다. 그래....결국 인간이 개미를 왜 개미 상자에 가두어놓고 관찰하고 간섭하는지 개미가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끊임없이 나타나는 개미의 노력은 우주도 감동시킬 수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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