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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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복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승승장구를 꿈꾸며 살아가던 저자가

자신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던 날,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무기력감에 빠졌다.

사랑했던 형의 죽음으로 그냥 한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어진 저자는

<뉴요커>를 그만두고 2008년 가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었다.


MET에서 10년간 매일 다른 전시실에서 최소 8시간씩 조용히 서서

푸른 제복 아래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동료 경비원들과 연대하고,

각양각색의 관람객들을 관찰하고, 수천 년의 시간이 담김 고대 유물과

거장들의 경이로운 예술 작품을 마주하며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며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은 여정을 고백한 책이다.


저자의 형 톰은 몸집이 크고 건강했다. 

라인배커의 재능과 재치 있는 엔터테이너 크리스 팔리, 부처를 모두 섞어놓은 사람이었기에

형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뉴욕에서 함께 산 2년 8개월은 모든 걸 변하게 만들었다.

두서없이 오색찬란하고 낭만적인 도시, 사랑의 도시, 마천루와 화려하고 멋진 거리를 누비다

형이 암에 걸리자 뉴욕은 하루아침에 암 병동의 병실과 형의 퀸스 아파트만 남은 도시로 전락했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위기가 극에 달하자 한 사람씩 차례로 자기 방으로 작별 인사를 하며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행복하게 산 것 같다며,

누구나 죽는다며 죽는 건 상관없지만 고통을 겪고 싶진 않다며,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지만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간다며,

남는 이들을 위해 축복해 주던 강한 형을 잃은 저자는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을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었다.


형의 입원실은 대체로 명랑한 분위기였고 병실을 찾아온 친구들은 좋은 순례자들이었고,

병실 침대 머리맡에는 형이 좋아한 라파엘로의 <검은 방울새의 성모>가 있었다.

아픈 병의 곁에 있으면서 저자는 과거에 입을 헤 벌린 채 쳐다보는 것이라 인식되었던 예술 작품이 

그다지 숭고하고 신비스럽지만은 않으며, 병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하려는 시도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와 함께 형의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녘 무렵, 자신들의 모습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바라보면서

"우리 좀 봐. 지금 우리가 바로 옛 거장들이 그렸던 그런 그림이잖아"

라며 끔찍한 병실에서 우아함을 보았다. 

어릴 적 미술관 나들이를 자주 해서 그런지 형의 죽음 후 몇 달 후, 

어머니와 저자는 필라델피아에 사는 어머니의 네 형제자매를 찾아가 26살짜리 아들을 땅에 묻은 후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혹은 되지 않는지 몸소 느끼며

시간을 보내다 더 단순하고 조용한 곳으로 가자는 어머니의 제안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으로 가게 되었다.

성인들의 수난과 신의 은총을 묘사한 전시실에서 형의 침대 옆을 지키던 몇 달간 흘렀던 분위기, 

말문이 막히게 하는 수수께끼와 아름다움과 고통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꼈고

각자 자기만의 슬프고 밝은 그림을 찾았다.

'경배'라 부르는 장르의 그림 앞에서 용감하게 고통을 참아내는 형의 모습을 떠올리던 저자는

'통곡 혹은 피에타'라 부르는 장르의 그림 앞에서  위안과 고통으로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침묵 속에서 빙빙 돌고 서성거리고 교감하고 슬픔과 달콤함을 느낀 저자는

미술관에서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p.256


메트를 떠나며 저자가 수행한 마지막 임무는 20여 년 전, 가족들과 함께 간 시카고 미술관에서

각자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씩을 고르기 전에는 전시실을 떠나지 못하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메트 소장품들을 개인적인 컬렉션으로 축소한 끝에 저자는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래된 작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톰을 생각하게 만들어서이다.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배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이는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함을 알려준다.

거기다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가는

구경꾼들의 다양한 반응과 감정들은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더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감을 보여준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리고 수동적인 구경꾼들과 달리 슬픔에 겨워 쓰러진 마리아를 돌보는 연민 가득한 사람들도 있기에

형이 그런 사람이었기에 저자 또한 그런 사람을 따르고 싶은 마음을 확인하고 메트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저자가 10년의 정적인 MET 경비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뉴욕 도보 여행 가이드로서의 동적인 삶을 시작하며

자신보다 나이가 곱절이나 많고 세상 반대편에서 태어난 사람과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이 일상적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게 됨을 절감한다고 했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고 절망감에 빠졌던 그가 새로 살아갈 힘을 얻고

나아가는 뉴욕의 거리는 또 다른 풍성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나는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경비원입니다 #MET #상실감회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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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서울대 석학이 알려주는 자녀교육법 : 과학 서울대 석학이 알려주는 자녀교육법
송진웅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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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 교수님께서 자녀를 상위 1%로 만드는 공부법,

오래가고 멀리 가는 똑똑한 과학 공부법을 알려주시는데,

너무나 옳은 말씀이었지만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수포자에 이어 과포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은

부모와 아이들이 과학교육의 필요성을 몰라서는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과학을 쉽게 느끼고 재미있어하다가

중학교 과학은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데다

어려워진 중학교 수학 때문에 수포자들이 많이 생기면서 과포자가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초등 고학년은 좀 더 중학교 과학과 가깝게,

중학교 과학은 좀 더 초등학교 과학과 가깝게

학교급 간 차이를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음에 동의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교육 체제에서 가장 큰 변수는 대입이다.

과포자들이 많이 발생하게 된 것은 수능 과목에 서서히 배제되면서부터이다.

앞으로 통합과학으로 모든 학생이 수능 과목으로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으로

개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예전에 과학 1, 2 교과를 이수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계속해서 과학교육은 하향 평준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은 현실적으로 과학을 폭넓고 밀도 있게 공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므로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의 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므로

융합 선택과목의 과학의 <역사와 문화>, <기후변화와 환경생태>, <융합과학 탐구>를

학생의 진로와 관심,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니 적극 권장한다고 하나

제대로 운영될지는 미지수이다. 너무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이지만,

이런 교과가 없어서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되지 않다 과포자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입시에 불필요하기 때문임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학교에서 과학 2 교과 이수를 필수 조건으로 했을 때는 학교 현장에서

과학 2 교과 운영이 정상적이었지만, 입시 필수 조건에서 제외된 이후부터는

정상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대부분 학교에서의 현실이다.

교수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입시에서 과학 과목에 대한 비중이 매우 낮은 것이 문제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세 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으로

과학의 위상이 높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될 것을 권유받았으나,

마지막까지 평범한 패러데이로 남고 싶어 런던의 공동묘지에 묻히길 선택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실험과학자로서의 삶을 철저하게 지켰던 패러데이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의 틀릴 것이 확실하다."라고 했다.

100% 확실할 때까지 확실하다고 말하지 않는 자세와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인간 중심적, 지구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 그 누구도 아직 답을 모르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답에 집착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질문을 찾는 습관을 형성하게 해주는

과학교육은 인문사회계열, 이공계열할 것 없이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많은 교육자들과 부모님들과 학생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과학교육이 정상화되길

염원하며, 날로 발전하고 있는 전국의 크고 작은 과학관 방문 팁을 잘 숙지해서

과학관 피로 없이 즐겁고 살아 있는 과학 교육이 진행되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책이다.



"리뷰어스 클럽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대석학이알려주는자녀교육법과학 #자녀교육법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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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인생 수업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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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을 세계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자,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건립하고

이후 세로토닌 문화원을 통해 국민들의 생활습관과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90세에도 현역인 국민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자서전은 아니지만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다 보니

자서전 비슷한 책이 되었다. 

얼마 전 읽은 109세 찰리 의사 선생님의 삶이 미국 근현대사를 포괄하고 있어

정말 역사의 산증인이자 오랜 인생의 지혜는 다르구나 싶었는데,

아직 100세는 아니시지만 109세 찰리의 한국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두 식구의 가장 노릇을 하느라 배고팠던 시절 이야기는 

정말 옛날 영화 속 장면 같았다.

대구 미 공군 기지에서 지나가는 장교를 붙잡고 영어로 부대에 심부름하는 아이가 있으면

장병들 사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부탁하여 하우스보이가 되었고,

휴지, 담배꽁초, 이쑤시개가 섞인 꿀꿀이죽으로 허기를 달래가 큰마음을 먹고 

미군 군목사를 찾아가 음식 찌꺼기를 한국 사람들이 먹으니 

깨끗하게 먹어달라 부탁하는 그 배짱과 용기란 참 대단했다.

지금도 성업 중인 부대찌개 가게 앞에 서면 그 시절 자신의 용기에 감탄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를 팔아가며 공부하고, 식구들 걱정에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을 옮기며

미국 유학 길에 올라 예일대에서 신경정신과학 박사후 과정까지 밟으셨으니

그 시절 역사의 여러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 거의 영화 스토리였다.

눈길 조심하라는 동생의 편지에 미국에는 눈이 조금만 와도 염화칼슘을 뿌려

길이 얼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장하자, 동생이 미국이 아무리 부자 나라여도

그 넓은 천지에 소금을 어떻게 다 뿌리느냐며 친구들이 거짓말쟁이로 놀린다고

증거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눈 치우며 염화칼슘 뿌리는 사진을 구해줬다니,

제설 작업을 꿈꾸지도 못한 시절 한국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눈이 오면 정형외과와 응급실이 바빠진다는 게 불과 수십 년 전이었다니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대부분인 시대에, 잊혀진 시절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국가 존망이 걸린 비상사태인

초고령화 시대를 참 태평하게 맞이하고 있는 시점이 걱정이 되었다.

노인은 쇠약하고 소모적일 뿐 사회에 이바지하거나 공헌할 수 없어

누구도 섣불리 손대길 두려워하지만, 새롭고 거대한 의료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두 주자로 나서야 한다는 박사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내 마음조차 완전히 알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

남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같을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타인임을 인식하면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면 조화롭게 살 수 있다. 

행복해지려면 고독을 잘 견디고 자기에게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불만이 있으면 불평, 불만이 생겨 행복할 수가 없다.

90세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인생의 한 과정일 뿐, 잘 견디며 지나면 되니

실패라는 말을 너무 이르게 하지 말라는 박사님의 말씀이 힘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게 반드시 행복을 향해서만 달리는 게 아니라,

내리막도 있고 괴로움도 한 과정이니 파도타기 하듯 힘 빼고 살아가면 

다시 오르막도 나오고 기쁨과 행복도 맛볼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이시형의인생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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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9세 찰리에게 배운 것들
데이비드 본 드렐리 지음, 김경영 옮김 / 동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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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듯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축적된 소중한 경험과 지혜는 연륜으로 빛을 발한다.

그런데 1905년 8월 16일 남북전쟁의 잔상이 생생하게 남아 있던 시절 태어난 

찰리는 각종 IT 기술이 난무하는 스마트한 세상을 경험하기까지 무려 109세까지 살았다. 

마치 <프레스트 검프>처럼 역사의 소용돌이를 한 세기 동안 직접 경험했으니

그 삶에서 깨우친 지혜와 철학이 얼마나 가득하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네 자녀에게 전해줄 삶의 철학을 찾아 헤매던 저자 앞에

102세 노인 찰리가 나타났을 때 운명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출간 즉시 미국을 뒤흔든 세기의 인생 지침서로 등극하며, 

찰리의 옆집에서 살고 싶다며 독자들이 환호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찰리가 의사라고 해서 그 시절 엘리트 지식인으로 멋지게 늙은 노신사인 줄 알았는데,

그는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성장하는 법을 잘 보여준 사람이었다.

광란의 20년대가 정점에 달했을 때 찰리는 매주 금요일, 토요일 밤마다

시카고 주변 연주 무대에서 색소폰을 불며 연주 중간중간 교과서를 펼쳐 놓고

공부하며 마침내 의사가 되기까지 그는 많은 경험을 했다.

여덟 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슬픔을 극복하러 갔던 여름 캠프가 하필이면

소아 성애자의 여름 캠프였고, 거기서 나와 기차에서 쏜살같이 뛰어내려 집으로 걸어왔고,

열여섯 살 땐 바큇자국이 깊게 파인 도로를 운전해 나라의 반을 돌아 화물 열차를 옮겨 타고 

다녔으며, 라디오를 듣고 뮤지션이 되어 그 짧은 경력으로 대학 교육을 받고 

배를 타고 세계의 절반을 돌았고, 시카고 조직폭력배에게 자신의 피를 뽑아주며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였다.

찰리에겐 비극과 상실, 가난과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꾸준함과 침착함, 회복탄력성으로

즐거운 순간을 누리고, 기회를 붙잡고 중요한 것을 지키는 재능이 있었다.

험담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열받은 딸이 분노할 때

열을 올리면 자기만 힘들어진다며 잊어버리라고

"나는 그런 사람들한테 쓸 시간이 없다."라고 담담히 조언하는 찰리는 

스토아 철학의 본질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스토아학파는 삶을 잘 살기 위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할지만 결정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살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목사 아버지의 근면성과 검소함으로 

캔자스시티의 한 부촌 변두리에 3층짜리 아름다움 새집을 마련하며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비극적인 승강기 사고로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게 된 찰리는 운명을 마음대로 결정하거나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자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해 슬퍼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들, 즉 행동, 감정, 세계관, 정신력을 바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아주 행복했던 기억은 없어."라고 한 말은

불행한 기억을 곱씹지 않기로 결심한 그의 선택이었다.

일찍부터 스토아주의자로 살게 된 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결정, 운명,

모욕적인 행동에 휘둘리지 않았다.

여덟 살 꼬마가 그 힘든 일을 겪은 후 힘든 경험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딛고 진정한 자유를 맛보며 살기로 선택했다니 너무나 기특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는 데는 어린 아들에게 필요했던 어머니이자 아버지가 

되고자 애썼던 어머니가 찰리의 하루하루가 특별한 날이 되길 기도하며

살았던 어머니가 존재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찰리의 어머니는 찰리를 믿었고, 찰리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올바른 길을 가

떳떳하게 살았다. 찰리의 어머니처럼 바른길로 인도해 주신 어머니에게

사랑하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게끔 만드는 책이었다.



#내가109세찰리에게배운것들  #스토아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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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 - 변화 가득한 오늘을 살아내는 자연 생태의 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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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을 밟으며 학업 압박으로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겪는 자신과 달리

도심 공원을 가득 채운 토끼들이 신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며,

인간에게 스트레스가 가득한 도시가 왜 토끼에게는 만족스러운 서식지가 된 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스트레스에 대한 심도 있고 재미있는 탐구서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은 없다.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과 미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목푯값을 계속 변경하게 되면

모든 에너지를 생존에 쏟아야 하므로 번식이나 성장에 쓸 에너지가 없어지고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삶에서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알리는 일종의 신호다.

환경요인이 최적에 도달하면 생물학적 적합성(직간접 자손의 수)이 가장 높다.

다음 세대에 DNA를 많이 물려줄수록 적합성은 최상이 되는데,

높은 적합성을 회복하기 위해 생명체가 궁리한 것이 스트레스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서식지는 생명체의 수행 능력과 적합성에 영향을 끼치는데,

현재 도시만의 고유한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집약 농업과 교통을 위해 개간된 지역에서 동물들은 보금자리를 짓는 데 필요한

빽빽한 덤불을 거의 찾을 수 없고, 식량도 도심만큼 풍부하지도 않기 때문에

살기 위해 도시로 오게 되고, 우리는 도시의 야생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뭔가 슬펐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너무 동물 중심의 생각을 하는데 식물뿐 아니라 곰팡이,

심지어 세균도 스트레스 요인을 기억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신경계가 없어 기억이 뇌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화학물질의 내용물이나 특정 반응이 활성화하면서 저장된다고 하니 

다른 종들의 세계에는 더 밝혀내야 할 비밀이 많은 것 같다.

식물처럼 한번 선택한 서식지를 그냥 버리고 떠날 수 없는 생명체는

자기 서식지에 매우 영리하게 적응한다. 진정한 스트레스 요인 관리의 고수이다.

담배풀이 니코틴으로 애벌레 같은 포식자한테서 자신을 보호하고,

박각시 같은 적응한 포식자에게 속절없이 당하지 않기 위해

애벌레가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웃 식물로 옮겨 가게끔 만들고, 참노린재와 말벌을 부르는 화학 메시지를 보내

애벌레들을 퇴치하는 전략을 보니 정말 놀라웠다.


모든 생명체는 다 다르고, 저마다 삶의 전략도 다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자연의 놀라운 힘인 회복 탄력성이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게

작동하므로 인간 또한 그들과 다름 없는 생물임을 인정하고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오래 존속하지 못한다."라는 찰스 다윈의 말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쉬는것들은어떻게든진화한다  #스트레스  #회복탄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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