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인문학 저자이신 이상헌 교수님께 메일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질문 메일 보냈지 3시간이 체 안되서 답장이 왔습니다. +_+!
광대 승천하면서 메일을 쭈욱 읽어나갔지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메일 답변 올립니다.
이상헌 교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
--- 질문 메일 ---
인문학이 머리 아프고 재미없고 싫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인문학이 역사를 포함하는 거라면 좋아하는 게 맞습니다.
스토리텔링이 담겨진 유적지 답사에 빠져 혼자 다닐만큼 좋아하지요.
그런데 철학으로 넘어가면 너무 어렵고 재미없습니다.
모르는 단어들이 난무하고 한글로 번역된 책인데도 한글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읽기 위해서 그 책에 깔려있는 철학 기본서까지 읽어야하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모르는 것들이 자꾸 머리에 맴돌아 이상하게 호기심을 자극해서 찾아 읽게 됩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읽어도 다시 읽는 게 아닌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 읽게 됩니다.
재미있게 철학을 즐기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교수님처럼 인문학적 발상은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 건가요?
--- 답변 메일 ---
OOO 님께
반갑습니다.
지난 강연에 찾아와 주시고 경청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역사는 인문학의 영역이 맞습니다.
제가 역사학이 인문학인지 의심스럽다는 말은 최근의 역사 연구 경향이 인간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사실을 입증하려는 실증적인 연구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뜻입니다. 실증적 연구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식의 문제 의식은 이미 E. H. 카아가 1961년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보여준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 종교학, 예술 등입니다.
철학이 너무 어렵다면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학은 어떻습니까?
문학은 어렵지 않지요.
역사는 그렇다고 하셨죠.
인문학은 철학이든, 문학이든, 역사든 같은 주제를 다룹니다.
역사를 단순히 옛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신다면, 그래서 옛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역사를 본다면 그것은 인문학과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냥 오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만약 역사에 관한 관심이 사람들의 삶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물들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서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포함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맞습니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저 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학은 가장 추상적인 학문입니다. 모든 문제를 가장 추상적인 단계로까지 끌고 가서 다룹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문학입니다. 문학은 문제는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다룹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문학은 철수와 영희의 사랑을 다룹니다. 2013년 27살 동갑이고, 서울에 살고 있고, 각각 S대와 G대를 졸업하고, 각각 경제적으로 하위 50% 계층과 상위 10% 계층에 속한 철수와 영희의 사랑을 다룹니다. 반면에 철학은 남녀간의 사랑, 좀더 추상하면 사랑을 다룹니다. 2013년이나 서울이나, 무슨 대학이나 경제적 계층같은 것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결부시키지 않습니다. 철수와 영희의 사랑 이야기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입장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 혹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다룬 철학적인 글은 쉽게 이해가 안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어찌 보면 철학이 훨씬 경제적이죠. 문학은 한 권으로 위에서 얘기한 철수와 영희의 사랑만 다루고 있지만, 물론 그것을 통해 2013년 한국 남녀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는 합니다만, 철학은 몇 쪽, 혹은 몇 줄의 글로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혹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니 말입니다.
철학은 사실을 기술하는 대신에 개념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논의합니다. 철학에서는 개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철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도 대부분은 일상적인 언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 습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이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평소에 사용하는 말인데도 '그 말(개념 혹은 단어)이 무슨 뜻인가?'라고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당황하게 되겠죠.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알고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약간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면 이것이 창의성의 기초입니다. 평소에도 자신이 사용하는 말이 무슨 뜻일지 한번 자문해 보는 습관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습관이 되면 생각보다 당황스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사람들이 철학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철학적인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철학을 처음부터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다간 끝이 없겠죠. 그리고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읽고 있는 그 책을 통해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는 것 몇 가지만 철학 사전을 찾아보기 비랍니다.
철학책을 읽을 때 완전하게 이해하려고 욕심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 철학책을 읽고 있는지 반문해 보기 바랍니다. 앞에서 한 말을 생각해 보기시 바랍니다. 철학적인 책을 읽을 때는 아마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지 지적 호기심 때문에 읽고 있는 것이라면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해 알고 싶어서라면 그 주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을 소설의 이야기나 자신의 이야기를 연상해가며 읽으면 됩니다. 그러면 추상적인 글들이 구체적인 것이 되고, 그 글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쓰다보니 조금 길어졌습니다.
더 길어지면 이 글을 읽는데도 힘드실 것 같아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정말 좋은 선생님이 있으면 철학도 정말 재미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선생님이 흔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OOO 님이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 알았다면 답변을 좀더 간략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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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 길어도 좋은데 ㅠ_ㅜ
아~ 정말 저 철학 공부할거에요!
인문학적 발상을 위해 ㅎㅎ 호기심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