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초를 보다
정옥금 지음 / 해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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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무 시집을 안 읽는다.

읽으려고 노력한다는 게 일 년에 1~2권 정도다. ㅎㅎ

왜냐~ 시집을 고를 줄도 모를 뿐더라 아무거나 읽을 용기도 없고

읽었다고 해도 이해력이 부족한지 이해도 안되고 공감도 안된다.

어떤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인의 자아에 갇혀 허덕이다가 빠져나와서는

'뭐라는 거야?'라며 허탈함에 한참 짜증을 냈다.

시인의 시상에 감히 다가갈 수 없겠끔 써 놓은 시들이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곤 해서

일찍 책을 덮었었던 것 같다.

 

우연하게

단편처럼 시를 쓰는 시인을 만났다.

빨간 표시가 눈에 띄어 그냥 넘겼더니 시집이였다. -_-;

 

안 읽으려 했는데 찰나에 눈이 몇 줄을 훑어 버려

한 편 읽게 되었다.

 

그 한 편의 시가 나를 홀렸다.

 

 

그 늙은 암소가 걸어갔던

 

늙은 암소는 새벽이슬을 털며

도살장으로 가는 들길로 뚜벅뚜벅 걸었다

생살을 뚫고 코뚜레에 잡혀 오래 걸었던

고달팠던 생의 길, 내려놓고

푸줏간 쇠갈고리에 뒷다리가 걸리던 날

아침 해는 여전히 동산 위로 떠오르고

길섶 풀잎들도 파랗게 나풀거렸다

 

쓰윽 쓰윽~ 숫돌에 칼날 서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두 눈만 자주 껌벅거릴 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영축산 아래 샛터 도살장

일말의 동정심도 주저함도 없이 내리친

도끼질에 내장을 쏟아내고 사지가 잘려서

수북이 소달구지에 실려 푸줏간으로 떠났다

 

그 해 아버지는 장날 새벽마다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도살장으로 가셨다

눈알을 치켜뜨고 숨을 거두는 암소 눈처럼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갈라진 뱃속에서

쓸개를 빼내어 짚 끈에 묶어 들고 달려오셨다

 

그 늙은 암소 쓸개물이 조금씩 종지에 담겨서

아침마다 내 목으로 다 넘어가고 난 후 다시

아버지는 스물일곱 번 도살장으로 달려가서

스물일곱 마리 소 뱃속에서 쓸개를 빼내어

잦은 병치레로 비실거렸던 막내딸에게

맵고 쓰고 지린 쓸개 물을 지키고 먹였다

 

내가 눈물로 먹었던 그 쓸개 수보다

더 많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새끼 다 뺀 암소 뱃가죽처럼

축 처진 내 배를 쓰다듬어 본다

꼴깍, 쓴물이 목으로 넘어온다 그렇구나!

아버지는 맵고 쓰고 지린내 풍기는 세상 속에서

올곧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하신 게로구나

 

그 늙은 암소가 걸어갔던 비릿한

무저항의 들길로 아버지가 오신다

소 쓸개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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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 대한 나의 좁은 소견으로 보건데

선택된 단어들이 썩~ 시어답게 아름답거나 특이하거나 사랑스럽지는 않다.

그럼에도 먹먹함과 따뜻함이라는 여운을 내게 남기는 걸 보면

내 판단으로는 시집을 잘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쉽게 다가올거라 생각된다.

 

또 다른 한 편의 시

 

 

가덕도 시편 4

 

섬을 한 바퀴 돌다가

미역 망태를 무겁게 짊어지고

언덕 비탈길로 들어서는 노파에게

- 할머니 그 미역 좀 팔고 가이소

길바닥에 내려놓은 싱싱한 미역 망태기

- 미역 우째 팔낍니껴?

- 가갈만쿰 가가고 알아서 돈 주소

엉거주춤 서 있는 우리 일행을 보고

- 아이고~ 묵을만쿰 가가라 카이~

비닐봉지에 가득가득 담아 놓고 또, 주춤하니

낚아채듯 천 원 지폐 두 장만 집는다

- 할머니 이래 받아가꼬 됩니까?

- 안되지러~ 인자 이 섬이 울매나 약아짔는데...

그래도... 내사 안 변하지러~

 

그 말씀에 꽃이 피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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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변하고 변해서 내가 없어질 판인데

할머니는 안 변하시겠단다. 멋지다. ㅋㅋ

 

독자랑 같이 놀줄 아는 시인을 만나 시집 한 권 재미지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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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조선경 글 그림 / 노란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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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매 전에 내용을 살필 겸 해서 서점에 갔었다.


구매 후보 책들을 추려내고 나서 겸사겸사 귀여운 조카 생각에 유아코너로 갔다.


거기서 발견한 책인데 몇 줄 되지도 않는 글자들 다 읽어버리고, 한동안 멍하게 서서 그림만을 뚫어져라 쳐다봤었다.



아놔! 분명 동화책인데 무늬만 동화책이다.


뭐지... 엄청나게 여운을 남기는 이 책은...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무조건 읽어야 한다.


20~30대에게 추천하고 싶다.



새끼를 위해 희생하는 멧돼지엄마... 나는 연습 시키는 건 정말 충격; 왜! 목소리만 출연하냐고 ㅠ ㅠ


멧돼지 엄마가 안 보이잖아!



책의 줄거리에 의해 파랑새는 '나'로 멧돼지는 '우리 엄마'로 다가와 나를 먹먹하게 만든다.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책이다.


책의 몇 줄 안되는 글자에 더 이상은 스포일러라 삼가한다.


그래도... 그래도... 너무 찡해서 사진은 3컷이나 찍었다.



결국에는 조카 동화책은 관두고, 파랑새 한 권 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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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13-12-16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을 위한 동화인가 봐요
저는 아마, 읽다 엄마생각에 울 거 같은데요ㅋㅋㅋㅋㅋ
추천 감사합니다^_^

책읽는노력가 2013-12-16 11:48   좋아요 0 | URL
읽고 나서 좀 먹먹했어요. 민망하게;;
저한테는 조카가 들고 있었으면 과자 사주고 뺏고 싶을 정도의 책이였어요.
 
성학집요 - 성인이 갖추어야 할 배움의 모든 것
이이 지음, 김태완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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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집요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분명 한글을 읽고 있는데도 해석이 필요했다는 거다.

내가 선조 대에 산 사람도 아니고, 머리가 뛰어나서 이해력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율곡이이 살아 생전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 운 좋게 선조 대에 살았다고 한들, 난 성학집요를 읽을 수 없다. 읽는 것조차 반역이기 때문이다. 왕의 교과서를 사대부가 읽던 종친이 읽던 반역은 반역이다.


긍께...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라는 마음으로 '내 멋대로' 리뷰를 시작해본다.


聖學輯要 한자 풀이 그대로... 성인의 학문을 모은 책이다. 조선시대 성인의 학문은 유교이다.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육경(역경, 서경, 시경, 춘추, 예기, 악기)과 옛 성현의 말씀을 대학 순서에 따라 해당하는 글을 발췌해 편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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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을 위한 순서


1. 성학집요의 편찬 시대 배경 이해하기.


서문보다 먼저 부록 670~684 [성학집요에 대하여]부터 읽기 바랍니다.


율곡 이이가 대학의 본지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여러 단계(26쪽, 27쪽 참고 바람)를 이와 관계있는 사서육경 및 성현의 말을 모아 자신의 주석을 붙여 엮은 책으로 홍문관 부제학으로 있던 1575년 선조에게 받쳤습니다.

후사 없이 승하한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는 조선 건국 이래 왕의 아들이 아닌 자가 왕이 되는 첫 사례를 남깁니다. 그러니 제왕학은 고사하고 세자 교육 또한 받지 못한 백지 상태로 선조는 즉위하게 됩니다.


스승도 필요했을 것이고, 이런 심각한 상황에 신하가 가만히 있으면 도리가 아니였겠죠? ㅎㅎ

윗글은 대충 제가 아는대로 적은 것이고, 670~684쪽은 꼭! 읽고 넘어가세요!



2. 619쪽 포스트잇을 붙인다.


읽다보면 모르는 사람들 참 많이 나옵니다.

한국 역사 인물들도 잘 모르는데 중국 역사 인물은 알 턱이 없죠.

619쪽부터 669쪽까지 책 속에 언급되는 인물들의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3. 일러두기부터 쭉쭉 읽어나간다.



4. 읽다가 '신이 생각건대'라는 문구부터는 소리내어 읽는다.


신이 생각건대, 이 뒷 부분부터 율곡이 해당 윗글에 대해 쉽게 풀이하고 자신의 생각을 넣어 들려줍니다. 그러니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해주는 것처럼 소리내어 읽는 게 머릿속에 속속 들어옵니다.



5. 모르는 것을 만나면 무조건 걸고 넘어진다.


책상에 앉아서 읽는다면 컴퓨터로 검색을~

지하철에서 읽는다면 휴대폰으로 검색을~

찾아볼 조건이 안된다면 폰 메모장에 입력하거나 포스트잇 붙여놓고 나중에 찾아보기!


성학집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이렇게 찾아 흔적을 남겼습니다.



위의(威儀), 매상(昧爽), 가라지, 제절(制節), 반목(反目), 깝작거리다, 가멸다, 칭사(稱謝), 은일(隱逸), 부화뇌동(附和雷同), 고식적(姑息的), 서캐, 칭탁(稱託), 참소하다, 명철하다, 지엽적, 한갓, 느즈러지다, 아교(阿膠), 편벽(便辟), 섶, 담지자, 부닐다


들어본 기억도 없고, 써본 적도, 말로 뱉어 본 적도 없는 단어들이다. 책 읽기도 전에 단어 뜻부터 찾아야 했다.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



책을 읽고 율곡 이이의 글재주에 감탄하며...


오만원의 아들 오천원 ㅡ,.ㅡ;


선조의 흠을 고상한 말로 깔대로 다 까면서 군신의 도리를 다한다는 느낌를 남겨놓고 자기 할 말 다하는 재주에 감동해 본다.

'내(율곡)가 너(선조)보다 더 많이 알아. 똑바로 해! 근데 넌 나보다 더 성군이 될거야.'

뭐 이런 느낌...

앞부분은 선조를 칭찬하면서 뒤로가면 너 그렇게 하면 안돼.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겠니?

살살 달래가면서 할 말은 다한다. 임금을 상대로 율곡 대단하다. +ㅁ+



내 맘대로 공감...


359p

신이 생각건대,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이고, 임금이 백성의 부모라는 말은 매우 적절한 말입니다. 장자(張子)의 [서명(西銘)]은 하늘과 땅을 부모로, 임금[大君]을 종가의 맏아들[宗子]로 여겼는데 그에 관해 더욱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어 아래에 조심스럽게 수록합니다.


성학집요를 읽고 나서 율곡이 생각한 왕도정치란 이 2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식 굶기는 부모 없고, 자식 힘든 일 시키려는 부모 없고, 자식 아프길 바라는 부모 없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곧 성군이다. 백성을 자식처럼 여겨라.



448p

주자가 말했다. "한 가지 의롭지 않은 일을 하고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여서 온 세상을 얻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 바른 것이다."


이상은 창업(創業)의 도리를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있던 말인데;;; 찾아봤더니, 299쪽에 나와있었다.

[불의한 일을 단 한 번, 무고한 사람을 단 한 명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율곡이 20살 때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자경문] 중 일부였습니다. -_-;;

율곡이 지었다고 써있지만 주자의 말을 빌려온거라는 -ㅅ-+



489p

맹자가 말했다. "아내가 없는 늙은이를 환(鰥)이라 하고, 남편이 없는 늙은이를 과(寡)라 하며, 자식이 없는 늙은이를 독(獨)이라 하고, 부모가 없는 어린이를 고(孤)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온 세상에서 가장 곤궁한 백성이면서 호소할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왕은 정령을 발하여 어진 정치를 베풀 때 반드시 이 네 부류를 먼저 돌보았습니다. 시경에서 '부자들이야 괜찮지만 괴롭고 외로운 사람들이 불쌍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환과독고'로 찾으면 없고 '환과고독'이라고 찾으면 나오더군요.

 맹자(B.C.372~B.C.289)가 살던 시대부터 복지 정책의 우선 순위가 명확했다는 것에 '대단한데?' 살짝 놀랐습니다.



515p

주역에서 말했다. "하늘과 땅이 사귀는 것이 태(天地交泰)이다. 임금은 이것을 본받아 하늘과 땅의 도를 잘 마름질하여 이루어내고 하늘과 땅의 마땅함을 도와서 이로써 백성을 돕는다."


이 문구를 읽고 뜬금없이 생각났던 게 '정도전', '경복궁'이였다.

아~ 경복궁 왕비 침전을 교태전으로 지은 이유가 있구나.  ///ㅅ///



이러면 안되지만 그래도 내 맘대로 공개...






읽고 생각한 내 멋대로의 요점


양심을 회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사사로운 욕망과 간신배에 흔들리지 않으며, 간언도 서슴지 않는 올곧은 충신을 밝혀 부모의 마음으로 백성을 어여삐 여기십시오.



꼭! 읽으세요.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바라고 들려주고 싶었던 국가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책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해력 부족하고 정독하는데 한참 걸리는 시는 분들 언제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육경(역경, 서경, 시경, 춘추, 예기, 악기)을 모두 읽어보겠습니까?


성학집요 한 권으로 핵심만이라도 읽어봅시다!


유학에 빠져들 것만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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