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네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 한 권의 책이 새 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 때마다, 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13쪽

도서관이 하나 사라질 때, 서점 하나가 문을 닫을 때 그리고 책 한 권이 망각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이곳을 알고 있는 우리 수호자들은 그 책들이 이곳에 도착했는지를 확인한단다. 이곳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책들이 언젠가는 새로운 독자, 새로운 영혼의 수중에 들어가길 기다리며 영원히 살고 있지.-14쪽

언젠가 아버지 서점의 단골 고객 한 사람이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준 첫번째 책처럼 한 독자에게 그토록 많은 흔적을 남기는 대상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첫번째 이미지들, 우리가 뒤에 남겨두었다고 생각하는 그 말들의 울림이 평생 동안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 기억에 하나의 궁전을 새겨놓는다. 조만간-우리가 얼마만큼의 책을 읽었는지, 얼마나 많은 세계를 발견했는지, 얼마를 배우고 또 잊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다시 돌아갈 그 기억에 말이다. 매혹적인 그 페이지들은, 내게 있어선, 언제나 '잊혀진 책들의 묘지'의 복도 사이에서 발견한 그 책이 될 것이다.-17~18쪽

유년기의 함정들 중의 하나는 느끼기 위해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성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 때는 이미 가슴속의 상처가 지나치게 깊어진 후다.-58쪽

만일 내가 아주 우연히 저 무한한 묘지 사이에 있는 이름 모를 단 한 권의 책에서 온 우주를 발견했다면, 더 많은 수만 권의 책들이 알려지지 않고 영원히 잊혀진 채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버려진 수백만의 페이지들, 주인 없는 영혼들과 우주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꼈다. 그것들은, 그 도서관 담 바깥에서 맥박치는 세상이 더 많은 것을 잊어갈수록 더 현명해진다고 느끼면서 날마다 부지불식간에 기억을 잃어가는 동안, 어두운 대양에 가라앉고 있었다.-122쪽

언젠가 누가 그랬어.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 섰다면, 그땐 이미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282쪽

그때까지 그것이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임 부재와 상실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그 때문에 그 이야기와 내 자신의 삶이 혼동될 때까지 나는 이 이야기 속에 피신해 있었다고, 사랑해야 할 이들이 단지 이방인의 영혼에 살고 있는 그림자일 뿐일 것 같아 소설 속으로 도망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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