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자는 가까운 곳에 머물렀으나 글은 좀처럼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글을 쓰지 않은 날이 길어졌고, 그 날들은 무참히 기억 속에서 흩어졌으며, 나를 거쳐간 시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였고, 그 자리에 머문 시간만큼 조급해졌지만, 벗어나지 못한 그 자리만큼 좁은 감옥에 갇혔다. 답답함이 불안함에서 무력함으로 이어졌다. 글을 쓸 수 없어 무력했고, 무참했다.

 

  그러다 오늘 신형철의 산문을 읽었다. 그는 말했다. 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들로부터 진실을 지키는 것이라고. 그 말이 나를 쓰게 만들었다. 내 글을 해방시켰다.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는 언어이다. 언어는 세계가 아니다. 언어는 세계를 가리킬지언정 세계일 수 없다. 언어는 세계가 아니므로 진실일 수도 진리일 수도 없다. 나의 언어는 그저 나의 언어일 뿐이며, 나와 나의 언어 모두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의 일부일 뿐이며, 세계에서 사라져 가는 존재이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럴듯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고, 내가 말하는 진실이 누군가를 감화시키길 원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말이 진실을 재단하는 순간, 진실은 손상된다. 닫힌 것은 무한한 것을 품을 수 없다. 문장은 폐쇄적이며 진실은 경계가 없다. 나는 너무나도 건방졌던 것이다.

 

  형식논리학에서 참을 얻는 방식은 두 가지다. 참된 전제로부터 참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 혹은 거짓된 전제를 말하는 것. 거짓을 얻는 방식은 한 가지다. 참된 전제로부터 거짓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 나는 참된 전제로부터 참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참된 글을 쓰고자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 수반되는 거짓의 위험성을 두려워했다. 참된 전제를 포기한다면, 역설적이게도 무조건 참이다. 참을 지키는 것은 간단하다. 참이라는 전제를 포기해버리면 된다. 나는 그 전제를 몹시도 움켜쥐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글은 참이 아니다. 고로 거짓이다. 이제 진실을 주장하지 않겠다. 대신 거짓을 써 진실을 지키겠다. 가슴저릿한 거짓말이다. 나는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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