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이와 종화형이 '인사이드 잡'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같이 보러 간다길래 마침 시간이 괜찮아 급히 합류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2011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했단다. 그런데 서울에서 단 3곳에서만 상영한다고 해, 그 중 하나인 이대의 아트하우스에서 관람했다. 

 2009년 1학기에 대학신문 학술부 기자 신분으로 금융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재 기사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꽤 깊이 공부했었는데, 영화에서 다룬 내용은 사실 거의 전부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땐 잘 몰랐지만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AIG가 주로 판매한 신용부도스와프, 즉 파생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보험을 파생상품을 판매한 투자은행이 구매했다는 사실, 즉 자신들이 판매한 상품이 부실하면 부실할 수록 오히려 이득을 누릴 수 있는 모럴 헤저드의 끝을 보였단 사실이었다. 모기지 회사-투자은행-보험회사-신용등급평가기관의 4각카르텔은 막강했다.

 그러나 글로 보던 것과 실제 사태를 일으킨 인물들이 직접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그들의 뻔뻔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 말도 안되는 책임 회피를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인, 경제 관료, 은행가, 경제학자들이 하고 있었다. 나는 특히 경제학자들의 뻔뻔함과 부도덕함에 치를 떨었다. 하버드대, 콜럼비아대 등 명문대에서 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교수들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던 금융시장에 경고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이 가능하도록 해괴한 논리와 명분을 제공해줬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학계의 자본유착은 상상이상이었다. 금융위기 사태로 국가가 완전히 부도가 난 아이슬란드의 상공회의소로부터 한 교수는 무료 125,000 달러를 받고 아이슬란드 경제의 안정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주었다. 제목하야 'The stability of Island Economy'. 그런데 지금 그의 cv에 이 논문은 'The 'instability' of Island Economy'라고 '오타'가 들어가 있다. 허허. 참 절묘한 오타다.  

 그리고 사태를 일으킨 주범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수천억의 성과급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단지 몇몇 미국인의 돈을 수탈한 것이 아니었다. 금융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핀란드 시골 농민에게까지 사기 파생상품을 팔았다. 이들이 일으킨 금융위기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찾아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았다.  

 한국인이며 한국인의 운명을 따르는 나는 인사이드 잡을 한국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거의 완벽히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저축은행 사태를 보자. 저축은행 사태는 부동산 거품에 편승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은행이 몸집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부실과 부패가 축적되었으나 그것을 감독,규제해야할 금융당국은 그들과 유착하여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 와중에 저축은행은 검은 돈을 통해 정치권을 움직여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저지했다. 주택시장 거품을 촉진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엄청난 파생상품을 만들고, 엄청난 금액의 로비를 펼쳐 금융규제를 풀고 감독을 무력화시킨 금융위기 사태와 매우 흡사하다. 

 미국에서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여전히 추진하는 정책들도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됐다. 강만수 산은회장이 강력히 추진하는 메가뱅크의 탄생은 미국 금융이 한꺼번에 무너졌던 것이 90년대에 활발히 진행된 금융권 통폐합에 따른 위기부담 증가라는 사실에 비춰볼 수 있다. 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합에 나서는 것은 은행의 규모가 커질수록 정부가 은행이 망하는 것을 놔둘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정부가 씨티은행에 엄청난 구제금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씨티그룹이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기 때문이었다. 

 금융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각종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외국 자본에 대한 벽도 낮추려 했다. 한국 경제가 미국의 한 투자회사가 부도가 나자 곧바로 주가가 반에 반토막이 나고 환율이 급등했던 것은 IMF 이후 진행된 금융 규제 완화의 결과였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처럼 빠르게 경제를 지표상으로나마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많은 규제들이 남아있고, 우리의 경제가 아이슬란드처럼 과잉금융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얼마 안 남은 보호막마저도 이 정부는 없애왔고, 또 없애려 한다. 

 무엇보다 긴장되는 것은 학자들의 타락이다. 뉴욕대의 루비니 교수처럼 일찍이 금융위기를 경고해온 교수들도 있지만 미국 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월스트리트의 도둑질에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그들 다수가 이런 파국적인 금융 체제를 비판했었더라면 사태는 일어나지 않거나 조기에 수습되었을 것이나, 그들은 그 대신 바로 그 도둑들에게서 돈을 받고 이사직과 고문직을 맡았다. 사외이사로 기업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는 교수들이 점점 나는 한국 사회에도 학계와 자본의 유착이 매우 우려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서울대 법인화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확장시킬 수 있을 듯 하다. 현행 국립대 체제에서도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김수행 교수님 퇴임 이후에 단 한 명도 없는데, 법인화가 되면 얼마나 더 심해질 것인가? 기업이 원하는 이야기만을 하는 경제학자가 서울대를 가득 메우게 된다면, 그들의 권위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정부 정책은 단순히 친기업적일뿐 아니라 미국에서 파국적 결과를 보여준 금융자본주의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여러모로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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