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깔린 수풀 사이로 한 무리의 척후병들이 주변 지역을 정탐한다. 그 중 하나가 도시를 발견하고 정찰 활동을 벌인 후 자신의 도시로 돌아가 보고한다. 그날 오후, 해가 산으로 넘어가는 것을 신호로 수만의 병사들이 일제히 도시를 빠져 나와 목표 도시로 행군한다. 그들에게 더 이상 결전에 대한 결의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이웃 도시에 도착한 군대는 급급히 방어태세를 갖춘 도시를 쉽사리 공략한 후, 도시의 아이들을 빼앗아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식량도, 보물도, 여자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아이’를 원한다. 아이를 빼앗긴 어미들이 절규를 하며 한 병사에게 달려들지만 그는 가볍게 뿌리치고 자신의 도시로 귀환한다. 아이들은 곧장 노예육성소에 넘겨진다. 여왕의 세뇌교육 아래 아이들은 머지않아 도시의 훌륭한 일꾼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먼 과거의 어느 고대 도시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웃 도시들로부터 아이를 탈취해서, 그들을 노예로 키워 생산계급화 하는 어떤 도시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고대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 어떤 도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노예사냥을 위한 출병을 하고 있다. 이 도시는 바로, ‘개미’의 도시다.
'Slave-making ants'로 알려진 Polyergus 속의 개미들은 Formica 속에 속하는 개미들을 노예로 만들어 그들의 노동력과 생산력에 기생하는 ‘노예화 개미’들이다. 이들을 소개한 다큐멘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는데, 나는 지난여름 미국 애리조나의 한 숲에서 그들의 행렬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당시 나는 미국자연사박물관 소속 야외생물학기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두시간여동안 내가 목도한 노예사냥 장면은 가히 'Culture shock'이었다. 일체의 낙오자 없는 십여 미터의 대열, 부스럭거리는 낙엽 위를 행진하는 수만의 발자국 소리, 망설임이란 찾아볼 수 없는 돌격 장면, 잠깐의 전투 뒤 포획한 알과 애벌레를 문 개미들이 또다시 만들어낸 십여 미터의 대열. 노예해방의 나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미들의 노예사냥 관찰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고자 하였다. 그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인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가 있으니 바로 ‘개미’의 사회이다. 1억년도 더 전에 개미들이 등장하였으니, 사회생활로만 따지면 이들이 인간의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개미들은 인간보다 훨씬 전에 계급사회를 형성했으며, 생산의 분업화를 이룩하고 심지어는 Polyergus 속처럼 노예제도를 발달시키기도 하였다. 이들의 사회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어떤 면에서 환경을 개척하고 적응해나가는 능력은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가치판단 없이 Polyergus 속의 노예제도를 평가해보면 인간이 절대 이룩할 수 없었던 완벽한 형태의 노예사회를 이루어내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개미의 생존 방식과 사회성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목을 끄는 것은 아마 개미의 ‘계급체제’ 일 것이다. 개미는 크게 생식개미와 비생식개미로 나뉘며 오로지 생식개미 계급만이 종족의 번식을 담당한다. 비생식개미 계급은 모두 암컷이며 이들은 역할에 따라 병정개미와 일개미 등으로 나뉘는데, 개미는 유일하게 전투계급의 개체를 생산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미의 계급사회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특별한 번식방법으로 인해 가능하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 모두 엄마와 아빠의 염색체를 반반씩 물려받는 데 비해, 개미는 둘 다 물려받았을 때 암컷, 하나만 물려받았을 때 수컷이 된다. 따라서 수개미는 염색체가 반밖에 없기 때문에 생식과정에서 그 반을 모두 자손에게 넘겨주게 되고, 모든 딸 개미들은 수개미의 동일한 염색체를 받게 된다. 그 결과, 자매들끼리 아빠 개미의 염색체는 100%, 엄마 개미의 염색체는 50%를 공유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75%의 염색체를 공유한다. 반면, 일개미가 직접 자손을 낳으면 염색체의 반만을 물려주어 50%의 염색체만을 공유하기 때문에 자손을 낳는 것 보다 자매들, 즉 전체 군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된다.
이렇게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심으로 똘똘 뭉친 개미들은 농업 혁명을 일궈내기도 하였다. 농업 혁명을 통해 본격적인 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잉여생산물로 인해 계급사회가 형성 되었던 인간과는 반대로, 개미들은 이미 형성된 자신들의 도시에 안정적인 식량 수급을 위해 최초로 농사를 시작하였다. 잎꾼개미 혹은 가위개미로 알려진 개미들은 중남미 지역의 열대림에서 서식하는 ‘버섯재배’ 개미들이다. 일개미들이 식물의 잎을 잘라 거대한 지하 도시의 버섯 배양실에 옮기면 기능개미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잎을 잘게 씹어 모아둔다. 잎꾼개미들은 이 잎더미에서 균사체를 배양하고 그 성장을 관리하며, 그로부터 균포를 수확하여 먹이로 이용한다. 더군다나 이들은 가슴과 배 부분에 방선균을 키우는데, 이 방선균은 항생물질을 생성해내는 대표적인 미생물로, 버섯이 세균에 감염될 경우 그 부분을 몸으로 문질러 항생제를 ‘투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기 수만년 전부터 개미들이 이미 항생제를 사용해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농업 혁명의 중요한 한 측면인 목축도 이미 개미들이 먼저 일궈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많은 개미들은 진딧물과 공생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진딧물은 자신이 소화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액을 빨아들이기도 하는데, 이때 잉여 수액이 배 끝에서 새어나온다. 개미는 이 진딧물들을 조직적으로 보호하며 잉여 수액을 빨아들여 식량으로 이용하는 농장을 오래전부터 운영해온 것이다. 어쩌면 도축을 일삼고 새끼에게 줄 젖을 억지로 짜내기도 하는 인간들보다 개미들이 훨씬 더 진보한,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목축업을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축적되고 발전하면서 인간은 좀더 적극적으로 자연을 개발하고 환경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우리가 자연의 정복자이자 지배자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지구의 주인이라는 생각까지 품게 되었다. 인간의 사회가 곧 세계이며, 자연환경은 인간 사회를 떠받들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작은 미물에 불과해 보이는 개미와 개미 사회의 존재는 이 인간중심의 사고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인류문명의 소산이라 여겨지는 많은 역사적 성과들이 실제론 인류가 생겨나기도 전 개미들이 벌써 일궈낸 것들이라는 사실은 인간의 오만함을 비웃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수천만년 동안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해온 개미들 앞에서 우리는 ‘주름 잡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원자폭탄 투하에도 개미는 살아남았다지 않는가.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혁명의 시조이자 사회생활의 선배인 개미들에게 지혜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최재천, 개미 제국의 발견 -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 이야기, 사이언스북스, 1999
Howard et al., BEHAVIORAL ECOLOGY OF THE SLAVE-MAKING ANT, POLYERGUS BREVICEPS, IN A DESERT HABITAT, THE SOUTHWESTERN NATURALIST 30(2):289-29
베르베르 베르나르, 이세욱 역, 개미, 열린 책들, 2001
오태광, 개미가 키우는 두가지 미생물, 중앙일보, 2006년 1월 20일자 20면 기사
<獨 생물학자, 1억2000만 년 전 개미 발견…진화연구에 단서>, 2008년 9월 17일자 이남진 기자 뉴시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