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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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언젠가 한번 봐야지 했던 장은진 작가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준호에게 생일 선물로 받았다. 한 달 가까이 책꽂이에 방치하다 오늘 밤에야 완독했다. 마지막 문장을 마무리 할 때 가슴이 뭉클했고 눈가도 촉촉해졌다. 이 느낌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간만에 키보드를 잡았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우리가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답장을 받기 위해서다. 그것이 비록 내가 보낸 것과 같은 형태의 답신은 아니라 하더라도 수신인의 반응, 그것이 없다면 편지는 고지서에 불과하다. 아니, 고지서조차도 받는 자의 납부를 바란다. 편지는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지지도, 더더군다나 버려지지도 않았음을 확인하려는 희망수단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위험하다. 답장은, 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나는 여행을 한다. 눈 먼 할아버지의 눈 먼 개 와조와 함께 모텔을 전전하면서.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 위한 것이다. 수학선생님의 아들인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숫자를 붙이고 주소를 묻는다. 모텔에서 매일 밤 편지를 쓰고 공중전화로 매일 옆집 친구에게 편지가 왔는지 묻는다. 지하철에서 만난 그녀에게 751이라는 숫자를 부여할 때까지 단 한통의 답장도 받지 못한다. 오늘도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 는 말은 일과가 되었고, 답장을 받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여행은 3년째 끝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751을 만난다.

751은 자기 손으로 쓴 소설을 자기 손으로 파는 작가이자 장사꾼이다. 751도 모텔을 전전하는 여행자다. 751이 이런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나와 비슷하다. 751은 소설을 썼고 출판을 했으나 751의 책은 서점 창고에서 발견됐다. 그녀는 세상에 편지를 부쳤으나 세상은 편지를 홀대했다. 그래서 그녀 역시 답장을 직접 받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런 751은 나를 한눈에 간파했는지 성가시게 끝까지 따라온다. 여자는 나에게 모텔을 소개해준다. 화가의 이름이 객호인 보기드문 여행자 숙소에 나는 여자와 가까워진다. 각방을 쓰던 사이는 한방을 쓰던 사이가 되지만 한 침대를 쓰는 사이가 되진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둘은, 둘이 된다. 친구와 각본을 쓰다 단어 하나를 두고 절교해 버린 751과, 말을 더듬어 누군가와 함께 있단 사실 그 자체가 불편한 내가 둘이 있는데 익숙해지고 의지하게 된다. 최소한 둘은 서로에게 보낸 편지에 서로 답장을 해주는 사이가 된다. 어느 날부터, 편지는 오지 않았지만 나는 답장을 받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 여행은 나 혼자 누군가의 답장을 간절히 기다리는 외로운 여행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치면 노인의 몸으로 3년 가까이 거리를 떠돈, 장기가 다 망가질 지경에 이를 때까지 나에게 답장 한 장 독촉하지 않은 나의 개 와조, 와조는 늘 나에게 편지하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 높다랗게 쌓여있는 편지를 읽을 시간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빈 우체통이 아니라 답장으로 가득찬 나날이다.

세상을 떠도는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엔, 어쩌면 편지 한 통으로 충분할 지 모른다. 그들이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으니.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나'처럼 수신인을 한꺼번에 잃었을 때엔 편지 한 통은 더 절박하다. 아직 내 앞으로 도착할 편지가 한 통 있다면, 삶은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다.

삭막한 이 세상에 엄하게 툭 떨어진 편지 한 통이, 그 종이 한 장이 마음을 얼마나 채우는지를, 받아본 자는 알 것이다. 안다면, 편지 한 통 보내자.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어, 하며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에게. 여기, 아직 편지하는 사람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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