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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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해야 해.

 

모아이가 중얼거렸다.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을 자행한 것은 수천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게 그 뱇이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利己)가 있다는 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한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생존해야 해. 우리가 죽는다 해서 우릴 죽인 수천 볼트의 괴물은 발견되지 않아. 직렬의 전류를 피해가며, 모두가 미미하고 모두가 위험한 이 세계에서-그래서 생존해야해. 자신의 9볼트가 직렬로 이용되지 않게 경계하며, 건강하게, 탁구를 치면서 말이야.

 

실버스프링의 핑퐁맨처럼?

실버스프링의 핑퐁맨처럼.

 
(pp.180~181)


 

박민규의 소설은 '단숨에 읽힌다'라는 표현이 그 어느 작품에 비할 수 없이 잘 어울린다. '핑퐁' 역시 그러했다. 마치 세트스코어 3대 3에서 자리를 바꿔 다음 세트로 넘어가는 기분으로 한 쪽 한 쪽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그리고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처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강렬한 인상이 남았다. '실버스프링의 핑퐁맨처럼.'

어느날 네바다 주 실버스프링에서 볼링을 치던 한 남자는 자신의 볼링공이 지구공을 바뀐 걸 깨닫는다. 그가 '지구고 뭐고 간에 빨리 던져'라는 '중요한' 술내기를 건 동료들의 독촉에 지구를 마루 위에 던지자 지구 곳곳에서 지진과 산사태가 일어난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음에도 그는 '생활'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서' 계속 지구를 던진다. 남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고, 아프리카가 세 대륙으로 쪼개질 때까지 말이다. 그제서야 그는 볼링공을 놓고 탁구채를 잡는다. 실버스프링의 '핑퐁맨'이 탄생한 것이다.

존 메이슨의 <핑퐁맨>의 지구를 던지는 '핑퐁맨'까지는 아니더라도 , 우리가 직렬로 늘어선다면 한 사람을 죽이고, 전쟁까지도 일으킬 수 있는 9볼트의 건전지라는 박민규의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고, 참신하고, 멋지다. 분명 나도 9볼트의 건전지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건데, 나도 분명 직렬회로의 한 부호가 되어 어떤 이의 저항을 애써 달군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교 시절에 그러했거늘, 머리가 한 없이 굵어진 전지가 된 지금, 혹은 나중에야 어떤 곳에 지진을 일으키고 산사태를 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 그래서 박민규는 그러한 9볼트가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우리는 탁구를 쳐야한다고 말한다. '핑' '퐁' 하면서 말이다.

문학에 별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하기엔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박민규는 천재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새롭다'. '최고급' 혹은 '신소재' 따위로 치장하지 않아도 더할나위 없이 신선하다. 이런 식이다. 태양을 구슬만한 크기라 해도 지구와의 사이에 놓은 200km 만큼의 거리로 개별화 된 현대(modern) 사회의 개인들은 '인류가 <깜빡>한 인간'들이 된다. 인류의 역사가 밟아온 문명과 야만의 앞서거니와 뒷서거니, 이를테면 인류애와 홀로코스트 같은 대립은 어드벤테이지와 어게인이 끊임없이 이어져,  '173845792629921:173845792629920'에 이른 듀스포인트다. 그의 작품 작품, 장 장, 쪽 쪽은 파격 파격의 연속이다. 하, 문학이란, 문학을 통한 창조란, 진정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오라. 나에게 박민규는 '창작가'를 넘어 '창조가'이다.

결국, 모아야할 컬렉션이 또 하나 늘어난 밤이다.   

 (2009년 4월 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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