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낮과 밤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낮과 밤을 살아가는 나도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는 낮과 왜 살아야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밤. 나는 하루하루 낮을 보내고 밤을 버텨낸다. 이유없이 몸이 뜨거워지고 목이 타는 그날 밤에도 나는 '밤은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 나는 지난 번 2009년 이상문학상에 밀려 내 손과 눈을 차지하지 못했던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집어들었다. 그 쓸쓸하기 그지없는 밤을 김연수는 '노래한다'고 했다. 나는 그날 밤에 문득 노래하는 밤과 쓸쓸한 밤이 같은 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태양아래 모든 존재가 '나는 진실이야'라고 외치는 낮이 아닌 그 모든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밤. 빛의 세계가 한낱 꿈이 되어버리는 그 시간,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을 꿈꾸지 않는다. 

  ‘밤은 노래한다’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낮의 세계에서 밤의 세계로 추락하는 김해연의 이야기다. 혁명의 격랑에 빠진 1930년대 간도는 그저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일 뿐인 그가 낮의 세계에만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자 해연은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된다. 사람을 죽인 자가 어찌 다시 낮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리오. 500여 명의 혁명가들이 주적인 일제나 친일분자가 아닌 동지들에 의해 죽이고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민생단 사건’의 연루자들도 모두 한 때는 낮의 존재들이었다. 그 누구도 살인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살인자가 되었다. 도대체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박길룡은 박도만을 죽였고. 박도만은 최도식의 존재이유를 앗아갔다. 최도식은 이정희를 죽였고, 이정희를 사랑한 김해연은 박길룡을 죽였다. 결국 박길룡은 박길룡이 죽였고, 박도만은 박도만이 죽였다. ‘자주’를 부르짖던 낮의 박길룡을 과대망상에 빠진 밤의 박길룡이 죽였으며, 냉혹한 현실주의자인 낮의 박도만을 적의에 불타는 밤의 박도만이 죽여버렸다. 낮의 그들과 밤의 그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겠는가. 혁명은 세계에 대항하는 싸움이다. 옛 것은 버리고 새 것을 새우는 파괴와 창조의 과정이다. 옛 것은 옛 것으로 파괴할 수 없다. 

  따라서 세계를 향한 싸움은 나 자신의 파괴와 창조를 선결조건으로 한다. 값비싼 술과 숱한 미인을 거느리려는 깊은 밤의 오래된 욕망을 파괴해야만 그 위에 혁명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안세훈과 박길룡과 박도만과 최도식은 이정희를 향한 구태한 욕망을 파괴했어야만 한다. 정희의 퇴장과 함께 식어버리는 그들의 토론이야말로 그들이 논하는 혁명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들의 욕망을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변명할 수 있을까. 설령 그것이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혁명을 거스리는 사랑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혁명을 파괴했고 정희와 해연의 사랑은 혁명을 소생시켰다. 아무래도 김연수는 맑스보다 톨스토이를 편애하는 듯하다.

  요즘 ‘김연수’는 나에게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언제나 내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정말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근래에 난 지금 ‘위선’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있었다. 뻔히 제 밥그릇을 키우려는 목적이 훤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을 일삼는 위정자들과 노동운동을 부르짖는 노조간부가 성폭행을 자행하는 현실, 그리고 그 위선이 내 생활과 언어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더욱더 비참한 현실에서 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김연수는 혁명가들의 위선, 그리고 그로 인한 스스로와 혁명의 파멸을 담담히 보여주었다. 네 생각이 맞다고, 부조리한 세계를 대면하는 일이란 곧 너 스스로의 위선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그 위선을 뛰어넘지 않고 자신의 몫(moira)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는 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그 존재의 파멸뿐임을 '밤을 노래한다'는 보여주고 있다.

  누가 학문을 ‘자기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이라 했던가. 아직 너무나 어린 나에게 학문은 ‘자기모순을 발견하는 과정’에 겨우 미치고 있는 듯하다. 낮의 내가 밤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랄까. 욕망과 허영에 사로잡힌 내가 낮의 나를, 이성과 윤리의 내가 밤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끝없이 밀려온다. 하지만 아직 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한 사람을 완전히 사랑할 수도 없다. 

  밤은 노래하고 낮은 춤을 춘다. 나의 밤은 무엇을 노래하는가. 나는 뜨겁게 춤추고 있는가. 내 생각에는 어디에도 해연은 없다. 김연수가 말하는 촛불시위에서 춤추는 남총련 대학생들도 박길룡이오, 박도만이오, 최도식일 것이다. 혹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의 위선과 대작하는 길, 그 처절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일은 이 세계를 혁명하는 일에 버금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세계는 혁명된 적이 없다. 물론 단 한번도 혁명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적도 없다.

  밤은 쓸쓸하고 나는 노래한다. 내 삶과 내 세계에 대한 혁명과, 그 혁명에 대한 희망을.  

 (2009년 2월 1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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