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반지 - 세 일신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제안
패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두행숙 옮김 / 돋을새김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제는 『Gottes Eifer』다. 여기서 Gottes는 신을, Eifer는 열성을 뜻한다. 중동의 분쟁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한 것은 일신교가 열성적 종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만을 따르는 유일신교는 최고 존재의 유일성과 완전한 권능을 강조하는 종교적 보편구제설을 따른다. 따라서 일신교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질투와 경쟁심이 내재해 있다. 이러한 열성은 ‘팽창을 통한 세계 수용’으로 이어져 역사적으로 ‘원정(遠征)’이라는 형태로 표출됐고 오늘날까지도 그 열성이 전 세계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세 일신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제안’은 책의 표제인 ‘반지 설화’를 통해 제시된다. 반지 설화는 독일 극작가 레싱이 1779년에 발표한 희곡 『현자 나탄』의 한 일화로 저자는 이것만큼 일신교들을 우호적으로 ‘길들이는’ 계획은 없다고 말한다. 반지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과 인간들의 호감을 얻게 해주며 그 소유자의 상속권을 증명하는 ‘신의 반지’가 있었다. 반지를 가진 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모두 반지를 물려준다고 약속하고, 이를 지키고자 원본과 똑같은 두 개의 모조품을 만들어 물려준다. 아버지가 죽자 세 아들 사이에 상속권 다툼이 벌어지고 이들은 재판관을 불러 판결을 요구한다. 판사는 반지가 겉보기엔 모두 똑같기 때문에 자신의 행실을 통해 진짜 반지의 상속자임을 입증하라고 판결한다.

반지 설화를 단순하게 이해하면 세 반지의 소유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다. 유일신교인 이들이 자신의 종교가 진짜임을 입증하는 방법은 오직 자신들의 ‘행실’로 대중들의 평가를 받는 것뿐이다. 지혜로운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반지 설화가 발표된 후 지난 200여년간 그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열성’이었다. 열성주의자들은 대중이 진리의 절대적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일신교가 가진 엘리트주의적 특성 탓에 그들은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다. 열성주의적 일신교들은 자신들의 반지가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경쟁하며 반지 설화의 수정판을 만들어 냈다. 일신교는 애초에 이교도나 우상숭배자 없이는 성립될 수 없고, 일신교의 위상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저항이 필수적인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드러내야만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일신교들은 서로 맞서 더 오랫동안 싸우기 위해 서로를 너무나 필요로 했다. 이때 세 일신교의 공존 본질은 ‘대립’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 일신교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선 본래의 반지 설화로 돌아와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한때 계몽주의적 종교가 돌파구로 모색됐지만 프랑스 혁명기 공포정치는 그것에 내재한 광기와 열성을 드러냈다. 『사산된 신』이 지적하듯 그들이 낳은 것은 사산된 신이었다. 네 번째 반지로 의심됐던 공산주의 역시 파국적 말로를 맞았다. 가능한 것은 오로지 세 반지가 ‘열성’을 누르고 비열성적 문화종교로 거듭나는 것이다.

저자는 세 일신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은 ‘문명화’라고 말한다. 그는 다가(多可)적인 사고를 통해 문명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가적인 사고란 ‘나 아니면 이단’이라는 일신교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세 번째 가능성은 있다고 인정하는 것’, 저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회색을 취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본보기로 ‘코란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일가성 열성을 고수하던 이슬람의 사례를 든다. 그들은 사실상 개종하지 않고도 복종하는 디히미(Dihimmi, 이슬람 국가의 비모슬렘 시민)를 허용함으로써 흑과 백 사이의 ‘제3의 것’을 선택했다. 제3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동로마제국 인구의 절반을 잃게 한 이슬람의 팽창 정책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유혈 사태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대학신문, 2009년 9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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